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여수의 사랑]을 읽고(책 리뷰, 독후감)/한강(대한민국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여수의 사랑은 한강 작가의 단편소설들을 모아 엮은 소설집입니다.
여수의 사랑, 어둠의 사육제, 야간열차, 질주, 진달래 능선, 붉은 닻까지 총 6편을 담고 있습니다.
다소 불친절하게 느껴질 만큼 독자 스스로가 많은 생각을 해야만 했고, 소설 전반을 관통하는 어둠과 폭력 그리고 고통에 대한 문장들은 자칫 독자의 마음을 베이게 할 만큼 강렬하고도 원초적입니다.
여수의 사랑은 여수가 고향인 정선과 아마도 여수가 고향일 것이라고 믿고 있는 자흔이라는 두 여자의 처절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정선에게 여수는 아버지의 폭력에 대한 아픔과 고통이고, 2살 무렵 여수행 열차칸에 버려진 자흔에게 여수는 버려졌지만 원초적으로 끌릴 수밖에 없어 언젠가는 돌아가야만 하는 마음의 고향입니다. 정선은 괴물과도 같은 아버지에게서 동생 정선의 손을 놓아버린 죄책감으로 그 더러운 손을 씻고 또 씻어내야만 하는 결벽증에 걸리고 맙니다. 그리고 그 괴물 같은 아버지의 죽음은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감싸 안아 위장의 뒤틀림과 구역질을 달고 살게끔 합니다. 그녀 자신도 제어하지 못하는 결벽과 욕지기의 시간. 자흔은 그런 그녀의 삶에 허술하게 끼어듭니다. 결벽을 흐트러트리는 무구한 자흔의 삶은 정선에게는 모성애를 자극시키는 동시에 고통 그 자체가 됩니다. 정선은 자흔이 떠나기를 원치 않지만, 그녀가 떠나지 않고는 숨을 쉴 수 없습니다.
어둠의 사육제는 십육 동 십삼 층 작은 이모의 베란다방에 얹혀살고 있는 영진과 교통사고로 아내와 그녀 뱃속에 5개월 태아가 죽은 대가로 받은 보상금으로 마련한 십오 동 십사 층에 살고 있는 남자 명환의 이야기입니다. 영진은 가진 것은 없지만 차츰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소소히 미래를 꿈꾸는 20대 여자입니다. 어느 날 인숙이라는 고향 언니를 만나게 되어 모든 돈을 갹출하여 전세방을 구해 살던 중 인숙언니가 전세금을 모두 빼내어 도망치고 맙니다.
너한테는 아직도 희망이 많지?
라는 말을 남기고.
그리고 남한테 이용만 당하고 살다 보면 본전도 찾지 못하니 손을 벌릴 때는 벌리고 떼를 쓸 때는 쓰라는 충고를 남긴 채.
빈털터리가 된 영진은 인숙에 대한 배신감에 살의까지 느끼며, 이모집에 기생하게 됩니다. 이모집 식구들의 온갖 눈칫밥을 먹게 되지만 인숙언니가 해준 충고대로 오기가 발동하여 당당하게 집을 구하게 되기 전까지는 이 집을 나갈 생각이 없다고 선언합니다. 그렇게 시작된 베란다방에서의 삶. 그녀는 방 한쪽면이 전체 창으로 된 베란다 방에서 수치심과 싸웁니다. 그러던 중 만나게 된 남자 명환은 과속으로 인한 교통사고로 사랑하는 아내와 뱃속 아이를 잃었고 자신은 한 발 무릎 밑이 잘린 채 목발로 땅을 짚으며 살아가야 하는 신세가 되어 사고를 일으킨 남자를 지켜보기 위해 같은 아파트의 다른 동으로 집을 사 남자와 그 가족들을 어둠 속에서 지켜보며 소리 없이 증오의 눈빛만으로 그들의 목을 조입니다. 마침내 그들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이사를 가기까지 계속해서. 복수해야 할 대상이 떠난 명환의 아파트는 더 이상 그에게 필요 없게 되고 베란다방 다른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영진에게 자신의 집을 가져가라고 부탁을 가장한 명령과 호소를 합니다. 자신은 더 이상 살 집이 필요 없다면서. 영진은 그 집을 받으면 명환이 죽으리라는 사실을 알고는 완강히 거부합니다. 명환은 영진이 베란다방을 떠나는 날 새벽 영진의 베란다방에서 자신의 방을 보고 싶어 했고, 불 꺼진 칠흑 같은 자신의 방을 보고 더는 견딜 수 없어서 그 방에서 자신을 죽였다고 말 한 뒤 실제로 투신하여 생을 마감합니다. 복수하고 증오해야 할 교통사고를 일으킨 한 집안의 가장은 참으로 괜찮은 사람이었습니다. 한 번의 실수로 두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후 그 죄를 씻기 위해 보상금을 챙기고, 무릎을 꿇습니다. 자신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말입니다. 명환은 이미 가족을 잃고, 자신의 한쪽 다리마저 잃었는데 온전히 그 책임을 물어야 할 상대가 너무나 괜찮은 건실한 사내인 것입니다. 이 사이에서 오는 괴리를 명환은 이겨낼 수 없었던 것일까요?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나았던 것일까요? 다시 시작할 수는 없었던 것일까요? 소설을 보는 내내 명환이 죽을 것만 같았기에 제발 무슨 구실을 들어서라도 살아달라고 애원하며 읽었던 것 같습니다. 과연 한강 작가는 어떤 마음으로 뼈아프게 명환을 죽여야만 했을까요?
