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노랑무늬영원]을 읽고(책리뷰/독후감)/한강 작가
한강 작가의 [노랑무늬영원] 은 <밝아지기 전에>, <회복하는 인간>, <에우로파>, <훈자>, <파란 돌>, <왼손>, <노랑무늬영원>등 총7편의 중단편 소설을 엮은 소설집입니다. 한강작가의 작가의 말에 의하면 거의 12년에 결쳐 써온 글들을(특별히 의뢰를 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써온)엮었으며 그래서인지 자신의 감정이나 내면이 상당부분 반영되어 있는 것 같다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지금까지 발간한 한강 작가의 소설집 중에서 단연 으뜸이라고 꼽을 수 있을 정도로 7편 모두 심연에 나비날갯짓과 같은 소용돌이치는 파문을 일으키고, 감정에 적지 않은 파고를 만드는 작품들이었습니다. 지금부터 한 편씩 간단한 줄거리와 함께 느낀 바를 토대로 작품을 바라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밝아지기 전에> 속 화자인 '나'는 남편과 이혼하고 윤이라는 아들과 살아가는 여자입니다. 나는 암투병 후 완치 판정을 받고 재발여부에 대해서 경과를 지켜보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던 중 은희언니에게 그녀가 살고 있는 바다 건너 더운 나라의 어느 도시로 나를 초대한다는 메일을 받게 되고, 그녀를 만나기 위해 윤이를 간호사 여동생에게 맡기고 수속까지 모두 마친 후 떠날날만을 기다리던 중 '떠나지 않아도 되는 일'이 생겨 나는 비행기표를 취소합니다. 처음 만났을 무렵 은희언니는 여행을 즐겨하지 않으며, 쳇바퀴 달리듯 규칙적으로 일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여자였습니다. 그러던 그녀가 홀연히 해외여행을 시작하고, 급기야 그곳 어느 나라, 어느 마을에 체류하기까지 합니다. 그녀는 하나뿐인 남동생이 급성복막염에 걸린 줄 모르고 병원에 함께 가달란 부탁을 메몰차게 거절하고 나왔던, 그래서 급히 실려간 응급실에서 손도 써보지 못하고 죽었던 그날의 기억, 그때의 죄책감을 마음에 품은 채 살아갔었고 남동생의 죽음이후 얼마지나지 않아 정처없이 떠도는 삶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그녀와 오랫만에 재회를 약속했던 그 전날 그녀가 댕기열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게됩니다. 그래서 나는 공항이 아닌 은희언니의 장례식장으로 발걸음을 옮겨야만 했던 것입니다.
밝아지기 전에 가장 어두운 때가 찾아온다고 합니다. 가정불화와 암투병 속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쪼그라져들어가던 나에게 은희언니는 그 실체 없는 비난과 죄를 묻는 이들을 믿지 말라고, 다만 우리같은 부류들은 결함투성이의 삶을 살도록 설계되어 태어난 것일 뿐이라고, 네 잘못이 아니라 그렇게 살도록 태어났기 때문이라는 말로 위로해줍니다. 은희언니 또한 한때는 남동생을 방치했다는 원죄에서 한없이 방황하고 다그치고 끝없는 나락으로 내몰았을 터였기에 가능한 조언이었을 것입니다. 은희언니는 인도여행을 하다 본 거리위에서 태워지는 죽은자들의 시체들을 바라보며 마지막까지 지글지글 끓고 있는 것이 다름아닌 심장이라는 것을 알게됩니다. 쉼없이 뛰어야만 하는 그것, 더이상 뛰지 않으면 그것은 죽음을 뜻하는 것이기에 수천수만의 위기와 곡절을 이겨내고 생의 마지막까지 움직여내고, 죽은 후에도 마지막으로 끓는 그 심정을 보며 생의 절실함, 끈질김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은희언니를 소재로 썼던 '나의 심장' 이라는 내 글을 시작하는 문장은 어느덧, 그녀가 돌아오지 않는다, 가 아닌, 그녀가 회복되었다,로 고쳐 쓰여 집니다. 은희언니는 댕기열이라는 열대지방에서는 흔한 병에 걸렸지만, 그곳의 의료진을 믿지 못하고 끝내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그렇게라도 살고싶었던 그녀의 심장은 끝내 멈추고 말았지만 더이상 죽음을 갈구하거나 죽음만이 모든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깨닫게 된, 죽음의 마지막을 선택할 수 있었던 이미 회복되어진 인간이었던 것입니다. 나도 이제 멈추었던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밝아지기 전 가장 어두운 때를 지나 이제는 밝은 햇빛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주제의식이 <회복하는 인간>과 <노랑무늬영원>과도 상통하는 부분입니다.
