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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책읽기

50.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를 읽고(책리뷰/독후감)/김주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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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를 읽고(책리뷰/독후감)/김주영 작가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김주영)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김주영)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라는 제목을 보고 한 어부의 삶에 관한 이야기 인가? 하는 추측을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는데, 소설은 예상외로 극 중 주인공은 국민학교 저학년의 나(김형석)와 3살 터울의 아우(김형호)와 그의 어머니 박과수댁(박순남) 이렇게 세 가족이 6.25 전쟁을 겪은 후 궁핍하지만 가슴 따뜻하게 만드는 총 4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었고, 소담하지만 나름의 스릴과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와 마을의 천태만상 인간들이 서로 얽혀 만든 관계도를 통해 '잘'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에 대해 나의 추억과 맞대면하여 곱씹어 되새기며 그 길을 찾아가는 여정으로 독자들을 이끌어 나가는 휴머니즘 성장 소설입니다. 

 

항상 굶주린 배를 부여잡고 고두밥 한 덩이를 어떻게 해서든 들고 도망가 어린 아우와 나누어 먹는 것이 일상인 나는 역 앞 명당자리에 어느 날 이발소의 이삿날에 이삿짐 나르는 것을 구경하다 거울을 보게 됩니다. 그 거울을 보며 모든 것이 거꾸로인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발산되며 거울 위로 펼쳐지는 여행을 즐깁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발소에 끌려가 머리를 깎는 도중 천장과 벽 틈새에 걸려있는 수채화하나가 나의 눈에 들어왔고, 거울에 비치는 것과 같이 그림 속 휘영청 밝은 달 안에 흐릿하게 비쳐 보이는 남녀의 얼굴을 보며 그림 속 남자가 이발소 주인이라는 것을 눈치챕니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낸다는 아이의 인식과는 달리, 세상의 모든 사람과 사물들이 

 

나는 세 살 터울의 아우를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이 투철합니다. 그래서 어린 아우와 학교에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모든 시간을 함께 보냅니다. 어머니가 월천댁 애옥살이 일을 봐주러 나간 사이 나와 아우는 어머니가 돌아올 때까지의 기나긴 시간을 견뎌내기 위해 갖은 놀이와 장난과 궁리를 합니다. 지천이 놀이터이고, 생각만 바꾼다면 무엇이든 장난감이 되는 세상에 삽니다. 학교를 파하고 각종 학원들로 뺑뺑이를 돌고 있는 지금의 아이들과 비교되는 점으로, 현재 우리 시대의 아이들은 또래 아이들과의 접선은 온라인상 게임이나 메신저를 통해 이루어지고 짜인 일정에 맞추어 눈코 뜰 새 없이 종종걸음 해야 하고 또래와 대면하여 놀 수도, 세상은 놀이터가 아닌 언제든 사고가 벌어질 수 있는 무서운 곳이 되어 있다는 점은 경험치를 쌓는다는 입장에서 본 다면 못내 아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중 가장 흥미진진하고 스릴 있고 가슴 졸이고 짜릿한 놀이는 삼손이라 불리는 덩치가 황소만 하고 기운이 장사이지만 배움이 짧아 반편이 소리를 듣는 장석도가 지키는 술도가에서 술을 담기 위해 고두밥을 찌고 말리는 때   널린 고두밥을, 삼손의 철통과 같은 방어망의 빈틈을 공략하여 획득해 도망쳐 먹는 일입니다. 삼손은 술도가 주인이 자신을 필요로 할 수 있도록 아이들이 고두밥을 훔쳐 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주기 위해 은연중에 삼손과 아이들이 맺은 조약인 것 마냥 깊은 낮잠에 빠져들곤 하여 줍니다. 이렇게 고두밥 파수를 보는 삼손이 고두밥을 훔치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아이들의 존재에 의해 그 필요성이  대두되고 높아지기 때문에 아이들은 고두밥 한 덩이를 얻고 삼손은 이를 지켜내는 임무를 수행하며 세경을 따먹는 상생의 관계를 유지합니다.

