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터디 위드 돈벌러 썸네일형 리스트형 조선 왕조 최악의 폭군, 패륜의 대명사 연산군 그리고 장녹수 3 조선 왕조 최악의 폭군, 패륜의 대명사 연산군 그리고 장녹수 3(옥지화 사건부터 죽음까지) 10. 장녹수가 연산군의 마음을 어느 정도 잘 읽었는지 보여주는 사건 어느 날 연산군은 조정 신료들과 그들의 부인까지 함께 참석하는 부부동반 연회를 열었습니다.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던 그때 연산군은 연회장을 쓰윽 둘어보고는 장녹수에게 속삭입니다. "내 오늘은 저 여인이 마음에 든다" 연산군은 남편이 보는 앞에서 그의 부인을 자신의 하룻밤 상대로 지목한 것입니다. 아무리 왕이더라도 신하의 면전에서 신하의 부인을 침전으로 부른다는 것이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으므로 장녹수에게 대신 불러달라고 한 것이었습니다. 연산군의 의중을 간파한 장녹수는 곧바로 연산군이 지목한 부인의 머리단장이 잘못됐다며 머리단장을 고쳐야 한다는 핑.. 더보기 조선 왕조 최악의 폭군, 패륜의 대명사 연산군 그리고 장녹수 2(갑자사화부터 죽음까지) 조선 왕조 최악의 폭군, 패륜의 대명사 연산군 그리고 장녹수 2(갑자사화부터 이병정 사건까지) 5. 갑자사화의 계기, 연산군 어머니 폐비 윤 씨의 죽음 장녹수가 입궁한 지 3년째 되던 해인 1504년 3월 20일, 장녹수조차 예상하지 못한 피바람이 궁궐에 몰아닥치게 됩니다. 갑자사화는 '무오사화' 6년 후에 벌어진 두 번째 사화입니다. 무오사화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하게 많은 피가 궁궐을 적시게 됩니다. 갑자사화는 조선시대 희대의 간신인 '임사홍과 임숭재' 부자가 주도하여 시작됩니다. 연산군은 평소와 같이 임숭재의 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때 임사홍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지기 시작합니다. 연산군이 왜 그러는지 묻자 임사홍은 조심스레 입을 엽니다. "전하, 폐비한 일이 원통하옵니다." 로 .. 더보기 조선 왕조 최악의 폭군, 패륜의 대명사 연산군 그리고 장녹수 1 조선 왕조 최악의 폭군, 패륜의 대명사 연산군 그리고 장녹수 1(연산군과 장녹수의 만남) 1. 흥청망청 연산군의 기생을 향한 사랑은 유별난 것으로 유명합니다. 연산군은 전국의 기생들을 불러 모아 '운평'이라 이름 붙이고 그중에서도 가장 예쁘고 노래 잘 부르고 춤을 잘 추는 운평들을 뽑아 '흥청'이라고 부릅니다. 즉 최고의 운평을 이르는 말이 '흥청'이었던 것입니다. '흥청망청'이라는 말이 여기에서 나온 것입니다. 흥청들이랑 놀다가 나라 망한다는 것으로 돈이나 물건을 마구 사용하거나 흥에 겨워 마음대로 즐기는 것을 뜻합니다. 연산군은 흥청들에게 수시로 재물과 노비를 내린 것은 물론이고 그들의 부모를 한양으로 불러 집과 땅을 하사하기까지 합니다. 연산 10년 운평과 흥청의 수가 1000명으로 증원되었고 이후.. 더보기 피의 쿠데타로 고구려 최고 관직에 오른 고구려 최고 장수 연개소문 2(2차 여당전쟁, 평양성 전투부터 고구려 멸망까지) 피의 쿠데타로 고구려 최고 관직에 오른 고구려 최고 장수 연개소문 2(2차 여당전쟁, 평양성 전투부터 고구려 멸망까지) 8. 연개소문, 태대대로(太大大盧) 관직을 새로 만들다 기존에 고구려 관직 중 가장 높았던 것은 '대대로'였습니다. 연개소문은 '대대로'보다 더 높은 관직이라는 뜻으로 '태대대로'라는 관직을 새로 만듭니다. 대대로 와 태대대로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바로 임기입니다. 태대대로는 임기 없이 최고권력을 누릴 수 있는 무기한 종신직이었던 것입니다. 연개소문이 왕위에 직접 오를 수 없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연개소문이 왕이 된 다는 것은 전 왕조를 없애고 새로운 왕조를 만든 다는 것입니다. 전 왕조를 없애려면 뭔가 큰 하자가 있어야 하는데 고구려 왕실에는 흠결이 없던 상황이었습니다. 즉 연개소문이.. 