...인도 여행기마다 나오는 구도적인 분위기 같은 건, 난 전혀 못 느꼈어. 굳이 특별한 게 있다면, 숨겨진 게 없다는 것? 예를들면 죽음. 거기선 시체를 밖에서 태워. 사람 몸을 태울 때 가장 늦게 타는 게 뭔지 알아? 심장이야. 저녁에 불을 붙인 몸이 밤새 타더라. 새벽에 그 자리에 가 보니까, 심장만 남아서 지글지글 끓고 있었어. 아직도 모르겠어. 지글지글 끊는, 마지막 지방이 타들어가고있는 그 시장을 보고 있는데, 왜 저절로 내 손이 심장 위로 올라왔는지.(P18~19)
부질없는 심문과 대답 사이, 체념과 환멸과 적의를 담아, 서늘하게 서로의 얼굴을 응시하는 시간. 눈이 흔들리고 입술이 떨리는 시간. 내 죽음속으로 그가 들어올 수 없고, 내가 그의 생명속으로 결코 들어갈 수 없는 시간. 그 모든 것이 더이상 중요하지 않게게 된 시간. 오직 삶을, 살만을 달라고, 누구에게든, 무엇에게든 기어가 구걸하고 싶던 시간.(P28)
우리의 잘못이 있따면 결함투성이로 태어난 것뿐인걸,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게 설계된 것 뿐일걸. 존재하지 않는 괴물같은 죄 위로 얇은 천을 씌워놓고, 목숨처럼 껴안고 살아가지마. 잠 못 이루지마. 악뭉을 꾸지마. 누구의 비난도 믿지마.(P35)
'나의 심장'이라고 이름 붙였던 파일을 불러내자, 하나뿐인 서늘한 문장이 나를 기다리고 있따. 그녀가 돌아오지 않는다. 그 문장을 지우고 기다린다. 온 힘으로 기다린다. 파르스름하게 사위가 밝아지기 전에, 그녀가 회복되었다, 라고 첫 문장을 쓴다.(P37)
<회복하는 인간>의 화자인 '당신'은 라디오작가로, 둘도 없이 소중하지만 언제가부터 멀어져 남보다 더 소원하게 지냈던 언니가 암으로 사망한 후 언니를 묻고 돌아오는 길에 발목을 삐게 되고, 이를 치료하기 위해 한약방에서 쑥뜸을 뜨다 입은 화상을 제대로 치료를 하지 않아 괴사가 진행되고, 진물과 괴양으로 하얀 구멍처럼 보이는 상태로 병원을 찾아 치료를 해나가는, 그 과정에서 마음과 정신까지 회복해나가는 이야기입니다. 당신은 발목을 호되게 삔것도, 화상을 입어 덧나 생살에 구멍이 숭숭 뚫린 것도, 새살이 돋게 하는 지리한 치료과정도 모두 나'따위'가 겪을 수 있는 그'따위'일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앞 선 소설에서 은희언니가 남동생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꼈던 것처럼 나 또한 언니의 죽음에 일말의 책임감과 그를 넘어선 죄책감을 느낍니다. 언니는 누구보다 아름답고 정갈했으며 한치의 틈도 없는 사람이었고 나는 언니와는 모든 면에서 결을 달리하는, 빈틈투성이에 사내아이같이 털털하고 허술하고 지극히 평범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당신의 허점이자 단점이자 컴플렉스가 언니에게는 부러움과 질시의 대상이 됩니다. 당신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언니는 불같이 사랑하는 사람인지 알수 없지만 세속적으로 좋은 직장과 집안을 가지고 있는 형부와 결혼을 하며 풍족하고 남부럽지 않은 호화로운 생활을 하며 자신을 서슴없이 속물이라 칭하며 '통념'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언니에게 그 통념과 세속의 틀은 자신을 보호해 줄 수있는 일종에 껍데기들입니다. 그런 삶안에서 나의 평범한 삶을 언니는 부러워했고, 통념 밖 세상에 거침없이 뛰어들어 살아가는 자유로움을 갈망했습니다. 당신은 자전거 타기 하나에도 미칠듯이 기뻐했던 여자였지만, 내가 기뻐하며 자전거에 몸을 실었던 그때 언니는 가족들에게 숨기고 병원을 전전하고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고 다시 자전거에 올라 허공을 가르며 당신은 기쁨을 느끼게 될까 두렵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기쁨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은 기쁨을 더이상 느끼지 않기 때문입니다. 언니는 결혼 전 소파수술을 하던 날, 당신이 함께 병원에 가줄 것을 요구합니다.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당신이었기 때문인데, 언니는 바로 그 날 부터 당신과 멀어질 결심을 한 듯 새침하게 나와 거리를 둡니다. 당신은 딴에는 언니와의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했다고, 이만치 했으면 최선을 다한거라고 어느 순간 포기하고 언니뿐 아니라 부모와도 멀어집니다. 당신은 혼자이고 싶었던 것이고, 회피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자유로운 삶을 가장해 비겁했던 자신을 발견하고는, 당신은 자전거를 타다 갈대밭에 나뒹굴며 다시는 회복되지 않길, 다시는 이곳에서 몸을 일으킬 수 없길 어딘가인지도 모르는 곳을 향해 중얼거리며 죽은 언니를 향해, 자식을 먼저 보내고 힘겨워했을 부모님을 향해 속죄의 기도를 합니다.
