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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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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묘> 이야기

1. 영화 <파묘>

파묘
파묘

영화 <파묘(破墓)>는 무덤과 관련된 기이한 사건을 그린 '오컬트 영화'입니다.

극 중 김고은 배우가 연기한 '이화림'과 이도현 배우가 연기한 '윤봉길'의 숨겨진 관계부터 실제로 한국에서 무덤을 이장한 재벌가의 스토리와 감독 오피셜을 기반한 비하인드까지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2. 파묘란?

'무덤을 파낸다'는 뜻의 <파묘>는 보통은 이미 안장된 시신을 새로운 묘지로 옮기기 위해서 진행됩니다.

최민식 배우가 연기한 풍수사 김상덕은 의뢰인을 박지용을 만나서 조부의 무덤을 파묘해 화장해 달라는 부탁을 받게 됩니다.

풍수사란 풍수에 관한 지식을 바탕으로 좋은 터를 잡아주는 사람을 말합니다.

김상덕은 묘를 잘못 건드리면 안 된다며 이 의뢰를 거절합니다.

이것은 실제 풍수지리적으로 근거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오래된 무덤은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고서는 가능하면 파헤치지 않는 편이 좋다'

<서울풍수지리 中>

무덤이란 돌아가신 분의 집이고 아무리 후손이라도 조상의 집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성리학 창시자 &#39;주자&#39;
성리학 창시자 '주자'

예로부터 성리학의 창시자인 '주자'도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이장을 그만둘 수 있다면 그만두는 것이 좋다'

하지만 집안에 불길한 일이 끊이지 않아 자의적으로 이장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실제로 <파묘>의 장재현 감독은 영화를 준비하면서 파묘와 관련된 여러 가지 기이한 경험을 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상주가 뇌졸중이 와서 조상의 무덤을 파보았더니 관 안에 물이 가득 차 있었다고 하는 사례였습니다.

참고로 풍수에서 가장 안 좋은 것은 '무덤에 물이 차는 것'입니다.

시신을 땅 속에 매장하면 살과 피가 썩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정상적이고 이상적이라고 하는데, 무덤에 물이 차면 수십 년이 지나도 시신이 썩지 않고 남는다고 합니다.

따라서 수맥이 흐르는 곳에 묘를 쓰는 것은 풍수지리적으로는 반드시 피해야 합니다.

3. 풍수지리가 종교이자 신앙인 대한민국 부자와 권력자들 사례

유해진 배우가 연기한 고영근은 '전국 상위 1%들에게 풍수지리는 종교이자 신앙'이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대한민국 1%의 사람들은 풍수지리에 대해서 굳게 믿는다고 하며, 대표적인 예가 '삼성' 가문입니다.

삼성 그룹 창시자인 고 이병철 회장의 할아버지는 풍수지리에 조예가 깊은 스님에게 자신의 아버지가 묻힐 명당을 찾아냈고 스님은 자신이 찾아낸 명당자리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금두꺼비가 엎드린 형상의 명당이야, 우리나라 최고의 부자가 될 것이야!'

고 이병철 회장과 고 이건희 회장
고 이병철 회장과 고 이건희 회장

그래서였는지 손자인 이병철 회장은 최고의 부자가 됩니다.

이후 이병철 회장은 자신의 부친이 죽자 최고의 명당에 묻히게 하기 위해  7~8차례를 이장했다고 합니다.

 

첩장
첩장

영화 <파묘>에서 반전이 되는 부분은 무덤 안에 또 다른 무덤 즉 '첩장'이 발견되면서부터입니다.

실제로 예전부터 명당자리는 남의 땅이라도 주인 몰래 자신의 조상을 묻는 '암장'이나 이미 묘에 주인이 있는데도 그 위에 조상을 묻는 '첩장'이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놀랍게도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집안에서도 '암장'을 진행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윤보선
윤보선

윤보선 전 대통령의 가문은 윤보선의 5대조 할아버지의 묫자리를 알아보는 과정에서 풍수지리에 능한 스님에게 묫자리를 받았는데 그곳은 이미 이순신 장군의 후손인 덕수 이 씨 집안이 차지한 땅이었다고 하며, 윤 씨 집안은 고민하다가 할아버지를 그곳에 몰래 묻었다고 합니다.

전두환
전두환

또한 전두환 집안의 경우에도 전 씨 문중의 다른 파 후손의 산에 전두환의 할아버지 묘에 암장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후 가난하게 태어난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어 권력이 생긴 후 자신의 할아버지 무덤이 암장이 아니라 공식 절차에 따른 것이었다면서 합법화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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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부족한 명당자리에 대한 대처

영화 <파묘> 초반에 풍수사 김상덕은 '명당자리가 말라 버려 65점짜리 묫자리를 알아봐 주었다'라고 말합니다.