눈도 없고 코도 없는 그 멍청스러운 미련이란 결국 내가 잃어버린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 아무것도 끝나지도 시작되지도 않았으며, 모든 것을 잊고 다시 시작한다기보다는 지금 이대로의 상태로라도 언제까지도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불분명한 용기였다
결국 그를 살리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어찌 되었건 끝이 났습니다. 독자인 저도, 소설 속 영진도. 누군가는 죽고, 또 다른 누군가는 살아가야만 하는 삶.
야간열차는 그저 그런 열정, 하고자 하는 것 없이 본능적인 적응 능력으로 살아가는 영현과 열정과 성실을 강요당하며 도망가고자 하는 마음을 가면 속에 꽁꽁 숨긴 채 살아가는 동걸의 이야기입니다. 영현은 큰 몸짓과 기차 화통 같은 우렁찬 목소리를 가진 자신감 넘치고 매사 열정적인 친구 동걸을 부러워합니다. 그런 동걸은 늘 청량리역에서 밤 11시에 출발하는 영동, 태백선 통일호 야간열차가 있다고 공공연히 떠들어댑니다. 한 번도 타본 적 없는 야간열차. 영현을 포함한 친구들은 치기에 어려 어느 날 무작정 통일호에 몸을 싣고 동해로 떠납니다. 하지만 동걸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영현은 동걸이 왜 그래야만 했는지 군대를 다녀와 사회생활에 적응해갈 무렵 알게 됩니다. 동걸은 찢어지게 가난한 단칸방에서 늙어 지친 어머니와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여동생 선주, 그리고 자신과 분신처럼 똑같은 모습으로 침을 흘리며 아랫목 이불채 안에서 살아가는 반신불수 쌍둥이동생 동주와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장 친한 영진에게조차 비밀인 채로. 동걸은 그들을 모두 버리고 야간열차에 몸을 실어 떠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마치 누워있는 동주오빠 몫까지 살아내려고 하는 것 같이 누구보다 완전하게 살려고 해요. 동걸오빠는 지금 이렇게 우리와 함께 살고 잇지만 어떤 때 보면 마치 여장을 다 꾸려놓은 사람같이 느껴져요. 한 발자국만 떼어놓으면 떠날 사람 같아요
14살 무렵 자신을 대신해 우유배달을 하던 중 사고로 그저 누운 채 생명을 부지하고 있는 분신인 쌍둥이 남동생의 몫까지 살아내야만 한다는 강박 때문에, 가난한 가족들을 배신해서 탈출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걸은 화장터로 유명한 '벽제'에 가자며 영진을 불러냅니다. 한 손에는 노란 봉투를 쥐고. 노란 봉투의 정체는 끝끝내 밝혀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늙고 병든 어머니의 죽음 혹은 정신을 놓은 채 누워있는 동주의 죽음 그것도 아니라면 발랄하고 감정에 숨김이 없었던 여동생 선주에 그 무엇에 관한 소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동걸은 그 봉투를 손에 꼭 쥐고 열차에 몸을 싣습니다. 그는 남은 사람들을 배신하고 탈출하려는 것일까요? 아니면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자신을 애도하려는 여행을 떠나는 것일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무엇일까요?