 

내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좋은 곳은 의외로 학교입니다. 그 시절 학교는 아이들에게는 온갖 검사를 진행해 꼬투리 잡히기 일쑤였고 그에 따르는 체벌과 면박을 피할 수 없는 곳이며, 부모에게도 선생은 오다가다도 만나기가 꺼려지는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이기에 하교 후 학교는 개미새끼 한 마리도 출몰하지 않는 그야말로 쥐 죽은 듯 조용합니다. 또한 그런 때에야 학교생활 중에는 언감생심 제 차지가 되기 어려운 운동장의 기구들이 모두 나의 놀잇감이 됩니다. 철봉에 다리를 걸고 손을 떼면 온 세상은 거꾸로인 세상, 거울에 비치는 상과 같은 세상이 되지만 왜 하늘만은 늘 위에 있는 것인지 신기하고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철봉에 매달려 있던 때에 학교에서 유일한 여선생님이 나에게 나가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나는 이발소에 걸려있던 수채화 속 여자가 이 여선생이라는 추측을 하게 됩니다. 하얀 얼굴에 친절한 여선생님과의 대화에 폭 빠져있던 나에게 여선생은 너와 나와 둘만의 비밀이며 교장선생님이 아시는 날에는 자신의 신상에 변고가 일어날 것이라며 쪽지를 이발소 주인에게 전달해 달라는 부탁을 받게 됩니다. 인생 첫 비밀을 안게 된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이발소를 가던 중 삼손이 주체하는 마을 장정들의 바위 들기 놀이에 정신이 팔려 그 약속을 까맣게 잊고 맙니다. 그날밤 잠자리에서 흉흉한 꿈을 꾸게 되고 그때서야 쪽지를 기억해 내고 화들짝 놀라 일어나 주머니에 넣어둔 쪽지를 찾지만 주머니에 난 구멍을 통해 쪽지는 자취를 감추고 맙니다 이 일이 훗날 어마어마한 후폭풍의 단초가 될지는 까맣게 모른 채.

 

아우는 전쟁 직후 마을에 찾아든 코쟁이 외국인들에게 '기브미 츄잉 캔디!'라는 말을 어머니에게서 전해 듣고 껌이라는 이상한 과자를 손에 넣게 됩니다. 달짝지근한 그것은 아무리 씹어도, 그 맛은 잃어도 중량을 줄이지 않고 평생 동안 입안에서 놀리며 먹을 수 있지만, 씹으면 씹을수록 배는 고파지는 기묘하고 요망한 과자입니다. 이과자를 얻어내기 위해 얌전을 떨며 바깥출입을 삼가는 마을의 여인이 어느 날 해사하게 연지곤지 화장품을 찍어 바르고 나타나 코쟁이들에게 자신이 살포시 얼어놓은 안방으로 기묘한 과자들이 든 봉지를 던지도록 유혹하기에 이릅니다. 지아비에게 버림받은 후 두 형제를 건사하는 것에 몰두하며 치장하는 것을 멀리했던 어머니는 그런 여인을 비난하지만, 그 비난 속에  자신은 누릴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부러움을 감출 수는 없습니다. 또한 어머니는 삼손이 시계포 최 씨에게 수를 세지 못하여 농락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배움이 짧아 업신여김을 당한다고 생각하여 형제가 잠든 밤 시간 몰래 호롱불을 켜고 글자를 깨치기 위해 노력합니다.

