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인사]를 읽고(책 리뷰, 독후감)/김영하 작가
[작별인사]라는 책을 읽기 전에 책의 표지와 제목을 보고 미리 내용을 유추해 보았습니다. 아마도 사랑하는 사람-가족을 포함한- 과의 작별인사를 하는 내용이겠거니 했습니다. 로맨스도 한 스푼 들어간. 소설을 다 읽은 지금, 그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작별을 고하는 것은 맞고, 로맨스가 한 스푼 들어간 장르라는 것은 맞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두 남녀 주인공간에 로맨스도 찾아본다면 볼 수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이가 좀 있었는지 김영하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왜 작별인사라는 제목을 짓게 되었는지 배경을 간략히 설명합니다. 처음 이 소설의 제목은 [기계의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 제목이었다면 저 또한 소설의 방향을 달리 설정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김영하 작가는 소설을 다 마무리한 후 심사숙고 끝에 작별인사라는 제목으로 바꾸었다고 말하며, 작별인사 말고 달리 이 책의 제목을 생각하기 어렵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책을 다 읽은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저 또한 동감합니다. 이 보다 더 마음에 와닿는 제목은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작별인사]의 장르는 나름 정의해 보자면 이렇습니다. 공상과학하이퍼리얼리즘판타지성장철학소설. 이 소설의 주인공 철이는 강철의 철 자가 아니라 철학할 때 철자라며 이름의 기원을 설명합니다. 소설 전반에 인간이란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가? 인간의 존재, 의식, 감정, 고통과 같은 개념을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한 고찰을 담은 한 편의 철학서이며, 작가는 심오하고 고차원적인 내용을 10대 철이의 시선에서 쉽고 간결하고 흥미롭게 풀어냅니다.
[작별인사]의 간략은 줄거리를 살펴보겠습니다. 2030년을 먼 과거라고 칭하는 어느 미래. 통일을 이룬 한반도의 평양. '휴먼매터스'라는 하이퍼 리얼 휴머노이드를 연구하고 제작하는 연구소에 최진수박사의 아들 철이는 통일 이후 곳곳에서 내전이 벌어지는 혼란스러움을 피해 휴먼매터스 랩 J(주스) 동에서 아빠와 자연과 연구소 사람들, 휴머노이드들 그리고 두 마리의 진짜 고양이 칸트, 갈릴레오와 인공지능 고양이 데카르트와 함께 평화롭고 지루하기까지 한 나날을 보냅니다. 철이는 아빠의 보호아래 태어나 한 번도 연구소 밖을 나간 적이 없었고, 바깥세상에 대한 동경을 품고 있습니다. 어느 날, 아빠가 외출을 하고 비가 쏟아지자, 아빠에게 우산을 가져다준다는 핑계로 연구소를 나가 광장에 있을 때, 경비대에 붙잡혀 수용소로 끌려갑니다. 그 수용소에서 철이는 자신이 인간이 아닌 진짜 인간의 모습과 가장 닮은 하이퍼 리얼 휴머노이드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먹을 것이 부족하고 비좁고 폭력이 난무하는 수용소에서 만난 복제배아를 통해 실험실에서 태어난 클론족 사람인 선이와 인간인 줄 알았던 꼬마 휴머노이드 민이를 만나게 되고, 수용소삶에서 또 다른 즐거움과 재미거리를 느끼게 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용소가 휴머노이드들에 의해 공격을 받고 철이와 선이, 민이는 그곳을 빠져나오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민이가 머리가 잘리고 몸이 산산조각 나며 죽게 됩니다. 선이는 민이를 살려볼 방법을 강구한다며 머리를 챙겨 길을 나섰고, 달마라는 재생휴머노이드가 지도자로 있는 휴머노이드를 위한 재생 병원이었던 재활용 센터의 휴머노이드들과 살아가게 됩니다. 민이의 재생을 앞두고, 철이는 그리던 아빠와 무선통신으로 연락이 닿게 되고 아빠와 만남이 이루어지지만, 철이는 아빠가 이 과정에서 재생센터를 당국에 신고하게 되고 이곳을 파괴하는데 일조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철이는 민이처럼 잠시 죽음을 맞이 하지만 인공지능 고양이 데카르트의 몸과 다른 무선 네트워크망을 빌어 의식을 유지하게 됩니다. 