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스터디 위드 돈벌러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이 된 세조 1(세조가 왕이 된 과정부터 세조 즉위 후 단종복위운동, 현덕왕후의 저주까지)

반응형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이 된 세조 1 (세조가 왕이 된 과정부터 세조 즉위 후 단종복위운동, 현덕왕후의 저주까지)

1. 세조는 어떻게 왕이 됐나

세조는 세종의 둘째로 태어나 왕자시절에는 수양대군으로 불렸고 둘째 아들이었기 때문에 왕은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세종의 가계도
세종의 가계도

하지만 둘째 왕자 수양대군은 가져서는 안 될 야심을 품고 있었습니다.

바로 '왕'이 되고자 했던 것입니다.

세종의 뒤를 이은 문종이 즉위 2년 만에 병으로 단명하고 맙니다.

이후 문종의 어린 아들 단종이 조선의 제6대 왕이 됩니다.

어린 왕이 즉위하면서 단종을 앞세워 조정의 권력은 김종서 및 의정부 대신들이 장악하게 됩니다. 

김종서의 견제에 왕이 되고 싶은 야심을 숨겨야 했던 수양대군은 조카 단종이 왕이 된 지 1년 만에 거사를 일으킵니다.

바로 '계유정난'입니다.

1453년 10월 10일 밤 당시 권력의 핵심이었던 김종서를 제거합니다.

그리고 세조는 한명회와 함께 살생부를 만들어 반대하는 신하들을 모두 숙청합니다.

그렇게 조선의 권력을 장악한 수양대군은 계유정난 2년 후에 조선 제7대 왕 세조로 등극하게 되고 단종은 상왕으로 물러나게 됩니다.

2.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이 된 세조, 단종의 친모 현덕왕후 귀신에게 저주를 받다

'네가 죄 없는 내 자식을 죽였으니 나도 네 자식을 죽이겠다'

<열려실기술>

이렇게 역사서에도 나오는 끔찍한 저주를 받은 사람은 바로  조선 제7대 왕 '세조'입니다.

세조는 조카 단종을 끌어내리고 왕위를 차지합니다.

도대체 누구길래 조선의 왕에게 이런 끔찍한 저주를 퍼부은 것일까요?

바로 세조의 형수이자 단종의 죽은 친어머니 '현덕왕후'입니다.

아들 단종이 고통스럽게 죽은 것에 대한 한을 풀기 위해서였을까요?

세조가 조카 단종을 죽이려고 한 그 무렵부터 죽은 현덕왕후의 귀신이 세조의 꿈에 나와 누가 들어도 섬뜩한 저주들을 마구 퍼부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꿈에서 현덕왕후 귀신에게 저주를 받은 후부터 세조에게는 상식적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도대체 왕이 된 후 세조에게는 무슨 일들이 벌어졌던 것일까요?

3. 세조를 불안하게 한 '단종복위운동'

세조 2년 1456년 6월 단종을 다시 왕위에 세우려는 모의가 발각됩니다.

이것을 '단종복위운동'이라고 부릅니다.

몇 명의 신하들이 세조를 죽이고 상왕인 단종을 다시 왕으로 올리려는 모의였던 것입니다.

세조는 이 모의를 누군가의 밀고로 알게 됩니다.

세조는 자신을 진정한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역모를 꾀한 신하들이 있다는 사실에 어마어마하게 분노하게 됩니다. 

그래서 세조는 당장 연루된 신하들을 잡아들여 고문하고 추궁했습니다. 

그때 추국 받던 자의 입에서 비수 같은 말이 날아옵니다.

'당신은 남의 나라를 도둑질하지 않았소!'

세조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관련자들을 잔인하게 처형합니다.

그때 사지가 잘리고 목이 베이는 등 끔찍하게 죽은 사람만 70명이 넘었습니다.

세조는 그렇게 조선에 또 한 번 피바람을 몰고 오면서 사건을 마무리합니다. 

그런데 즉위 초 벌어진 이 단종복위운동은 세조에게는 정말 치명타였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세조에게는 정통성이 없었기 때문에 늘 불안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세조를 왕에서 끌어내리려는 세력이 있다는 것을 직접 확인하는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세조는 자신을 둘러싼 신하들을 찬찬히 보면서 세조의 집권 자체를 부정하는 자들이 이 중에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을 하게 됩니다. 

4. 세조, 공신들에게 충성 서약을 받다 

그래서였는지 1456년 11월 14일, 세조는 전격적으로 종친부터 개국이례로 책봉된 모든 공신들에게 소집령을 내립니다.

그렇게 해서 총 200명이 넘는 공신들이 궁으로 집합했습니다.

세조는 공신들을 모아서 '오공신회맹축(五功臣會盟軸)'을 작성합니다.

'오공신'은 다섯 종류의 공신을 말합니다.

조선의 건국을 도운 개국 공신, 이방원이 주도한 1차 왕자의 난 때 공을 세운 정사공신, 2차 왕자의 난 때 공을 세운 좌명공신, 세조가 일으킨 계유정난 때 공을 세운 정난공신 그리고 세조가 즉위하는데 공을 세운 좌익공신들을 말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회맹'이라는 단어를 유심히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자를 보면 '모일 회와 맹세 맹'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즉 '충성 서약서'였습니다. 

