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채식주의자]를 읽고(책 리뷰, 독후감)/한강
한강 작가의 책을 읽노라면 문득 저렇게 친절할 것만 같은 작가가 이토록 불친절하고 가혹하게 독자를 다룰 수 있는가 하는 마음이 들곤 합니다. 심지어 [채식주의자]에서는 소설의 주인공인 영혜가 아닌 남편, 형부, 언니의 목소리로 진행되어 정작 영혜가 왜 그토록 고기를 거부하고 죽음에 이르는 극단주의적인 채식을 선택하는지 그리고 왜 그토록 자신을 망가뜨려가면서 나무가 되어야 하는지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해, 글이 끝나는 순간까지도 풀리지 않는 실타래를 풀고 있는 느낌이 들게 합니다. 이 또한 작가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라면 왜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쩌면 한강 작가는 독자로 하여금 왜! 도대체 왜!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부연 안갯속을 혼자 걸으며 제 나름의 이유를 찾아가게끔 하려고 한 것은 아닐까요? 저 또한 도대체 왜! 영혜야 너는 왜 그렇게 고기를 거부하고, 나체의 몸을 사람들에게 내보이고,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없는 포르노그라피와도 같은 비디오 작품의 주인공이 되었으며 정신병동에 갇혀 나무가 된다며 죽음을 향해 온몸을 말려가야 했는지... 끊임없는 질문을 던졌고, 그 답을 찾기 위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작가는 쓸 뿐이고, 온전히 독자가 생각할 몫이라는 판단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의 생각을 써보려 합니다. 결과에 반드시 이유가 설명이 되어야지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기에, 이렇게 과감한 생략과 시점변화를 통한 불분명함을 활용하여 독자로 하여금 수많은 다른 답을 내놓게 하는 한강 작가님의 글쓰기에 한림원 쪽에서 그녀에게 상을 주지 못할 하등의 이유를 찾지 못하였음을 확신하였습니다.
1부 '채식주의자'는 영혜 남편의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따라서 지극히 남편의 관점이 반영된 이야기입니다. 남편은 영혜가 채식주의를 고집하기 전까지는 그녀가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사람이라고 여깁니다. 외모며 행동이며 크게 모난 구석이 없이 어디에 두어도 말없는 조용한 성품에 흐릿하게 생긴 외모 덕분인지 어울리는 영혜입니다. 소일거리 삼아 아르바이트식의 일을 하고 있지만 특별히 가정 경제에 지대한 공헌을 하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고, 다만 깔끔하고 정갈한 살림솜씨와 음식솜씨가 아내로서 남편 정 씨에게(극에서는 시종일관 정서방으로만 불리고, 영혜는 특별히 남편의 호칭을 부르지 않습니다) 인정받으며 평온한 듯 5년의 결혼생활이 이어지던 어느 날, 영혜가 갑자기 꿈을 꾸었다는 헛소리를 하며 고기를 거부하면서 한순간 평화가 깨집니다. 하지만 남편에게 평화로운 일상이 과연 영혜에게도 그러했을까요? 영혜를 그리 만든 사람이 남편이라면 그 도화선을 당긴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영혜는 그 이유는 꿈 때문이라고 반복하여 말합니다. 꿈속에 얼굴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말캉한 고기를 씹어 피에 범벅이 된 채 멍한 눈으로 무엇인가를 응시하는 얼굴. 그 얼굴은 영혜의 것이기도, 남편의 것이기도, 혹은 그 누구의 것이기도 한 얼굴입니다. 사람들의 폭력은 피를 쏟게 하고 살을 찢는 것과 같이 눈에 보이는 무자비한 것일 수도 있지만 날카로운 한마디 말로도, 혐오의 눈빛으로도, 경멸하는 행동 하나에도 담길 수 있는 사소하지만 결코 약하지만은 않은, 오히려 총칼보다 더 강력한 폭력성으로 상대를 난도질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냉담함으로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남편은 본인 스스로의 시선에서도 아내인 영혜를 사랑하는지 안 하는지도 모르겠는 냉담함, 무신경함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나를 잘 보살피는, 성욕을 언제든 받아줄 수 있는, 입신양명을 위해 조신한 아내로 옆에 있어주길 바라는 마음까지 영혜에게는 일종의 폭력이 아니었을까요? 이것은 다분히 남편 본인의 시선이라는 사실. 남편은 인식하지 못하는 종류의 폭력들이 먼지가 쌓이듯 자신도 모르게, 아주 조용히, 켜켜이 쌓여, 한순간 그녀의 모든 것을 덮어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털어내지 않으면 목숨줄까지 꽉 막히게 되어 결국 아무것도 아닌 채, 살다가 살았으나 산 것 같지 않은 인생을 살다 가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3부 '나무 불꽃' 속 언니 인혜와도 연결됩니다.
