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를 건국한 주몽 이야기(고구려 건국 신화, 주몽 신화)
1. 고구려 건국 신화 속 주몽
고구려 건국 신화에 따르면 기원전 37년, 동물이 태어나야 마땅한 타조알의 3배 정도 큰 커다란 알에서 믿을 수 없게도 사내아이가 태어나 나라를 세웠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일어났다면 고대 사람들도 믿기 어려운 사상 초유의 일이었을 것입니다.
알에서 태어난 건국 시조는 바로 고구려의 건국 시조 주몽입니다.
주몽은 우리나라 역사상 손꼽히는 대국이자 삼국시대의 한 축이었던 고구려를 세운 입지전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중들에게는 2006년 국민적인 인기를 근 MBC 사극 <주몽>을 떠올리는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W9s6Is8zck
그렇다면 알을 깨고 나온 주몽 신화는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상상에 의한 이야기일까요?
2. 고구려 건국 신화, 신과 인간이 공존하던 세계의 이야기
신화(神話)란 신들의 이야기, 신비로운 이야기, 신성한 이야기를 뜻합니다.
신화들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요?
'주몽이 고구려를 세웠다'라고 하는 역사적 사실이 당대 고구려인들 사이에서 전승이 되어가게 되고, 고구려인들은 '우리 고구려는 건국부터 신성한 나라여야 해!'라고 하는 생각 하며 그렇게 만들고자 했을 것입니다.
여러 가지 상상력을 발휘하면서 고구려의 건국 신화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3. 주몽의 고향, 동부여
기원전 1세기 경 한반도의 모습을 그린 지도입니다.
당시에는 작은 소국들이 뭉쳐서 연맹체 국가를 만들고 있었던 시기였고, 그중에서 주몽이 태어난 곳은 바로 만주지역으로 아주 드넓게 펼쳐진 부여라는 나라였습니다.
이 시기 부여는 어마어마한 세력을 가진 강대국이었으며, 부여 중 동쪽 일대였던 '동부여'가 바로 주몽의 고향입니다.
4. 주몽의 어머니, 유화부인
주몽이 태어날 무렵 동부여는 금와왕이 다스리고 있었고 금와왕이 살고 있던 궁의 별궁에는 유화 부인의 거처였고 그녀가 바로 주몽의 어머니이며 신화 속에서 알을 낳은 주인공입니다.
유화부인은 동부여의 별궁에 거처하기 전 신화 속에서 청하라고 불렸던 압록강의 강물 아래에서 살고 있었다고 나옵니다.
그녀가 물속에 살았던 것은 그녀의 아버지가 압록강을 다스리고 있던 강의 신 하백이었기 때문이며, 하백의 세 딸 중 첫째 딸이었던 유화 역시 신적인 존재였기에 알을 잉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5. 주몽의 아버지, 해모수(解慕漱)
유화는 종종 두 동생과 함께 압록강변의 '웅심'이라는 연못에서 놀곤 했는데, 여느 때처럼 세 자매가 웅심 연못에서 놀던 어 느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저 멀리고 말을 타고 나타난 한 남자가 유화를 보고 첫눈에 반해지만, 깜짝 놀란 유화와 동생들은 다시 물속으로 뛰어들어 사라져 버립니다.
이때 유화를 찾아온 남자는 바로 해모수였고, 그가 바로 주몽의 아버지입니다.
해모수의 고향은 하늘로 해모수의 아버지는 하늘과 만물을 관장하던 신 천제였으며, 천제는 하느님이라고 보면 됩니다.
신화에 따르면 하늘의 왕인 천제가 해모수에게 부여에 내려가 백성들을 다스리라 명했고 그렇게 해모수는 다섯 마리의 용이 끄는 오룡거를 이끌고 지상으로 내려옵니다.
해모수가 지상으로 내려오던 날 하늘에는 오색구름이 떠있었고, 부여 전역에 풍악이 울려 퍼졌다고 합니다.
그런 해모수의 뒤로는 고니(백조의 순우리말)를 탄 수많은 신하가 줄지어 따라 함께 내려옵니다.
