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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책읽기

21. [키다리아저씨]를 읽고(책 리뷰, 독후감)/진 웹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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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키다리아저씨]를 읽고(책 리뷰, 독후감)/진 웹스터

키다리 아저씨(진 웹스터)

소설 [키다리아저씨](Daddy-Long-Legs)는 여성이 주인공인 고전 소설 중 가장 유명한 소설 중 하나로 손꼽히는 작품입니다. 동명의 만화영화로도 제작되어 큰 인기를 끌었고, 나 또한 어린 시절 그 만화를 통해 이 작품을 처음 접했습니다. 소설은 존 그리어 고아원에 16년간 지낸 고아 소녀 제루샤 애벗이 키다리아저씨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이사의 지원을 받아, 대학 생활을 하며 새로운 학문을 배우고, 고아원생활에서는 접해보지 못했던 다양한 현실의 삶을 살아가면서, 지혜를 얻고, 자아의식을 깨우치며, 한 명의 시민이자 한 남자의 사랑스러운 여인으로 성장해 가는 내용을 그린 소설입니다.

 

소설은 1장 우울한 수요일과 2장 제루샤 애벗이 키다리 아저씨께 보내는 편지로 구성됩니다. 

1장 우울한 수요일의 내용은 이러합니다. 제루샤 애벗은 존 그리어 고아원 원장인 리펫 원장이 성의 없이 지어준 이름입니다. 애벗이라는 성은 전화번호부  A 챕터의 시작 부분에서 따왔고 제루샤라는 이름은 묘지 비석의 가톨릭적인 이름에서 따온 것입니다. 제루샤는 친구들과 키다리아저씨에게 자신을 주디라는 애칭으로 불러주기를 원합니다. 존 그리어 고아원의 매월 첫 주 수요일은 고아원을 후원하는 이사들이 방문하는, 고아원생들에게는 우울한 날입니다. 이사들의 방문에 앞서 죽도록 고아원 청소를 해야 했고, 옷과 외모를 단정히 해야 했고, 이사들이 머리를 쓰다듬으면 억지 미소를 지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리펫 원장은 어느 날, 16살이 된 제루샤를 불러, 존 스미스 씨로부터 후원을 받아 대학을 다닐 수 있게 되었고 매달 소정의 용돈도 함께 지급된다는 사실을 전해 듣습니다. 대신 존 스미스 씨에게 그 대가로 매달 대학생활에서 배운 내용을 중심으로 어떻게 생활하는지에 대한 편지를 써서 보낼 것을 요구받습니다. 

그리고 2장 제루샤 애벗이 '내'가 되어 그녀의 시선으로, 대학 입학 때부터 졸업할 때까지의 4년여간의 여정을 편지 형식으로 풀어갑니다. 소설 발표 당시에는 키다리아저씨의 정체가 반전 결말로 짜릿한 쾌감을 불러일으켰겠지만, 이미 이 소설의 내용이 공공연히 알려진 지금은 키다리아저씨가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주디를 수시로 찾거나 불러들이며, 관심과 오해, 질투심을 내비치는 모습들을 훔쳐보는, 독자들에게 일종의 관음적인 또 다른 재미를 줍니다. 아시다시피 키다리아저씨는 주디보다 14살이 더 많은, 도도하고 콧대 높고 사치스러우며 남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펜들턴집안의 남자, 저비스 펜들턴 압니다. 같은 학년의 줄리아 러틀리지 펜들턴의 삼촌이기도 한 그는, 저비 도련님으로 불립니다. 

 

이 소설이 단순이 주디와 저비 도련님의 사랑이야기라면 출간 100년이 넘도록 이토록 많은 사랑을 받는 작품이 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고아원생활에서 기본 교양이 부족하고, 일반적인 가정생활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주디가 수많은 책과 시를 읽고, 친구와 그들의 가족 그리고 록 윌로우 농장에서 만난 사람들을 만나며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행복과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한 철학적인 내용까지도 동화적 감수성으로 쉽고 마음에 와닿게 그려내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한 1900년대 초 미국사회의 계층 간, 남녀 간, 종교 간 갈등과 불평등까지도 위트 있는 서사로 바로보고 때론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키다리아저씨는  아직은 작고 힘이 없는 소녀적이었을 때에는 누군가가 나의 키다리아저씨이지 않을까 기다리기도 했고, 어느 정도 경제적, 정서적 독립을 한 이후에는 나 또한 누군가의 키다리아저씨가 되어 주고 싶다는 열망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는다는 것에 대해, 선뜻 그들의 호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뭔가 그들에게 해를 끼치는 것 같아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주디의 모습이 나와 겹쳐집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주디는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당당하게 그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고, 나는 뭔가 그들의 저의를 의심하며 찜찜하게 받았다는 것일 겁니다. 하지만 도움 받은 것에 대해 당연하다 생각하지 않고, 이 엄청난 행운을 성장과 성숙, 교양을 함양시키는데 치열하고, 성심성의껏 사용했다는 점은 일말의 공통점인 거 같습니다. 그리고 받은 도움을 언젠가는 돌려주어야 한다는 사명감도 가지고 있다는 점 일 것입니다.

