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시조와 탄생 과정
1. 백제의 탄생 과정
오늘은 백제의 시조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백제의 시조를 알기 위해서는 일단 고구려의 시조부터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고구려의 시조는 주몽(고주몽, 동명성왕)이라고 잘 알고 있습니다.
https://donbuller.tistory.com/entry/주몽
주몽은 북부여(北扶餘)에 난을 피하여 졸본부여(卒本扶餘)에 이르렀다. 부여왕은 아들이 없고 딸만 셋이 있었는데, 주몽을 보고는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고 둘째 딸을 아내로 삼게 하였다.
<삼국사기>
주몽은 북부여에서 도망쳐 나와 졸본지역으로 와서 그 지역 왕의 둘째 딸인 소서노와 혼인을 하게 됩니다.
둘 사이에는 두 아들 비류와 온조가 있었는데, 어느 날 아들 앞에 배다른 형 유리가 등장합니다.
건장한 청년 한 명이 부러진 칼을 하나 들고 졸본으로 주몽을 찾아옵니다.
사실 주몽이 부여에 있을 때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고 그녀가 임신을 한 상태에서였는데 부여군에 쫓겨 홀로 탈출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때 주몽은 여인에게 칼을 반으로 잘라 반쪽을 주면서 만약 아들이 태어나면 부러진 반쪽 칼을 가지고 자신을 찾아오게 하라는 말을 남기고 떠납니다.
유리가 태자가 되자 비류와 온조는 두려워하여 10명의 신하와 더불어 남쪽으로 갔는데...
<삼국기>
그리고 이 부러진 반쪽 칼을 가지고 온 청년 유리가 부여에 두고 온 자신의 아들임을 직감한 주몽은 감동하고 한편 미안함에 고구려를 유리에게 물려주기로 하자, 이에 충격과 공포로 10여 명의 무리를 이끌고 고구려를 떠나기로 결심을 합니다.
남쪽으로 향하던 비류와 온조는 어느덧 현재 경기도 부근에 도착했고 그곳(한성, 위례성, 오늘날 잠심 송파구 부근)에서 수도를 정하기로 하는데, 온조는 그 부근에 수도를 정하고 백제를 세웠고 비류는 신하들의 만류에도 오늘날 인천인 미추홀을 선택해 떠납니다.
그런데 비류가 죽자 비류를 따라갔던 사람들이 살기 어려워 온조의 한성으로 몰려옵니다.
백제는 초반에는 여러 나라의 연합 체 중 하나였습니다.
마한은 54개 소국의 연합체로 구성되어 있었고 그중 중심이 되는 나라가 '목지국'이었으며 이곳에서만 왕이 나왔습니다.
백제는 초반에는 이 마한의 54개 연합체 중에서도 변두리에 불과했지만, 결국에는 마한 전체를 통합하게 되고 중국은 요서, 산둥, 남중국, 바다 건너 규수까지 진출하는 소위 글로벌 한류의 원주국으로 발돋움합니다.
2. 백제, 부여와 고구려와 같은 계열의 국가
부여를 도망쳐 나온 주몽이 고구려를 세웠고 주몽의 아들 중 온조가 또 집을 나와 백제를 세웁니다.
그래서 부여와 고구려 그리고 백제는 공통점이 많습니다.
부여의 법 중 내가 한 번 잘못한 경우 내가 100만 원을 훔쳤다면 1200만 원을 배상해야 하는 1 책 12 법이라는 법이 있었는데 이 법은 고구려의 법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형이 죽으면 형수와 동생이 결혼하는 형사취수 또한 부여의 법이자 고구려의 법입니다.
또한 부여도 5 부족이 연맹되어 있는 상태이고 고구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고구려와 백제도 공통점이 많은데 고구려와 백제는 무덤형태가 같습니다.
고구려에 돌무지무덤이 나오면 백제에도 나오고, 고구려에 굴식돌방무덤이 나오면 백제에도 나옵니다.
이러한 공통점들은 부여와 고구려, 백제가 같은 계열임을 알려주는 증거입니다.
나중에 6세기경 백제 성왕은 남쪽에 만들어진 부여라 하여 '남부여'라고 이름을 바꿉니다.
그 이유 또한 백제가 부여의 계열이기 때문입니다.
<출처: 설썜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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