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자기 앞의 생]을 읽고(책 리뷰, 독후감)/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이라는 작품은 로맹가리가 사람들로부터 부여받은 고정된 이미지, 고정관념, 구속을 탈피하기 위해 가상의 작가 에밀 자라르를 만들어 그로 하여금 새로운 작가의 새로운 작품으로 발표된 것입니다. [자기 앞의 생]은 로맹가리가 자신의 본명으로 출간한 하늘의 뿌리 이후 콩쿠르 상을 수상함으로써 동일한 인물(이름은 다르지만)이 2회 수상하는 최초의 쾌거를 이룬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는 소위 잘 나가는 유명 평론가들에 대해 극도의 반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제는 더 이상 새롭고 파격적이며 신선하게 다가가지 못하는 로맹가리라는 자신의 이름에 대해 극도의 환멸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로맹가리의 친척일지도 모르는 애송이 작가, 에밀 아자르는 세상에 이름을 알립니다.
[자기 앞의 생]의 줄거리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이러합니다. 10년간 원래 나이보다 4살 어리다고 알고 살아온 모모라 불린 창녀와 살인자 부모에게 잉태된 아랍인 모하메드라는 소년이 프랑스 벨빌의 빈민들이 보여사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 7층에서 유태인이자 창녀였던 로자아줌마가 운영하는 소위 '은밀한 집'이라는 곳에서 수없이 들고 나는 이름 없는 창녀들의 아이들과 함께 부조리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프랑스 사회에서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아가는 성장소설입니다.
10살 모모(실제는 14살이지만)가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나치, 전쟁, 아랍인과 유태인간의 종교갈등, 흑인을 필두로 한 인종차별, 안락사문제, 여장남자로 대표되는 성정체성에 관한 문제, 창녀와 환락의 세계, 버려진 아이들과 노인문제, 복지시스템의 사각지대와 같은 프랑스를 배경으로 했지만, 현재도 전 세계의 수많은 나라들이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보편적인 '불쌍한 사람들(레미제라블)'과 관련된 문제와 이념을 유머 넘치는 실랄하고 간결하면서도 쉬운 문체로 적나라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문학에서 다루기 힘든 다소 예민한 종교, 안락사와 같은 문제까지 어린아이의 시선에서 콕콕 짚어서 소위 돌려 까지 한다는 점에서 1인칭 시점을 환상적으로 사용한 작품이라고 하겠습니다. 모모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가르쳐주는 하밀할아버지와 모모가 모두 다루기 어렵지만 최대한 언급해 보여주고 자 했던 주변 사람들과의 얽히고설킨 사건들과 대화를 통해서 깨닫고 느끼며 성장해 갑니다. 자연의 법칙대로 말입니다. 자연의 법칙은 때로는 너무나 잔인하지만, 그것이 없다면 결코 살아갈 수 없는 것들입니다. 나이가 들면 몸의 장기들이 서서히 노화되고, 병에 걸려 언젠가는 죽게 되는 것처럼 자연의 법칙에는 동정심이라고는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열 살인 줄 알고 살았어도 열네 살이었던 모모는 자연의 법칙대로 4년만큼의 풍성하고 성숙한 사고력과 판단력을 가지게 됩니다.