저는 이번 학기에 경제학을 선택했어요. 그건 매우 계몽적인 과목이지요. 이 공부를 마칠 때면 자선과 개혁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될 거예요. 이사님, 저는 단지 고아원을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알고 싶을 뿐입니다. 만약 저에게 참정권이 있다면 훌륭한 유권자가 되었을 거라 생각하지 않으세요? 지난주에 저는 스물한 살이 되었어요. 저 같은 정직하고, 많이 교육받고, 양심적이고, 똑똑한 시민의 표를 그냥 던져버리다니, 이 나라는 낭비가 무척 심하네요.

 

이처럼 자신이 자랐던 존 그리어 고아원과 같이 상상력을 짓밟고, 원생 모두 똑같은 쌍둥이로 만들려는 획일적이고 억압적인 환경에서 벗어나, 좀 더 자유롭고 사랑을 받는다고 느끼게 하는 고아원을 만들기 위해 매진하는 주디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생각하는 거조차 버거운 그곳의 기억이 세월이 지나자, 하나의 추억이 되고 그립기까지 하지만, 그렇다고 그곳을 사랑할 수는 없었다고 당차게 말하는 주디가 너무도 사랑스럽습니다.

 

이 책에 등장한 그녀가 읽고 언급한 수많은 고전소설과 시들을 모두 메모해 놓았습니다. 이 책들을 다 읽고 주디와 함께 밤이 새도록 토론하고, 수다를 떨어보고 싶은 충동을 억누를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존 스미스 씨에게 저비스와의 추억에 얽힌 내용을 곳곳에 담아 편지를 보내고, 자신도 모르게 샐리 맥브라이드의 오빠 지를 언급하여 저비스의 질투를 유발하는 장치를 함께 담아 태연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표현하는 곳곳에서, 저비 도련님의 들끓는 심정을 상상하며 심장이 두근거리게 되는 것은 참으로 이 소설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줄리아 어머니는 그가 불균형적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그는 사회주의자랍니다. 그의 기묘한 생각드링 어디에서 나왔는지 알 수 없다고 하셨어요. 그 집안은 대대로 영국교회에 다니고 있어요. 하지만 그는 요트나 자동차 또는 폴로경기용 말 같은 분별 있는 곳에 돈을 쓰지 않고 개혁 같은 이상한 곳에 돈을 쓴답니다. 하지만 그는 사탕을 사기 위해 돈을 쓰기도 하는걸요. 크리스마스 즈음이면 줄리아와 저에게 사 탕 한 상자씩을 보내주는 분이에요! 
저 역시 사회주의자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저씨만 괜찮으시다면요. 아저씨, 괜찮지요? 사회주의자는 무정부주의자와는 매우 달라요. 그들은 폭탄을 던지는 등의 행위는 하지 않으니까요. 아마 저에게도 권리가 있을 거예요. 저는 프롤레타리아이니까요.

만세! 저는 페이비언주의자(점진주의자: 역주)입니다. 페이비언주의자는 기꺼이 기다릴 줄 아는 사회주의자를 가리킵니다. 우리는 내일 당장 개혁이 이뤄지길 바라지 않습니다. 그건 너무 혼란스러운 일입니다. 우리는 모든 준비가 되어 있고, 충격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점진적인 개혁이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산업과 교육과 고아원 등을 개혁시키며 준비해야 합니다. 

