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소년이 온다]를 읽고( 책 리뷰, 독후감)/한강 작가
[소년이 온다]는 꼭 읽어야만 하는, 읽어줬으면 하는, 읽어내야 하는 책입니다. 한강 작가의 문체가 역사적 문제를 다룰 때 어떠한 시너지를 발현할 수 있는지를 온몸의 감각으로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라고 감히 자신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비극인 1980년 5월 18일에 있었던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은 같은 소재를 다룬 어떤 영화에서처럼 시민군이 기관단총을 군인들을 향해 휘갈기지 않습니다. 물론 그것이 영화의 재미와 흥미를 돋우기 위한 하나의 장치였겠지만,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에게는 당시 최첨단 신식 무기 따위는 없었습니다. 그들의 어깨에는 예비군시설에서 구한 6.25 때나 쓰던 카빈총뿐이었고, 이마저도 제대로 쏘지 못합니다. 총을 장전하고 방아쇠를 당기면 누군가가 죽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쏠 수 없는 총을 든 사람들이었습니다.
[소년이 온다]는 총 6장과 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에필로그는 한강 작가가 왜 소년이 온다는 쓰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말하고, 만일 쓰게 된다면 꼭 잘 써야 한다고 각오를 다지게 한 일련의 과정이 담겨 있습니다. 소설은 동호라는 평범한 일상을 살던 중3 학생이 돌아오지 않는 정미누나를 찾아다니다 절친인 정대가 총에 맞아 죽는 것을 보고 무서워 도망쳤으나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다시 도청으로 돌아와 나라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광주시민들의 신상을 파악하고 입관하는 것을 돕고 시신들이 자신의 가족인지를 확인하러 온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역할을 하는 중, 광주시민의 학살을 명령받고 온 최후의 군대에 맞서 도청에 남아 시민군으로 참여하는 과정과 죽음, 그리고 살아남은 이들의 기억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장 '어린 새'는 너라는 어린 소년이 등장합니다. 너는 소설의 주인공 동호입니다. 마치 동호에게 명령을 하는 듯한 너를 부르는 문장들은 왜 나라가 국민을 죽이려 하는지에 대한 동호의 시선에 순수성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독자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합니다.
그 과정에서 네가 이해할 수 없었던 한 가지 일은, 입관을 마친 뒤 약식으로 치르는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관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끈을 묶어 놓는 것도 이상했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
이렇게 묻는 너에게 은숙 누나는 말합니다.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잖아, 권력을 잡으려고 너도 봤을 거 아냐. 한낮에 사람들을 때리고 찌르고, 그래도 안되니까 총을 쐈잖아. 그렇게 하라고 그들이 명령한 거잖아. 그 사람들을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어
라고 말합니다.
오늘 남은 사람들은 정말 다 죽어요? 죽을 거 같으면 , 도청을 비우고 다 같이 피해 버리면 되잖아요. 왜 누군 가고 누군 남아요.
라는 질문에는 바로 답을 하지 못합니다. 이것에 대한 답은 훗날 되돌아보며 깨닫게 됩니다.
2장 '검은 숨'은 죽은 정대의 혼이 동호를 너로 지칭해 이야기하는 구조입니다. 이 장에서는 본격적으로 '혼'을 다룹니다. 도청 광장에서 총에 맞아 죽은 정대의 혼이 어떻게 처참히 도륙되고 짓밟히고 태워지는지, 어린아이의 시선에서 소름 끼치게 담담히 자신을 죽음으로 내 몬 어른들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묻습니다. 아무렇게나 던져진 시체의 산 곁에서 혼들은 서로를 향해 말을 할 수 없습니다. 말을 할 수 있는 입이 없기 때문입니다. 억울하게 죽은 혼들은 서로를 알 수 없고, 서로에게 말할 수 없지만, 그 기척들은 서로 아픔을 다독이는 듯 엉켜 있습니다.
썩어가는 내 옆구리를 생각해. 거길 관통한 총알을 생각해. 처음엔 차디찬 몸뚱이 같았던 그것, 순식간에 뱃속을 휘젓는 불덩어리가 된 그것, 그게 반대편 옆구리에 만들어 놓은, 내 모든 따뜻한 피를 흘러나가게 한 구멍을 생각해. 그걸 쏘아 보낸 총구를 생각해. 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 그걸 당긴 따뜻한 손가락을 생각해. 나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 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을 생각해.
