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2 [한국단편문학선 1]을 읽고(책리뷰/독후감/빈처/운수 좋은 날)/현진건
<빈처>와 <운수 좋은 날>은 현진건의 작품으로 가난에 찌든 아내에 대한 안타까움과 비애와 사랑이 담긴 이야기입니다.
<빈처>는 작가를 꿈꾸며 글 쓰고 공부하는 것 이외에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지 못하는 내가 화자가되어 결혼 전 남부럽지 않게 풍족한 삶을 살다가 가난한 무명작가의 아내가 되어 매일 끼니를 걱정하면서도 남편의 앞길에 장애물이 될까 내색도 자제하며 살아가는 지고지순하고 생활력 강하고 근면성실한 아내와 살며 여러모로 부족한 나를 위해 헌신하는 아내에 대한 사랑과 고마음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마땅한 돈벌이가 없으니 아내는 세간들을 하나둘 저당 잡혀 마련한 돈으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합니다. 그러던 중 장인어른의 생신잔치에 초대를 받아 아내와 함께 무거운 발걸음으로 처가댁에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눈가에 멍이 든 아내의 언니, 처형을 보게 됩니다. 처형의 남편은 꽤 돈벌이가 좋아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고급으로 휘감고 있지만 남편의 바람기와 폭력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어느 날 처형이 집으로 찾아와 담소를 나누고 선물을 주면서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돌아갈 기차 시간을 넘기면 남편이 기다릴까 염려된다며 서둘러 자리를 뜨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생각합니다. 나의 아내도 정신적 행복에 만족하려 애쓰지만 부족한 것이 사실이며 단지 참을 뿐이라는 것을. 이런 것을 생각하니 아내가 가엾고,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무명작가인 나를 이리도 아껴주고 인정하여 준다는 사실에 새삼고맙고 사랑스럽습니다. 당시 지식인들이 세속적 삶에 목메어 사는 것을 치욕스럽고 구차한 것으로 느끼며 가정생활에 소홀히 하며 계집질을 일삼은 것에 반해 빈처 속 나는 제 무능함을 솔직히 인정하나 자존심과 신념은 굽히지 않고 다소 보수적인 모습을 보이기는 하나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며 제 아내를 사랑스러워 하고 있음을 소심하게나마 밝히는 당시로서는 드문 사랑꾼 지식인입니다.
나의 유일한 신앙자이고 위로자이던 저까지 인제는 나를 아니 믿게 되고 말았다.
나는 점점 강한 가면을 벗고 약한 진상을 드러내며 이와 같은 가소로운 변명까지 하였다.
정말 그래요,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도 의좋게 지내는 것이 행복이에요.
그까짓 것이 기다리는데 그다지 급급히 갈 것이 무엇이야. 밉살스러우니, 추근추근하나 하여도 물질의 만족만 얻으면 그것으로 위로하고 기뻐하는 그(처형)의 생활이 참 가련하다 하였다.
처형이 동서를 밉다거나 무엇이니 하면서도 기차를 놓치면 남편이 가다릴까 염려하여 급히 가던 것이 생각난다. 그것을 미루어 아내의 심사도 알 수가 있다. 부득이한 경우라 하릴없이 정신적 행복에만 만족하려고 애를 쓰지 마는 기실 부족한 것이다. 다만 참을 뿐이다.
아직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무명작가인 나를 다만 저 하나가 깊이깊이 인정해 준다! 그러길래 그 강한 물질에 대한 본능적 요구도 참아가며 오늘날까지 몹시 눈살을 찌푸리지 아니하고 나를 도와준 것이다.
<운수 좋은 날>은 반어법적인 메타포로 가득한 소설로, 꼬리에 꼬리를 물로 찾아오는 행운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많은 돈을 벌어들인 인력거꾼인 김첨지가 번 돈으로 술 한잔 걸쭉하게 걸치고 돌아간 집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죽은 아내의 시체와 그 아내의 나오지도 않는 젖을 쪽쪽 빨고 있는 젖먹이 아들뿐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하루에 돈 몇 푼 건지기 힘겨웠던 김첨지가 비가 퍼붓는 날에도 일을 쉬지 못하고 나와 가는 곳마다 꽤나 건수가 좋고 수월한 손님들을 만나 보통 때보다 서너 배의 수익을 올리고 기분이 좋은 가운데, 뭔가 꾸리꾸리하고 거슬리는 불길한 기운 때문에 마음 한 구석이 찌릿하니 뭔가 걸린 기분을 좀체 떨칠 수가 없습니다. 아침에 나올 때 비가 오니 오늘은 나가지 말라고, 불길하니 나가지 말라고 바짓가랑이 잡던 아픈 아내와 아직 젖도 못 뗀 어린 아들을 집에 남겨두고 온 것입니다. 힘겨운 일을 마치고 집으로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선술집에서 친구를 만나 거하게 한잔 쏘고 아내에게 줄 설렁탕 한 그릇을 싸서 집으로 향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내는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습니다.
뭔가 안 좋은 일에 계속해서 괴로움을 당하면 얼마나 좋은 일이 오려고 이러나 하고 액땜을 했다며 더 좋은 일에 대한 기대를 하듯, 좋은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되면 좋기만 하기보다 마음 한편에서는 뭔가 안좋은 일이 닥칠 것만 같아 불길한 마음이 드는 때가 있습니다. 이런 큰 좋은 일 뒤에는 왠지 좋지 않은 일이 있을 것만 같은, 우연 같은 필연이 우리의 인생사에서는 수시로 찾아들기 때문입니다. 김첨지는 아내에게 우라질 년이라며 일상다반사로 욕설을 퍼붓지만, 그 안에는 아픈 아내가 걱정되는 마음을 투박하게 내지르는 그 시절 가부장적인 아버지들의 모습이 엿보입니다. 불안해서 더 큰 목소리로, 더 거칠고 모진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애써 두려움을 억누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토끼 같은 자식에게 곱고 사랑스러운 말과 행동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부족할 터인데, 1900년 내 내외 척박하고 가난에 찌든 우리네 민중들의 삶은 너무나 고단하였고 고통스러웠고 굶주렸고 아팠기에 가족에게조차도 따뜻한 말 한마디, 아낌없이 정성껏 매만져주고 안아주는 그러한 일들 조차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 나의 조국에서 크지는 않지만 안락한 집에서 곡기가 끊길까 걱정하지 않고 알콩달콩 가족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이고 행운인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그의 행운은 그걸로 그치지 않았다. 김첨지는 잠깐 주저하였다. 이상하게도 꼬리를 맞물고 덤비는 이 행운 앞에 조금 겁이 났음이다. 그리고 집을 나올 제 아내의 부탁이 마음에 켕기었다. <오늘 나가지 말아요. 제발 덕분에 집에 붙어 있어요. 내가 이렇게 아픈데...>
오늘 운수가 괴상하게도 좋으니까 그런 요행이 또 한 번 없으리라고 누가 보증하랴. 꼬리를 굴리는 행운이 꼭 자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내기를 해도 좋을만한 믿음을 얻게 되었다.
<이 난장 맞을 년, 남편이 들어오는데 나와보지도 않아. 이 오라질년.>이라고 고함을 친 게 수상하다. 이 고함이야말로 제 몸을 엄습해 오는 무시무시한증을 쫓아버리려는 허장성세인 까닭이다.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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