 

어머니는 고미다락을 두 형제의 눈을 피해 오르내리며, 그 공간을 철저히 비밀로 부칩니다. 나와 아우는 고미다락이 너무나 궁금하여 어머니가 자리를 비우는 틈에 그곳에 기어올라 어머니가 그동안 켜켜이 모아둔 쌀과 곡식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렇게 독이 차고 넘치게 곡식이 있지만 늘 배를 곯게 하는 어머니에 대한 서운함과 야속함은 예전 월천댁에 아우 나이또래의 아이를 포대기에 둘러 등에 메고  일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봤을 때만치 나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동생은 체구도 또래에 비해 작고 잔병치레를 끊임없이 하고 있었지만, 어머니 등에 엎이는 호사는 애초에 꿈에도 꾸지 못하는 것이었던 겁니다. 형제를 누구보다 자립심 강한 아이들로 키우기 위한 마음과 노동에 절어 욱신거리고 너덜거리는 몸을 추스르기 위한 마음 그리고 당장 먹을 것이 끊길 것에 대한 두려운 마음에 무엇이건 쟁여놓아야만 마음이 놓이는 마음등 여러 가지 마음이 중첩되어 벌어진 일임에도 어머니에 대한 서운한 마음을 억누를 수 없는 형제입니다. 

 

잊고 있었던 쪽지의 후폭풍이 시작됩니다. 이발소 주인 설영도가 잡혀가고, 이발소는 무차별적으로 뒤지고 엎어지며 폐허와 같아지고 철 자물쇠가 걸려 통행도 막아집니다. 나는 이발소에 걸린 수채화가 불현듯 손에 넣고 싶어 삼손에게 도움을 구하고, 삼손은 의리를 지켜 자물쇠를 손으로 비틀어 뜯어내고 내 손에 수채화가 획득되도록 원조합니다. 나는 그 수채화를 집 독 안에 넣어놓고, 또 하나 나만의 비밀을 만듭니다. 나는 남순애라고 하는 나만치 가난한 집 아이의 기성회비 도난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되어 선생님과 단독면담을 하는 지경에 이르지만, 내가 절대로 훔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한치의 망설임이나 주저함 없이 가져가지 않았음을 토로합니다. 선생님은 정직함으로 일관하는 나의 모습을 보며 더 이상의 회유를 포기하고 남순애를 집까지 바래다줄 것을 부탁합니다. 남순애가 배를 곯아 산등성이 하나를 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자신도 배곯기는 마찬가지인데 꾀병을 부리는 것만 같아 심술이 일기도 하지만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해져 애초에 바래다주려고 했던 마을 입구 안으로 들어가 순애의 집 앞까지 바래다줍니다. 이때 순애는 사실 기성회비는 애초에 없었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순애의 허무맹랑한 거짓말에 약이 오르면서도 나와 처지가 다르지 않은 순애가 마음에 쓰이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순애 또한 나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소설 속에서 코찔찔이 형제들이 점차 성장해 가는 수많은 포인트들이 등장합니다. 사춘기시절의 반항기마저 사치라고 여겨질 정도로 빈궁에 절어있는 삶을 사는 중에도 시간은 형제를 어른의 세계로 이끄는 것은 일종의 시간이 부르는 마법이라고 보아야 할까요? 이는 시계포에서 들려오는 괘종소리를 들으며 아우가 느꼈던 감정과 상통합니다. 어머니에게는 그 소리가 을씨년스럽고 공포스럽기만 했지만, 아이티를 벗으려 하는 아우에게는 시곗바늘이 지배하는 제 각각의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삶의 애환과 슬픔이 녹아 있다는 것을 깨우치게 하는 일종의 경종을 울리는 소리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잊히고 묻히고 태반이 되돌이킬 수 없지만, 시간은 흐르고 삶은 계속되며, 한 사람의 인간이 내면에 먼지와도 같은 희부연 모습으로 쌓이고 덮어 들추거나 닦아내면 그 시절 추억이 생생히 떠오르며 웃기도 울기도 하며 회한에 젖게 하는 것이니 사간은 마법이 맞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발소가 있던 자리에 자리를 잡은 시계포 주인 최동수에게 두 명의 경찰이 와 이발소 주인 설영도와의 사이 그리고 이곳에 시계포를 연 연유에 대해서 취조를 받게 됩니다. 공포에 질린 설영도는 이사오던 때에 자물쇠가 뜯겨 있었다는 사실, 그 일을 벌인 것이 삼손이라는 사실을 경찰에게 고합니다. 삼손은 이일로 경찰에 잡혀가 빨갱이니 적색분자니 하는 알지도 못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설영도와의 사이에 대해서 모진 취조를 당하게 되고, 이일을 함께 했던 나와 어머니는 각각 학교와 경찰서에 가서 추궁을 당하게 됩니다. 

