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폴란드의 풍차]를 읽고(책리뷰/독후감)/장 지오노
[폴란드의 풍차]는 20세기 프랑스 문학의 3대 거장 중 한 명인 장 지오노의 작품으로 코스트라는 남자가 '폴란드의 풍차'라고 불리는 별장을 짓고 그들의 딸 둘을 드 M 가문의 아들 둘과 혼인을 시키면서 시작되는 이른바 '코스트 가(가)의 저주'에 얽힌 연대기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은 소회는 원래 장 지오노의 글 쓰는 방식이 그러한지, 아니면 번역이 그러한지는 알 수가 없지만(프랑스어에 대해 문외한에 가깝기 때문에) 내용을 파악하고 글의 의미를 이해하고 글에서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이 여간 어렵지 않았음을 고백합니다.
이 작품은 연대기적으로 구성되어 있고 200여 페이지로 길지 않은 분량에 대비해서 등장하는 인물들도 적지 않아 그들의 삶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간략하게 축약되어 기술되고 있습니다. 특이한 점은 이 글을 이끄는 '나'(변호사 P, 145페이지에 처음으로 그의 직업과 이니셜로 표기된 이름이 나오고 있으며 그가 꼽추라는 사실은 192페이지에 '내가 꼽추라고 말한 적이 있던가?'라는 지나가는 의문문으로 넌지시 드러내고 있다)인 화자를 포함해 코스트가 사람들을 제외한 거의 모든 사람들이 드 M, 드 S와 같이 이니셜로 표기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역자의 설명을 참고하자면 운명에 맞서고 운명에 대항하여 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제외한, 운명에 순응하고 순리대로 살아가는(여기에서의 순리는 당시 귀족사회의 허세와 겉치레, 자신보다 더 센 힘을 가진 권력자에 대한 반사반응에 가까울 정도의 비굴함) 사람들은 모두 이니셜로 표기함으로써 그들의 실체에 대한 작가의 반감이나 불편한 감정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작가는 설명을 하는 것에 있어 매우 불친절합니다. 일단 처음부터 드 k라는 마을의 원로에 의한 추측에 의해 짧은 옷을 입은 예수회 (판사) 출신이라고 추측되는, 평민들에게 한없이 자상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귀족의 세계에서는 한없이 엄격하고 근엄하며 쉽게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조제프라는 남자가 어떻게 해서 드 M 가문의 쥴리를 만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설명하는 과정을 무려 책의 절반을 넘는 121페이지에 이르기까지 계속되고 있으며, 그때에 이르러서야 두 사람의 만남이 어떤 방식으로 어떤 때에 이루어졌는지 독자들이 알 수 있어 초반에 나왔던 조제프는 왜 등장한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절반 넘어 풀리게 된다는 점, 심지어 글이 끝날 때까지 조제프의 출신과 직업은 명확하게 나와있지 않으며, 쥴리가 죽었는지 그녀의 아들 레옹스는 어떻게 되었는지는 열린 결말로 남겨놓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한 주목해야 하는 점은 익명으로 표기된 귀족들의 이니셜 이름 앞에 '드'라고 하는 접두사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당시 프랑스 귀족사회에서는 우리나라 조선시대 후기에서와 같이 계급을 돈을 주고 사고, 이름을 바꾸어 귀족행세를 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가문들이 있었습니다. 누구나 돈만 주면 '드'를 붙여 품격을 높였던 것인데, 작품에서는 이것에 대해 간접적이기는 하지만 풍자작으로 비꼬는 구절도 나옵니다. (P146 참고)
대략적인 이 책의 줄거리를 확인해 보겠습니다. 어느 날 마을에 나타난 콧대 높고 말이 없으며 귀족에게 전혀 기가 눌리지 않아 귀족들의 심기를 거스르게 하는 조제프라는 남자가 나타납니다. 조제프는 로시가옹의 막다른 골목에 있는 구두 수선공 카브로 부부가 운영하는 구두 수선소 2층 방을 빌려 생활합니다. 그는 검소한 듯 보이지만 그가 가지고 온 고급 냅킨을 포함한 소지품을 통해 그가 꽤 저명하고 권력 있으며 금전적으로도 풍요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마을 사람들은 추측합니다. 그러던 중 마을에서 존경받는 드 K라는 원로의 말에 따르면 조제프가 짧은 옷을 입은 예수회 출신 즉 판사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언제든 소송의 당사자로 법정에 설 수 있는 마을의 귀족들은 일순 긴장하며 조제프의 눈치를 보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폴란드의 풍차'라는 별장이 내려다 보이는 산책장에서 축제가 열리고 이곳에 조제프가 등장하게 되는데, 그와 혼인을 원하는 수많은 가문의 여인들이 그의 앞을 성서거립니다. 그중 노처녀 엘레오노르 M과 소피 T가 적극적으로 조제프에게 접근하는데 사람들은 그녀들의 과거의 행적과 못생긴 외모등을 들어 그녀들을 비하했으나, 조제프는 바른 듯 두 여인을 한꺼번에 양쪽에서 팔짱을 끼고 미소를 보입니다.