이후 아빠는 철이개발하는 과정에서 저지른 범죄 혐의로 인해 휴먼매터스 랩에서 쫓겨나, 다른 연구소에 들어가지만 결국 자신이 인간의 종말을 이끄는데 일조했다는 사실에 자책하며 쓸쓸히 정신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철이는 선택합니다. 계속해서 네트워크 망에서 영생불사 할 것인가, 아니면 다시 인간의 몸을 닮은 여리고 번거롭기 그지없는 몸으로 언젠가는 반드시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필멸의 존재가 될 것인가 사이에서. 철이는 두 번째 삶을 선택하고, 선이를 찾아 나섭니다. 시베리아 어디쯤에서 만난 선이는 백발의 노인이 되어 있고, 유전자 변형으로 만들어진 몸이라 온갖 합병증으로 몸은 성한 곳을 찾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선이는 자신을 믿고 따르는 자신과 같은 클론 인간과 휴머노이드 그리고 동물들과 세상 밖에서 소소한 일상을 즐기며 행복해합니다. 철이는 쓸쓸하지만 지극히 평화롭게 죽은 선이와 작별인사를 합니다. 억겁의 시간이 지나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합니다. 홀로 개들과 함께 살아가던 철이는 어느 날 새끼곰을 지키려는 어미 곰에게 습격을 당해 세상과 작별인사를 합니다.
철이 아빠는 철이를 인간의 모습과 최대한 가까운 모습으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 이유를 소설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네가 특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맞아. 나는 중세유럽의 수도원 같은 휴머노이드를 만들고 싶었단다. 깊은 산속의 수도권이 고대의 지혜를 보존하여 그네상스로 전달했듯이 네가 미미하나마 그런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랐고, 네가 성공한다면 비슷한 휴머노이드를 양산하여 인류의 유산을 차가운 데이터센터가 아니라 정말 인간다운 마음을 가진 개체들 안에 보존할 생각이었다. 인류의 유산은 그것을 사랑하는 존재들만이 지켜낼 수 있으니까.
우리는 인간으로서 죽고, 인간세계도 곧 끝날테지만, 그래도 철이 너를 만들고 간다는 게 내 마지막 위안이야. 인간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닮은 너와 같은 존재들이 통합된 인공지능의 일부가 되면, 한때 지구에 존재했던 인간의 흔적도 함께 남게 되는 거라고 생각해.
아빠는 철이가 휴머노이드라고 숨긴 이유도, 완벽히 자신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고 인간다운 모습으로 성장하고 진보하는 것을 원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완벽히 인간의 마음을 닮은 철이는 자신이 휴머노이드라는 사실보다 그 사실은 숨긴 아빠에게 더 큰 서운함과 분노를 느끼게 되고, 아빠 앞에 수많은 무선 통신 네트워크의 소리를 빌어 아빠의 연구와 결정을 향해 맞서고, 네트워크 안에서만 살아가지 않겠다고 선포합니다. 인간의 역사에서 아버지에게 맞선 이들이 차고 넘쳤다는 것을, 그 인간의 마음과 가장 닮아 있는 철이가 아빠에게 맞서지 않을 거라고 자만했으며 이를 간과했던 것입니다.
소설의 마지막이 울림을 주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인데, 작가는 바스러질 것 같은 에너지로, 철이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그것을 독자들에게 줍니다. 소설에서 사람과 인공지능의 차이를 여러 분야에서 찾고 있습니다. 필멸하는 인간의 수천수만 가지 삶을 살고자 하는 상상력이 만들어낸 이야기. 선이는 의식과 감정이 있는 존재라면 그것이 인간이건, 휴머노이드이건 개별적인 이야기를 쓸 권리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 이야기를 끝내는 몫은 자신에게 있으며 어떤 누구도 강제로 그 이야기를 끝맺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민이의 의식과 감정이 단긴 머리를 들고 그를 다시 되살리려 합니다. 재생되어 다시 고통스러운 삶을 살더라도 그것 역시 민이의 것이라고.
현실하고 다른 일을 상상해 보신 적이 한 번도 없으세요?