그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 잠든 그들의 눈꺼풀 위로 어른거리고 싶다. 꿈속에서 불쑥 들어가고 싶다. 그 이마, 그 눈꺼풀들을 밤새 건너 다니며 어른거리고 싶다. 그들의 악몽 속에서 피 흐르는 내 눈을 볼 때까지, 내 목소리를 들을 때까지. 왜 나를 쐈지. 왜 나를 죽였지.
정대의 혼은 불태워져 마침내 자유로웠고, 친구인 동호를 향해 날아가고 싶었지만 쉴 새 없이 터지는 폭탄의 굉음과 찢어지는 듯 공포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비명 속에 동호가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3장 '일곱 개의 뺨'은 5.18 당시 도청에서 마지막 순간에 빠져나온 그녀 은숙이 당시 죽은 동호를 너라고 부르며 이야기합니다. 살아남은 은숙은 금지도서의 출간과 관련하여 서대문경찰서에 붙들려가 뺨 7대를 맞습니다. 그 뺨 7대를 하루에 한 대씩 잊어가겠다고 다짐합니다. 뺨하나, 뺨 둘.... 뺨 여섯의 기억까지 더듬어 잊어가려 하지만, 일곱 번째 뺨은 영원히 지울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미 뺨에 각인되어 지워지지 않는 문신과 같이. 은숙은 그날의 광주에서 살아남은 뒤 출판사에서 일하며 하루를 살아냅니다. 배고픔에 허기를 느끼는 한없이 치욕적인 인간이라는 존재에 진저리를 칩니다. 살고 싶어 도망쳐 나온 도청의 기억. 마지막까지 도청에 남았던 동호의 기억. 동호를 그곳에서 빼내지 못해 죽은 것이라는 자책. 5.18 그날의 기억이 채 지워지기도 전에 뿜어져 나왔던 분수대의 기억. '축제라도 있었던 것입니까? 어떻게 벌써 분수가 쏟아집니까?' 라며 도청민원실에 전화를 했던 기억. 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독재와 군부에 인간성과 존엄을 잃고 짓밟히는 사람들. 검열에 검게 칠해진 숯 같은 책. 그 책을 바탕으로 한 희곡이 무대에 올려집니다. 혼들의 움직임. 말할 수 없는 혼들의 독백. 그 소리 없는 말들을 입모양으로 읽어냅니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를 치르지 못해, 당신을 보았던 내 눈이 사원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목소리를 들었던 내 귀가 사원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숨을 들이마신 내 허파가 사원이 되었습니다. 봄에 피는 꽃들, 버드나무들, 빗방울과 눈송이들이 사원이 되었습니다. 날마다 찾아오는 아침,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들이 사원이 되었습니다.
고개를 뒤로 꺾은 채 그 모습을 지켜보던 그녀의 입술이 자신도 모르게 달싹인다. 배우들을 흉내 내듯 목구멍을 쓰지 않고 부른다. 동호야.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네가 방수모포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간 뒤에 용서할 수 없는 물줄기가 번쩍이며 분수대에서 뿜어져 나온 뒤에, 어디서나 사원의 불빛이 타고 있었다.
4장 쇠와 피는 5.18 민주화 운동이 있었던 당시 23살 교대생이었던 남자의 인터뷰입니다. 학생을 가르치는 일이 전부인 줄 알았던 그가 오합지졸이 따로 없는 시민군을 이끄는 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남자는 김진수와 김영재 그리고 동호를 기억해 냅니다. 5.18 직후 잡혀 들어간 수많은 사람들에게 가해진 고문을 이야기합니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음식만이 제공되어 서로 그것을 먹겠다고 울부짖고 주먹을 휘두르는, 똥오줌과 진물에 범벅이 된 고깃덩어리에 불과한 육체, 제 오줌이라도 받아 마시고 싶은 존엄을 상실한 인간. 그들은 고문을 통해 너희들이 불렀던 애국가와 목숨을 건 투쟁이 치욕과 수치로 얼룩진 육체에서 비롯된 하잘것없는 존재랄 것도 없는 몸뚱이들의 절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말하고자 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숭고하고 깨끗한 하나의 가치 '양심'은 지울 수 없습니다. 그들이 그날 도청에 남아 스스로 죽기를 각오한 데에는 양심 그것 때문이었음을 스스로 깨닫습니다. 이 독재와 폭압,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해서 도망친다면 훗날 스스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을 자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16실 영재는 모나미 볼펜으로 손이 짓이겨지는 고문을 받아 하얀 뼈가 드러나고, 아물어 또다시 모나미 볼펜에 짓이겨져야 져야 할 그 손가락 사이에 약솜을 끼고 감옥 안에서 '카,,, 카스텔라... 가 먹고 싶다고, 사.... 사이다도 같이 먹고 싶다'라고... 서럽게 웁니다. 그런 영재는 끝내 정신병에 걸려 병원에 갇히고, 영재를 끔찍이 아꼈던 진수는 며칠 후 자살합니다. 진수와 남자는 똑같이 시민군에 참여했고 살아남았고, 고문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진수는 죽고 남자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남자는 말합니다. 그날 진수가 동호를 포함한 십 대 시민군 5명을 캐비닛에 숨긴 후 아무 소리도 나지 않으면 그냥 손들고 나오면, 너희들은 모두 미성년자들이기 때문에 모두 살려 줄 것이라고 말했고, 진수의 조언대로 손을 들고 줄줄이 줄을 지어 나오던 학생들을 군인들은 총으로 쏘아 죽였다는 사실을.
