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울게 될 거야]를 읽고(책 리뷰, 독후감)/야마모토 후미오
[울게 될 거야]라는 작품은 다소 거칠고 단도직입적이며 거침없이 단순한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어쩌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문체에서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때로는 거북하여 욕지기가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동백꽃이라는 의미를 가진 '쓰바키'라는 23살 여자가 사랑이라는 것을 얼핏 알아가는 과정을 에이즈나 불륜, 치매, 왕따문화, 외모지향 사회, 향락적이고 소모적인 섹스와 향락문화까지, 무겁고 어려운 주제를 세상 도발적으로 가볍게 다루어냅니다. 어쩌면 그것은 현대인들이 느끼는 공허함을 느끼게 해주는 동시에, 어쩔 수 없이 순응하며 살아가야만 하는 분노와 절망, 두려움을 나타내는 듯합니다.
쓰바키는 틈이라고는 찾을 수 없어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지 않는, 엄격하고 거침없는 성격에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할머니를 동경합니다. 할머니와 같은 인생을 살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하고 갈망합니다. 그리고 비로소 할머니와 같은 인생을 살게 되었다고 느꼈을 때 아이러니하게도 '죽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고 두려움에 떱니다. 할머니는 누구보다 아름답고, 나이 들어서까지도 꽃꽂이 강사를 하며 제 밥벌이를 하며, 번듯한 멘션 한 채를 보유한 데다, 세상 누구보다도 손녀인 쓰바키를 사랑해 주고 아낍니다. 할머니는 아름답지 않은 것들을 혐오합니다. 쓰바키는 그런 할머니에게 배운 대로 제 아름다움을 알고, 그것을 재능이며 능력이라고 여기며 살아갑니다. 제 미모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동성의 친구들이 부담스러워 피하고, 언제나 귀엽고 예쁘다 칭찬해 주고 자신과의 하룻밤을 애타게 갈구하는 이성들과의 관계만을 즐깁니다. 10대 중학교 시절에 만난 '군제'와는 10년 동안 잠자리 파트너로 관계를 유지하지만, 쓰바키는 그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군제는 늘 다른 여자와 놀아나기 때문에 딱히 사랑할 마음도 생기지 않습니다. 쓰바키는 자신만을 아끼고 보호해 주는 천사 같은 남자를 원하니까요. 때문에 쓰바키는 누구에게나 친절하기 때문에 자신에게도 당연히 친절한 천사 같은 의사 나카하라를 신랑감으로 점찍습니다. 쓰바키는 자신의 유일하고도 고귀한 미모를 재능과 능력 삼아 결혼에 성공하고, 그 남자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살아가기를 갈망합니다. 하지만 나카하라는 사귀자는 쓰바키의 제안을 거절합니다. 쓰바키는 하는 수없이 남편을 찾아 날이면 날마다 남자를 바꿔가면서 만남과 섹스를 이어가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기를 잃어가는 미모에 풀이 죽어갑니다. 가진 건 예쁜 미모뿐인데, 사실 그 미모도 성형수술로 얻은 것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종 콘테스트에서 낙방하기 일쑤입니다.
쓰바키에게는 히나코라는 그녀 인생 첫 여자친구가 있습니다. 꿍꿍이라고는 없는 히나코만은 진정한 친구라고 여기지만, 결국 히나코도 쓰바키도 서로를 무의식 중에 피합니다. 서로의 상처와 불행을 걱정해 주는 척 하지만, 결국 남의 불행 속에서 알 수 없는 쾌감을 느낍니다. 히나코는 쓰바키 몰래 군제를 몰래 사랑하고 있었고, 에이즈에 걸렸을지도 모를 군제와의 섹스 후 자신도 에이즈에 걸렸을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자신을 죽음의 사지로 몰고 간 것만 같은 군제와 쓰바키를 증오하고 분노합니다.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은 자신이 선택한 것이고, 모든 결과의 책임은 자신에게 있는 것임에도. 20대 청춘들은 서로에게 절망과 두려움, 분노의 칼날을 들이댑니다. '누가 베이든 나만 아니면 된다. 내가 베이든 말든 상관하지 말고 살아라. 네가 뭔 상관이냐. 내 인생인데'라고 앞뒤 따지지도 인과관계 따위는 개나 줘버리는 듯 마구 지껄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온갖 편견에 가득한 눈빛들 그리고 말과 행동들에 우리는 지쳐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면서, 누구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또 숨죽여 상처받은 후 '너는 죽는 게 나아'라는 저주의 말을 마구 퍼부으면서 우리는 한없이 소모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때로는 그냥 말없이 안아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됩니다.