한번 지나간 시간을 돌이킬 수 없고, 그중에서 이별이라는 사건이 특히 그러하다는 것을. 형제가 만났고 이별을 한 수많은 이별들 중에 특히 배넷병신으로 태어난 옥화의 죽음은 두 형제의 삶에 크나큰 파문을 일으킵니다. 무슨 연유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내가 5학년이던 때에 옥화는 죽음을 맞이했고, 목메어 울부짖는 옥화 어머니와는 달리 옥화 아버지는 옥화가 묻힐 곳까지 함께 하지도, 한 방울 눈물도 흘리지 않았던 것을 보며 십 년이 넘도록 키운 슬하의 자식이 떠났음에도 냉정을 유지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대문을 걸어 잠그는 그를 통해 형제는 섬뜩한 귀기를 느끼기까지 합니다.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는 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에도 출제되는 소설로, 1950년대 전쟁직후 황폐화되고 굶주리고 배우지 못하고 고단한 노동에 내몰렸던 하층민의 삶을 기막힌 묘사력과 찰진대사, 국민학교 아이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순진무구하면서도 거짓이 없는 촌철살인적인 설명을 통해 구구절절 생생하게 느끼게 됩니다. 특히 껌이나 거울, 고두밥을 훔치는 장면, 학교 천장과 어머니의 비밀 고미다락 안을 기어들어 그곳을 탐험하는 장면, 이발소에 걸려있는 수채화 속 모습에 대한 묘사와 감상, 어머니가 두 형제를 위해 몰래 눈물을 훔치며 견디어 내는 과정, 마을의 다양한 인간 군상들과 얼기설기 얽혀있는 이야기들, 민감할 수 있는 사상적 테마, 삶과 죽음, 이별에 대한 단상과 같이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당시 사회, 환경, 경제, 문화에 이르기까지 총망라하여 담았지만 글 곳곳에 유머와 풍자가 담긴 소설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국민학교 내에서 벌어졌던 각종 검사라는 명명하에 벌어진 아동인권침해 행태와 폭력과 폭언으로 점철된 사상범 색출 취조행태에 대해서는 소설을 읽는 내내 혐오감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나라면 어땠을까? 세상 힘없고 가난하고 권력과는 먼 생계를 유지하는 것에도 온 힘을 짜내야 했던 민초들이 겪었을 공포와 두려움에 대해서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듭니다. 지금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정착되어 있다고 자부되는 시점에도 형태와 강도만 달리할 뿐 여전히 인권유린이 자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다시금 함께 하는 세상, 서로의 사정에 대해 공감하고 아파하며 돕고자 하는 감정과 행동이 얼마나 절실히 요구되고 우리 삶을 윤택하고 지속가능하게 하는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홀로 두 형제를 건사하고 생계를 책임져야만 했던, 남녀유별의 시대에 배움이 짧아 글씨 읽는 것마저 포기해야 했던 어머니의 억척스럽고 엄하면서도 한 명의 여인으로 자신이 느끼는 정분의 감정마저 억눌러야만 했던 모습을 통해 감사함과 존경심, 경외심이 절로 불러일으켜지면서, 아직도 내 밥상의 반찬거리를 고민하고 불면 날아갈세라 어여삐 여기는 나의 부모님을 떠올라 울컥하곤 했습니다.