해모수는 하늘의 신인 천제의 아들이자 하늘의 '태양'을 상징하는 존재이기도 했으며, 태양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해모수는 우리에게 익숙한 그리스 로마 신화의 태양신 아폴론과 이집트 신화에서 등장하는 태양신 라 그리고 이외에도 세계 여러 신화에 꼭 등장하는 태양신들과 같은 궤를 가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https://donbuller.tistory.com/entry/신들의사생활2-5
https://donbuller.tistory.com/entry/신들의사생활2-6
태양이 뜨는 아침에 지상에 내려와서 나라를 다스리고, 태양이 지는 밤에 하늘로 돌아가는 것이 하늘의 해모수의 운명이었습니다.
6. 해모수, 유화에게 첫눈에 반하다
그렇게 지상에서 해모수가 다스리던 곳 주변에 있던 웅심 연못가에서 해모수는 유화를 보고 첫눈에 반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해모수가 다가가 말도 걸어보기 전에 유화와 동생들은 강속으로 사라져 버렸고 해모수는 그녀가 떠난 그 자리에서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믿으며 계속 유화를 기다립니다.
얼마 후 해모수의 예상대로 유화는 동생들과 다시 웅심 연못가를 찾아왔고, 해모수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시 만난 유화에게 곧바로 청혼을 합니다.
7. 강의 신 하백과 하늘의 신 해모수의 변신대결
유화는 웅심 연못에서 나와 해모수가 지은 연못 근처 궁전에서 살기로 하는데,
그런데 압록강 궁전에서는 딸 유화의 소식에 하백이 벼락같이 화를 내며 난리가 났고, 하백은 해모수에게 이렇게 호통칩니다.
내게 구혼할 생각이 있으면 마땅히 중매를 시켜 말할 것이지 지금 문득 내 딸을 잡아두니 어찌 그리 실례가 심한가?
<동명왕 편>
사실 해모수도 하백의 허락 없이 유화와 사는 것이 마음에 걸렸고, 하백의 허락을 받기 위해 유화와 함께 물속 궁전으로 향합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하백은 해모수에게 이런 의심을 품게 됩니다.
과연 해모수가 천제의 아들이 맞는 것인가?
그래서 하백은 해모수를 시험해 보기로 결심하고 해모수에게 변신술 대결을 제안합니다.
먼저 하백은 잉어로 변신했고, 곧바로 수달로 변신한 해모수가 뒤쫓아옵니다.
이번에는 하백이 꿩으로 변신해 해모수에게서 도망가자, 해모수는 꿩을 잡는 매로 변신해 쏜살같이 날아가 하백을 낚아챕니다.
그러자 사슴으로 변한 하백은 폴짝 뛰어올라 벗어나지만, 곧바로 해모수는 사슴의 천적인 승냥이로 변해 쫓아갑니다.
명색이 강을 다스리던 하백이었지만 변신하는 족족 매번 해모수에게서 달아나기에 바빴습니다.
하백의 패배를 다룬 신화의 내용을 통해 신들 간에 서열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태양신 해모수는 하늘과 만물을 관장하는 하늘의 신 천제의 아들이었고, 강의 신 하백은 상대적으로 낮은 서열이었던 것입니다.
농경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하늘을 물보다 높게 보는 인식이 반영된 듯 보이며, 신화 속 하백은 속수무책으로 해모수에게 당하는 신세로 그려집니다.
하백은 자신이 변신술 대결에서 완벽히 졌다는 것을 인정하고, 해모수가 천제의 아들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8. 해모수, 혼인식 날 유화를 두고 하늘로 떠나버리다
하백은 해모수를 사위로 받아들이고 해모수와 유화는 성대한 혼인잔치를 열게 됩니다.
여기서 두 번째 궁금증이 생깁니다.
왜 유화는 해모수 없이 혼자서 알을 낳았을까요?
여자의 황금비녀로 가죽 수레를 뚫고 구멍으로 (해모수가) 홀로 나와서 하늘로 올라갔다
<동명왕 편>
해모수가 유화를 두고 하늘로 도망쳤다는 것인데 왜 해모수는 사랑하는 유화를 두고 하늘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을까요?