여기서 '폴란드의 풍차'가 어떻게 지어졌는지 과거로 돌아갑니다. 그 별장은 코스트라고 하는 남자가 지은 것으로 그 남자는 변덕이 죽 끓듯 심한 남자로, 평온하고 친절했다가도 순식간에 폭군으로 돌변하곤 하는 남자입니다. 그 남자는 부인을 잃고 홀로 아나이스와 클라라라고 하는 두 딸을 키우며 그녀들을 애지중지했으며 그녀들의 최적의 혼처를 알아보기 위해 당시 그 지역에서 중매쟁이로 이름을 날리고 있던 오르탕스 양을 불러드립니다. 그 결과 드 M 가문문의 두 아들 피에르와 폴이 딸들의 남편으로 점지되고 혼인을 올립니다. 아나이스와 피에르의 큰딸 마리는 버찌가 목에 걸려 3살에 사망하고 막내인 아들 자크를 낳던 도중 아나이스가 죽습니다. 큰 아들 또한 정신병을 앓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립니다. 코스트가의 저주라고 불릴 정도로 가문의 사람들이 급사하거나 사라지는 일이 발생하자 클라라와 폴부부는 이 운명의 사실을 끊기 위해 그의 자식들과 함께 마을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베르사유 열차를 탔다 사고로 몰살당하고 맙니다.
자크는 태어날 때 얻게 된 이마의 상처를 안은 채 살아가는데, 자크를 보살피고 있던 유모의 딸인 조제핀과 혼인을 하며 슬하에 아들 장과 딸 쥴리를 낳습니다. 장 또한 할아버지 조제프와 같이 예측할 수 없는 흉폭함으로 무장한 사자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었고 학교를 다니며 <유령>이라는 별명을 가지게 됩니다. 조용하고 예쁘장한 외모를 지닌 쥴리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유령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는데, 이는 그녀가 조제프가 출신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학생들에게 심리적, 육체적 폭력을 당했던 쥴리는 그 충격으로 얼굴 절반이 일그러지고 추해지고 맙니다. 정신적으로도 느슨해지고 만 쥴리는 마을사람들에게 정신병자로 취급됩니다. 어느 날 마을에서 벌어진 <우애의 무도회>에 참석한 쥴리는 황홀경에 취해 춤을 춥니다. 사람들은 그런 쥴리에게 손가락질하고 험담을 하였고 쥴리는 무도회의 마지막 순서인 추첨시간에 공증인 P에게 '행복에 당첨될 수 있는지'를 물은 후 홀연히 마을의 골목길로 사라집니다. 나는 급하게 사라진 쥴리의 뒤를 쫓다 그녀가 조제프가 기거하고 있는 카브로 영감의 구두수선소로 들어가는 것을 발견합니다. 나는 이 사실을 드 K를 포함한 사람들에게 알리는 데 오래지 않아 조제프는 쥴리와 결혼할 것을 온마을 사람들에게 선포하며 마을사람들을 충격과 경악으로 이끕니다. 조제프와 쥴리는 임신이 잘 되지 않던 중 어렵사리 아들 레옹스를 낳습니다. 레옹스는 루이즈 V와 결혼하여 평화롭게 사는 듯 보였으나 어느 날 루이즈가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됩니다. 쥴리가 살고 있는 풀란드의 풍차 별장을 오로지 쥴리가 원하는 쪽으로 쥴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꾸미는 조제프는 별장 주변의 땅을 값에 상관없이 매입해 갑니다. 스무 살 차이가 나 노쇠해진 조제프는 죽고 그의 죽음에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던 쥴리는 레옹스가 기차를 타고 마을을 떠난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듣고 나를 찾아와 함께 기차역에 가줄 것을 요구합니다. 나 또한 나이가 들어 거동이 불편했지만 간절한 쥴리의 요구를 뿌리치지 못하고 역으로 향하는데 레옹스가 어떤 갈보여자와 떠났다는 사실을 역무원을 통해서 듣게 되고, 충격받았을 쥴리를 급하게 찾지만 그녀 또한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맙니다.
