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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이 된 세조 2(피부병에 걸려 결국 죽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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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이 된 세조 2(피부병에 걸려 결국 죽음까지)

11. 형수 현덕왕후 귀신 다시 꿈에 나타나다

불안한 세조의 삶을 너무나 괴롭게 만드는 결정적인 사건이 벌어집니다.

어느 날 깊은 새벽, 세조는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은 채 잠에서 깹니다.

그리고 사색이 된 얼굴로 불안에 떨었습니다.

꿈에 형수 현덕왕후 귀신이 다시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고는 충격적인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현덕왕후 귀신이 세조를 향해 퉤 하고 침을 뱉어버린 것입니다. 

세조는 찝찝한 마음에 온몸과 얼굴을 벅벅 긁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 날이었습니다.

세조의 몸에 오돌토돌한 종기 같은 것들이 돋아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세조가 피부병을 앓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현덕왕후가 꿈에 나타나 세조에게 침을 뱉은 후 세조가 피부병이 걸렸다는 이야기는 정말 유명한 전설로 이어져 내려옵니다.

전설로만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묘한 일들이 당시 궁에서 벌어집니다.

실제로 단종이 죽은 이후 피부병을 앓기 시작합니다.

실록에서는 관절염, 두통, 피부병을 통칭하여 풍습병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조를 비롯한 역대 왕들이 풍습병을 많이 앓았었는데 대체로 피부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덕왕후의 꿈 때문일 리는 없겠지만 백성들은 그렇게 믿고 싶었고 세조가 벌을 받는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만큼 불법으로 쟁취한 권력을 못마땅해하는 민심이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12. 세조, 손자 인성대군이 풍질에 걸려 죽다

그런데 지방행차를 다니던 1463년 10월 23일, 세조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옵니다.

세 살 밖에 안된 손자인 원손 인성대군이 갑자기 풍질에 걸린 것입니다.

풍질은 신경계통이 고장 나 생기는 풍병을 말합니다.

인성대군은 훗날 예종이 되는 세자 해양대군의 적장자였습니다.

왕실의 보위를 이어야 하는 원손 인성대군의 병에 궁은 발칵 뒤집히게 됩니다.

세조는 모든 치료법을 다 동원해서 인성대군을 살리라고 명합니다. 

그런데 다음날인 24일 새벽, 결국 인성대군은 세상을 떠나버리고 맙니다.

세조는 원손 인성대군의 죽음으로 억정이 무너져 내립니다.

맡아들에 이어 손자인 원손까지 죽으니 세조는 이성을 잃을 지경에 처합니다.

13. 세조, 세종의 묏자리를 알아보던 중 '절사손장자' 일화를 떠올리다

세조는 계속되는 불행에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이때 기억을 더듬어 가던 중 아버지 세종의 묏자리를 고를 때 함께 했던 풍수지리사 즉 지관이 한 불길한 이야기가 갑자기 떠오릅니다.

때는 1443년 2월 세종 재위 때의 일이었습니다.

이때는 세종이 자신의 묻힐 곳을 정하던 시기였는데 세종은 아버지 태종의 묘옆에 묻히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그곳의 형세와 지리가 어떤지 미리 알아보라 지시합니다.

이때 땅을 살피러 간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수양대군, 즉 세조였습니다.

태종의 묘 옆에 도착한 세조와 신하들, 지관은 땅의 형세를 꼼꼼히 살폈습니다.

그런데 당시 땅을 살펴본 지관이 '절사손장자(絶嗣孫長子) '라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꺼냅니다.

'절사'란 대를 잇는 자식 끊긴다는 것이고 '손장자'란 맏아들을 잃는다는 뜻입니다.

손이 끊어지고 맏아들을 잃는 땅이라는 것입니다.

세종이 정한 묏자리가 '왕실의 대를 이을 적장자가 죽어 나간다'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종은 그곳에 묻히겠다고 합니다.

세종은 꼭 아버지 태종 곁에 묻히고 싶었기 때문에 이런 섬뜩한 말에도 뜻을 꺽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세종은 1450년, 세종은 결국 뜻대로 태종의 묘인 헌릉 옆에 묻히게 됩니다.

그런데 세종이 승하한 후 왕실에 충격적인 일이 일어납니다.

세종의 아들과 적장자들을 그려놓은 가계도
세종의 아들과 적장자들을 그려놓은 가계도

세종의 아들과 적장자들을 그려놓은 가계도입니다.

세종의 적장자 문종은 즉위한 지 2년 만에 병으로 사망합니다.

그리고 문종의 적장자 단종은 17세에 유배지에서 사망합니다.

그리소 세조의 장남 의경세자는 20세에 병으로 요절합니다.

그런 와중에 예종의 적장자이자 원손인 인성대군까지 3살에 요절하고 만 것입니다.

왕실의 대를 이을 적장자들이 이유가 어찌 됐든 몇 년 사이에 연이어 사망한 것입니다.