유화(柳花/버드나무 유, 꽃 화)는 이름에서 볼 수 있듯 대지의 풍요로움을 관장하는 지모신이었고 유화가 하늘로 가면 땅의 균형이 무너지는 상황이 되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 할 존재였던 것입니다.
하늘의 신이었던 해모수는 하늘을 관장해야 했고 세상의 균형을 위해 각자 땅과 하늘을 돌봐야만 했던 것입니다.
어찌 보면 부부로서의 두 사람의 비극은 처음부터 예정된 수순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해모수는 왜 가죽 주머리니를 뚫고 도망가야 했을까요?
하백은 해모수가 유화를 두고 홀로 하늘로 갈까 봐 불안해졌고, 결혼식 날 하백은 해모수에게 7일간 잠드는 술을 먹인 후 잠든 해모수를 유화와 함께 가죽 주머니에 넣어서 하늘로 올라가는 수레에 싣습니다.
이렇게 하면 해모수와 유화가 함께 하늘로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해서 짠 계략이었는데, 이는 하백이 유화와 해모수의 결혼을 통해 신분 상승을 도모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해모수가 술에 완전히 취하지 않았고 하늘로 가는 수레가 강을 벗어나기 전에 술에서 깬 해모수는 놀라 유화의 머리에서 비녀를 빼 가죽 주머니에 구멍을 뚫고 유화를 두고 홀로 승천해 버린 것입니다.
9. 금와왕, 유화를 별궁에서 지내도록 배려하다
해모수가 하늘로 떠난 후 동부여의 어느 강가에서 미스터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동부여의 왕 금와왕에게까지 전해집니다.
알 수 없는 짐승이 물고기를 잡는 족족 도둑질합니다
백성들의 하소연을 들은 금와왕은 그 짐승을 당장 잡으라 명하고, 그렇게 그물에 걸려 올라온 것이 바로 유화였습니다.
사실 유화는 해모수가 홀로 승천한 뒤 아버지 하백에게 유배형에 처해졌고, 유화는 압록강을 떠나 동부여의 강 우발수로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유화는 살아남기 위해 물고기를 훔쳐 머었다 동부여의 금와왕에게 붙잡혔으나 그녀가 강의 신 하백의 딸이자 태양의 신 해모수의 부인이라는 정체를 알게 되었고 금와왕의 배려로 유화는 별궁에서 지내게 됩니다.
10. 유화, 햇빛으로 주몽의 아이를 임신하고 알을 낳다
그런데 얼마 후 누구도 예상치 못한 놀라운 일이 유화에게 일어납니다.
유화가 몸을 끌어당겨 피하였으나 햇빛으로 인하여 임신하였다
<삼국사기>
유화에게 비친 햇빛은 곧 해모수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모수가 햇빛의 형태로 주몽을 잉태하게 만든 것이며, 그녀는 홀로 겨드랑이로 알을 낳게 됩니다.
그런데 유화의 출산소식을 듣고 찾아온 금와왕은 그녀가 낳은 커다란 알을 보았고, 그것을 불길한 것으로 여겼던 금와왕은 유화가 낳은 알을 궁 밖으로 버리라고 명령합니다.
마구간에 두었더니 여러 말들이 밟지 않고
깊은 산에 버렸더니 모든 짐승이 호위하고
구름 끼고 음침한 날에도 알 위에 항상 햇빛이 있었다
<동명왕 편>
범상치 않은 반응에 놀란 금와왕은 보통 알이 아님을 깨닫고 알을 유화에게 돌려줍니다.
11. 주몽, 알에서 태어나다
한 남자아이가 껍질을 부수고 나왔는데 골격과 의표(儀表)가 영특하고 호걸다웠다
<삼국기기
주몽이 드디어 알을 깨고 태어난 것입니다.
세상에 갓 나온 주몽은 모습마저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7살이 됐을 무렵 우리가 알고 있는 주몽이라는 이름을 이때 얻게 됩니다.
