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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책읽기

19. [그대의 차가운 손]을 읽고(책 리뷰, 독후감)/한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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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그대의 차가운 손]을 읽고(책 리뷰, 독후감)/한강 작가

그대의 차가운 손(한강)
그대의 차가운 손(한강)

 

[그대의 차가운 손]은 개인적으로 어렵게 읽어낸 책입니다. 소위 '착한 사람 증후군'을 앓았던 사람이라면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고단한 삶인지 뼈저리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상처받기 싫어서 인간관계를 피하는 그런. 상냥하고 친절해야만 한다는 강박, 나쁜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것에 대한 공포, 싫은 소리에 심장이 두 방망이질 쳐내는, 내 치부를 보고 손가락질 치는 것 같은 자위에 가까운 자책, 나를 보고 미간이 찌푸려지면 혹시 내게서 무슨 고약한 냄새라도 나는 것은 아닌지 하는 극도의 불안, 멀리서 들려오는 속삭임이 나를 비웃고 헐뜯는 것 같다는 의심, 또 의심 그리고 의심들. 소설 속에서 표현되는 탈, 가면, 껍데기를 쓰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것의 모양과 형태를 달리할 뿐, 오늘도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 또한 그런 류의 사람들 중 하나입니다. 그 상처와 고통, 불안과 수치심, 허무함, 공허를 느껴본 이들에게 이 소설은 작은 위안을, 무심하지만 따뜻한 쓰다듬음을, 갈가리 찢기고 고름이 터지고 피가 흐르는 그곳을 세심히 핥아 줍니다. 꽉 쥐어서 더 이상 쥐어질 수 없을 것 같이 주먹을 쥔 손, 그 안에 닳고 사라졌을 것만 같은 손금과 상처를 하나씩 정성스럽게 펴 줍니다. 감추고 싶고, 더럽고, 추악하고, 수치스럽고, 공허하고, 분노에 찬 진실을 드러내 줍니다. 너만의 것이 아닌 그것. 감출수록 더 곪아 터지는 그것. 나의 본질, 본성, 진실. 

 

소설은 소설가  H의 목소리로 시작하고 끝냅니다. H는 작가 한강의 분신처럼 보입니다. H는 큰 이모가 큰 수술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어머니가 죽은 후 발길을 끊었던 고향 K시로 향합니다. 그곳에서 알 수 없이 시선을 끄는 허공에서 무엇인가를 쥐는 듯한 모습을 한 손을 뜬 석고상을 보게 됩니다. 이후 서울로 올라와 다시 한번 K시에서 느꼈던 그 느낌의 석고상을 보게 됩니다. 후배 희곡작가 선영이 집필한 연극을 보러 간 H는 무대 위에서 다른 것들과는 이질감이 느껴지는, 속이 텅 빈 틀 집 같은 전신상을 보고 그제야 깨닫습니다. '사람을 직접 뜬 것'들이라는 것을. 연극이 끝난 후 뒤풀이 회식에 참석한 H는 연극을 본 소감을 묻는 관계자의 질문에, 그 틀 집이 눈에 띄어 마음을 뺏기는 바람에 연극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솔직히 털어놓습니다. 그리고 그 작품을 만든 '장운형'을 처음으로 보게 됩니다. 그리고 작품 끝까지 둘은 마주치지 않습니다. H는 장운형에게 '왜죠?'하고 사람을 직접 뜬 이유를 물었고, 장운형은 알 수 없는 미소만 지은 채 답은 하지 않고 둘은 헤어집니다. 그리고 몇 개월 후 장운형의 작은 여동생 장혜숙이 오빠 장운형이 실종됐고, 스케치북에 이해할 수 없는 긴 글을 남겼으며, 그 글 마지막에 H 이야기가 나와, 오빠의 실종에 대한 일말의 답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달라며 스케치북을 H에게 읽어달라 전달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프롤로그는 끝이 나고, 이제부터 소설은 장운형이 쓴 스케치북의 글을 따라 끝까지 진행됩니다.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가 중첩된 구조입니다. 본문은 장운형의 일기이기도,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이기도 한 느낌입니다.

 