다음 소설인 <에우로파>속 인아와 언니의 모습이 겹쳐보이는데, 인아는 한창 사회생활에 무르익어 자신의 길을 갈 수 있었던 시점에 급하게 의사와 결혼하게 되고 그 이유를 그가 의사이기 때문이며 자신은 속물이고 '위대함'이라는 것이 결핍되어 있기때문에 했던 결정이었음을 허심탄회하고 담백하게 고백합니다. 언니는 당신에게 어떤 '위대함'을 느꼈던 것이고, 당신은 자유롭게 살아간다는 미명하에 일종의 책임과 의무, 사랑에 소홀했던 것입니다.
당신은 알고 있다. 이 주말 당신은 부모님을 위로하러 가야 한다. 당신이 그들을 애써 위로하지 않는다 해도, 남은 자식이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들은 위로 받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당신은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한다. 혼자 있고 싶어 한다. (P48)
그때 당신은 그녀를 이해한다고 느꼈다. 여러 겹 얇고 흰 거튼 속의 형상을 짐작하듯 어렴풋하게.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애가 아니었다. 다만 가장 안전한 곳, 거북과 달팽이들의 고요한 껍데기 집, 사과속의 깊도 단단한 씨방같은 장소를 원하는 것 뿐이었다. (P52)
미친듯이, 아무 까닭도 없이 소리를 지르고 싶은 기쁨을 느꼈다. 그러니까 지난 팔월, 당신의 언니가 친정의 누구에게도 알이지 않은체 형부의 차에 실려 병원을 오가고 있었을 떄 당신은 그렇게 미칠듯한 기쁨을 느꼈다.(P59)
당신이 기쁨을 두려워한 것은 불필요한 일이었따. 당신은 기쁨을 느끼지 않는다.(P67)
<에우로파>는 그리스 신화 속 ('에우로페'로 알려져 있기도함)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여성으로, 제우스는 꽃을 따고 있는 그녀에게 반해 황소로 변신해 접근해 그녀와 정을 통했다고 하는 이야기속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현재 '유럽'대륙의 이름과 '유로파'라고 하는 위성의 이름이 에우로파에서 유례되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화자인 '나'는 초등동창의 소개로 인아라는 여자를 소개팅으로 만나는데, 인아는 몇 개월후에 결혼을 앞두고 있습니다. 인아가 결혼 한 후 연락이 뜸해졌지만 6년의 지옥같은 결혼생활을 마친 후 나는 주기적으로 인아와 만나 화려한 유흥가를 산책합니다. 나는 남자이지만 여자의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인아의 집에 들러 화려한 화장을 하고, 긴 머리 가발을 쓰고, 하늘거리는 원피스에 굽 높은 하이힐을 신고 거리를 나섭니다. 편견과 혐오, 경멸과 공포의 시선이 따갑지만 냉정하게까지 느껴지는 무덤덤한 기운을 내뿜은 인아와 함께라면 무사히 그 따가운 시선들의 공격을 견뎌낼 수 있습니다. 인아는 이혼후 싱어송라이터가 되어 이제 제법 단독 공연을 할 수 있을 만큼의 인지도를 얻게 됩니다. 인아는 만약 내가 원하는 대로 태어났다면 뭘 했을 것 같은지, 원하는 대로 다 살아낼 수 있다면 뭘 할 것 같은지 나에게 묻습니다. 악의가 없는 것은 알지만 트렌스젠더임을 감추고 몰래 자신의 성적 취향에 맞게 살아가고 견뎌내고 있는 나는 인아에게 닥치라고 욕지거리를 퍼부어주고 싶고 마음을 억누릅니다. 목성 주변을 끊임없이 돌고 있는 위성처럼, 무언가 알 수 없는 인아의 매력에 이끌려 그녀 주위를 끊임없이 맴도는 운명에, 빨려들어가는 불분명한 어둠에 나는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고 싶은 마음을 억누릅니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처럼 경멸과 공포와 혐오의 시선을 던지는 대신 나를 한 여자로, 여자 친구로 거리낌없이 무심하게 대하는 인아에게 나는 자연스럽게 끌리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표현하고 드러내어 해소하지 않는 그녀가 겪었을 지옥같은 결혼생활을 음악이라는 그녀만의 방식으로 거친 가사로 풀어내고 있는 것을 말없이 위로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날의 산책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시선을 견디는 것이다. 편견과 혐오, 경멸과 공포의 시선들, 떄로 노골적이고 더러 은근한 그것들을 감지하며 잠자코 나아간다. (P87)
하지만 완전히 죽은 줄 알았떤 화분에서 기이하게 선명한 꽃이 피듯 인아는 되살아났다.