남자는 묻습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다시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 당하고 훼손된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베트남전에 파견 됐던 어느 한군국 소대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들은 시골 마을회관에 여자들과 아이들, 노인들을 모아 놓고 모두 불태워 죽였다지요. 그런 일들을 전시에 행한 뒤 포상을 받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 중 일부가 그 기억을 지니고 우리들을 죽이러 온 겁니다. 제주도에서, 관동과 난징에서, 보스니아에서, 모든 신대륙에서 그렇게 했던 것처럼, 유전자에 새겨진 듯 동일한 잔인성으로
5장 밤의 눈동자는 당신인 임선주가 너 박정미, 동호, 은숙을 기억합니다. 선주는 서울에서 노동운동을 하다 공장에서 잘리고 블랙리스트에 올라 다른 공장에서 일을 하지 못하게 되자, 지인의 소개로 광주 양장점 미싱사 시다로 일하게 되며 광주에서 살게 됩니다. 서울 공장에서 만났던 정미는 가난해 잠시 학업을 중단하고 있지만 의사가 되고자 다시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여공입니다. 그래서 노동조합에도 가입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노동운동하는 여공들의 신발을 말없이 옮겨 줍니다. 그런 정미가 광주에서 군부의 총과 칼에 온몸에 갈기갈기 찢겨 죽습니다. 그리고 선주는 살아남아 자궁을 자로 휘젓는 끔찍한 고문을 받습니다. 어느 날 선주에게 한 통의 편지가 옵니다. 그날의 기억을 증언해 달라고. 그날의 기억을 묶은 책을 단행본으로 엮을 예정인데 당시 시민군 10명 중 살아남은 8명 중 여덟 번째 증언자가 되어 달라고. 당시 기억을 누구도 꺼내게 할 권리가 없다며 선주는 거부합니다. 그 의뢰와 함께 과거 노동운동으로 이끈 성희언니가 병으로 죽어가고 있다는 소식도 듣게 됩니다. 선주는 죽고 싶지 않고 살고 싶었다고, 피하고 싶었다고, 도망가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만일 다시 그때와 같은 상황이 오면 피구게임에서 혼자 살아남았을 때 끝까지 살아남으려면 자신이 피구공을 받아내야 하는 것과 같이 다시 맞서 싸울 것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고 선주는 자신이 자궁에서 피를 쏟을 때 죽은 정미의 썩어가는 시신을 생각하고 그 분노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삽시간에 피를 끊게 하는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고통의 힘,
당신의 배를 밟고 옆구리를 찼던 사복형사의 얼굴을 당신은 잊지 않았다. 중앙정보부가 구사대들을 직접 교육하고 지원하고 있다는 것을. 그 폭력의 정점에 군인대통령이 있다는 것을. 박대통령의 신임을 받았다는 젊은 소장이 장갑차를 이끌고 서울에 입성하는 것을, 곧이어 중앙정보부장을 겸직하는 것을 당신은 신문을 통해 지켜보았다. 조용히 소름이 끼쳤다. 무서운 일이 생길 것 같아.
태극기로, 고작 그걸로 감싸 보려던 거야. 우린 도륙된 고깃덩어리들이 아니어야 하니까. 필사적으로 묵념을 하고 애국가를 부른 거야.
씨를 말려야 할 빨갱이 연놈들. 그들이 욕설을 뱉으며 당신의 몸에 물을 끼얹던 순간을 등지고 여기까지 왔다. 그 여름 이전으로 돌아갈 길은 끊어졌다. 학살이전, 고문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방법은 없다.
