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의 <동의보감> 의미와 편찬 과정
1. 허준, 임진왜란 중 선조를 따르며 처음부터 끝까지 보살피다
의주에 이르기까지 문관, 무관이 겨우 17인이었으며(...)어의(御醫) 허준(...) 처음부터 끝까지 곁을 떠나지 않았다
<선조수정실록>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했고 왕인 선조는 한양을 버리고 의주를 향해 피란길에 오릅니다.
전쟁 중 왕을 따라가면 적의 표적이 되기 때문에 신하들조차도 왕을 버리고 뿔뿔이 피란길에 올라 문관, 무관이 겨우 17명밖에 되지 않은 초라한 왕의 피란 행렬에 허준은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했던 것입니다.
허준은 이런 상황에서도 모든 것을 제쳐두고 왕의 피란길에 동행하며 선조의 건강을 보살피며 돌봅니다.
https://donbuller.tistory.com/entry/광해군1
2. 허준, 선조의 명령을 받고 동의보감을 편찬하다
그렇게 임진왜란이 터지고 4년이 지난 어느 날, 선조가 허준을 불러 명령을 내립니다.
근래에 중국의 의서를 보니 모두 조잡한 것을 초록(抄錄: 필요한 부분만을 뽑아서 적음. 또는 그런 기록)하고 모은 것이어서 별로 볼 만한 것이 없으니 여러 의서들을 모아 책을 편찬해야겠다
<동의보감>
선조가 의학 서적을 살펴보니 여러 이론이 난무하고 무수한 처방이 옳고 그름이 구별되지 않은 채 마구 섞여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조는 허준에게 그것을 필요한 정보만 모아 추리고 교정해서 하나의 의서로 정리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의보감(東醫寶鑑)>의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선조는 허준을 필두로 다른 어의들의 경험과 식견을 따라 의서 속 의학 이론과 처방을 제대로 정리하라고 명합니다.
그렇게 허준을 대규모 국가 프로젝트 이른바 '팀 동의보감'의 수장이 됩니다.
선조는 임진왜란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의서 편찬을 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기에, 인간적으로나 학문적으로나 누구보다 신뢰할 수 있고 의학 경험이 많은 허준이 적임자라고 생각해, 다른 선배 의관들을 제치고 허준에게 편찬을 맡긴 것으로 보입니다.
허준을 필두로 내의원 실력자 6명이 함께 <동의보감> 편찬에 박차를 가합니다.
3. 동의보감 속 건강 비책 3가지
3. 1 섭생(攝生)
이때 선조는 새로운 의서 <동의보감>에 반드시 반영해 꼭 담아야 할 세 가지 지침을 내립니다.
섭생이 먼저이고 약석은 그 다음이다
<동의보감 서문>
섭생이란 병에 걸리지 아니하도록 건강 관리를 잘하여 오래 살기를 꾀하는 것으로, 약보다는 섭생을 강조했는데 이는 병에 걸린 후 치료하기보다 병에 걸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는 오늘날의 '면역 기르기'와 같은 말로 볼 수 있습니다.
3. 2 약석(藥石)
약석은 약과 돌침이라는 뜻으로 온갖 약재와 치료를 일컫는 말로 섭생 다음이 약석으로 어떤 병에 어떤 약이 맞는지 제대로 적으라는 것입니다.
3. 3 백성들이 실제 부르는 명칭을 훈민정음으로 병기
우리나라에서는 약재가 많이 산출되지만 사람들이 제대로 알지 못하니 종류별로 나누고 우리나라에서 부르는 명칭을 병기하여 백성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하라
<동의보감 서문>
어떤 병에 어떤 약초를 써야 하는지 구분을 잘하고 백성들에게 친근한 약초를 백성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백성이 실제 부르는 이름으로 기록하는 것입니다.
선조의 지침대로 중국식 한자 명칭을 먼저 쓰고 그 아래에 복숭아씨, 죽순, 보리쌀, 도라지와 같이 백성들이 실제 쓰고 있는 우리말 명칭을 훈민정음으로 병기하게 한 것입니다.
<동의보감> 이전에도 <간이벽온방언해(전염병 관련)>, <구급방언해(응급처치 관련)>, <해산방(임신과 출산 관련)>와 같은 간단한 의서들은 훈민정음으로 쓰기도 했지만, 모든 약재의 이름을 훈민정음으로 쓴 것은 <동의보감>이 최초입니다.
허준은 선조의 지침에 따라 조선에 없던 의서를 만든다는 사명감으로 의욕이 불타올랐을 것입니다.
4. 정유재란 발발로 동의보감 편찬 중단되다
하지만 조선에 없던 의서를 만들기에는 너무나 방대한 양의 자료 중 무엇을 어떻게 넣을 것인지 정하는 것부터가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
허준과 다섯 내의들은 매일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고 연구합니다.
그런데 1597년 겨우 목차를 정리했을 때 정유재란(丁酉再亂, 1597~1598년 )이 터지며 <동의보감> 편찬 팀이 산산조각 나버리게 됩니다.
잠잠해지던 전쟁이 왜군의 공세에 순식간에 불이 붙기 시작했고, 조선은 또다시 아비규환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리고 3년이 흘러 전쟁은 끝났지만 전쟁의 여파로 의서 편찬재개는 쉽지 않았습니다.