폴란드의 풍차는 그리스신화 비극에서 모티브를 따 온 이야기입니다. 그리스 신화 속 비극은 과거 조상들의 잘못이든 아니면 나의 잘못이든지 간에 그 일에 대한 대가로 혹독한 고통과 저주를 받게 되고 이 것이 훗날 나의 후손에게까지 미치게 되는데, 그 후손은 제 잘못도 없이 원인도 모른 채 고통당하기에 이르러 이를 지켜보는 독자들로 하여금 이들에 대한 슬픔과 애환, 동점심을 불러일으키게 하여 감정적으로 소용돌이치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합니다. 흔히 썩고 흔들거리는 이를 자꾸 건들어 얼얼해지는 통증을 자발적으로 느끼곤 하듯, 사람은 본능적으로 육체적 고통으로 정신적인 번뇌와 고민, 슬픔, 불안함을 덜어내는 해우소 역할로 활용합니다. 사람들이 피어싱으로 생살을 뚫고 온몸이 도화지라도 되는 양 문신을 하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나의 고통뿐 아니라 간접적으로 이야기 속 주인공을 통해서 느낄 때에도 비슷한 정도의 감정적 카타르시스에 도달한다는 점에서 흥미롭습니다. 희극뿐 아니라 비극이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양산되고 있는 것 또한 명확한 사실입니다. 슬픈 이야기를 보고 눈물콧물 질질 흘려대나 보면, 내가 가진 고민들은 티끌 같아 보이고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힘든 것이 인생이지!라고 하면서 제 마음을 다독이는 역할을 합니다.
글 속에서는 평범한 삶, 보통의 삶에 대한 갈구가 돋보입니다. 조제프나 장과 같이 성격에 있어서 널을 뛰듯 오락가락한 급변성을 보이는 것까지도 저주의 원인이 됩니다. 또한 소설 속에서 쥴리는 행복에 당첨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묻는데, 행복 또한 제비 뽑기와 같이 운명에 달려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만 현재에 이르러서는 행복을 가질 수 있을지 없을지 하늘에 맡겨야만 하는 것이 아닌 그것을 대하는 마음가짐과 자세에 달려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해봅니다. 같은 상황에 놓여 있어도 어떤 이는 불행하지만 또 어떤 이는 행복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돈이 많고 권력이 누리고 명예롭더라도 그것이 한 요소로서 작용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행복한 삶을 절대적으로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코스트가의 저주를 끊어내려면 내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것을 평범한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눌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은 아닐지! 또한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다른 이의 인생을 쉽게 재단하거나 판단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의 삶을 돌아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음흉하고 위선적인 사람이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그가 존경받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바로 그런 면이었다. 특히 사람들 앞에서 존경을 받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조제프 씨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바로 존경인 것 같았다.(P13)
이러한 사태는 무슨 일에도 결코 불안해하는 일이 없는 서민들이 전한 것이었다. (P21)
코스트를 분격시킨 것은 죽음이라기보다는 죽음이 다가올 때의 그 변함없는 모습이었다. 죽음은 언제나 느닷없이, 그리고 마치 북극광처럼 나타났다. 예외가 있다면, 붉고 극적이었다. 그는 잊을 수가 없었다. 그는 마치 화약 상자 위를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사람 같았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그는 화약이 폭발하거나 아니면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튀어 오르는 것을 보지나 않나 하고 기다렸다. 그는 사람이 악의를 갖고 운명을 대하고 있지는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끔찍한 것은 기다리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분격했다. 그는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자기 딸들도 내부에 운명을 짊어지고 있다고 확신했다.(P40)
코스트의 죽음은 사람들의 화재에 올랐다. 특히 낚시 바늘이 화제의 대상이었다. 그토록 대단한 인물을 낚기에 그것은 정말 너무도 보잘것없는 물건이었다.(P51)
만일 의도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우리의 침실, 우리의 길거리는 페스트가 창궐했던 시절처럼 시체들로 즐비했을 것이다.(P70)
중요한 것은 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사는 이유를 갖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것을 발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도 늘 > 입으로 너그러움을 운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너그럽게 사는 이유를 발견하기 위해선 너그러움을 이루는 요소들을 자기 속에, 아니면 자기 주변에 갖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우리 내부 속에서 너그러움을 이루는 요소들을 갖기란 불가능하다. 나는 단지 왜 그런가 하는 이유만을 말하겠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물질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을 추구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다른 모든 사람보다도, 아니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다른 모든 사람처럼 덕목을 갖추기 전에 우리는 먹지 않으면 안 된다. 열에 아홉은 우리의 입을 채우기 위해선 남의 입을 털어야 하는 것이다.(P90)
정말 그녀는 그곳으로 가고 있었다. 나는 어떤 일이 될지는 침착하게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좌우지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느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조제프 씨의 창문에서는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카브로네 집 대문은 닫혀있는 법이 없었다. 쥴리는 대문에 몸을 기대었는데, 문을 열려고 애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숨을 돌리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어 그녀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P121)
만일 사람들이 내가 내 성을 버리고 내 아내의 성을 취한다면, 그건 내가 칭호에, 즉 귀족성 앞에 붙는 <드>에 끌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겠군요(P146)
그가 쥴리를 사랑하고 있으며 그녀에게 가낭한 최상의 것, 특히 그녀가 이제까지 가지지 못한 것을 베풀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말이다.(P153)
V... 씨 집안 쪽에서나 드 M 씨 집안 쪽에서나 단 하나의 어려움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가진 두려움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즉 그들은 사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아름다웠던 것이다.(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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