그리고 성희언니의 말을 떠올리며 증언을 할 용기를 냅니다.
희생자가 되어선 안돼,라고 성희 언니는 말했다. 우리들을 희생자라고 부르도록 놔둬선 안돼
이 대목에서 소름이 끼쳤습니다. 나 또한 그날 죽은 분들을 희생자로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하고 불현듯 지난날을 되돌아봅니다.
6장 '꽃 핀 쪽으로'는 동호어머니가 내가 되어 너인 동호를 기억합니다. 마치 하늘에 있는 동호에게 보내는 한 편의 편지와도 같습니다. 큰 형과 11살 터울로 가족의 기쁨이었던 사랑하는 막내아들 동호를 그날 도청에서 구하지 못한 것에, 문간방을 그냥 비워둘 것을 월세로 돈 몇 푼 받아보겠다고 정대네를 들여서 정대를 찾아 나서다 그런 변은 당한 것은 아닌지, 자책과 원망하는 마음을 가졌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죄가 아닙니다. 그들을 죽이도록 명령한 사람, 그들을 죽인 사람들의 잘못입니다. 동호 어머니는 그래서 슬퍼하고 있지만은 않습니다. 학살자 전두환이 광주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엄마들과 연합해서 현수막을 제작해 내걸고 '학살자는 물러가라'하고 외칩니다. 그리고 동호는 어머니의 꿈에 찾아와 말합니다. 엄마에게 이제는 꽃이 만발한 밝은 곳으로 가도 된다고.
엄마아, 저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
한강작가는 소설의 제목으로 '소년이 온다'라고 정한 것이, 진심으로 동호와 같은 무고한 소년들이 우리 곁으로 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5.18 광주민주화 운동은 정치적인 이유로 아직까지 폄훼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때문에 당시 영문도 모른 채, 무도한 권력에 맞서 싸우다 생을 달리 한 혹은 살아남아 치욕을 겪어야 했던, 혹은 그것을 지켜보아야 했던 이들에 대한 마음의 '장례식'은 여전히 치러지지 않고 있습니다. 작가는 그래서 우리 삶이 사원이 되고, 장례식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미 지나가버린 일을 계속해서 들먹여서야 미래를 위해 좋을 것이 없다, 이제 그만 우려먹여라' 하고 말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소설 주인공 동호의 형이 동호의 이야기를 소설로 써도 되겠냐는 작가의 부탁을 받아들이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제대로 써야 합니다. 아무도 내 동생을 더 이상 모독할 수 없도록 써주세요.
소설을 읽으며 작가의 고심과 고통의 여정이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작가가 엄청난 부담감을 이기고 그럼에도 글을 써야 했던 데에는 더 이상 동호가 모독당하지 않도록 해주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누구인지도, 누구의 가족인지도 모른 채, 혼의 기척으로 아직도 구천을 떠돌고 있을 불에 태워진 수많은 정대와 정미 그리고 사람들을 혼들이 갈 곳으로 자유롭게 보내주어야 할 때입니다
작가는 다른 작품과는 달리 작가 특유의 감성적이고 시와 같은 은유적 묘사를 하지 않는 대신, 다큐멘터리와 같이 최대한 사실적으로 사실을 직시합니다. 그리고 명령어와 같이 강력한 문장으로 그때를, 그때의 사람들을 기억하게 합니다. 너무나도 평범했던 삶을 살아가던 그들의 삶이 어떻게 파괴되어 갔는지, 목숨을 어떻게 유린했는지, 거칠게 폭발하기는커녕, 시를 읊듯 달래고, 권유합니다.
과거의 상처가 치욕과 수치, 공포와 피의 역사였다고 해서 아물지도 않은 채 덮어놓기만 한다면, 그 상처는 영원히 아물지 않고 진물을 흘리게 되고 상처는 덧나 깨끗했던 다른 곳까지 서서히 썩게 할 것입니다. 가리고 덮었던 부조리와 수난, 부패, 폭력을 걷어내고 자세히 들여다보고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고 충분한 기간 애도하고 더 이상 나올 눈물이 없을 정도로 슬퍼한 후, 정성스럽게 소독하고 여며서 새살이 돋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소년이 올 수 있습니다. 소년은 이미 밝은 곳, 꽃이 피어어 있는 곳으로 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소년과 함께 가주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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