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고(책 리뷰, 독후감)/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고 제일 먼저 머릿속을 스친 생각은 세속적 이게도 드디어 이 책을 읽어냈구나! 였습니다. 늘 도전하고자 했으나 사는 일에 쫓겨 읽지 못했던 그 책, 세계적 베스트셀러이기보다 대한민국 베스트셀러라는 말이 더 옳은 듯 보이는 [정의란 무엇인가]입니다. 저자인 마이클 샌델 교수는 대한민국 '정의' 열풍의 수혜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왜 '정의'를 갈구하는 것일까요?
정의 (正義)는 '바를 정, 옳을 의'라는 한자의 뜻에서 알 수 있듯, 사전적으로 풀이하자면 '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 ' 바른 의의(意義)', ' 개인 간의 올바른 도리. 또는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공정한 도리'입니다. 우리나라는 조선시대까지의 왕이 백성에 군림하는 제왕주의 시대를 마무리하고 백성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공화국으로 진입하는 시기에 일본의 침략으로 식민지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우리나라는 1945년 우여곡절 끝에 제2차 세계대전을 벌인 제국주의 국가들이 패망하며 꿈에 그리던 해방이 되지만, 자유민주주의와 사회공산주의라는 냉전시대의 희생양이 되어 1950년 6월 25일 6.25 전쟁을 치른 후 1953년 휴전협정 후 현재까지도 '전쟁이 잠시 중단된 채 한반도가 둘로 나뉜'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입니다. 이후 낙후한 경제를 되살린다는 명목하에 독재자와 군부에 의한 정치에 몸살을 앓았고, 수많은 이의 피와 살의 대가로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으로 거듭납니다. 이 과정에서 눈부신 경제발전이 이룩되지만 후유증은 대단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도 우리나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외교에이르기까지 사회의 전반을 잠식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는 알지만, 쉽사리 손을 댈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그토록 '정의'를 갈구하는 이유입니다.
마이클 샌델 교수는 어려운 고전철학을 최대한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수시로 예시를 들어 설명합니다. 그럼에도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이해해 볼 엄두가 나게 하기에 이 책이 수많은 독자를 사로잡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 학창 시절 머리를 지끈지끈하게 만들었던 이마누엘 칸트 부분은 칸트에게 속된 말로 홀딱 빠질 수 있을 만큼 매력적으로 설명됩니다.
저자는 이 책의 목적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목적은 누가 누구에게 영향을 미쳤는지 알려주는 정치사상가를 다루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로 하여금 정의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정립하고 비판적으로 검토하도록 만들어, 자신이 무엇을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알도록 하는 데 있다
저는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제가 이해한 만큼만 설명을 하는 부분 참작해 주시고, 저자의 의도대로 꼭 읽고 본인만의 해석의 나래를 펼쳐 보는 것을 감히 추천드립니다.
책은 총 10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1장. 정의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문제일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하여, 제2장 최대 행복 원칙: 공리주의, 제3장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소유하는가? 자유지상주의, 제4장 대리인 고용: 시장 논리의 도덕성 문제, 제5장 동기를 중시하는 시각: 이마누엘 칸트, 제6장 평등을 강조하는 시각: 존 롤스, 제7장 소수 집단 우대 정책 논쟁: 권리 VS 자격, 제8장 정의와 도덕적 자격: 아리스토텔레스, 제9장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의무를 지는가? 충성심의 딜레마로 이어지며 각각의 논리를 쉽고 날카로운 예문들을 들어가며 촘촘히 설명하고, 마지막으로 제10장 정의와 공동선이라는 챕터로 마이클 샌델 교수가 가지는 신념을 밝힙니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으로 널리 알려진 공리주의의 대가 '밴담'은 인간은 쾌락과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로, 고통과 손해보다 쾌락과 이익의 총량이 큰 방향으로 행동하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개인을 넘어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개인들의 행복 총합이 손해 총합을 뛰어넘는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공리주의는 명확한 한계가 존재합니다. 다수의 행복을 위해 한 사람에게 손실과 고통, 심지어는 목숨까지도 강요할 수 있는가? 그리고 이것을 측정하는 명확한 기준이 과연 존재하는가?입니다.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공리주의와 그 궤를 같이 하는 자유지상주의자들은 인간은 그 자신을 소유하기 때문에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무엇이든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이 정의라고 규정합니다. 하지만 이 또한 돈으로 용병을 고용하여 나라를 지키게 한다거나, 대리모로 임신 출산하는 문제, 병역 의무를 대리인을 고용하여 대신 짊어지게 하는 문제와 같이 사회적인 문제를 야기합니다. 오로지 돈과 명예, 권력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합니다. 그것은 과연 개인의 자유와 능력 그 이면에 좋은 집안 출신, 좋은 유전자를 가지는 것이 과연 공평한가 하는 의구심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칸트는 조건 없는 명령인 '정언명령'만을 따르는, 어느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보편적인 가치를 지향하는 것이 정의라고 규정합니다. 그의 철학은 매우 단호하고, 엄격합니다. 선의라도 거짓말은 정의롭지 않는 행동입니다. 또한 자신의 몸을 마음대로 해하는 것, 자살까지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인간을 수단이나 도구가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 합니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타살이나 자살이나 그 근본은 같다고 보는 것입니다.
내 안에 존재하는 인간성을 처리할 권리는 다른 사람은 물론 내게도 없다.