기쁨과 자연스러움이 제거된 시간, 최선을 다한 인내와 배려만으로 이어진 시간, 바로 그녀가 선택한 시간이었다. 문득 이 세상을 살아본 적이 없다는 느낌이 드는 것에 그녀는 놀랐다. 사실이었다. 그녀는 살아본 적이 없었다. 기억할 수 있는 오래 전의 어린 시절부터, 다만 견뎌왔을 뿐이었다.
인혜와 영혜를 거울 속 분신과도 같은 존재로 보입니다. 거울 속에 비치는 닮았으나 다른, 왜곡되어 보이는 모습을 한 분신. 남편의 시점에서 영혜는 특별할 것이 평범, 평온, 평화롭게 살던 아내가 어느 날 갑자기 이상한 꿈을 꾸고 미친 여자가 되어 가는 것에 불과한 이야기입니다. 부유하지는 않지만 번듯한 직장을 가져 경제적으로 크게 궁핍하지 않은 가정의 아내가 어느 날 갑자기 고기를 거부하고, 브라의 호크를 풀어 도드라진 유두를 드러내고, 억지로 입안으로 밀어 넣어진 고기를 짐승처럼 뱉고, 손목을 긋고, 나체로 사람들 앞에 나타나 경악케 하고, 정신병동에 감금되는, 이게 현실의 일인가 싶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저런 여자를 내 아내로 둘 수 없는 남자의 이야기이니까요. 어쩌면 남편이 영혜를 보는 그 시선이 작금에 대부분의 평범하다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의 시선일지도 모릅니다. 지금도 수천수만의 사람들이 보이고, 보이지 않는 수많은 폭력과 억압을 견디고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평생 살아갈 수도 있고, 영혜처럼 무엇인가에 불이 댕겨져 불꽃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2부 '몽고반점'은 그로 지칭되는 영혜 형부의 시선으로 1부의 이야기를 이어받습니다. 그는 시종일관 인칭 대명사로 불립니다. 그였다가 손윗동서였다가, 형이었다가, 선배님, 남편, 형부로. 그는 엘리트 집안에서 크게 고생하지 않게 자랐고, 결혼 후에도 생활력 넘치는 아내 인혜 덕분에 경제적으로 압박받지 않는 대여섯 살 된 아들과 아내를 둔 가장으로 그려집니다. 그것이 영혜 남편을 비롯한 이들에게 부러움을 사기도 합니다. 하지만 집에서 그에게 허락된 곳은 욕조 속이라는 듯, 옷도 벗지 못하고 물도 틀지 못한 채 웅크려 누워 있곤 하는, 늘 새로운 작품에 대한 갈망에 사로잡혀 고뇌하는 비디오아티스트 작가입니다. 그는 처제 영혜의 외모를 탐닉합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용인된 수준에서 철저히 절제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영혜의 왼쪽 엉덩이 위에 아직도 몽고반점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안 이후 절제와 욕망의 둑에 금이 나기 시작합니다. 그는 예술이라는 이름하에 금이 난 곳을 덧발라 무너지지 않게 하려 합니다. 더 고요하고, 더 은밀하고, 더 매혹적인 것 그래서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교접에 이르게 되는 나무와 꽃들의 움직임은 영혜라는 여자 아니고서야 표현해 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침내 발가벗은 온몸에 그려진 나무와 꽃은 진실로 영혜를 자유롭게 했고, 영혜 엉덩이에서 살아 숨 쉬는 듯한 몽고반점은 태고의 것, 진화 전의 것 혹은 광합성의 흔적 같은 것이라 성적인 느낌과는 무관하다고 깨닫기에 이릅니다. 그는 작품의 완성을 위해 스스로 나무로 분한 영혜와의 교접을 결심합니다. 이를 위해 스스로 옛 연인 앞에서 발가벗고 온몸에 나무와 꽃을 그려 넣고, 처제인 영혜의 자취방에서 서로의 몸을 어루만지고, 핥고, 마침내 교접합니다. 사실 2부는 영혜가 관찰되는 대상에 머물기 때문에 영혜의 내면에 대해서는 힌트를 얻기 어려운 챕터입니다.
모든 욕망이 배제된 육체, 그것이 젊은 여자의 아름다운 육체라는 모슨, 그 모순에서 배어 나오는 기이한 덧없음, 넓은 창으로 모래알처럼 부서져내리는 햇빛과 눈에 보이지 않으나 역시 모래알처럼 끊임업시 부서져 내리고 있는 육체의 아름다움.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려왔던 대로였다. 그녀의 몽고반점 위로 그의 붉은 꽃이 닫혔다 열리는 동작이 반복되었고, 그의 성기는 거대한 꽃술처럼 그녀의 몸속을 드나들었다. 그는 전율했다. 가장 추악하며, 동시에 가장 아름다운 이미지의 끔찍한 결합이었다. 눈을 감을 때마다 그는 자신의 아랫도리를 물들이고 배와 허벅지까지 적시는 끈끈한 풀물의 푸른빛을 보았다.