쓰바키는 군제와 노는 것은 재미있지만 결혼만은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그를 사랑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아무 여자나 만나 하룻밤을 보내고, 여자를 소중히 대하지 않는 그런 남자를 사랑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하지만 쓰바키와 군제는 소름 끼치게 그 모습이 닮아 있습니다. 닮아 있는 그들은 서로의 모습을 증오하고 경멸합니다.
넌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거울로 자기 얼굴을 보지만 네 눈에는 거울이랑은 전혀 다른 게 비치고 있어. 돈 많고 미인에 남들한테 사랑받는 고상한 아가씨가 비치고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 널 그렇게 보는 녀석은 아무도 없단 말이야. 너는 거울을 보지 않아. 언젠가는 눈물을 쏙 뺄 날이 올 거야.
쓰바키는 그렇게 동경하고 꼭 빼닮고 싶었던 할머니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됩니다. 할머니는 첩이 아닌 할아버지의 정실부인이었고, 첩에게 막말을 퍼붓고 악담을 쓴 편지를 싸지르고, 서로 사랑했던 남편과 첩 그리고 둘 사이 딸의 관계를 발기발기 찢어놓습니다. 그리고 고상한 척 가면을 쓰고 아름다운 미모를 앞세워 살아갑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남편의 죽음 이후 정신을 놓고, 그녀가 유일하게 자랑하던 아름다움도 이 세상의 것이 아니게 됩니다. 이제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거동도, 일상생활도 불가한 초로의 초라하고 죽음을 꼬 앞에 둔 한 줌의 노인으로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존재가 됩니다.
쓰바키는 어쩌면 내면의 추악함을 숨긴 채 아름다운 미모 하나만 믿고 살아왔던 할머니이기도, 초라한 외모 때문에 한평생 어머니의 사랑에 목말라하는 어머니이기도, 할머니의 숨겨진 애인이었고 어머니의 남편이기도 했던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아버지이기도, 아끼는 척 하지만 다른 이의 불행에 쾌감을 느끼는 히나코이기도, 모든 이에게 친절하지만 정작 진실한 사랑을 모르는 나카하라이기도, 박력 있는 얼굴과 뚱뚱한 몸을 지니고 더해 성격까지 불친절하여 끊임없이 사랑하지만 고백조차 하지 못하는 피해의식 덩어리 우오즈미이기도, 친절하지만 뒤에서는 호박씨를 까고 헐뜯고 괴롭혀 남 잘되는 꼴을 못 보는 히로세이기도, 법적인 아내를 두고도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이성에게 들이대는 유부남들이기도, 첩의 딸로 태어나 일평생 남에게 인정받지 못한 삶을 살며 행복했다 자부하지만 자신에게 고통을 안겨준 이들의 비참한 최후를 축하하기라도 하는 듯 백합을 보냈던 이리에이기도 합니다. 다들 더러운 존재라고, 사랑받을 가치가 없다고 서로에게 악담을 퍼붓고 예리한 칼날을 들이밀지만, 거울 속 내 모습의 또 다른 환영이라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내가 보고 싶은 모습으로 비치는 거울은 아무리 들여다 보아도 온전한 내 모습이 아닙니다. 되고자 하고 동경하는 허상에 불과한 거울 속 모습을 과감히 깨고, 잘근잘근 가루가 되도록 밟아, 미천하고 보잘것없지만 그럼에도 사랑스러울 수밖에 없는 '진짜'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우리는 군제처럼 에이즈에 걸려 병들어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다 결국 죽는 운명에 놓여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떠한 모습을 했건, 어찌 살아왔건, 진짜 당신의 모습으로 '다시 와달라고, 기다리고 있겠다'라고 말해주는 쓰바키와 같이. 있는 모습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고, 당신이 사랑하는 이들을 편견 없이 사랑하는 삶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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