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청소년을 위한 경제의 역사]를 읽고(책 리뷰, 독후감)/니콜라우스 피퍼
경제학을 전공하고 경영학을 부전공한 저는 가끔 머리를 식힐 겸 경제학책을 들곤 합니다. 흥미롭게 읽기 시작하지만 이내 책을 펼친 것을 후회하곤 합니다. 경제의 역사는 곧 식민지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하고 있어, 지금의 풍요로움이 수많은 이의 피와 고통으로 이룩된 것임을 느낄 때 뼈가 아리고 심장이 조여들기 때문입니다. 식민지 개척 이전에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인간은 수렵과 채취를 통해 그야말로 하루하루 생계를 연명하기 위해 살아가던 때에도 배고픔과 추위, 짐승들의 공격, 자연재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농경을 시작하며 떠돌아다니지 않고도 배고픔을 이겨낼 수 있었고, 상업과 공업이 시작되며 분업과 물물교환을 통해 보다 풍요로운 삶의 기틀을 마련하게 됩니다. 잉여 재산이 생기며 인간의 탐욕을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좀 더 많은 돈을, 좀 더 넣은 땅을, 좀 더 편한 삶을 지향하게 되면서 인간은 끊임없는 계급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그 모습을 달리했을 뿐 현재진행형입니다.
맨살로 추위를 버티고 하루하루 먹을 것을 찾아 헤매던 기원전 원시인들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 없이, 신의 뜻대로 살아갈 것을 지상 과제로 삼아 계급을 나누고 신의 대리자인 왕에 대한 복종이 당연시되었던 중세와 전근대사회의 사람들에 비해 현대인들은 물질적 풍요를 차고 넘치게 누리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현대인은 어떠한 측면으로든 행복해야 합니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점에서 경제공부는 어렵습니다. 지금도 끊임없이 경제학자들은 연구하고 이론을 쏟아내지만, 확실한 정답은 없습니다. 경제는 사회, 정치, 문화, 지리, 역사를 포함한 인간 삼라만상에 관련된 모든 분야들과 긴밀히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동물과는 달리 이성적이기 때문에 무한히 자유로운 경제 행위를 하게끔 하면 결국 가장 이상적인 수요과 공급의 패턴이 형성되고 최대의 이익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인간의 탐욕과 광기까지는 예측불가능한 영역입니다. 세계적으로 자행되었던 무자비하고 잔인한 살육을 동반한 식민지역사는 결코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결과만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식민지를 개척하고 유지관리하는데 드는 비용이 식민지를 통해서 얻는 이익이 비해서 훨씬 더 많은 경우까지 있었으니까요.
독일의 유태인 학살이나 일본의 동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식민통치의 역사 또한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설명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런 일들을 감행하는데 경제가 하나의 원인이었던 것만은 자명합니다. 독일은 1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전쟁배상금을 지불해야 했고, 전쟁을 치르며 이미 잃을 만큼 잃었던 국민들에게서 더 이상 수탈할 어떤 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이때 등장한 것이 바로 히틀러의 나치즘입니다. 배고파서 죽으나, 전쟁으로 죽으나, 죽는 것은 매한가지라는 극단적인 선택은 인류 역사상 씻을 수 없는 대학살을 자행합니다. 내가 먹고살기 위해, 다른 인간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이 과연 어떤 경제이론으로 설명되는 것일까요? 일본은 동아시아의 서구화, 근대화를 명목으로 한국,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을 식민통치합니다. 일본에 의해 철도가 놓이고, 공장이 세워지고, 근대화된 시장이 열리게 되어 근대화되어 경제적으로 부흥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해서 그들에게 고마워해야 하는 것일까요? 경제적, 과학적이라는 개념은 인류에게 양날의 칼과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보다 풍요롭게 할 수도, 환경오염과 자연재해의 원흉이 되어 인류와 전지구를 멸망의 길로 이끌 수도 있습니다. 경제적이라는 미명하에 인간성을 억누르고, 과학적이라는 허울아래 오염수가 바다로 뿌려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에.
자유가 방임을 부르고 인간의 탐욕과 타성을 막을 수 없다면 이를 국가가 제어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이론이 등장합니다. 모든 인간은 가치 있는 존재이기에, 어떤 누구도 불평등해서는 안된다는 유토피아적인 사고에서 기인한 이론입니다. 하지만 말 그대도 유토피아적인, 실현불가능한 이론에 불과하다는 것이 드러나는 데에는 오랜 기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일하지 않아도 소위 '요람에서 무담까지' 살아가는데 필요한 돈과 물건들이 주어진다면, 누구도 솔선수범하여 열심히 일하려 들지 않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본성과 자연희 법칙에 가까운 본능을 계속해서 채워줄 수 있는 국가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또다시 누군가의 배를 불리기 위해, 다른 누군가의 희생이 뒤따라야 하는 결과를 낳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곧 서로 간의 다툼으로 시작해, 투쟁으로 발전합니다. 자유와 통제, 이성과 본능, 합리와 불합리는 결코 양분되지 않습니다.
[청소년을 위한 경제의 역사]는 인간의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경제의 역사를 다른 영역의 그것들과의 얽히고설켜 풀려고 해도 풀리지 않고, 떼려 해야 떼어지지 않는 관계들을 통해 쉽고, 간결하지만, 핵심적이고 논쟁적으로 다룹니다. 필자인 니콜라우스 피퍼는 결코 어떠한 경제이론이 좋은 것이라고 입장을 밝히지 않고, 독자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옛날이야기를 하듯 재미있게 경제의 역사를 피력합니다. 경제의 역사를 보다 보면 인간은 그 어떤 존재들보다도 바보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유일무이하게 후회를 하는 존재이고, 이를 통해 반성하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 경제의 역사는 한 나라, 한 개인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전지구적 전인류적인 측면에서 지속가능한 그 무엇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경제의 역사는 오래지 않아 끝이야 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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