(그런 결혼은 왜 갑자기 했던거야?)(상대가 의사라서.)(그게 다였어?)(내가 속물이라서.)(신랄하구나.)(근본적으로, 나라는 사람한테는 위대함이 결핍돼 있어.(P91)
내 안에서 가볼 수 있는 데까지는 다가봤어. 밖으로 나가는 것 말고는 길이 없었어. 그걸 깨닫는 순간 장례식이 끝났다는 걸 알았어. 더 이상 장례식을 치르듯 살 수 없다는 걸 알았어. 물론 난 여전히 사람을 믿지 않고 이 세계를 믿지 않아. 하지만 나 자신을 믿지 않는 것에 비하면, 그런 환멸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P98)
사람이름이라고 착각하기 쉬운 <훈자>는 파키스탄 동북쪽 산간지방의 천년전에 멸명한 훈자국을 일컫는 지명 이름입니다. 훈자는 아직 때 묻지 않는 원초적인 순수함이 있는, 처음의, 평화로운, 무언가에 짓눌림이 없는 무의 상태을 상징합니다. 작중 화자인 그 여자는 7년전 팀원들과의 식사자리에서 만년설이 에워싸고, 살구꽃이 끝없이 피어있는 훈자를 알게 됩니다. 이후 그 여자는 생각날때마다 포털사이트에 훈자를 검색하여 관련된 사진과 글을 탐색하곤 합니다. 남편은 2군데 수도권 대학에서 교양철학을 가르치는 시간강사로 아직 변변한 정식 직장이 없는 상황에서도 아이육아나 살림에 대해서는 일체 도움을 주지 않는 남자입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살아가는 그 여자에게 남편은 대단한 사람이라고 추켜세우지만, 다만 견디고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남편은 자신을 혐오하고 있을 뿐 그 여자를 혐오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그 혐오하고 있는 삶 안에 아이도 혐오하고 있냐는 그 여자의 다그침에 몰아세우지 말라며 대답을 회피합니다. 고단하고 한치 숨 쉴 틈조차 없는 삶을 중단하고 훈자로 훌쩍 떠나고 싶은 그 여자는 아이의 사고 소식에 이성을 잃고 아이를 향해 가는 차안에서 생각합니다. 그날 이미 죽어 있던 들고양이위를 지날 때 느꼈던 그 형언할 수 없는 물컹함을 기억하며, 자신이 죽이지 않았다고 이미 죽어있었다고 외칩니다. 제발 무사하기만을 기도합니다. 훈자는 아마도 그 여자의 기댈 구석이었고, 검색하는 것 만으로도 이미 그곳을 걷고 향유할 수 있는 희망의 끈이었을지 모릅니다. 아무 걱정과 시름이 없었던 그 때 그 시절이었을지 모릅니다. 이미 도로위에 죽어 있는 들고양이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의 짐, 벽, 번뇌, 고통, 고단함이고, 꺼려지고 두려웠지만 그 위를 지나 넘어 갔던 그 여자는 그것들을 어떻게든 깨부수고, 넘고, 타협하려 했던 것이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 점에서 마지막 <노랑무늬영원> 속 들개와 이를 피하기 위해 이리저리 급하게 방향전환을 하다 전복되어 왼손에 다시 회복할 수 없을 정도의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작중 화자 '나'와 비교되는 부분이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훈자는 다음 소설 <파란 돌>과 유사한 상징성을 가진다고 보여집니다. 삶에 대한의지, 순수함, 수많은 물 속 돌 중에 꼭 찾아야만 하는 찾고자 하는 생의 찬란함, 그것이 훈자이고 파란돌이 아닐까요?