사실 우리나라의 국토는 한정되어 있고 명당은 더욱더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미 좋은 명당은 다른 사람에 의해 차지되었을 확률이 높은 것입니다.

그래서 일부 풍수사는 아예 다른 사람의 뼈가 있는 곳이 명당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삼성가의 고 이병철 회장이 신임했다고 알려진 '장용득' 풍수사는 무덤 터 중에서 '황골'이 나온 곳을 선호했다고 합니다.

'황골'이란 무덤 속에서 누렇게 된 해골을 말합니다.

누군가 터를 잡았던 이곳이야말로 증명된 곳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손자의 &lt;손자병법&gt;
손자의 <손자병법>

지형과 풍수지리는 예전부터 중시되어 왔습니다.

중국의 전략가인 손자도 저서인 <손자병법>에서 지형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손자는 고정된 지형 자체가 아니라 지형이 달라지는 맥락을 살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지형과 상황이 달라지면 태도와 행동도 달라져야 한다'

<오십에 읽는 손자병법 中>

실제 풍수지리에서의 명당도 고정된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명당은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단순히 좋은 곳에 무덤을 쓰는 것이 끝이 아니라 남들에게 베풀었어야 그만큼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같은 입지를 선택하여도 베풀지 않으면 명당의 기운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실제 영화의 모티브가 된 친일파도 결국 명당의 기운은 전혀 받지 못하고 파국을 맞이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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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대살굿

<파묘>는 장재현 감독이 오랫동안 공들여 준비한 작품으로, 매 장면마다 우리나라의 풍속과 역사적 사실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화림이 굿을 하는 장면도 단순히 멋있거나 무서워 보이게 찍은 것이 아니라 실제 '대살굿'의 과정을 세밀하게 담아내기 위해서 노력했다고 합니다.

화림이 굿을 하는 중에 자신의 얼굴을 칼로 베고 손을 불에 넣는 장면은 대살굿에서 주신이 자신 안에 들어왔는지 확인하기 위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간에 피를 먹는 것은 몸에 들어온 신에게 영양분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김고은 배우는 대살굿을 연습하기 위해 실제 무당들이 굿을 하는 곳을 찾아가 보고 배웠다고 하는데, 무당들이 굿을 할 때 혼신의 힘을 다해서 한다는 느낌을 받아 그 느낌을 표현해 내기 위해서 노력했다고 합니다.

6. 쇠말뚝

영화 <파묘>는 중반 이후부터 극의 분위기가 시대극으로 전환되는데 그중 가장 핵심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쇠말뚝을 박은 내용입니다.

실제로 풍수설에서는 '산파인비'(山破人悲/뫼산, 깨뜨릴 파, 사람 인, 슬플 비 )라고 하여 '산이 파괴되면 인간에게는 비극이 생긴다'라고 믿고 있습니다.

<조선 풍수지리서 '명산론'>

이 풍수설에 따라 영화는 과거 일본에서 박지용 할아버지의 무덤 아래 쇠말뚝을 박았다고 설명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S68IWsycBM

파묘 영화 속 쇠말뚝과 식칼

영화에 등장한 쇠말뚝의 모습은 뉴스에 나온 쇠말뚝의 모습과 굉장히 흡사한데, 일본 총독부에서 조선 풍수사 13명을 동원해 명산의 심장부에 쇠말뚝을 박고 산의 정기를 끊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떠돌자 각 마을에서는 대형 쇠말뚝을 제거하는 작업이 대대적으로 진행됐습니다.

하지만 <조선일보> 김용산 전 기자는 '일본의 쇠말뚝은 사실이 아니다. 다 거짓말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진실은 쇠말뚝이 박힌 지점과 측량을 위한 지점이 상당 부분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 그저 측량을 위한 말뚝일 뿐이다'라고 일축합니다.

즉 일본이 혈을 자르기 위해 쇠말뚝을 박은 것이 아니라 토지 측량을 목적으로 박은 표식에 불과하다는 주장입니다.

이에 대해 오마이뉴스 측은 문제의 본질은 미신이냐 토지 측량이냐가 아니라 한국 농민들이 쇠말뚝을 뽑은 '저항 운동'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일제에 더 강력히 저항하기 위해 일본이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쇠말뚝을 박고 있다는 소문을 퍼트리며 민족 단결을 촉진했다는 것입니다.

파묘&#44; 범의 척추
파묘, 범의 척추

영화에서도 이 부분을 지적하는데, <파묘>에서 김상덕은 묫자리가 바로 범의 척추에 해당하는 자리라며 모든 것을 정확히 노리고 계획한 것 같다고 하자 장의사 고영근은 그의 말에 반대하며 99%는 측량할 때 썼던 것이라고 반문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Duoc8E6XZA

MBCNEWS  파묘 새 포스터

하지만 상덕은 '그럼 1%는!'이라고 소리치며 대부분의 말뚝은 측량을 위한 것이지만 소수의 말뚝은 '조선의 정기를 끊기 위해서라고 추측합니다.