부여의 속어에 활을 잘 쏘는 것을 '주몽(朱蒙)'이라 하는 까닭에 그것으로 이름을 지었다
<삼국사기>
당시 부여에서는 '활 쏘는 능력이 출중한 자'를 주몽이라고 불렀고, 뛰어난 활 솜씨 덕택에 그것이 그의 이름을 얻게 된 것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P7sVxEUJ7g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라는 노래에 '고구려 세운 동명왕, 백제 온조왕, 알에서 나온 혁거세~'이 부분에 나오는 동명왕이 주몽의 다른 명칭인데
사실 고구려 건국신화를 다루고 있는 역사서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기록마다 주몽의 이름을 다르게 적게 있는데, 중국역사서인 유서에는 주몽(朱蒙)으로 광개토대왕릉비에는 추모(鄒牟) 그 외에도 중모(仲 牟 ), 중해(眾解), 추몽( 鄒蒙)등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표기는 다르지만 비슷한 발음을 지닌 이름들이며 동명(東明)은 이름이 아닌 왕호라고 할 수 있으며, 우리가 익히 들은 동명왕도 주몽의 또 다른 이름인 것입니다.
12. 주몽, 금와왕과 대소의 견제와 푸대접을 견디지 못하고 나라를 세우기로 결심하다
일 골 살 무렵 파리가 윙윙거리던 소리에 잠들기 힘들었던 어느 날, 주몽은 어머니 유화에게 활과 화살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합니다.
주몽은 유화가 만들어준 활과 화살로 조그마한 파리를 백발백중으로 맞히는 능력을 발휘합니다.
왕이 가서 말을 기르게 하였다
<동명왕 편>
뛰어난 활솜씨를 자랑하며 어느덧 10대 후반이 된 주몽은 예상과는 달리 금와왕의 명으로 말을 돌보는 허드렛일을 하게 되는데,
주몽이란 자는 신통하고 용맹한 장사여서 눈초리가 비상하니 만일 일찍 도모하지 않으면 반드시 후환이 있을 것입니다
신의 혈통이 내뿜는 뛰어난 주몽의 능력을 시기하고 두려워했던 금와왕의 첫째 아들 대소가 금와왕에게 주몽을 죽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대소의 부추김에 금와왕은 고민 끝에 주몽을 죽이지는 않고 마구간으로 내친 것입니다.
마구간에서 일을 하던 주몽은 어느 날 어머나 유화를 찾아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천제의 손자인데 남을 위하여 말을 기르니 사는 것이 죽는 것만 못합니다. 남쪽 땅에 가서 나라를 세우려 하나 어머니가 계셔서 마음대로 못 합니다
<동명왕 편>
주몽은 어이상 금와왕과 대소의 푸대접과 견제를 견딜 수 없었고, 남쪽으로 내려가 나라를 세워 자신의 꿈을 펼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주몽은 신의 자손이기 때문에 신의 자손에 걸맞은 역할을 해야 하고 자신이 나라를 세운다는 것에 부합하다고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더군다나 시련을 겪게 되면서 '영웅다운 면모를 보여야겠다'는 각성하게 됩니다.
유화는 소식을 듣고 먼 길을 가려면 훌륭한 말이 필요하다며 주몽과 함께 왕실 마구간으로 향합니다.
13. 건국을 위한 주몽의 계획 1 명마를 구하라
유화는 갑자기 채찍으로 말들을 사정없이 때리기 시작했고, 채찍질에 놀란 말들이 뛰어올랐는데 밝은 빛이 도는 말 한 마리가 지붕 높이만큼 높이 뛰어올랐고 유화는 이 말이 준마라고 하며 골라줍니다
그녀는 좋은 말을 고르는 방법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주몽은 준마가 밥을 못 먹게 하려는 속셈으로 어머니가 골라 준 말의 혀 밑에 침을 꽂아 넣습니다.
주몽은 금와왕에게서 명마를 얻어내려는 꾀를 부린 것으로 준마가 밥을 못 먹어 힘을 잃게 만들어 금와왕의 선택을 받지 못하게 하려는 속셈이었던 것입니다.
예상대로 마구간에 들른 금와왕은 밥을 먹지 못해 비실거리는 말을 주몽에게 가지라고 주었고, 볼품없는 말을 자신에게 줄 것이라는 주몽의 예측이 그대로 적중한 것입니다.
주몽은 말을 얻자마자 혀 밑에 침을 뽑고 아주 잘 먹이고 훈련시킨 후 명마를 만들었고 차근차근 동부여를 떠날 준비를 합니다.