이 회맹을 할 때 꼭 쓰이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짐승의 피'입니다.

짐승의 피를 입 언저리에 바르고 충성 맹세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공신은 세조 앞에서 구리 쟁반에 단긴 피를 나눠 마시고 대대로 충성할 것을 서약했습니다.

5. 세조, 단종을  단종복위운동의 배후로 지목

단종복위운동이 일어나고 1년 후인 1457년 6월, 세조에게 청천벽력 같은 고변이 하나 올라옵니다.

'판돈녕부사 송현수 등이 반역을 도모합니다!'

외척을 관리하던 관직  판돈녕부사를 지낸 송현수는 단종의 장인이었습니다.

단종의 처가에서 역모를 도모했다는 충격적인 고발이었던 것입니다.

이 일로 마음 깊이 가라앉았다고 생각했던 세조의 불안이 다시금 불쑥 솟아오릅니다.

분노한 세조는 충격적인 명령을 내립니다.

'상왕을 노산군으로 강봉하고 궁에서 내보내 영월에 거주시키라'

<세조실록>

세조는 조카인 단종에게 폐위나 다름없는 조치를 한 것으로도 모자라서 궁에서 멀리 떨어진 영월로 보내기까지 해 버린 것입니다.

사실 세조는 단종을 단종복위운동의 배후로 강하게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단종이 단종복위운동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던 그 와중에 단종 처가에서의 역모 고변을 들으니 단종이 그 배후에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금 의심을 하게 된 것입니다.

실록에는 단종이 단종복위운동을 알고 지지했다고 기록되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세조실록은 세조 때 계유정난의 공신들이 기록했었기 때문에 이것이 진실일지는 의구심이 있을 수밖에는 없습니다.

6. 세조, 현덕왕후의 능을 파헤치다

조카 단종이 영월로 떠나고 며칠 후 한양에서 멀지 않은 경기도 안산에서 백성들을 경악하게 만든 충격적인 일이 벌어집니다.

경기도 안산에 있던 현덕왕후의 능이 무참히 파헤쳐진 것입니다.

문종의 가계
문종의 가계

바로 단종의 친어머니 즉 문종의 아내였던 현덕왕후의 묘가 파헤쳐진 것입니다.

현덕왕후의 묘를 파라고 명령한 사람이 바로 세조였습니다.

'단종이 역모의 죄를 받고 강등됐는데 그 어미에게 왕후의 지위는 마땅치 않습니다. 폐하소서'

<세조실록>

신하들의 요청이 있자 세조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이를 승낙합니다.

능에서 파낸 현덕왕후의 유골은 어디에 다시 묻었을까요?

기록에 의하면 물가에 초라하고 볼품없게 묻어버렸다고 합니다.

그래도 한 때 왕후였던 사람의 유골인 자칫하면 떠내려갈 수도 있는 곳에 아무렇게나 묻어버린 것입니다.

종묘에 모셔진 조선 역대 국왕과 왕후들의 신주
종묘에 모셔진 조선 역대 국왕과 왕후들의 신주

이후 세조는 종묘에서 문종 옆에 있던 현덕왕후의 신주도 철거해 버립니다.

즉 왕후였다는 흔적 자체를 없애버린 것입니다.

7. 세조, 현덕왕후의 저주를 받다

'능을 파헤치기 며칠 전 밤중에 부인의 울음소리가 능 안에서 나오는데 내 집을 부수려 하니 나는 장차 어디 가서 의탁할꼬. 그 소리가 마을 백성의 마음을 아프게 흔들었다'

<연려실기술>

능을 파헤치기 전부터 현덕왕후의 능 주변에서 의문의 통곡소리가 들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능을 없앤 이후 능을 없앤 그 자리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납니다.

능이 있는 있던 그 자리를 누군가 밟으면 갑자기 비바람이 불어닥치는 등 흉흉한 일이 불쑥불쑥 생기곤 하는 것입니다.

마치 현덕왕후가 화가 나서 저주를 내리고 있는 것 같다는 이상한 소문들이 계속해서 백성들 사이에서 퍼져나갑니다.

그리고 현덕왕후의 무덤을 파헤친 바로 다음 날, 세조를 놀라게 한 충격적인 고변이 또 올라오게 됩니다.

'이유가 순흥에 있으면서 몰래 군소배와 결탁하여 불궤 한 짓을 도모합니다'

<세조실록>

세종의 가계도
세종의 가계도

이유는 세종의 여섯 번째 아들이자 세조의 친동생 금성대군이었습니다.

형 세조의 권력찬탈에 반대하면서 세조의 눈밖에 났고 이후 단종복위운동에 연루됐다는 혐의로 순흥에 유배를 가있었던 상태였습니다.

단종복위운동 때 세조는 금성대군을 유배지 거처에 가두고 24시간 감시하라는 엄명을 내린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한 대신이 안동에서 온 관노비에게 들었다면서 고하기를 지금 금성대군이 순흥에서 몰래 역모를 꾀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금성대군이 왕으로 세우려 한 사람은 바로 단종이었습니다.