어느 날인가부터, 수면 부족 때문에 실제보다 표면이 건조하고 거칠어 보이는 사물들 위로, 결코 훈자일 수 없는 것들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그것이 훈자라는 것은 오직 그 여자만 알 수 있는 것들, 그것이 왜 훈자인지 누구에게도 자신에게조차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었따. 대학 시절 한 선배와 도서관 뒤쪽의 벤치에 앉아 있었떤 오후였따. 다음으로 더 짧게 떠오른 것은, 그 여자가 아홉살이었을 떄 두달 동안 키웠던 병아리였다.(P121~122)
(지치지만 견디는 것 뿐이야.)( 내가 경멸하고 혐오하는 것은 내 삶이야. 불가피하게 당신이 내 삶의 일부가 되었을 뿐이지. 당신이라는 여자를 따로 혐오하지 않아.)(그럼, 그렇게 당신의 삶을 혐오할 떄 그 속에 있는 아이는? 아이도 혐오해?)(...그렇게 거칠게 말하지마. 나를 몰아세우지 마.)(P125)
그 여자는 라디오를 켜따가 끈다. 테이프를 집어넣었다가 이내 빼낸다. 그르릉 그르릉, 십 년 된 차가 앓는 소리 같은 소음을 낸다. 내가 안 죽였어, 라고 그 여자는 낮게 중얼거린다. (P126)
<파란 돌>은 한강 작가의 장편 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 속 한 부분이라는 것을 해당 소설을 읽은 독자라면 제목만 보고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바람이 분다, 가라> 속에서도 '파란 돌'이 나오는 부분이 절망에서 허우적대며 죽음까지도 생각하고 있던 주인공이 이 장면을 떠올리며 생에 대한 의지, 삶의 의미를 드러내 인상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역시 한강 작가는 이토록 잔인하지만 또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이기에 희부연 희망, 살아있음에 찬란함 그래서 살아야만 하는 인간의 운명의 끈을 놓치지 않습니다. <파란 돌은>은 작중 화자인 '내'가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 즉 서간체 형식의 소설입니다.
당신은 내 초등학교 동창의 삼촌으로 피가 응고되지 않는 불치병에 걸려 평생 피를 흘리지 않기 위해 있는 듯 없는 듯, 땅을 딛는듯 그 위를 나는 듯 살아온 사람입니다. 당신은 검은 먹을 입힌 이합한지 가운데에 원반 모양으로 두툼한 종이 죽 덩어리를 붙여놓고, 거기에 정원용 스프레이로 흠뻑 물을 뿌려 삼투압과 모세관 현상 원리를 활용하여 흰 물길들이 둥글게 먹을 밀고 번져나가게해, 물길이 다 번져나간 자리가 불꽃의 가장자리처럼 보이는 신기한 그림을 그리는 화가입니다. 당신의 작업을 방해하지 않는 다는 약속을 하고 나는 몇시간이고 당신의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봅니다. 살뜰하고 다정한 당신에게 나는 편안함과 따뜻함을 느끼고, 어느새 당신과 나는 입을 마추고 서로 끌어안는 사이가 됩니다. 어느날 친구가 며칠 결석을 하고 삼촌의 모습또한 보이지 않게 되는데, 삼촌의 머릿속 혈관이 터져 피가 고여 죽을 고비를 넘기고 있었던 것을 나는 뒤즞게 알게 되어 두려움과 걱정에 잠못이루게 됩니다.
한때 미술잡지사에서 일했던 현재 나는 6살난 아들과 단둘이 살고 있는 37살의 이혼녀입니다. 7년의 결혼생활후 남은 남편에 대한 기억은 내 목을 조르다말고 안방으로 들어가 잠들었던 지워지지 않는, 불현듯 떠오르는 그날입니다. 나는 사랑하는 아들을 두고 각진 노끈에 목을 메어 자살까지 생각했을 만큼 정신적으로 막다른 골목에 이른 상태였고, 그 때 불현듯 당신이 떠올랐습니다. 당신은 물 속에 손을 담궈 파란돌을 찾아내 들곤한다는 꿈 이야기를 해주었고, 이제와서 갑자기 그 파란돌을 주우려면 살아야한다는걸, 다시 살아나야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이미 죽어 저 세상에 있는 당신에게 묻습니다. '거긴 지낼만 한가요. 빗소리는 여전히 들을만 한가요, 영원히 가져오지 못하게 된 감자 생각은 잊었나요. 오래전 꾸었다는 꿈속의 당신, 부풀어 오른 팔로 파란돌을 건지고 있나요. 물의 감촉이 느껴지나요. 햇빛이 느껴지나요. 살아있다는게 느껴지나요. 나도 여기서 느끼고 있어요.'라고. 그리고 나도 다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죽음과 늘 가까이 있었던 그가 그토록 찾아헤맸던 파란 돌을 집어 올리려 했듯.
각진 노끈을 서랍에서 꺼내 버린지 얼마되지 않았습니다. 진작 몇번이고 버리려 했지만 만질 수 없어서 그 자리에 두었떤 거였습니다. 일 년 가까이, 그런 내 방에 숨어 있는 사람같았습니다. 내 모든 걸 알고 있는, 사실은 잔인한 사람. 처음 그것을 적당한 길이로 끊으며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모서리가 각이 져서, 그래도 끈의 기억은 괜찮습니다. 잠든 지 채 십분이 되기 전에 목줄기에 느껴지는 손의 감촉, 따뜻한 첫 열기와 악력의 기억에 비하면 말입니다.