14. 건국을 위한 주몽의 계획 2 동지를 모아라
주몽은 믿을만한 세 친구를 찾아갔고, 오이, 마리, 협보라는 세 친구는 나라를 건국하자는 주몽의 말에 발 벗고 따라나섭니다.
아마도 실제로는 이 세 친구만이 주몽을 따랐던 것으로 보이지는 않고 세 사람은 부여 내에서 주몽을 따르는 집단들의 수장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무리의 수장들이 주몽을 따랐다는 것은 일찍이 동부여 내에 주몽의 능력을 인정하고 나라를 이끌 수 있는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인정받았음을 충분히 보여준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때 주몽의 나이는 20대 초반이었고, 경계가 느슨해진 틈을 타 몰래 동부여를 빠져나와 남쪽으로 달리는데 주몽의 탈출을 알아챈 대소의 부여군이 뒤를 추격합니다.
주몽 일행은 추격을 피해 필사적으로 남쪽으로 전력질주하는데, 거대한 강 앞에 멈춰 섰고 주몽은 이 위기에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나는 천제의 손자요 하백의 외손인데 지금 난을 피하여 여기에 이르렀으니 황천과 후토(后土)는 나 고자(孤子: 의지할 데 없는 자신을 이른 말)를 불쌍히 여기시어 속히 배와 다리를 주소서
<동명왕 편>
신들의 손자인 자신이 난을 피하다 위기에 맞닥뜨렸고 하늘과 땅의 신에게 도와달라고 간절한 기도를 올린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주몽은 가지고 있는 활을 높이 들었다가 간절함을 담아 강물 위로 내리쳤고 그러자 강 속에 물고기와 자라 떼가 나타나 다리를 만들어 주었고 주몽과 일행들은 무사히 도망칠 수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주몽이 신의 자손으로서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 펼쳐진 것입니다.
이때가 바로 기원전 37년, 바로 고구려가 건국한 해에 벌어진 일입니다.
15. 주몽, 졸본을 도읍으로 정하다
졸본은 압록강으로 흘러들어 가는 혼강이라는 강의 중류 지역에 있는 현재 중국 랴오닝성 환인시 일대입니다.
즉 졸본은 지금의 환인시가지와 하고성자토성 일대에 제법 넓은 평탄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졸본은) 그 토양이 기름지고 아름다우며 산하가 험하고 견고한 것을 보고...
<삼국사기>
삼국사기에서는 졸본을 토양이 기름지고 아름다우며 삼하고 험하고 견고한 땅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졸본은 이렇게 풍부한 물에 넓은 평지까지 있어 농사짓기 좋은 땅으로 도읍지로 적합했던 곳이었던 것입니다.
16. 주몽, 고구려 건국의 상징 오녀산성(五女山城)을 쌓다
그리고 그곳에는 주몽이 졸본에 도착해 고구려를 건국하면서 쌓았다고 알려진 성인 '오녀산성'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당시 고구려에서는 '흘승골성'으로도 불렸으며 북한산 높이인 해발 약 800m에 위치한 산성이지만 정상에는 축구장 약 9배의 넓은 평지가 있습니다.
가파른 절벽으로 올라가는 길이 상당히 험하지만 정상에는 평탄한 지면이 함께 어우러져 있어 외세의 침략을 효과적으로 막아낼 수 있고 생활하기도 용이해 천혜의 요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늘과 맞닿을 것같이 솟은 천혜의 요새였던 오녀산성은 고구려의 첫 왕성(王城)이었습니다.
17. 주몽, 고구려로 국호를 정하고 고씨를 성으로 삼고 스스로 '고주몽'이 되다
졸본에 도읍지를 정한 주몽은 건국에 박차를 가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 앞에서 이런 결정을 내립니다.
나라 이름을 고구려(高句麗)라 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고(高)를 성씨(氏)로 삼았다
<삼국사기>
삼국사기에 따르면 주몽은 한자 높을 고(高) 자를 써서 고씨를 성으로 삼고 스스로 '고주몽'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어서 주몽은 자신과 함께 하는 세력들을 모아서 군신의 예를 갖추도록 하였고, 졸본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스스로 왕이 됨을 선포한 것입니다.