질주는 달리기를 할 때 비로소 자유를 찾는 서른의 인규와 그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달리는 것 이외에 제 마음을 다스릴 길이 없는 나약한 서른의 독신남 인규. 그에게는 벌써 20여 년 전에 동네 아이들에게 폭행당해 죽은 동생 진규의 기억이 있습니다. 어머니와 지물포를 하는 돈밖에 모르는 수전노 의붓아버지 그리고 그 사이에서 낳은 의붓 누이동생, 인규의 가족들은 모두 진규라는 이름을 거론하지 않으며 그가 찍힌 사진을 모두 불살라 마치 그가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것처럼 진규를 잊습니다. 하지만 인규만은 진규를 기억하고 그의 죽음에 슬퍼하고 분노합니다. 분노가 치밀 때마다 인규는 질주를 합니다. 목표지점도 없이 내 달리다 보면 살아갈 숨이 쉬어집니다. 숨이 턱에까지 차서 숨이 꼴깍꼴깍 넘어가는 와중에. 인규의 친아버지는 일상 폭력과 폭행으로 점철된 인간이었고, 어느 날 숨이 취해 사이다병에 담아놓은 농약을 마시고 세상을 떠납니다. 폭력이 진저리 치게 싫었던 인규는 진규를 죽인 아이들을 하나씩 찾아가서 처절하게 복수를 해줍니다.
피는 피로서만 씻을 수 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라고 이가 흔들리도록 이를 악물고, 손바닥에 피가 터지게 손을 꽉 쥐고 인규는 진규를 위해 폭력으로 복수합니다. 인규는 진규가 죽고 처절한 복수극을 치르기 위한 불사신이 되기로 마음먹습니다. 어디선가 독을 소량으로 오랜 기간 동안 먹게 되면 나중에 독이 한꺼번에 들어와도 죽지 않는 불사신이 된다는 말을 주워듣고 청산가리를 먹을 각오까지 다집니다. 자신 이외에 모든 사람이 진규를 잊으려 했고, 잊었다고 믿고 있던 순간 늙어 암에 걸려 정신이 온전치 않을 지경에 이른 어머니가 진규를 부릅니다. 거기는 춥지 않냐며, 진규가 죽고, 피로써 복수하고, 잊히는 동안 인규는 동구밖 공터에 버려져있던 진규의 몸뚱이와도 같은 자신의 몸뚱아리, 그 육체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덫에서도 벗어날 수 없어 얼음장처럼 차갑게 냉소적으로 살아갔습니다. 어떤 것도 사랑하지 않으며. 어머니가 부른 진규의 이름을 듣고 인규는 자신도 어디선가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인규는 이제 진규의 그것과도 같은 몸뚱이와 걸린 덫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진달래능선은 술주정과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불타오르는 진달래 능선을 달려야만 했던 정환과 심장병에 걸린 딸을 버리고 아들과 도망간 아내를 가슴에 품고 심장병 걸린 딸을 기리며 살아가는 집주인 황 씨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정환은 무일푼으로 도망쳐 나와 살아남기 위해 이곳저곳을 전전하다 황 씨의 집에 월세로 살게 됩니다. 황 씨는 정원에 있는 나무들을 뿌리째 파내 구덩이를 만들고 그곳에 숨어 그 나무들을 태웁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인가 사흘에 한 번씩 처연한 울음소리가 집안을 가득 메웁니다. 이 울음소리에 정환은 혐오감과 동질감을 동시에 느낍니다. 아버지의 폭력에 정환은 싸움꾼이 되었고 백치 같은 여동생 정임은 먹보가 되었습니다. 바보 같고 거추장스럽기만 했던 정임은 진달래 꽃을 먹어 입술이 벌거진 채 정환에게 버려졌고, 그날 밤 다시 돌아온 집에서 어머니는 정임을 버린 매정한 아들에게 '너는 내 아들이 아니다'라며 정환을 몰아세웁니다. 아버지의 폭력을 감당해내게 했던 따뜻한 어머니의 손길마저 그를 외면했다고 생각하자 정환은 그들을 떠나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리고 황 씨는 죽은 딸이 생전에 좋아했던 나무들을 태우며 웁니다.
그렇게 나무를 좋아했었는데 제가 되었어. 다 타서 날아갔어. 난 이렇게 불태워진 것들이 그 애의 마당에 옮겨 심어질 거라고 믿고 있는 거요. 이제 이것이 내가 가진 마지막 나무인데. 그 아이가 섰는 한없이 넓은 땅에 꽃이 피고 물이 흐르려면 아직도 멀었소...
