조선시대 장수왕 TOP3
1 조선의 장수왕 1위, 영조 (83세)
조선의 왕들은 좋은 음식을 챙겨 먹었던 것은 물론이고 당대 최고 수준의 어의들이 왕의 건강을 철저하게 관리했습니다.
그렇다면 조선 왕들의 평균 수명은 과연 몇 살이었을까요?
위와 같은 각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 왕들의 평균 나이는 고작 46세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역사상 수많은 왕들이 있었지만 장기 집권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즉위한 지 며칠 만에 비명횡사하는 일도 비일비재했으며, 수많은 정적들에게 목숨을 위협받는 일도 상당했습니다.
또한 조선의 왕들은 고된 업무와 스트레스 그리고 잘못된 생활 습관으로 온갖 질병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오장이 불에 타는 듯해 죽고 싶다. 왕 노릇하다 미칠 것 같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니 괴롭고 괴로운 일이다
라고 하면서 왕으로서의 괴로움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조선 왕들의 평균 수명을 2배 가까이 살았던 왕이 있었으니, 바로 83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조선 제21대 왕 '영조'입니다.
영조는 재위 기간만 52년이었으며 83세까지 장수한 왕으로 조선 최고의 장수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 영조의 스트레스 요인
그런데 사실 장수왕 영조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왕이었습니다.
2. 1 어린 시절 이복형 경종과 벌인 정치 투쟁
영조는 어린 시절부터 왕좌를 놓고 이복형 경종과 정치 투쟁을 벌여왔습니다.
2. 2 이복형 경종을 게장과 감으로 독살했다는 의혹
경종을 독살한 당신이 어찌 왕이란 말이오
또한 경종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왕이 되기는 했지만 재위기간 내내 이복형 경종을 독살했다는 의혹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2. 3 미천한 궁녀 출신의 자식이라는 점
미천한 궁녀 출신의 소생이라는 출생에 대한 콤플렉스 또한 엄청났습니다.
2. 4 아들 사도세자의 죽음에 얽힌 사건
그리고 어린 시절 무척 사랑하고 아꼈던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게 만들었는데, 이것이 영조의 스트레스를 더욱 키운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습니다.
https://donbuller.tistory.com/entry/수원화성
3. 영조의 장수 비결
엄청난 스트레스에도 불구하고 영조가 83세까지 장수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3. 1 소식
영조는 보통 하루 5번 올리던 수라를 3번으로 줄이면서 소식을 했습니다.
3. 2 규칙적인 식사 시간
영조는 정해진 시간에 지나침 없이 규칙적인 식사를 했습니다.
신하들과 한참 논쟁을 하다가도 식사 때가 되면 신하들을 두고 식사를 하러 가기도 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3. 3. 건강검진
영조가 소식과 규칙적인 생활 습관만큼이나 건강 유지를 위해 다른 왕보다 압도적으로 많이 하며 신경 쓴 것이 또 있었습니다.
바로 '건강검진'입니다.
어의가 궁궐에 들어가 왕을 진찰하는 것을 뜻하는 입진 (入診 )또는 진후(診候)라고 하는데, 영조대 승정원일기를 검색해 보면 입진 또는 진후로 검색을 해보면 입진 검색 결과 무려 15,226건, 진후가 4,538건이나 나옵니다.
물론 이것은 왕비나 다른 이들도 포함된 수치 이기는 하지만, 많은 학자들에 따르면 영조는 총 7천 회 정도의 건강검진을 받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3. 4. 마통차(마분차) 마시기
영조 재위 2년째가 되던 1725년, 한여름 감기에 결려 시름시름 앓기 시작합니다.
어의들은 영조를 진찰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전하, 올여름 무더위를 견디시려면 마통차(마분차)를 드시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건강을 끔찍이 생각한 영조가 몸에 좋다는 차 마시기를 거부했는데 그것은 바로 이 차의 재료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말의 배설물로 만든 차였던 것입니다.
마통차(馬通茶) 혹은 마분차(馬糞茶)라고 불리던 이 차는 어린 말에게 특정한 풀을 먹인 뒤 변으로 나온 것을 골라내 끓여 즙을 낸 차를 말합니다.