 

책의 제목인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는 갈대가 있어야 고기들이 잘 모여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소중함을 알지 못하고 이를 꺾어 버린다는 것으로 우리의 삶 또한 갈대와 같이 불필요하고 거추장스럽고 아름답지도 않아 보이는 그 어떤 것들이 있어야만 더욱 단단해지고, 삶을 살 수 있는 원동력이 되며, 나이 들어 곱씹어 즐길거리가 되는 추억이 되지만 사람들을 이를 쉽게 꺾어버리고 없애버리고 하찮게 여긴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찮게만 느껴지는 어린 시절의 경험과 다양한 인간군상들과의 인간관계를 통해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는, 혼자가 아닌 함께의 소중함을 아는, 거짓말을 하는 것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고, 정직하게 살아가야만 한다는 소명감을 지닌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무명옷은 빛이 바랠수록 눈부신 법이다. 나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제. 동상보다 세 살씩이나 손위라면 똥개처럼 꼬리만 사리지 말고 동상에게 본때를 보이고 체통을 지켜야 하제.(P44)
그 불안하고 슬픈 예감은 우리 집에 똬리를 틀고 있는 가난이나 먼지와 같은 것이었다. 가난과 먼지는 하루 종일 숨을 죽이고 가라앉아 있다가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오는 그 순간부터 발가벗은 몸뚱이로 우리들 앞에 다가왔다. 아우와 나는, 애옥살이에 지친 어머니의 행색에서 우리 식구가 가진 모진 가난을 확인하게 되었고, 어머니 또한 헐벗고 메마른 우리들의 모습에서 하루 종일 있고 있었던 뼈저린 가난을 확인하는 것이었다.(P110)
날 수 있는 것은 언제나 추락을 예비하는 것이고, 일어나는 것은 가라앉는 것을 예비하고 있는 것이었다. 높은 곳이란 언제나 불안한 것이었다. 내가 이발관의 목제 의자에 처음 올라앉았을 때도 그랬었고 다락 위로 올랐을 때도 높은 곳의 불안은 항상 나를 뒤틀어 잡고 괴롭혔었다.(P125)
어른이란 철봉대나 빨랫줄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밤을 건너가는 괘종시계의 타종 소리를 따라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괘종시계들이 모두 다 제 몫의 시간을 준비해서 차지하고 있었듯이, 우리들 또한 제 몫의 비애와 슬픔을 지니면서 괘종소리를 따라 먼 여행길로 올라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었다. 그 시간의 수레는 그 후 밤마다 한 길을 건너 우리 집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포장된 소시지처럼 나란히 누워 자고 있는 세 식구의 가슴마다 살점을 에는 듯한 고적함을 안겨 주었다. (P227)
아우와 나는 그제야 어머니의 가슴속에 숨어 있는 회한을 발견하였다. 그렇지만 그 회한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해서 되돌려 놓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현재라는 시각에서 되돌려 놓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것이 바로 이별이란 것이었다. 가장 확실하게 되돌려 놓을 수 없는 것이 이별인 것을 아우와 나는 어릴 때 경험했다. 우리들과 한번 헤어진 이후 돌아오지 않았던 사람들도 많다. (P301)
어느 날 문득, 어린 날에 겪었던 체험의 편린들이 뇌리 속에 되살아난다 할지라도 곧장 잊힐 뿐, 그것이 한 사람의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력으로 행사될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랬기에 어린 날의 아우가 죽음의 이미지를 강하게 느꼈던 대상은 죽은 옥화가 아니라, 그 죽음을 대문간에서 떠나보내던 옥화의 아버지였을 수 있었다. 슬하의 피붙이를 잃어버렸는데도 담담하게 무표정을 유지할 수 있었던 옥화 아버지에게서 나는 그때 섬뜩한 귀기를 느꼈다.(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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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소망 없는 불행]을 읽고(책리뷰/독후감)/페터 한트케

44. [소망 없는 불행]을 읽고(책리뷰/독후감)/페터 한트케민음사판본의 [소망 없는 불행]은  201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페터 한트케의 산문 2편을 엮어 출간되었습니다. 은 수면제 과다복용

donbuller.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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