5. 수의가 된 허준, 선주의 명으로 동의보감 편찬을 혼자 마무리하기 시작하다
그 사이 허준의 신변에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내의원의 수장이자 최고참 어의인 양예수가 사망한 후 허준이 그 뒤를 이어 최고참 어의인 '수의'가 된 것입니다.
최고참 어의가 된 후 선조의 건강을 살피고 내의원을 총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며 보내고 있던 허준을 어느 날 선조가 불러 명합니다.
다시 허준에게 하교하여 홀로 책을 편찬하게 하시고 대궐에서 소장하고 있는 의서 오백 권을 내어주어 고증하게 하셨다
<동의보감>
선조가 허준에게 대궐에 있던 '의서 500권을 내릴 테니 그 내용을 추려보라'라고 명한 것입니다.
바로 허준 혼자서라도 꼭 다시 의서 편찬을 마무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선조의 명으로 영영 중단된 줄 알았던 동의보감 편찬은 다시 시작됩니다.
6. 허준, 선조 죽음에 책임을 물어 유배형에 처해지다
1608년 2월, <동의보감>의 완성을 보지 못한 채 선조가 갑자기 쓰러지고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허준은 어명을 완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송구함과 동시에 선왕의 유지를 받들어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됐을 것입니다.
선조의 뒤를 이어 제15대 왕 광해군이 즉위합니다.
https://donbuller.tistory.com/entry/광해군2
광해군 즉위 이후 허준은 벼슬과 품계를 빼앗기고 유배형에 처해집니다.
허준은 이미 삭직 시켰으니 문외로 출송(문외출송: 벼슬과 품계를 빼앗고 추방하는 것)시키도록 하라
<광해군일기(중초본)>
사실 그동안 허준을 탐탁지 않아 했던 양반대신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해 그들이 '왕을 살리지 못한 어의는 직무 유기로 벌하셔야 합니다!'라고 광해군에게 청한 것입니다.
광해군은 허준을 유배 보낼 생각이 없었지만, 대신들의 요청은 끈질겼고 광해군은 허준을 유배 보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7. 허준, 광해군의 호의로 다시 내의원에 복귀하여 염원하던 <동의보감> 편찬을 완성하다
최고참 어의로서 선조의 죽음에 책임을 지고 유배를 간 허준은 유배를 간 지 1년이 지난 1609년 11월, 허준은 한양에 나타납니다.
내의원에 실력 있는 의관이 적으니 그를 다시 불러들여야겠다!
광해군이 내의원에 실력 있는 의관이 적다며 허준이 다시 내의원에 복귀하게 되었고, 1610년 8월 광해군을 찾아갑니다.
선왕께서 찬집 하라고 명하신 책이 과인이 계승한 뒤에 완성을 보게 되었으니 내가 비감한 마음을 금치 못하겠다
<광해군일기(중초본)>
선조가 명한 1596년에 시작되어 무려 14년 만에 조선 의서 <동의보감>이 이렇게 탄생을 알린 것입니다.
허준이 유배를 간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었지만, 유배지에서 온전히 <동의보감> 집필에만 전념하는 기회로 삼았던 것입니다.
마침내 허준은 혼자서 완성해 냈다고는 믿을 수 없는 방대한 양의 <동의보감>을 마침내 완성해 낸 것입니다.
8. <동의보감 > 속 건강관리의 기본 원칙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탄생한 <동의보감> 속에 허준 어떤 내용을 담았을까요?
하루의 금기는 저녁에 포식하지 않는 것,
한 달의 금기는 그믐에 만취하지 않는 것.
일 년의 금기는 겨울에 멀리 여행하지 않는 것
9. <동의보감 > 표 여름 건강 보약식
또한 <동의보감>에서는 사계절 중 여름을 잘 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조선왕실에서 여름에 즐겨마셨던 <동의보감> 표 특제 음료가 있습니다.
갈증을 해소해 주고 소화에 탁월한 효과가 있었던 제호탕은 백단향, 초과, 사인, 오매육을 잘 말려 가루로 만든 후 이 가루를 꿀에 버무려놓았다가 끓는 물에 타서 식힌 후에 마시는 음료입니다.
날씨가 이처럼 무덥기는 근래에 드문 일이다(...) 더위를 씻는데 도움이 되도록 하였으니(...) 나의 이 뜻을 알도록 하라
<정조실록>
<정조실록>에 보면 정조가 날씨가 아주 더운 날 제호탕을 신하들에게 하사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동의보감>에는 뱀장어, 수박과 같은 여름 보양 음식들의 효능과 먹는 방법에 대해서 상세하게 적혀있고, 조선시대 때부터 먹어 온 여름보양식들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동의보감>은 건강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에서부터 의학 전문가까지 누구나 찾는 범용적인 의학 서적으로 오늘날까지 높이 평가받고 있습니다.
10. 허준의 죽음
허준은 <동의보감> 편찬 이후에도 쉬지 않고 일했는데, 내의원에서 후학을 양성했고 광해군의 명으로 백성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전염병을 연구하고 책을 씁니다.
허준은 그렇게 만년까지도 연구를 멈추지 않고 조선 의학을 위해 온 힘을 쏟아붓습니다.
그리고 1615년 11월, 허준은 77세의 나이로 결국 세상과 이별을 합니다.
<출처: 벌거벗은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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