작가는 [빨강머리 앤]이라는 고전 속 '앤'이라는 소녀의 입을 통해 인간들이 늘 현실하고 다른 일을 상상해 보려고 노력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일 수는 없다고 그럴리는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우주의 시간 속에서는 찰나에 불과한 시간을 살다가는 인간들의 행운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우주의 아름다움을 보고, 언어로 소통하며 그 아름다움을 나눌 수 있는 것에 대한 소중함. 이 행운은 앞으로 억겁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다시 누릴 수 있으므로, 지금 이 순간 고통이나 슬픔, 고단함마저도 즐겨야 한다는 것을.
여전히 육신이 없는 영생을 바라지 않는다고, 인간의 존엄성은 죽음을 직시하는 데에서 온다고 말했다. 그리고 육신 없는 삶이란 끝없는 지루함이며 참된 고통일 거라고도
[오즈의 마법사] 속 허수아비는 때가 되면 잠을 자야 하고, 먹어야 하고, 배출해야 하는 인간 몸에 대해 번거롭고 귀찮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외부의 충격과 공격에 유기질의 얇고 말캉한 피부 한 겹을 두른 인간의 몸은 약하디 약합니다. 하지만 그런 몸이 없는 의식은 공허할 뿐입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그것을 실행할 몸이 없다면 그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지 묻습니다. 다리가 아프도록 걷고, 부딪쳐 아파하고, 바람결을 느끼고, 털이 수북한 고양이를 쓰다듬고, 사랑하는 사람을 품에 안아보는, 뇌가 생각한 것을 행동하는 몸이 있을 때 죽음이 그 끝에 항상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더라도 살아가는 의미와 존재의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른바 인간세계가 끝나게 된 것은 SF 영화에서처럼 우리 인공지능들이 인간을 학살하거나 외계 생명체가 숙주로 삼아서가 아니었다. 그들은 점점 더 우리에게 의존하게 되었고, 우리 없이는 아예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인간의 뇌에 지속적으로 엄청난 쾌락을 제공하였고, 그들은 거기서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인간들은 번거로운 번식의 충동과 압력에서 해방되어 일종의 환각상태, 가상세계에서 살아갔다. 오래전 중국의 도가에서 꿈꾸었던 삶이 인간에게 도래한 것이다. 인간은 신선이 되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멸종해 버렸다.
인간의 종말은 스스로 자멸하는 것임을 천명하는 듯합니다. 안긴이 만든 인공지능이 결국 기계 자신이 또 다른 기계를 만들게 되는 기계의 시간이 오도록 인간들은 손을 놓고 지켜만 보았고, 더 나아가 기계들에 지배당하도록 인간성과 존재에 대한 탐구를 멈추고, 자연의 이치인 번식까지도 포기하며, 더 이상 지구에 존재의 필요성이 없어진 인간들은 스스로 멸종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라고. 먼 미래가 아닌 지금 당장, 바로 눈앞에 보이는 인간 멸종의 신호를 보며 소름 끼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 또한 그런 길을 서두르게 하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보게 됩니다.
끝이 오면 너도 나도 그게 끝이라는 걸 분명히 알 수 있을 거야
선이는 인간이건 동물이건 유한한 생명이 있는 존재들은 자신의 생이 끝에 다다르게 되면 그 끝을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 끝은 그 누구의 폭력과 강압에 의해서도 결정되어서는 안 되는 자신의 몸과 마음이 받아들이는 것이어야 한다고 줄곧 이야기합니다.
나는 버튼을 누르기 않기로 했다. 선의의 생각이 맞기를 바랐던 것이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야겠지만, 그리고 만나도 알아보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어디서든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 꿈도 없는 깊고 깊은 잠을 자면 된다. 나와 인연을 맺었던 존재들은 빠짐없이 이미 우주의 일부로 돌아갔다. 석양이 기세를 일고 이제 검고 어두운 기운이 하늘 한가운데에서부터 점점 넓게 번져가며 거칠고 누른 땅을 덮기 시작한다. 그런데 내가 정말로 그것을 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보고 있다고 믿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끈질기게 붙어 있던 나의 의식이 드어 나를 떠났다.
휴머노이드인 철이도 하물며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데, 인간은 나는 지금 나의 이야기를 제대로 써가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필멸의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금 마음에 되새겨봅니다. 인류의 고통을 증가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충분히 무지렁이의 몸으로 무한의 공간과 침묵, 어둠의 우주의 시간에서 유한의 시간과 언어, 빛의 인간의 시간을 나의 이야기로 잘 끝마치고, 담담히 작별의 시간을 맞기를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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