지관의 말처럼 불행이 계속 닥치니 세조 역시 대가 끊길까 불안했습니다.

14. 세조, 공신 '양정'을 죽이다

1466년 3월, 세조는 강원도 고성과 금강산으로 향합니다.

피부병 치료를 위한 행차 때도 세조는 공신들과의 술자리는 빠지지 않았습니다.

계속되는 악재 속에 세조는 공신들과 술잔을 기울이면서 불안감을 털고 권력의 무탈함을 확인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마음의 안식이 되어야 할 술자리에서 뜻밖의 일이 생깁니다.

누군가에 의해 세조의 불안감에 또다시 불을 지핀 것입니다.

한명회의 천거로 세조의 측근이 된 무신 '양정'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양정은 계유정난 때 김종서 제거의 행동대장으로 나섰던 인물로 주로 변방에서 근무하다 오랜만에 중앙 조정에 복귀한 것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돌아온 양정을 위로하기 위한 술자리가 벌어집니다.

세조와 공신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주거니 받거니 하며 술을 마셨습니다.

분위기도 무르익고 세조와 공신들의 취기도 한껏 올랐습니다.

그렇게 즐거운 분위기가 이어지던 때, 양정이 갑자기 세조에게 폭탄발언을 합니다.

'전하께서 임어(임금의 자리에 오르신 지)하신 지가 이미 오래되었으니 오로지 한가하게 안일하심이 마땅할 것입니다'

<세조실록>

세자에게 왕위를 넘기고 물러나 그만 쉬라고 말한 것입니다.

양정의 폭탄 발언에 세조는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내가 왕위를 탐내는 사람이던가?'

세조는 이렇게 말한 후 승지를 향해서 한 마디를 더 합니다.

'옥새를 가지고 오라!'

옥새를 가져오라는 세조와 이를 반대하는 신하들로 술자리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 버립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 대신들이 고하며 들고일어납니다.

'양정이 불손하니 처벌하셔야 합니다'

그러자 이때, 세조는 양정을 참수하라고 명합니다.

술자리에서 누구보다 너그러웠던 세조였지만 양위까지 언급하는 공신의 태도는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사실 이번 사건은 세조가 공신을 너무 감싸면서 벌어진 부작용으로 보입니다.

세조가 공신세력을 확실하게 휘어잡지 못한 결과 세조의 권위에 흠집을 낼 만큼 기세가 등등해진 것입니다.

세조는 이번 일로 공신들의 기세와 건방짐에 놀랬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어떻게든 지키고 싶었던 공신들 간의 믿음이 아주 미세하게 허물어져 가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제 세조는 그렇게나 믿었던 공신들을 의심스럽게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공신들의 위세가 혹시 정권에 위협이 되지 않을까 염려한 것입니다.

게다가 건강 또한 나날이 악화되면서 불안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집니다.

15. 세조, 세종의 묏자리를 옮기려 했으나 실패하다

그렇게 불안이 계속해서 쌓이자 세조는 큰 결심을 합니다.

마음속에 자리했던 불안의 싹을 끊어내려고 한 것입니다.

세조가 공신들에게 아버지 세종의 묘를 옮길 것이니 다른 묏자리를 보고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세조는 왜 갑자기 세종의 능을 옮기려고 했던 것일까요?

능의 기운이 좋지 않다는데 아버지의 능이라도 옮겨 봐야겠다 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을 것으로 보이는 행동입니다.

세조는 그의 뜻대로 세종의 능을 옮길 수 있었을까요?

하지만 자신의 불안 해소를 위한 것만으로는 세종의 능을 옮길 명분이 부족했기 때문에 결국 능을 옮기는 것은 실패로 돌아갑니다.

신하들의 반대와 더불러 이장 비용 또한 만만치 않게 들어가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사유들로 깊은 고민 끝에 세조는 능을 옮기는 것을 포기합니다.

16. 세조, 경혜공주와 자녀들을 궁으로 불러들이다

세조는 이후 나날이 기력이 쇠약해집니다.

피부병 이외에도 온갖 병이 세조를 괴롭힙니다.

1468년 7월 세조는 공신들에게 한 가지 고백을 합니다.

'내가 차례를 어기고 외람되게 비기( 丕基, 왕의 지위를 뜻함)를 이어받았으나 재주가 없고 덕이 없어 이제 다시 생각하니 부끄럽기 그지없다'

<세조실록>

세조는 조카의 왕위를 찬탈한 것에 대해 뒤늦게서야 후회한 것입니다.

세조는 자신의 병이 낫기 어렵다는 것을 직감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의 죄를 털어놓고 불안과 죄책감을 씻어보고자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세조가 자신의 업보를 속죄하는 일이 또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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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세조는 경혜공주와 어린 자녀를 다시 궁으로 불러 돌봐주려 합니다.

이렇게 왕이 된 세조는 최고의 권력을 얻었지만 결국 세조에게 남은 것은 피부병에 걸린 육신과 후회뿐이었고 쓸쓸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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