고구려라고 국호를 정한 또 다른 이유는?
주몽이 건국한 기원전 37년 훨씬 이전에 '고구려'라는 이름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현도군은 무제 원봉 4년(기원전 107년)에 세웠는데, (그곳에) 세 개의 현이 있으니... 고구려현 등이 있다
<한서(漢書)에 기록된 내용>
압록강 혹은 혼강 일대의 어떤 지역이 고구려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하는 중국 한서의 기록이 있으며, 아마도 시간이 흘러 러 이곳에 주몽이 오면서 독자적인 국가를 세우면서 지역 이름에 따라 국호를 '고구려'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서울과 같은 지역명을 주몽이 나라의 이름으로 정착시킨 셈으로, 국호라는 의미에서 '고구려'는 주몽이 처음 사용했다고 보면 됩니다.
그렇다면 지역명이었던 '고구려', 그 속뜻은 무엇이었을까요?
고구려에서는 돌을 쌓아 올린 성(城)을 구루라고 불렀고, 아마도 고구려의 '구려'는 '구루'와 같은 성을 뜻한다고 볼 수 있으며 고구려는 '높고 큰 성'이라는 의미로 주몽은 '고구려'를 국호로 삼았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18. 주몽, 졸본 인근 라이벌국 비류국을 복속시키다
국호를 고구려로 선포하고 새 나라의 시작을 알린 주몽은 신의 아들답게 차례로 주변 나라들을 정복전쟁을 통해 복속시키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건국한 지 1년 여가 흐른 후에 주몽은 라이벌 비류국의 왕 송양이라는 막강한 상대와 맞닥뜨리게 됩니다.
비류국은 졸본 인근에 먼저 살던 토착세력으로 주변에서 가장 세력이 큰 나라였습니다.
문제는 비류국의 왕 송양은 자존심도 세고 심지어 주몽이 천제의 아들이라는 사실마저 의심하면서 주몽에게 으름장을 놓습니다.
이렇게 팽팽한 기싸움이 벌어지던 중 어느 날 갑자기 비류국의 왕 송양이 항복을 합니다.
송양이 나라를 들어 항복하였다 한다
<동명왕 편>
갑작스러운 비류국의 항복에는 '사슴'의 도움이 컸습니다.
주몽은 전쟁 대신 자신만이 쓸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쓰기로 하고 흰 사슴 한 마리를 잡아와 거꾸로 매달고 사슴에게 말합니다.
하늘이 만일 비를 내려 비류왕의 도읍을 표몰 시키지 않는다면 내가 너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니(...)네가 하늘에 호소하라
<동명왕 편>
주몽은 비류국에 비가 내리게 해서 물에 잠기게 하려고 사슴에게 비류국에 비가 내리게 기도하라고 협박했던 것입니다.
흰 사슴은 고대에는 인간과 하늘을 연결시켜 주는 매개자라고 생각해 신성한 동물로 여겨졌고, 주몽은 신성한 동물까지 이용해 호소력을 높이는 등 이런 행위자체가 주몽의 남다른 능력을 보여주는 일화라고 하겠습니다.
이후 흰 사슴의 울음에 시작된 장맛비가 일주일 내내 내렸고 홍수로 비류국은 물에 잠기게 되었고 송양은 살려달라며 그제야 주몽을 찾아온 것입니다.
주몽은 애걸복걸하는 송양의 모습을 뒤로 한채 태연하게 먼저 비류국으로 향했고, 비류국을 삼킨 엄청난 물 위로 채찍으로 한 번 휘두르는데 물이 갈라지며 순식간에 물이 사라집니다.
송양은 이 모습을 보고 주몽의 천제의 아들임을 인정하고 완전한 패배를 인정합니다.
주몽은 비류국을 복속시킨 후 한층 힘을 받아서 이후 이 지역을 '다물(多勿: 옛땅을 회복한다는 고구려어)도'라 하고 송양을 제후로 봉합니다.
비류국을 복속시킨 후 정치적 동맹을 맺었다고 볼 수 있으며, 이 이야기는 주변국을 복속시키며 성장한 고구려 초기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내용입니다.