누구에게도 '자기 팔다리나 심지어는 치아 하나'조차 팔 자격이 없다. 자신의 신체 일부를 파는 행위는 자신을 물건으로 한낱 수단으로, 이익을 위한 도구로 삼는 행위다.
상대가 어디에 살든, 자신과 얼마나 잘 아는 사이든 상관없이, 모든 사람의 인권을 지켜줄 때 정의롭다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오로지 그가 인간이고, 이성적 존재이며, 따라서 존중받을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성관계는 오로지 성욕을 충족시킬 뿐 상대의 인간성을 존중하는 행위가 아니다. '좋든 나쁘든, 모든 면에서' 서로가 상대의 '인간성과 육체와 영혼'을 함께 나눌 때만 이들의 성은 '인간의 결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어느 누구도 타인의 기준에 맞춰서 행복하도록 나에게 강요할 수 없다.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 각자 어울리는 방식으로 행복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는 칸트의 철학을 과연 넘어서는 것이 있을까 싶습니다. 칸트는 이성이라는 '관념'에는 의심할 여지없는 실제 현실성이 담겨있다고 보았습니다. 입법자들에게는 국가 전체의 뜻을 통일한다면 어떤 법이 만들어질까를 고려해 법의 틀을 짜도록 하기 때문이며, 시민에게는 '동의한 듯한' 의무감을 느끼게 하기게 하기 때문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칸트는 '집단적 동의'라는 이 가상의 행위가 '모든 공법의 정당성을 판가름한다'라고 결론 내립니다. 입법자든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든 칸트가 말하는 '순수실천이성'에 따르는 오로지 선, 옮음을 따르고 행동하면 된다는 것인데, 현실적으로는 가능하지 않아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칸트 사후 두 세기가 흐른 뒤 미국의 정치 철학자 '존 롤스'가 이에 답하고자 합니다.
존롤스는 칸트의 이론에 동의하며 '우리가 원초적으로 평등한 사회에서 어떤 원칙에 동의할 것인지'를 묻는 방법에 의한 사회계약을 통해 평등과 공평한 분배가 이루어지는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라고 규정합니다.
롤스는 이를 '무지의 장막'이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 일시적으로 전혀 알 수 없는 '무지의 장막' 뒤에서, 누구도 우월한 위치에 있지 않는 상태에서, 원초적 선택을 한다면 그것은 정당하다고 본 것입니다. 사회 구성원 모두 자신이 누구인지, 이름도, 직업도, 재산도, 학업도, 결혼유무, 자녀유무도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원초적으로 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사회 계약의 기본 전제로 하고, 소득과 부를 똑같이 나누는 것이 아닌 불평등한 사회적, 경제적 배분은 사회 구성원 가운데 가장 어려운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경우에만 허용되게끔 합니다. 아무리 모든 사실을 잊고 원초적인 상태로 돌아간다고 하여도,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본능에 가까운 특정분야에서의 능력이나, 그 능력이 빛을 발하게 되는 사회에서 태어나는 타고난 행운까지 제어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책에서는 마이클 조던의 탁월한 농구실력은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노력하여도 따라잡을 수 없는 수준이며, 마이클 조던이 농구선수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는 그런 사회와 시대에 태어난 것은 행운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이런 능력과 재능과 행운으로 거둬들인 경제적인 이득중 일부는 사회 가장 어려운 사람들에게 일부 혜택이 돌아가게끔 해야 하는 것이 정의롭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롤스가 말하는 소위 '차등원칙'입니다. 롤스의 이론은 좀 더 평등하 사회를 이루기 위한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임에는 분명합니다.
마이클 샌델 교수는 정의란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고찰하는 것이라는 시각에 동의하는 입장입니다. 정의로운 사회는 단순히 공리를 극대화화거나 선택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일 수 없으며,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삶의 의미를 함께 고민하고, 그 과정에서 생길 수밖에 없는 이견을 기꺼이 수용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본 것입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낙태와 줄기세포 논란, 동성결혼에 대한 서로 다른 첨예한 입장을 이해하고 서로의 의견을 들어보고 대화 나누는 사회야말로 정의로운 사회라고 말입니다. 이런 공동선의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빈부격차가 지나치면 안 된다고 보았고, 빈부격차가 지나치면 민주 시민에게 요구되는 연대의식이 약화된다는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의 적으로 인식하는 한 공동체 전체의 공동선과 미덕을 향한 연대는 저 먼 곳의 일이 되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저자는 복잡하고 폭력적이기까지 한 사회문제에 대해서 회피하기보다는 참여하라고 독려합니다. 도덕적인 정치참여는 회피하는 정치보다 시민에게 더 많은 이상을 불어놓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의로운 사회건설에 더 유망한 기반을 제공한다고 봅니다.
이제 기나긴 정의에 대한 탐험을 끝마친 당신에게 '정의란 과연 무엇인가요?'
작금의 혼란스러운 대한민국의 정치와 사회를 보면 씁쓸하지만, 그럼에도 공동선과 옮음을 향한 당신의 목소리를 내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시도조차 하지 않고 포기하는 것만큼 정의롭지 못한 것이 있을까요? 인간성과 존엄성으로 점철된 당신의 존재를 등불의 심지로 불태워보는 것은 어떨까요? 내 몸이 타들어가는 고통이 필연적으로 동반되지만, 더 큰 빛이 아롱아롱 세상을 비추게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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