더보기 피의 쿠데타로 고구려 최고 관직에 오른 고구려 최고 장수 연개소문 1(연개소문 가문 부터 안시성 전투까지) 피의 쿠데타로 고구려 최고 관직에 오른 고구려 최고 장수 연개소문 1(연개소문 가문부터 안시성 전투까지) 1. 연개소문 가문 고구려 최고 권력자인 연개소문집안이 고구려 멸망에 영향을 준 것에 대해서 알기 위해서는 연개소문 가문에 대해서 먼저 알아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연개소문은 고구려 최고 가문 중 하나에서 태어났습니다. 무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고구려 최고 관직, 지금으로 보자면 국무총리급인 '대대로'와 '막리지'를 역임했습니다. 대대로는 고구려 국정을 관리하는 최고관등이었고 막리지는 국사를 총괄한 관직이었습니다. 연개소문은 한마디로 당시 고구려의 유력 가문출신의 촉망받는 후계자였던 것입니다. 2. 연개소문의 세습을 반대하는 고구려 귀족세력들 고구려 최고 가문출신 연개소문이었지만 넘기 힘든 하나의 장벽.. 더보기 조선의 금지옥엽 경혜공주의 파란만장한 삶 2(동생 단종과, 남편 정종의 죽음부터 비구니가 되어 죽기까지) 조선의 금지옥엽 경혜공주의 파란만장한 삶 2(동생 단종과, 남편 정종의 죽음부터 비구니가 되어 죽기까지) 13. 단종복위운동 1456년, 세조에 반기를 든 세력이 본격적으로 저항을 나섭니다. 단종이 삼촌인 세조에게 폐위되자 이를 두고 볼 수 없다고 여긴 수십 명의 조정관료들이 세조를 암살하고 단종을 다시 왕으로 올릴 모의를 했던 것입니다. 한양을 뒤흔든 이 사건을 '단종복위운동'이라고 합니다. 단종복위운동의 중심세력은 '사육신'이었습니다. 사육신은 단종 복위에 목숨을 바친 여섯 명의 인물을 일컫습니다. 이들은 역모 혐의로 세조에 의해 죽음을 맞게 됩니다. 단종복위운동은 사육신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세조는 이 사건의 배후에 단종과 단종의 측근들이 있다고 믿게 됩니다.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사육.. 더보기 조선의 금지옥엽 경혜공주의 파란만장한 삶1(탄생부터 혼인, 유배까지) 조선의 금지옥엽 경혜공주의 파란만장한 삶 1(탄생부터 혼인, 유배까지) 1. 세종의 손녀 경혜공주 경혜공주(1435년~1473년)는 조선 4대 왕 세종의 손녀, 5대 왕 문종의 딸이자 6대 왕 단종의 누이입니다. 경혜공주는 할아버지 세종과 아버지 문종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조선에서 가장 사랑받았던 공주 중 한 명입니다. 이렇게 조선 왕실의 금지옥엽이었던 경혜공주는 남편 정종을 능지처참으로 잃고 속세에 두 명의 아들을 남긴 채 스스로 머리를 깎고 비구니의 삶을 살게 됩니다. 오늘은 경혜공주의 파란만장하고 기구한 삶에 대해서 다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2. 경혜공주가 '옹주'가 아닌 '공주'가 된 사연 조선 역사에서 가장 사랑받은 공주 중 한 명이었다는 경혜공주는 사실은 공주가 될 운명조차 아니었다.. 더보기 고려 공민왕과 원나라 노국공주의 사랑 2(공민왕과 노국공주의 죽음을 넘는 사랑이야기) 고려 공민왕과 원나라 노국공주의 사랑 2(공민왕과 노국공주의 죽음을 넘는 사랑이야기) 13. 공민왕 새 부인을 맞이하다 1359년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사이가 얼어붙을 만한 사건이 터집니다. '왕께서 즉위하신 지 9년이 되었는데도 아직 태자를 두지 못하였으니 양가의 여자를 뽑아 후궁을 채우시기를 바랍니다' 결혼 후 10년간 후사가 없었던 공민왕 부부에게 기다리다 못한 신하들이 제발 다른 부인을 더 맞이하셔라고 간청했다고 합니다. 더구나 누구보다 더 공민왕은 후사가 너무 중요했습니다. 자신과 대립하는 세력을 몰아내고 개혁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했던 것은 탄탄한 왕권의 기반이 되는 왕의 후계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공민왕에게 다른 부인을 들이라는 신하들의 요청에는 더 놀라운 비밀이 있었습니다. 신하들이 요청하는.. 더보기 이전 1 ··· 13 14 15 16 17 18 1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