19. 광개토대왕릉비에 기록된 주몽의 마지막 모습
이렇게 주변국들을 종복 하며 '고구려'를 성장시켜 나간 주몽에 대한 기록은 현재 중국 지린성에 있는 '광개토대왕릉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광개토대왕릉비는 414년에 장수왕이 아버지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속으로 높이가 무려 6m가 넘습니다.
거대한 비속의 4면에는 고구려의 건국 신화 및 초기의 역사, 광개토태왕의 업적을 기리는 기록들까지 무려 1775자의 글자가 빼곡히 적혀있습니다.
이 비문에서 고구려 역사 초입에 쓰인 '주몽의 건국 신화'에서 주몽의 모습이 그려져 있으며 그의 마지막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황룡을 보내니 내려와 왕을 맞이하였다. 왕은 홀본(졸본) 동쪽 언덕에서 용의 머리를 디디고 천상으로 올라갔다
<광개토대왕릉비>
고구려인들은 시조인 주몽이 신의 아들이기 때문에 마지막을 평범한 인간처럼 보낼 리 없다고 보았고, 신화에서 주몽의 나이 40세에 주몽이 황룡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 것으로 주몽을 주인공으로 하는 고구려의 건국신화는 막을 내리게 됩니다.
20. 실제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신화적 상상력을 덧붙인 '주몽 신화'가 가진 의미
실제 신화 속 주몽과 같은 신적인 존재는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신화 속 '주몽'의 모티브가 된 실제 인물에 대한 기록이 중국 <후한서>에 기록되어 있는데, 의문의 고구려 왕인 구려후 '추'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추'라는 이름은 '주몽', '추모'하고 비슷한데, 아마도 이 인물이 당시 고구려 지역을 통합했던 고구려의 건국 시조로 추정되는 고구려왕을 중국에서 이런 이름으로 불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런 실제 하는 건국 시조의 업적을 바탕으로 신화적 상상력이 붙어서 '주몽 신화'가 만들어졌던 것이며, 이후 다양한 방식으로 기록되어 후대에 전승되었으리라 추측하고 있습니다.
사실 고구려 건국 신화는 건국 시조 주몽과 주몽의 아들 유리왕 그리고 주몽의 손자 대무신왕까지 3대에 걸친 이야기가 이어지는 장대한 서사입니다.
부왕(주몽, 제1대 왕)을 만나 부러진 칼을 바쳤다. 임금이 자기의 부러진 칼을 합쳐 보니 이어져 하나의 칼이 되었다. 임금(주몽)이 기뻐하고 그 (유리, 제2대 왕)를 태자로 삼았는데...
<삼국사기>
부여에 남겨졌던 주몽의 아들 유리가 고구려에 와서 왕위를 잇는 것부터
왕(대무신왕, 제3대 왕)은 군사를 내어 부여를 치려 함에(...)
(신이한 솥을 얻어) 불을 피우지 않고도 스스로 열이 났으므로, 밥을 지어 한 무리의 군대를 배불리 먹일 수 있었다
<삼국사기>
활발한 정복활동을 펼친 주몽의 손자 대무신왕 이야기까지 이어지며, 그렇게 대무신왕 때 이르러서 고구려는 드디어 부여를 복속시키며 한반도 북부에 부여가 사라지고 고구려만 남으면서 고구려 초창기의 신화는 막을 내립니다.
이러한 고구려 건국 신화는 시대를 지나 전해지면서 하나의 역사가 되어 장장 2천 년이 넘는 지금까지 전해져오고 있는 것입니다.
신화는 역사가 될 수는 없지만 역사는 신화가 될 수 있는 것으로 신화는 단순한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며 역사에서 비롯된 것임을 다시금 기억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신화는 나라가 탄생한 일화에 상상력이 덧붙여지면서 전승된 이야기로 단순히 신비한 이야기를 넘어서 그 집단의 자긍심을 고취시키고 하나로 묶어 역사와 민족을 지탱하는 역할을 하는 소중한 기록들입니다.
고구려 신화를 들여다보면서 고구려 신화 속에 담긴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이해하며, 우리 역사의 뿌리를 느껴보는 시간이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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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벌거벗은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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