7. 봉길과 화림의 관계

&lt;파묘&gt; 윤봉길&#44; 이화림
<파묘> 윤봉길, 이화림

영화 속 화림은 젊은 나이에도 용하다는 소문이 난 '무당'으로 나옵니다.

그와 함께 활동하는 봉길은 굿판에서 북을 치는 '악사'입니다.

봉길은 남자 무당이 될 팔자였지만 화림을 만나 곁에 머물면서 '법사'로서 새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단순한 비즈니스 파트너이자 동료라기에는 극 중 굉장히 끈끈한 정을 보여줍니다.

무당과 법사로서 함께 활동하며 우정을 쌓기도 했겠지만 애초에 둘의 관계는 특별합니다.

신어머니와 신아들의 관계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무당(여성) 혹은 박수(남성)가 되기 위해서는 스승 무당으로부터 내림굿이라는 것을 받아야 합니다.

만약 무당이 되어야 하는 사람이 내림굿을 받지 않으면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고 신병을 앓게 됩니다.

<파묘>의 봉길도 원래는 야구를 했으나 신병을 얻어서 그만두게 됩니다.

신병은 내림굿을 받고 무당이 되어야만 나을 수 있습니다.

이때 내림굿을 해주는 스승 무당을 신어머니나 신아버지라고 하며, 내림굿을 받는 제자 무당을 신아들이라고 합니다.

지금까지의 삶을 내림굿을 통해서 매듭짓고 앞으로 무당으로서 새 삶을 살아갈 것인데 그 삶을 새로운 아버지 혹은 어머니가 내려준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봉길이 화림을 찾아간 것은 화림을 스승으로 모시고 남자 무속인인 박수('무격'이라고도 함)가 되기 위함이었기 때문에 화림은 신어미니, 봉길은 신아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요즘에는 신부모와 신자식이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스승 무당이 가짜로 내림굿을 해주고 많은 돈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신부모라면 처음 무당이 되는 사람들이 무당으로서 서툰 발걸음을 뗄 때 옆에서 도움을 주는 존재라고 합니다.

봉길이 박수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신부모-신자식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처음부터 특별한 관계로 이어졌고 이후에도 함께 활동하면서 우정을 쌓았기에 서로를 위해 목숨까지 바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참고로 직업적으로만 보면 화림이 맡은 무당보다 봉길이 맡은 법사가 더 희소한데, 독경이나 주문을 잃어 굿의 효험을 높이는 법사는 무당보다 더 배울 것이 많다고 합니다.

무경의 암송이나 운율을 맞추는 법이나 의례용구 만드는 법 등 다양한 분야를 암기해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더 어려워서 이 길을 가는 사람이 적다고 합니다.

<파묘>에서 화림이 봉길을 띄워주며 '잘생겨서 무당 언니들이 서로 데려가려고 한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미남이기도 하지만 희귀한 법사이기에 더욱 굿판에서 인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참고로 봉길은 실제 무속인을 모티브 삼아 창작된 인물이라고 하는데 장재현 감독은 전작 <사바하> 촬영 중에 남성 무속인을 한 명 만나게 되었는데 그는 대학생 때까지 야구 선수를 하다가 신병을 앓게 되었고 이러한 특별한 사연을 가진 무속인이 마음에 남아 이후 봉길의 캐릭터를 창작하는데 참고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이 남성 무속인은 매우 잘 생겼고 온몸에 글로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고 하며 그 모습을 그대로 봉길의 캐릭터에 활용합니다.

8. 비하인드

영화 <파묘>는 주의 깊게 본 사람들만 찾을 수 있는 이스터에그(Easter Egg)가 많습니다.

이스터 에그 ( Easter Egg )는 영화, 책, CD, DVD, 소프트웨어, 비디오 게임 등에 숨겨진 메시지나 기능을 뜻합니다.

이화림의 차번호는 19 무' 0301'로 1919년 3월 1일에 있었던 3.1 운동을 암시합니다.

영근의 운구 리무진의 차 끝번호는 '1945'로 광복을 맞은 1945년을 암시하며, 봉길의 성은 '윤'으로 윤봉길 의사와 같은 이름으로 설정했습니다.

9. 화림의 뒤를 지켜주는 할머니신

고춘자
고춘자
영화&lt;파묘&gt;속 화림의 굿장면
영화<파묘>속 화림의 굿장면

화림의 뒤에는 항상 그녀를 지켜주는 할머니신이 자리하고 있는데 할머니신을 연기한 배우는 실제 무당인 '고춘자'로 김고은 배우에게 신을 접신할 때 몸짓이나 춤사위를 알려주었다고 합니다.