고달프고 고통스럽기만 한 삶 앞에서도 모모와 사람들은 유머를 잃지 않고 끊임없이 희망을 노래합니다. 95킬로의 뚱뚱하고 웃으면 더 못생겨지고 32가닥밖에 남지 않은 대머리인 데다가 이름도 알 수 없는 수많은 병에 걸려서 7층을 계단으로 오르내릴 수는 없지만 모모가 없이는 살 수 없는 모모를 너무 사랑하는 로자 아줌마, 우산인 것이 확실하지만 곁에 없으면 안 되는 친구 아르튀르. 나이가 들어 눈이 멀고 정신이 오락가락해졌지만 모모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가르쳐주는 하밀할아버지, 의사이지만 나이 들고 아프지만 빈곤한 친구들을 보살펴주는 카츠 선생님. 세네갈 권투선수 출신의 세네갈 해와 같이 밝고 세상 어디에도 없는 모습을 한 롤라 아줌마. 거꾸로 가는 세상을 알게 해 준 나딘. 그리고 차별받고 궁핍한 중에도 다른 이의 어려움을 지나치지 못하는 자움 씨네 네 형제와 왈룸바를 포함한 벨빌 빈민 건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행복이란 것은 그것이 부족할 대 더 간절해지는 법이기 때문일까요? 아름답다는 것은 우리가 누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달려있는 것이기 때문일까요? 더 이상 내려갈 수 없을 것 같은 밑바닥 인생들의 삶에서도 행복과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것은 서로 사랑하기 때문일까요? 인간은 기계장치로 된 서커스 상자 안에서 반복적으로 의미도 모른 채 목적도 없이 움직이는 어릿광대가 아니라 때로는 아프고 죽고 싶어 질 수도 있겠지요? 되돌려지는 영화 필름처럼 삶이 아름다운 그 시절로 다시 되돌아갈 수 없지만, 그래서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을 추억하며 오늘을 살아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엄마, 암사자를 통해 모성애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식당에서 점원을 부를 때 '고모'라고 하지 않고 '이모'라고 하듯 부계보다는 모계가 좀 더 친근하고 가깝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것은 나를 낳아준 엄마는 확실한 존재이지만, 나의 아버지는 누군지 확정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밝혀진 바 있습니다. 소설 속에 창녀인 엄마를 통해 이를 극명히 나타냅니다. 아이를 낳아준 단 한 명의 엄마, 그리고 아버지일지도 모르는 수많은 남자들. 엄마와 암사자는 자신이 찢기고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몸을 날려 자신의 아이를 보호하며, 밤마다 나타나 보듬어주고 쓰다듬고 핥아주는 존재를 상징합니다. 원초적 모성애와 엄마의 사랑을 향한 자연의 법칙과도 같은 끊임없는 갈구. 모모의 아버지라고 주장하는 유세프 카디르라는 남자는 질투심에 사로잡혀 창녀였던 모모의 확실한 엄마 아이샤를 죽입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천벌을 받은 것인지 모모와 첫 만남에서 심장마비를 일으켜 죽게 됩니다. 모모는 그의 죽음에 슬퍼하지 않습니다. 그가 자신의 아버지인지 아닌지 확실치 않을 뿐 아니라, 사랑하는 단 한 사람의 생모인 아이샤를 죽게 했기 때문입니다. 모모는 아버지라고 주장하는 남자의 죽음보다, 자신이 네 살이나 더 나이가 먹었다는 사실에 더 충격을 받고 의미를 둡니다. 보통의 사람들과는 다른 속도로 네 살을 순식간에 먹어버린 모모는 로자 아줌마가 자신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나이를 빨리 먹어서 자신의 곁을 떠날까 염려한 탓에 생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거지 같고 불결하고 저주스럽고 황망한 자기 앞에 생 앞에서 모모는 결심합니다. 늙고 아파서 죽음을 앞두었지만 죽지 못하는 로자아줌마가 자기 삶의 마지막을 결정할 권리, 즉 자결권을 지킬 수 있도록 그녀를 지켜주기로 맹세합니다. 병원에서 식물상태로 17년 이상을 살아내는 세계 신기록을 달성하는 고통을 짊어지지 않도록, 그녀가 예수보다 더 큰 고통으로 십자가를 짊어지는 자비를 강요받지 않도록 말입니다. 로자아줌마가 병원으로 옮겨져 강제로 생을 이어가지 않고, 그녀가 수년간 준비해 온 그녀만의 평온한 죽음의 안식처인 지하 '유태인 동굴'에서 함께 축제와도 같은 생의 마지막을 함께 합니다. 적나라하지 않고 적당한 밝기로 촛불을 밝히고, 죽는 순간까지 아름다운 여자이기를 바랐던 그녀를 위해 진한 화장을 해주고, 똥오줌에 찌든 냄새를 없애주는 향수를 뿌려줍니다. 모모는 로자 아줌마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으므로, 삼 주간 죽어있는 그녀 곁에서 함께 했다는 사실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라고 말합니다. 소설의 마지막에이 이야기가 전하는 하나의 메시지가 명확히 밝혀집니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없이는 살 수 없다. 사랑해야 한다
당신은 어떤 생 앞에 놓여있으신가요?
당신은 사랑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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