그때서야 정환은 고향을 생각합니다. 다시 찾은 고향에 우연히 손에 넣은 정임의 중학교 졸업사진을 품에 안고 찾아 헤맵니다. 누군가 고향에서 자신이 떠난 후 이처럼 슬퍼해주었을까요? 이토록 애끓는 울음을 울어주었을까요? 땅을 파고 뿌리를 뽑아 가지를 치고 불을 살라 내가 있을 그 머나먼 곳까지 제로 날려주었을까요?
붉은 닷은 발이 없는 것 같다고 기억되는 살아있는 혼령과도 같았던 폭력적인 아버지의 기억에서 고통받고 자위를 일삼았던 동식과 아버지와 같은 느낌으로 두렵게만 생각되는 동생 동영, 그리고 가족과의 소풍을 꿈꾸는 어머니의 이야기입니다. 동식은 지옥과도 같았던 어린 시절이 기억을 견디기 위해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향락을 일삼습니다. 그리고 몸을 학대한 대가로 간경변이라는 병을 얻습니다. 병 때문에 군대도 가지 못하고 변변한 직장도 구하지 못합니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고 생각하며 몸과 마음을 치유해 갑니다. 아직 온전치는 않지만 직장을 구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합니다. 그리고 그때 군을 제대하고 돌아오는 동영의 소식을 듣습니다. 동식은 동생이 두렵기만 합니다. 아버지의 어깨에 무등을 탄 어린 동영의 환영을 보고 폭력적인 아버지의 기억이, 아버지의 시산을 찾지 못하고 덩그러니 떠내려온 아버지의 구두 한 짝이, 물이 술인 줄 알고 물에 뛰어들어 죽은 것이라고 입방아 찧던 동네 아낙들의 저주스러운 말들이, 동식은 두렵고 무섭기만 합니다. 다시 만난 동식과 동영, 어머니는 인천 바닷가로 소풍을 떠납니다. 썰물에 물이 빠져나간 해안 모래밭에 녹슬어 벌겋게 처박혀있는 붉은 닷의 무덤을 봅니다. 발이 없어 구두 한 짝을 놓고 떠나간 아버지가 그곳에 붉은 닷이 되어 꽂혀 있는 것만 같습니다. 폭력으로 일그러진 기억을 가진 자신을 끝끝내 각종 폭력들로 가학적으로 내몬 후 생채기처럼 병에 걸린 동식은 이제 자신의 두발을 땅 속 깊이 묻히기를 원합니다. 저 붉은 닷과 같이. 그리고 그곳에 물을 주어 싹이 틔우기를 , 그 울창해진 그늘에 백발의 어머니가 편안히 눕기를 원합니다.
아버지의 폭력으로 상징되는 가부장적인 사회를 신랄하게 보여주는 한강의 소설들은 읽는 내내 욕지기가 올라오는 불편함 감정을 다스리기 어렵게 합니다. 폭력은 폭력으로, 피는 피로,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 복수의 칼을 갈았던 수도 없이 많은 아들과 딸 그리고 아내들. 하지만 결코 폭력을 일삼은 아버지를 온전히 미워할 수 없는 알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을 처연하고 서정적인 묘사로 표현하는 작가의 필력은 감탄스럽습니다. 모습과 대상만 바뀌었을 뿐, 지금도 전 세계는 각종 폭력들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폭력을 가하는 자와 폭력을 당하는 자가 과연 확실히 선을 그어 양분되어 있는 것일까요? 폭력은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주고받는 이 모두에게 어떠한 형태로든 상처를 줍니다. 인간은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고, 또 어디까지 약해질 수 있을까요? 피가 피를 부르는 폭력은 과연 멈출 수 있는 것일까요? 인간은 왜 싸우는 것일까요?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처절히 짓밟는 것일까요? 오늘도 어디에선가 죽어가고 피 흘리고 눈물 흘리는 모든 이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가 절실한 시대입니다.
아름다운 당신. 아름다운 당신의 손과 말로 또 다른 아름다움을 해치지 않기를. 살아내느라 애쓰지 않는, 살고 싶고 웃고 싶어 지기를. 편 가르기 위해 선 긋지 않기를. 오늘도 안녕하기를. 그리고 내일도. 그 내일도 안녕하기를. 삶이라는 여행을 마친 후 수치스럽지 않기를. 행복은 가까운 곳에 있으며, 불행은 마음에 달렸다는 것을. 당신이 알지 못하는 곳에서 당신을 축복해 주는 수천수만의 존재들이 있기에, 당신은 절대 혼자 외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전쟁으로 실익 따지지 않기를, 생명은 절대적인 것임을. 그리고, 그래서, 그러므로 당신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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