장운형은 어린 시절을 회상합니다. 각자의 탈을 쓰고 살아가는 어머니, 아버지, 고모 그리고 외삼촌을 통해, 탈 안에 감춰진 진실이라는 것의 추악한, 욕지기가 치미는 그것의 본질에 의구심을 품습니다. 어머니는 아이를 좋아하지 않지만, 사회통념상 현모양처이고자 했으므로 자신의 진실을 입꼬리를 추켜올린 흰 탈을 쓰고 그 진실을 가립니다. 아버지는 한 집안의 든든한 가장으로, 누구보다 행복한 다복한 가정을 가진 학생들에게 존경받는 교수로 살아가야만 했으므로, 처가의 돈을 보고 사랑 없는 결혼을 하고 가정의 평화를 위해 진실이 아닌 거짓 자백을 강요하기도 하는 그 진실을 근엄하고 청렴한 학자의 가면을 쓰고 가립니다, 어머니는 행복해하는 미소 그득한 흰 탈을 쓰고, 고운 옷을 입고 교양 넘치는 삶을 살지만 아버지에게는 진정한 사랑을 받지 못하는 여인이었고, 아버지는 어려운 집안 사정을 극복하고자 처가의 부를 활용했고 누구보다 존경받는 교수였지만 외삼촌에게는 '개새끼'라는 소리를 들어야만 했고, 친자식들에게 외면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군대에서 오른손 엄지와 검지를 오발탄 사건으로 잃은 외삼촌은 그 손을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으려는 듯 교묘한 자신만의 껍데기를 씌워 가립니다. 운형은 탐구생활 숙제를 걷어 담임이 일임해 준 권한을 이용해 채점을 하는 역할을 하며, 답을 모두 알고 있는 자신의 숙제는 패스해 버립니다. 그러던 중 친구들의 의심을 사게 되고, 숙제를 집에 놓고 왔다는 진실을 가린 거짓발언을 하고 그 발언을 진실로 만들기 위해 밤을 새 숙제를 합니다. 이렇듯 운형의 가족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탈과 가면, 껍데기로 진짜 자신의 모습을 가린 채 살아갑니다. 그러던 중 외삼촌이 죽게 되고, 그의 장례식에서 몸과는 독립되어 별도로 존재하던 외삼촌의 손 또한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을 보게 된 후, 그 영향으로 사람의 손을 집요하게 관찰하기 시작합니다. 

 

장운형은 두 여자를 만납니다. L이라는 20대 여자는 키 167킬로에 몸무게가 100킬로에 육박하는, 어느 자리에 가도 눈에 확 띄는 존재입니다. 친구 O와 장운형의 전시회를 찾았던 L은 거구의 몸에 어울리지 않은, 통통하지만 작고 희고 에너지가 넘치는 손을 가졌고, 이 손을 눈여겨본 장운형은 그녀에게 손모델이 되어 달라고 요구합니다. 예쁜 O가 아닌 자신에게 제안이 들어오자,  뭔가 의기양양한 L은 흔쾌히 제안을 수락합니다. 매주 토요일에 장운형의 작업실에 들러 석고물을 부어 손을 뜨곤 했던 L은 어느 날,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다며 발길을 끊었고 이후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난 L은 제법 날씬한 몸매로 탈바꿈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L은 좋아하는 선배의 관심을 사기 위해 무리한 다이어트를 했고, 폭식증과 거식증을 앓게 됩니다. 오른손을 목구멍으로 쑤셔 넣어 구토를 하고 밤마다 러닝머신을 뛰면서 많이 먹은 자신의 죄를 사하듯, 오른손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기고 제 몸과 마음을 학대합니다. 그리고 운형은 다시 찾아온 L에게 온몸을 떠보자고 제안했고, 마침내 그녀의 몸을 뜬 거대한 틀 집은 운형이 꿈꿔온 자신이 죽어 누울 관(棺)이 됩니다. 하지만 그것은 L에 의해 그녀의 손껍데기와 함께 무심히 깨어지고 찢깁니다. 다시 떠났던 L이 다시 운형 앞에 나타나,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이제 더 이상 폭식과 구토를 하지 않는다고, 더 이상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살겠노라고, 너무 행복하다고 하며 오른손에 상처받기 이전에 떴던 손석고상 한 점을 요구해 받고는 총총히 떠납니다. 운형은 이로서 그녀와 마지막 만남임을 직감합니다.

 