 

주디는 저비 도련님이 부자이고 상위계층에 있는 고귀한 분임에도 불구하고, 개혁을 통해 좀 더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데 일조한다는 인성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주디는 이렇게 점진적으로 저비 도련님이 추구하는 사상에 스며들고, 빠져들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중요한 것은 큰 기쁨을 얻는 것이 아니에요. 작은 것에서 커다란 기쁨을 만들어 가는 거지요. 아저씨, 저는 행복의 비밀을 알게 되었어요. 그건 현재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겁니다. 과거의 일을 영원히 후회하면서 살아가거나 미래의 일을 기대하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이 수간의 일에서 최대의 행복을 얻는 거예요. 대부분이 사람들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경주를 하고 있어요. 그들은 지평선을 지나 결승점에 도달하려 하고, 그곳에 도달하려는 열기로 숨이 가빠서 헐떡거리느라, 옆을 지나가는 조용한 시골의 아름다운 모습을 놓쳐 버리곤 하지요. 그러다가 결승점에 도달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별 차이가 없고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그땐 이미 늙고 지쳐 버린 뒤예요. 저는 길가에 앉아 작은 행복들을 쌓아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비록 제가 위대한 작가가 되지 못하더라도요. 제가 철학자 같지 않나요?

 

작은 일에 기뻐하는 삶, 현재에 만족하는 삶, 일상의 소소한 것들에 행복해하는 삶. 어쩌면 이것은 이미 풀렸지만, 누구도 쉽게 해내지 못하는 미스터리 한 행복의 비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비밀을 풀고 아는 것보다, 실제 그것을 삶에서 실천하는 것이 백 배 천 배 어려운 그런. 당신은 지금 이 순간, 행복하십니까? 저는 단언컨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행복합니다. 이미 그런 것으로 운명 지어졌고, 그 운명은 바로 내가 만든, 만들고, 만들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나의 마음에 달려있고, 그것을 바라보는 내 눈 안에 담기는 내 것, 내 삶입니다. 

4년이란 아련한 시간을 지나 되돌아보니 그 시절이 그립다는 생각이 드네요. 제가 처음 대학에 왔을 때는 다른 소녀들이 가지고 있는 보통의 어린 시절을 빼앗긴 것 같아 분개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그저 평범하지 않은 경험일 뿐이에요. 그 경험은 저에게 인생을 옆에서 바라볼 수 있는 이점을 주었지요.
그리고 어떤 불행한 일이 발생한다 해도 전혀 상관하지 않고, 행복한 느낌을 유지할 겁니다. 그 어떤 일도, 심지어는 치통까지도 유쾌한 경험으로 여기며, 그 느낌을 알게 된 것에 기뻐할 거예요. 세상이 어찌 되든, 제 운명을 받아들이겠습니다. 

 

불행한 일까지도 그것을 경험한 것 자체에 뜻을 두고, 그 느낌을 알게 된 것에 기뻐한다니! 세상이 어찌 되든, 운명을 받아들이겠다는 처연하고 결연한 의지는 불행이 감히 그녀 곁에 얼씬도 거리지 못하게만 할 것 같습니다. 어차피 온 불행이라면, 우리도 주디처럼 그저 스쳐 지나가는 하나의 에피소드이며, 이 또한 지나가고, 이러한 귀중한 경험으로 한 단계 더 성숙하고 발전하는, 아니 그러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런 것을 느껴볼 수 있는 살아있는 존재임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기쁨에 충만한 삶을 살아가 보는 것을 어떨까요? 

이 편지는 제가 처음 쓰는 러브레터입니다. 제가 이런 편지를 쓸 줄 안다니, 우습지 않나요?

 

제루샤는 키다리아저씨 존스미스 씨가 저비스 팬들턴과 동일인임을 알게 됩니다. 주디는 저비가 다칠까, 사고라도 나지 않을까, 혹시 무슨 일이 그에게 닥치지는 않을까 하는 전에는 가져보지 않았던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긴 그녀의 마음을 발견하지만, 이 또한 사랑하기에 짊어져야 하는 운명임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렇게 소설은 마무리하지만, 제루샤가 자신의 이야기로 이름을 날리는 혹은 그리 유명하지 않든, 소설을 완성해 그녀의 꿈이었던 소설가로 자리매김하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이 소설은 상상하는 것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역경과 고난에 굴하지 않고 하루하루 삶을 소중히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어떤 것의 다른 이면을 바라보고 내가 가진 것들의 값어치를 깨닫고, 내가 받은 수많은 도움의 손길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도움 받은 것을 또 다른 이에게 되돌려주려는 노력이 이 사회를 얼마나 희망차게 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작품입니다. 조금은 천천히, 남들보다는 힘겹게, 지금은 비록 원하는 만큼 풍족한 삶을 영위하지 않더라도, 그것마저 받아들이고 당당하고 저돌적으로, 사랑스럽게 살아가는 주디처럼 나 또한 나만의 방식으로 나만의 길을 만들며 나만의 이야기로 살아가려 합니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여러분의 안녕을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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