결국 아무리 잘라내어도 단종을 복위하려는 고변이 계속해서 들오자 공신들과 종친들은 단종을 죽이라고 고합니다.

이 말은 들은 세조는 단종을 죽여야 한다는 마음이 점점 커졌을 것입니다.

8. 야사 연려실기술에 기록된 현덕왕후의 저주 이야기는 진실일까?

그러던 어느 날, 상상도 못 했던 일이 세조에게 들이닥칩니다.

그 일은 야심한 밤 세조의 침전에서 일어납니다.

잠들었던 세조가 인기척에 놀라 눈을 번쩍 떫니다.

자꾸만 느껴지는 시선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데 누군가 머리맡에서 세조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는 것입니다.

온몸에 소름이 돋은 세조는 놀란 눈으로 누군지 살피다 경기를 일으킬 만큼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바로 형수인 현덕왕후였던 것입니다.

그때 현덕왕후는 귀가 찢어질듯한 큰 목소리로 말합니다.

'나도 네 자식을 죽이겠다'

단종을 죽이려는 세조의 마음을 읽은 듯 세조의 아들 세자를 죽여버리겠다는 저주를 퍼부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환관이 세조의 침전으로 뛰어 들어와 세조에게 말합니다.

'세자께서 위독하옵니다!'

세조는 세자가 있는 동궁으로 헐레벌떡 뛰어가 문을 벌컥 열었습니다.

그런데 세조를 맞은 것은 세자의 싸늘한 주검이었습니다.

이렇게 현덕왕후가 꿈에 나타나 세조에게 저주를 퍼부은 후 세자가 죽었다는 이야기는 야사 연려실기술에 기록된 '현덕왕후의 저주 이야기'입니다.

공교롭게도 단종을 유배 보내고 얼마 후 장자인 세자가 진짜 20세의 나이로 갑작스럽게 요절합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자 민가에서는 세조가 저주받았다는 숙덕임이 그치지 않았던 것입니다.

세조는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 이후 정사도 멈추고 죽만 먹으며 슬퍼했다고 합니다.

9. 세조, 금성대군을 역모죄로 죽이다

세조는 마침내 명을 내립니다.

'금성대군을 사사하라!'

세조는 역모에 연루된 친동생 금성대군에게 사약을 내려 죽여버립니다.

폐륜 중에 폐륜이었지만 세조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10. 단종 죽음의 미스터리

그렇다면 단종은 어떻게 됐을까요?

'노산군이 이를 듣고 또한 스스로 목매어서 졸(卒) 하니 예로써 장사 지냈다'

<세조실록>

단종이 자신을 지지했던 금성대군이 역모 실패로 사사됐다는 소식을 듣고 실망감과 허탈함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조가 예를 다해 단종의 장례를 치러줬다는 것입니다.

단 두 줄이 세조실록에서 단종의 마지막을 기록한 전부입니다.

그런데 단종이 죽은 직후부터 백성들에게서 실록에 기록된 것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들이 퍼지기 시작합니다.

'금부도사 왕방연이 사약을 받들고 하는 수 없이 들어가 뜰 가운데 엎드려 있으니 단종이 나와서 온 까닭을 물었으나 도사가 대답을 못 하였다'

<연려실기술>

실록에서는 금성대군의 죽음에 충격받고 스스로 목을 맸다고 되어 있지만 야사인 연려실기술에는 삼촌 세조가 내린 사약을 거부하고 스스로 목을 맸다고 나옵니다.

그런데 실록과 다른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실록에는 분명 세조가 단종의 제사를 예를 다하여 지내줬다고 되어 있으나 영월백성들은 단종의 제사를 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반면 연려실기술에 따르면 단종의 시신은 강물에 던져졌다고 전해집니다.

'육체가 둥둥 떠서 돌아다니다가 다시 돌아오곤 하는데 가냘프고 고운 열 손가락이 수면에 떠 있었다'

<연려실기술>

백성들은 이런 이야기들을 전하고 또 전하면서 왕위를 빼앗기고 억울하게 죽은 단종을 측은하게 여겼습니다.

그럴수록 세조에 대한 비난이 커지고 민심은 나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세조는 단종과 금성대군을 왕실 족보에서 지워버리기까지 합니다. 

만고의 역적으로 낙인을 찍고 왕실에서 언급되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세조는 자신이 정통성 있는 조카를 쫓아내었다는 꼬투리를 잡히지 않기 위해 철저하게 단종의 흔적을 지워버리려고 했던 것입니다.

donbuller.tistory.com/entry/연산군3

 

조선 왕조 최악의 폭군, 패륜의 대명사 연산군 그리고 장녹수 3

조선 왕조 최악의 폭군, 패륜의 대명사 연산군 그리고 장녹수 3(옥지화 사건부터 죽음까지) 10. 장녹수가 연산군의 마음을 어느 정도 잘 읽었는지 보여주는 사건 어느 날 연산군은 조정 신료들과

donbuller.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