마고할미
마고할미

화림과 할머니신의 관계가 정확히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추측해 보면 화림의 친할머니이거나 '마고할미'일 것 같은데, 마고할미는 한국 신화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창조신으로 하늘과 달, 산과 강을 만든 인물입니다.

이후 마고할미는 무당에게 자신의 힘을 물려주고 승천했다는 설화가 알려져 있습니다.

영화 <파묘>가 한국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해석할 때, 화림을 뒤에서 지켜주는 것은 한국을 만든 마고할미라고 해석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10. 참외와 은어

일본 귀신 &#39;오니&#39;
일본 귀신 '오니'
은어와 참외
은어와 참외

영화 <파묘>에서는 최종 보스인 일본 귀신 '오니'가 처음 자신을 드러냈을 때 앞에 있는 화림에게 '인간이냐'라고 묻는데 화림이 '오니의 부하'라고 하자 그는 '은어와 참외를 준비했냐'라고 물어봅니다.

일부 사람들은 이 장면을 보고 오니가 화림을 시험한 것 아니냐고 추측했습니다.

일본에서 은어는 흔히 먹는 생선이지만 참외는 자주 먹지 않기 때문에 참외와 은어를 준비했냐고 물어보면 진짜 일본인이 맞는지, 자신의 부하인지를 돌려서 물은 질문이라는 것이며 다행히 화림은 '은어만 준비했다'라고 대답합니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오니를 유인할 때 참외는 준비하지 않고 은어만 준비한 것을 보면 설득력 있는 설명으로 보입니다.

영화 <파묘>는 민속 신앙을 다루지만 정작 장재현 감독 본인은 교회 집사라고 합니다.

기독교적 믿음과 거리가 있는데도 그가  <파묘>와 같은 '오컬트 영화'를 만드는 이유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사라지는 것이 아쉬워서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종교와 사랑은 교회에 걸린 십자가에 있는 게 아니라 새벽기도를 하는 엄마의 마음에 있는 것인데 이런 것조차 과학적으로만 판단하고 무게감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 안타까워 이런 장르에 몰두하게 되었다'

<장재현 감독 Elle 인터뷰 中>

11. 친일파, 박영효

박영효
박영효

<파묘>에서 의뢰인 박지용의 할아버지 박근현은 친일파 '박영효'로 추측되는데 일본에서 후작 작위를 받았고 박 씨 성을 가졌으며 이후 후손들에 의해 무덤이 이장된 점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박영효는 '영혜옹주'와 결혼하여 왕의 사위가 된 인물로 결혼한 지 3개월 만에 아내를 잃습니다.

수신사 행렬
수신사 행렬

이후 수신사로 일본을 방문해 개화사상에 심취하였고 점차 친일파의 길을 걸었습니다.

1910년 한일합병 이후 조선총독부가 회유를 위해 하사한 후작 작위와 한일합병에 협조한 대가금 은사금을 받았고 여러 친일 단체에 후원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의 무덤인데 박영효는 살아 있을 때 자신의 후손들을 생각해 풍수가를 동원하여 전국에서 가장 뛰어난 무덤 자리를 찾았습니다.

박영효 실제 무덤 터
박영효 실제 무덤 터

그렇게 하여 앞이 확 트이고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다대포 산비탈 자리를 추천받았고 사후 그곳에 묻히게 됩니다.

하지만 명당이 진정으로 의미 있으려면 많이 베풀어야 하는데 이와 반대된 행보를 살았던 박영효의 삶 때문인지 그의 후손들은 명당의 덕을 누리지 못했다고 합니다.

오히려 손자가 재산을 탕진하였고 박영효의 무덤까지 팔아넘깁니다.

예전 박영효 무덤 터
예전 박영효 무덤 터

이후 묻힐 땅이 없는 그는 모란공원묘지로 이장되었다고 합니다.

12. 영화 <파묘>가 던지는 가장 큰 주제, 죽음

영화 <파묘>는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중 가장 큰 주제는 '죽음'에 대한 것인데 그 어떠한 권세가나 부자들도 결국 죽으면 땅에 묻혀 흙으로 돌아간다는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상덕도 영화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언제나 죽음 가까이에서 살아왔기에 두렵지는 않다. 이제 내 차례가 되었을 뿐이다'

책 <오십에 읽는 손자병법>에 따르면 옛날 로마에서 승리를 거둔 개선장군이 행진을 할 때에는 노예가 옆에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 외쳤다고 하는데, 이것은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으로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인생에서는 오늘 이겼다고 해도 당장 내일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고  방심하여 큰 실수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말로, 현재에 있어서도 큰 가르침을 주는 메시지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7QGh9iVum0

엠비씨 출발! 비디오여행

<출처: 책트폭행/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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