그리고 가구 디자이너인 운형의 선배 P의 소개로 E라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를 만납니다. 그녀는 L와 달리 군살하나 없는 늘씬하고 단단한 몸매를 가졌고, 정갈하고 단정한 복장에, 친절하고 상냥한 미소를 가진 여자입니다. 하지만 운형은 L에게서 2초 정도 텅 빈 눈으로 목이 꺾인 것 같은 멈춤, 알 수 없는 공허를 느낍니다. E는 빈틈이라고는 찾을 수 없고, 도회적이고 우아함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완벽주의에 가까운 일처리 실력 또한 감탄할만합니다. 둘은 서로에게 끌리는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서로 왜 자신에게 끌리는지 이유를 알고 싶어 합니다. 그러던 중 운형은 E의 얼굴을 떠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낍니다. 지금껏 얼굴을 직접 뜬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E는 생각보다 덤덤히 그 작업에 응합니다. 그렇게 떠진 흰 탈과 같은 석고상은 을씨년스럽고 공포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온몸을 떠보자는 운형의 제안을 받아들인 E는 순조로운 작업 도중, 운형이 꼭 쥔 손을 펴려고 시도하자 새된 소리를 지르며 극도의 흥분상태로 채 마르지 않은 석고 안에서 온몸을 뒤틀고 당장 틀에서 꺼내달라고 명령합니다. 당황한 운형은 그녀를 석고상에서 꺼내주었고, 도중에 칼에 찢긴 그녀의 팔에서는 피가흐르고, 흥분한 그녀의 주먹에 맞은 운형 또한 상처를 입습니다. 한차례 폭풍우가 지나가고 왜 이러는 거냐는 운형의 질문에 담담히 자신의 과거를 말해줍니다. E는 외모나 복장과는 달리, 이름을 대도 사람들이 좀체 알 수 없는 시골의 소읍출신입니다. 정육점에 딸린 살림집이었던 탓에 집안 곳곳에는 피떡과 흔적들이 가득하고, 고기냄새가 진동합니다. 게다가 그녀는 이름대신 육손이로 불리던 아이였습니다. 새끼손가락 옆에 손가락 하나가 더 있는 여섯 손가락의 여자아이. 그녀는 그것을 증오했고, 사람들은 고의든 그렇지 않든 그녀에게 상처를 줍니다. 여섯 번째 손가락을 자르는 수술을 했고 손가락이 있었던 자리에는 흔적만이 남습니다. E는 이후 사랑한다고 믿었던 남자들에게 진실을 감추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하고, 자신의 과거를 말해주었으나 돌아온 것은 비난과 손가락질, 그리고 혐오였습니다. 이후 E는 세련된 외모와 복장, 하는 일에서 최고의 실력이라는  자신만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로 결심합니다. 운형은 여섯 번째 손가락이 달려있었을 그 손을 잡습니다. 그 손은 차가웠습니다. 그 손가락 하나하나를 따뜻한 입속으로 넣어서 빨고, 석고를 부었던 순서대로 그녀의 온몸을 핥아 줍니다. E는 운형의 손을 잡고, 따뜻함을 느낍니다. 그리고 운형은 E와 함께 사라집니다. 

 

다시 H의 시선으로 마지막 에필로그가 시작됩니다. H는 2년 동안 아팠고, 아픈 동안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실종된 운형은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여 P를 중심으로 한 지인들에 의해 유고전이 열립니다. 그곳을 찾은 H는 운형의 여동생 혜숙과 재회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미궁의 한 남자의 뒤를 쫓으며 소설을 끝맺음합니다.

 

껍질과 껍데기는 미묘하게 다릅니다. 껍질은 내용물과 엉겨 붙어져 있는 것, 사과껍질과 피부와 같은 것이고, 갑각류를 둘러싼 별개의 덮개와 같은 것이 껍데기입니다. 석고상을 뜨는 작업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읽고 있는 나에게도 고통이 느껴질 지경이었습니다. 맨 처음 차가운 석고액이 발려지고, 이후 살이 탈 것 같은 열감으로 피부가 뜨거워지고 나면 이윽고 석고가 마르면서 숨통을 조이듯 압박합니다. 그것이 얼굴과 몸을 덮었을 때 주는 공포감의 크기에 비례하여 그것에서 벗어났을 때의 쾌감은 더욱 커지는 것 같습니다. 흡사 인생과도 같습니다. 고통과 고난, 불안과 수치심, 공포로 가득한 심연은 그것을 가리기 위한 더 두껍고 견고한 껍데기를 요합니다. 가릴수록, 덮을수록 집여하고 심연을 조여옵니다. 내가 아닌 삶, 무엇을 보는지 알 수 없는 텅 빈 눈으로, 입꼬리를 추켜올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한강 작가는 속삭이는 듯합니다. 그 껍데기를 벗고 나와, 껍질이 벗겨지는 고통의 순간을 잠시 견디면, 비로소 달걀 속 막처럼 유들유들하고 반투명하고 미끈한 그것을 벗겨내, 당신만의 속살과 알맹이를 드러내고 평화로울 수 있음을. 다른 사람의 판단과 시선은 그들만의 것으로 두고, 거울 속에 발가벗겨진 본래 내 모습을, 솜털 하나하나까지도 사랑스레 어루만지기를. 어머니의 하얀 탈, 아버지의 처세술, 고모의 집요한 의심, 외삼촌의 잘린 손가락을 감추는 기술, L의 폭식과 구토, 살을 사생결단하듯 러닝머신 위를 내달리는, E의 육손의 헌 적을 감추기 위한 복장과 외모, 최고의 실력을 보여주어야만 하는 직업적 결벽 그리고 더럽고 추악하고 감추어진 진실을 꿰뚫어 보고자 하는 E의 고독함. 상처 없고 사연 없는 사람은 없음을. 그래서 인간임을. 그래서 이야기는 또 이렇게도 말하는 듯합니다. 행여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살아가더라도 자책하고 죄책감 느끼지 말기를. 그렇게 오늘도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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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희랍어시간]을 읽고(책 리뷰/독후감)/한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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