그때 갑자기 안 거야. 그걸(파란 돌) 주우려면 살아야 한다는걸. 다시 살아나야 한다는걸.
<왼손>과 <노랑무늬영원>은 모두 팔과 관련된 소설로 팔을 제어하지 못하는 혹은 팔을 제 맘대로 쓰지 못하는 상황이 어떻게 삶을 파탄에 이르게 하는가를 극명하고 신랄하고 극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왼손>은 더할나위없이 평탄한 결혼생활을 하던 중 아이의 출산이후 관계가 소홀해진 그와 아내, 그리고 그의 지난여자친구에 얽힌 심리추적극입니다. 한강식 심리스릴러나 미스테리 소설이 있다면 이런 분위기이겠다 싶은 스토리와 구성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코곯이와 들쑥날쑥한 출퇴근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아내와 아이를 피해 서재에서 따로 잠을 청하게 된 그는 은행 대부계의 대리로 일하고 있던 중 대출서류 미비로 신부장에게 모욕적인 질타를 받게되는데 자신도 모르게, 정확히는 자신 안에 또 다른 사람이 들어와 그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왼손이 신부장의 입을 틀어막아버리는 일을 겪게 됩니다. 충격에 휩싸여 퇴근길 버스를 타고 가던 중 꽃을 가꾸고 있는 여자를 보고는, 이번에도 내 안에 또 다른 사람에 의해 저도 모르게 왼손이 버스 벨을 눌러버리고 결국 의지를 거스르며 버스에서 내리고 맙니다. 그런데 우연히도 그 여자는 대학시절 연극부에서 잠깐 동안 인연을 맺었던 선혜였고 당시 그는 그녀에게 좋아하는 마음을 가졌으나 마음을 채 표현하지 못하고 헤어지고 말았던 과거 인연을 가지고 있었던 여인이었습니다. 선혜는 7년의 결혼생활을 했으나 원하던 임신을 하지 못하여 애를 끓는중에 남편이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제정신이 아닌채로 주머니에 커터칼을 넣고는 남편의 직장을 급습해 그를 죽이겠다고 악다구니를 지르는 지경에 이르게 되고 결국 남편과 이혼하고 맙니다. 이후장신구를 직접 만들어 팔며 생계를 유지하던 중 그와 재회하게 된 것입니다. 다시 재회한 그 날 아내와 아이가 있냐는 선혜의 물음에 선뜻 대답하지 못하자 선혜는 그가 솔로라고 오해를 하게 되고 둘은 밤을 함께 보내게 됩니다. 그는 출근을 하였으나 계속해서 제어되지 않는 왼손때문에 지점장으로부터 연차를 쓸 것을 권유받고 다시 선혜를 찾게 됩니다. 다른떄와 많이 달라보이는 그에게 깨림찍함을 느낀 선혜에게 결국 그는 아내와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들켜버리고 말았고, 남편의 바람으로 이혼을 한 아픔을 겪은 선혜는 그를 극구 거부하지만 왼손은 급기에 선혜를 겁탈하기에 이르렀고 선혜는 바람난 남편을 죽여버리겠다고 찾아갔을 때 들고 갔던 커터칼과 비슷한 작업용칼로 그의 왼팔을 찔러버립니다. 피를 철철 흘리며 집에 돌아온 그앞에는 남편의 무심함을 견디지 못하고 이혼을 결심하고 집을 떠날 결심을 하고있던 아내가 있습니다. 아내는 피가 낭자한 그의 모습을 보고 놀라는데 또다시 제어 되지 않는 왼손의 폭력적인 모습에 무서워 도망간 틈에, 그는 망치를 집어들고 왼손의 방해를 뚫고 왼손을 짓이기는데 성공합니다. 퇴직이 거의 확실시 되는 회사에 말을 듣지 않는 왼손을 가지고 출근할 수 없기에.