그런데 재료는 꺼려졌지만 그 효과만큼은 확실했었던 것인지 건초만 먹는 말의 배설물에는 식이섬유가 풍부해 숙변해소는 물론이고 눈이 밝아지는 효과가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마통차 마시기를 꺼려했던 영조도 뛰어난 효능에 감탄해 즐겨마시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4. 조선의 장수왕 2위, 태조(73세)
73세까지 살았던 조선 제1대 왕 태조 이성계는 특별한 식이요법이 전해지지는 않았지만 일생의 대부분을 전쟁터에서 몸을 단련하는 것이 장수의 비결이 아닐까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https://donbuller.tistory.com/entry/이성계
5. 조선의 장수왕 공동 3위, 고종과 광해군(67세)
조선 제26대 왕 고종은 서양 의학과 동양 의학을 조화롭게 누렸던 왕이며, 조선 제15대 왕 광해군은 인조반정으로 폐위된 후 제주도로 유배를 가서 그곳에서 무려 18년을 더 살고 67세의 나이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https://donbuller.tistory.com/entry/흥선대원군
https://donbuller.tistory.com/entry/광해군2
6. 조선 왕들이 먹었던 대표적인 보양식
그렇다면 조선의 왕들은 어떤 음식으로 허약해진 몸을 보양했을까요?
6. 1 타락죽
첫 번째 보양식은 바로 타락죽으로 이것을 원기를 돕고 비위를 조화롭게 하는 효과가 있는 음식으로 여겼습니다.
승정원일기를 살펴보면 영조, 순조, 정조, 고종, 인조, 숙종 순으로 타락죽을 많이 즐겼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왕의 영양간식으로 손꼽히는 타락죽의 주 재료는 '우유'입니다.
그래서 왕실 기관인 '사복시'에서는 소를 키우고 직접 관리하기까지 했습니다.
날이 쌀쌀해지는 음력 10월 1일부터 음력 1월 15일(정월)까지 소의 젖을 짜서 왕에게 진상했습니다.
게다가 소 젖의 생산량이 극히 적어 굉장히 귀했으며 타락죽을 약으로 여겨 쑤고 진상하는 일을 수라간이 아닌 내의원에서 관리할 정도로 굉장히 귀한 음식이었습니다.
6. 2 녹미(鹿尾)
'녹미'는 조선 제10대 왕 '연산군'이 즐겨 먹었던 보양식입니다.
'사슴 녹, 꼬리 미'자를 쓰는 녹미는 바로 '사슴꼬리'입니다.
연산군은 사슴 꼬리가 떨어지지 않게 항상 준비하라고 명했으며, 심지어 세 번 이상 질 나쁜 녹미를 올렸다고 생각이 들면 근무성적과 관계없이 파면을 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소식을 했던 영조조차도 고령인 79세 때 반찬 중에서 사슴 꼬리가 최고라고 극찬하기도 했을 정도로 녹미는 조선 왕들이 자주 찾았던 별미 중에 별미였던 것입니다.
https://donbuller.tistory.com/entry/연산군3
https://donbuller.tistory.com/entry/인수대비
6. 3 포계(炮鷄)
<산가요록>에 따르면 포계란 살찐 닭 한 마리를 24~25개로 토막을 내어서 기름을 넣고 그릇을 달군 후 토막 낸 닭고기를 넣고 뒤집어 볶은 다음 청장과 참기름을 밀가루에 섞어 즙을 만들어 식초와 함께 낸 음식을 말합니다.
기록에 담긴 포계 조리법을 보면 언뜻 떠오르는 음식이 있는데, 바로 국민간식 간장 프라이드치킨입니다.
포계를 즐겨 먹던 조선의 왕은 '세종'입니다.
세종은 조선의 왕 중에서도 고기사랑이 유별났다고 알려져 있는데, 육식을 즐겨 먹으면서도 운동량이 부족해 재위 기간 중에 다양한 질병으로 고생하기도 했습니다.
https://donbuller.tistory.com/entry/세종
<출처: 벌거벗은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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