그의 시선을 빌어 모든 욕망에서 배제된 영혜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혜는 왜 그토록 나무가 되고 싶은지, 그가 왜 자신이 그동안 쌓아왔던 모든 것을 잃어가면서까지 이런 작품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는지는 3부 '나무 불꽃'에서 단서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3부는 영혜언니가 그녀로 지칭되며 이야기가 서술됩니다. 그녀는 가부장적이며 폭력적인 아버지의 폭력에 남동생 영호는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함으로써 풀었고, 맏딸인 인혜는 아버지의 밥상을 책임지는 사람으로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다소 자유로웠지만, 운순하나 고지식해 아버지의 비위를 맞추지 못하던 영혜는 어떤 저항도 하지 않았고 그 모든 폭력을 고스란히 뼛속까지 받아들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고기를 끊은 영혜에게 탕수육을 쑤셔 넣었던 아버지의 그 행동이 이해됩니다. 원래 폭력은 가하는 사람은 시간이 흐른 후에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며 변명하기에 바쁘고, 대부분 자신의 폭력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 이력에서 지워 냅니다. 하지만, 폭력을 고스란히 받은 사람들은 뼛속깊이 새기고, 마음속에 멍울이 져, 언제든 터질 수 있는 휴화산과 같은 상태가 됩니다. 이제 시간이 이 삽 십 년이 흐른 후이기 때문에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잊혔다고 생각되지만, 그 고통과 두려움은 나무의 나이테처럼 흔적을 남깁니다. 영혜는 그 흔적을 지우고, 고통을 없애고,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물기라고는 찾을 수 없는 빠싹 마른나무가 되어 제 몸을 불태우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것을 아닐까요? 영혜는 처음부터 죽기를 각오했고, 그녀는 여전히 참고 견디고 지옥과 같은 삶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기쁨과 자연스러움이 제거된 시간. 최선을 다한 인내와 배려만으로 이어진 시간. 바로 그녀가 선택한 시간이었다. 문득 이 세상을 살아본 적이 없다는 느낌이 드는 것에 그녀는 놀랐다. 사실이었다. 그녀는 살아본 적이 없었다. 기억할 수 있는 오래 전의 어린 실절부터, 다만 견뎌왔을 뿐이었다.
그녀는 맏딸로 성실했던 자신의 성실함은 조숙함이 아니라 아버지의 폭력을 피하기 위한 비겁함이었다는 것을, 다만 생존의 한 방식이었음을 고백합니다. 또한 그녀는 그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피곤에 절어있는 그를 쉬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에 그와 결혼했지만 어쩌면 자기 자신을 쉬게 해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그 또한 나처럼 견디고, 참고 있었다는 것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여합니다. 그렇게도 날개를 단 어떤 것들을 찍어댔으면서도 막상 자신이 날아야 하는 순간 날지 못하는 그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8년간 남편이었던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모르는 사람이기에 그를 용서하고 용서받을 필요도 없다고.
소설은 그녀의 말을 빌어 그래도 살아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말을 전합니다. 영혜의 분신이기도 한 인혜도 이 모든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죽음을 생각하며 숲으로 향합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아들 지우가 있습니다. 무해한 웃음을 지으며, 뭔가 슬픔 느낌을 애써 지우려 떠들어대는 아들 지우에 대한 책임감은 그녀를 다시 숲 아래로 이끕니다. 아들 지우가 웃고 난 다음 고통이 멈춘다고, 시간은 여전히 흐르고,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나무들은 모두 형제처럼 지내
우리가 소위 말하는 정신병자들은 어쩌면 세상의 폭력에 예민한 사람들인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의 모든 폭력과 편견, 욕망, 시기, 질투, 편 가르기를 혐오하면서, 정작 나 또한 피가 뚝뚝 떨어지는 고기를 질겅질겅 씹고, 피범벅이 되어 있지는 않나요? 영혜 또한 이런 이중적인 자신의 모습에 혐오감을 느껴 고기를 거부하고, 뱉어내는 것은 아닐까요? '내가 왜 사는지 모르겠다' 하고 백척간두위에 위태로이 서 있는 모든 이들에게, 영혜와 같이 온몸으로 고통스러워하는 것 또한 하나의 방법일지도, 인혜와 같이 책임감으로 참고 견뎌 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지도 모르겠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 고찰해 보는 것 자체로 존재의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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