<왼손>을 읽는 데 이상의 <날개>라는 소설이 불현 듯 떠올랐습니다. 스토리나 주제에 있어서는 차이가 나지만 뭔가 궁금증을 유발하는 감각적인 문장과 치밀하게 켜켜이 절정을 향해 쌓아올라가는 심리와 감정묘사들에서 뭔가 비교거리가 찾아졌던 것 같습니다. 또한 이소설은 아이를 낳고 기르는 부부에게 주어진 의무와 책임감의 무게가 얼마만큼 큰지를 절실히 느끼게 해주는 소설입니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만해도 누구보다 평범하고 단란한 가정을 이루던 부부가 아이의 출산 이후 아내에게는 밤새 두세시간에 한번씩 눈을 떠 아이에게 젖을 물려야 하는 육아가, 남편에게는 가정경제를 부양해야한다는 부담감 앞에 댕그러니 놓입니다. 그와 아내 그 누구랄것도없이 모두의 어깨를 짓누르고 서로의 관계까지 소원해지게 하는 원인이 되어, 왼손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움직이게 하는 또 다른사람(그것은 아마도 또 다른 나의 자아일 것)을 등장시킵니다. 그럼에도 아내는 끝까지 아이를 지키려 노력하지만 나는 이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고 왼손의 지배(를 가장한 또 다른 자아를 불러일으켜)에 무방비상태로 당하고 맙니다. 해방과 자유에 대한 열망과 가장으로서 짊어져야하는 부담과 책임감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도중 결국 제 몸과 마음을 자신도 통제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그에게 직장은 삶을 지탱할 수 있게끔 해주는 최후의 보루였는데 여기서 해고를 당하는 것을 계기로 통제불가능한 폭력성이 발현된 왼손에 의해 죽음으로 날려드는 불나방같은 모습을 보여 주며 결국 왼손을 스스로 부수고 파멸을 맞이합니다.
세대의 수도꼭지를 틀고 찬물로 거품을 씻어내는 동안 그는 처음으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그의 왼손이 상처난 곳을 어루만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왼손의 감각을 뺨으로 느꼈고, 동시에 빰의 감각을 왼손으로 느꼈다. 평소와 똑같은 정상적인 감각이었다. 이상한 것은 그의 왼손이 마치 나름의 의지를 가진 것처럼 뺨의 상처 주변을 떠나지 않는 것이었다.(P159)
혹시 그런 경험 해봤어? 내 안에, 전혀 모르는 사람이 들어 있는것 같은 때.(P175)
가장 나쁜 것으, 왼손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할떄 그것이 무슨일을 하려 하는지 그가 전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P180)
마지막으로 <노랑무늬영원>이라는 제목에 대한 궁금증이 컸는데 예상외로 그것은 중동의 사막지방에서 서식하는 불도마뱀(Fire Salamander)의 이름이었고, '영원'이라는 것도 '끊임없이 계속되고 지속되다'라는 뜻이 아닌 동음이의어로 도룡뇽과에 딸린 속명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소설 속 나의 친구 소진의 큰아들이 동물사전 속 이 이름에 착안하여 자신의 도마뱀 이름을 '영원'이라 부르고 있기도 합니다. 불도마뱀은 이집트에서는 불 속에 사는 도마뱀으로 믿어지고 있는데, 이는 소진이네 도마뱀 앞발이 서랍에 잘려나가고 그 자리에 투명한 새발이 솟아나는 것과 같은 재생성과 모든것을 깨끗하게 태워버리는 불의 정화력이 결합되어 지어진 이름으로 보입니다.
작중 화자인 나는 그림그리는 것 외에는 일생에서 특별히 하고 싶었던 것이 없는, 그림을 그리다 93세에 죽었던 화가 Q의 삶을 직시하며 자신 또한 그림을 그리다 생을 마감해야 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는 화가입니다. 어느날 새벽 작업실로 가던 중 길을 지나가는 들개를 피해 핸들을 급격히 좌우로 꺽다 차가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하였고 이때 창문밖으로 반사적으로 뻗쳐나간 왼손이 신경까지 손상되어 쓸 수 없게 됩니다. 설상가상으로 오른손의 사용빈도가 많아지고 빠른 재활에 대한 욕심으로 과부화가 걸려 가벼운 찻잔 하나 들지 못할 지경으로 오른손까지도 망가지게 됩니다. 그렇게 2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따뜻하고 자상했던 남편은 그녀의 병간호와 모두 떠맡아야만 하는 집안일과 생활고에 지쳐 일거수일투족에 짜증과 쌀쌀맞음이 묻어납니다. 나는 남편을 이해하지만 병에 걸려 쓸모가 없어져버린 것에 대한 자괴감과 한없는 자기 멸시로 우울감에 사로잡혀 차라리 죽어버리는 것이 나와 남편 모두에게 최선의 선택이 아닌지 생각하기에 이릅니다. 그러던 중 친구 소진에게서 몇년만에 전화가 걸려오고 뜻밖에도 자신의 동네 사진관에 나의 20대로 보이는 사진이 걸려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기억속에 흩어져버린 이제는 사라져 버린 그것들에 대해 하나씩 되뇌어봅니다. 