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가라]를 읽고(책 리뷰, 독후감)/한강 작가
[바람이 분다, 가라]는 특별한 기대나 설렘 없이 집어든 책이었습니다. 그런데 책장을 넘길수록 걷잡을 수 없이 뛰는 심장 때문에 당황해야만 했습니다. '한강 작가가 이런 구성의 글까지 쓰실 줄이야'라는 탄식과 함께.
[바람이 분다, 가라]는 희곡작가 이정희와 육상선수 출신 화가 서인주, 두 여자의 처절하고도 찬란한 사랑이야기입니다. '확연히 다른 방식이었지만 어쩌면 데칼코마니와도 같은 두 여자의 사랑은 결국 하나였던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한강작가는 이 책에서 물리학과 동서양미술 그리고 음악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지식을 마음껏 휘두르며 이야기를 아우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작가의 지식 안에서 각 등장인물은 마치 살아있는 인물처럼 인격을 만들어 나갑니다. 소름 끼치고 전율을 일으키며. 책 속의 한 대목처럼 작가가 피리 구멍을 하나씩 막아서 더 낮은음으로 이끌 듯 독자의 등뼈 하나하나를 정성스럽게 누르면, 독자는 그 심연으로 치닫는 음계를 따라 마음 깊숙이 숨어있는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게 됩니다. 죽고 싶은 일상이지만, 결국 살아 내야만 하는, 혹은 살고 싶게 하는. 마침내 살아야 한다고 속삭입니다.
총 10개의 장, 짧지 않은 분량, 복잡할 수 있는 서사를 다양한 문체를 통해 집중의 끈을 놓지 않도록 유도합니다. 이정희의 1인칭 시점을 중심으로 전화통화의 대화만으로, 편지의 내용만으로, 그림과 음악, 조각에 대한 이야기만으로 구성된 다채로운 형식의 화자들이 등장합니다.
이 소설은 이야기 속의 이야기 구조로 마치 퍼즐 조각을 맞추며 읽는 재미를 줍니다. '왜 그날 인주는 미시령에 가야만 했나! 강석원이라는 미지의 인물은 무엇을 근거로 인주가 자살했다고 귀결 짖는가! 인주는 정말 자살했나? 절대 그럴 리가 없다. 죽어야 할 사람이 있다면 이정희 바로 나다!' 이런 의문을 하나씩 풀어가는 미스터리 구조로 쓰여, 책이 끝날 때까지 그 답이 너무 궁금해서 책에서 손을 놓을 수 없게 합니다.
갈기갈기 찢겨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천 조각을 이어 부쳐 한 땀 한 땀 꿰매어, 누더기가 된 그 무언가를 독자에게 보여줍니다. 그 무언가를 찾는 것은 온전히 독자의 몫입니다. 인주가 왜 그날 미시령에 가야만 했는지! 에 대한 답은 수천수만 가지로 목소리를 냅니다. 당신의 생각은 어떠한가요?
[채식주의자]를 읽기 전에 이 책을 먼저 읽어볼 것을 권합니다. 좀 더 덜 난해하고 고통스러울 것이고, 긍정의 기운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책은 미스터리 형식이기 때문에 독후감에 너무 많은 내용을 담지 않으려 합니다. 부디, 하염없이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물속에서 파란 돌을 집어 들기를, 잘 살기를 기원합니다. 무한하여 가늠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우주에서 먼지만큼의 존재감도 없이 살아가는 우리는, 지금 이 순간 하나하나의 점으로 살아가는 당신은, 죽음도 삶도 초월한 너와 나의 구분도 의미가 없기에 세찬 바람이 불어도 거침없는 눈이 흔적들을 지워가도 가야만 합니다.
바람이 분다, 가라. 그리고 파란 돌을 짚어라. 비로소 너는 불멸의 존재가 되어, 바람이 되어 어떤 이의 머리칼을 날리고, 살아 있다고 느끼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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