소진의 집을 방문하는 길에 자신의 사진이 걸려 있는 사진관을 발견하고 가게로 들어가 사정을 설명하니 찾아가지 않은 사진을 내다건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되고, 사진관 주인에게 사정하여 그 사진이 담긴 필름을 찾아 볼 수 있게 됩니다. 어렵사리 찾은 사진안에 담긴 그는 대학 졸업반 시절에 동네 뒷산에 오르다 잠시 일별해 마음에 담아두었던 남자 최인성이었습니다. 소진에 의해 밝혀진 그는 나와 산에서 만났던 그 즈음에 미국으로 가족들과 이민을 가 그곳에서 어머니 가게를 보다 총에 맞아 사망했음을 알게 됩니다. 문득 사고가 나던 날 금방들어온 심산으로 시계며 지갑을 두고 간 이후 다시 돌아와 그것들이 서랍장 안에 쳐밖힌 채 발견되고 아직까지 시계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돌아가고 있었던 것과 겹쳐지며, 고요히 잠들어 있었던 사진 속 그와 그때 그의 목덜미 솜털에 입맞추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깊은 후회와 내가 살고자 치열하게 재활을 하고 있을 때 그는 총에 맞아 죽어가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의 소식을 듣고 돌아 오는 길에 나뭇잎 사이로 태양빛이 만든 노란 동그라미들을 보며 사랑을 잃어버린, 잘려버린 마음의 속살이 노랑무늬영원의 투명한 새 앞발처럼 그 대낮의 노란 햇빛아래 돋아나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이미 죽어버린 마음을 되살려내는 것이 아니라, 송두리째 새로 태어나야 한다는 것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난 언제나 그렇게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을 감당해 내려하는 어리석음이 단점이었다. 순간적인 판단력도 부족했어. 항시 냉철하여, 때로는 잔인할 수도 있어야 하는데.(P216)
이제야 나는 깨닫는다. 이 여자(화가 Q)의 어딘가가 나와 닮았다는 것을. 과거 속의 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따. 이여자는, 2년 전의 내 갈망있다. 시간의 뒤편으로 들어가고 싶어 했던 나. 낡은 마룻바닥 속으로 희미하게 스며들고 싶었던 나. 천천히 세월에 지워지고 싶었던, 눈비와 들쥐들과 바람속에 폐가처럼 무너져 내려 앉고 싶었던 나.(P221)
전부라는 것을 잃고도 살아갈 수 있다. 이 년동안 나는 그림 그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환자. 한 남자의 골칫덩어리. 때론 오른손이 악화되면 자신이 쓴 물컵 하나 선반에 뒤집어 놓을 수 없는, 철저히 쓸모없는 존재.(P222)
깊은 밤. 잠에서 깨어 세면대에 딸린 거울을 보면, 숲한 동물적 감정들로 출렁거리는 내 내면이 간신이 한 겹의 피부로 봉합되어 있는 것 같았다.(P231)
콧잔등에 여드름이 빨갛게 익어있고, 잇몸까지 드러낸 채 활짝 웃고 있따. 아직 망가져 보지 않은 사람의 얼굴이다. 악몽을 꾸고 축축한 이불을 걷으며 일어나 본 적 없는 얼굴이다. 그때마다 마주하는, 마치 잿더미와 같은, 싸늘하게 식은 절망감을 모르는 얼굴이다.(P265)
노랑무늬영원, 하고 나는 입속으로 중얼거려 본다. 영원이라는 도룡뇽과에 딸린 속명일 뿐이라고 씌어있지만, 그 동명이의어인 울림은 갸날프게 내 마음을 움직인다. 왜인지, 어떤 것인지를 설명하기 어려울만큼 미미한 움직임이다. (P279)
우거진 나무를 올려보다가 나는 문득 놀란다. 역광을 받은 나뭇잎들의 형상이 낯익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무수한, 어두운 초록빛 동그라미들 틈으로 비쳐 나오는 햇빛. 좀더 걸어가다가 나는 흠칫 깨닫는다. Q가 그런것, 저것이었나. 저 노랑이었나. (283)
그 모든 것들이 고요히, 그 사진관의 먼지낀 상자속에서 잠들어있었다. 내 시계처럼. 이 년동안 어둠 속에서 죽지 않고 고요히 돌아가고 있었던 초침처럼.(P284)
만일 내가 이 세상에서, 사랑을 가진 인간으로서 다시 살아나가야한다면, 내 안의 죽은 부분을 되살려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 부분은 영원히 죽었으므로. 그것을 송두리째 새로 태어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하는 것이다.(P285)
노랑은 태양입니다. 아침이나 어스름저녁의 태양이 아니라, 대낮의 태앙이에요. 신비도 그윽함도 벗어던져버린, 가장 생생한 비츠이 입자들로 이뤄진, 가장 가벼운 덩어리 입니다. 그것을 보려면 대낮안에 있어야지요. 그것을 겪으려면. 그것을 견디려면. 그것으로 들어 올려지려면...그것이 되려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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