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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건의 손녀 천추태후 2(섭정부터 죽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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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건의 손녀 천추태후 2(섭정부터 죽음까지)

10. 천추태후의 섭정은 왜 충격적인 선언이었나?

고려시대에는 16살 이상이면 성인이었고 목종이 즉위할 당시 나이가 이미 18살이었으므로 이미 성인이었기 때문에 천추태후의 섭정이 필요 없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천추태후는 아들 목종을 앞세워 고려 최초로 왕의 어머니로서 정치의 전면에 나서게 됩니다. 

11. 천추태후, 김치양을 궁에 불러들이다.

궁에 돌아와서도 천추태후는 여전히 김치양을 그리워했고 섭정을 시작하자마자 김치양부터 사면시킵니다.

사랑하는 김치양을 죄를 없애고 유배지를 벗어나 개경으로 돌아오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추태후는 김치양을 마음 놓고 만날 수는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김치양을 만날 묘책을 다시 한번 강구하게 됩니다.

김치양에게 관직을 주어서 그를 궁으로 불러들입니다.

김치양이 먼저 일한 곳은 '합문'이라는 기관의 말단 관직이었습니다.

이제 언제든지 천추태후는 김치양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후 김치양은 천추태후 덕분에 어느 누구보다 빠르게 승진을 거듭하며 불과 몇 년 만에 고려의 재정과 행정의 실권을 모두 장악하게 됩니다.

김치양이 천추태후의 '비선실세'로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비선실세가 된 김치양은 자신의 권세를 마음껏 자랑합니다.

김치양은 궁궐 근처에 300여 칸에 이르는 대저택을 짓기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저택 내부에 정자, 연못, 정원 등으로 호화롭게 꾸밉니다.

이러한 화려한 저택을 통해서 자신의 재력과 권력을 과시한 것입니다.

이후 김치양과 천추태후는 천추태후의 처소인 춘추관과 화려하게 지은 자신의 저택을 오가며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사랑을 키워나갑니다.

12. 고려 조정의 고민, 아들 목종에게 후계자가 생기지 않다.

천추태후에게 하나의 고민이 생깁니다.

아들 목종에게 좀처럼 후계자가 생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대로 목종에게 후사가 생기지 않는다면 다음 왕위를 계승할 왕위 후보 여동생 헌정왕후의 아들 '왕순'이었던 것입니다. 

왕순은 비록 불륜으로 태어나기는 했지만 부모 둘 다 왕건의 정통 후손이었던 것입니다.

목종에게 후계자가 없다는 것은 조카 왕순이 다음왕이 될 수 있다는 것이고 이는 곧 천추태후와 김치양의 입장에서는 잡은 권력을 언제든 잃게 된 상황이었던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천추태후가 목종의 후계자 문제로 조급했던 이유는 또 하나 더 있었습니다.

 

유행간은 용모가 아름다워서 왕이 남달이 아끼고 사랑하여 남색(男色)으로 총애하였다.

<고려사절요>

 

아들 목종이 남색을 밝혔던 것, 즉 남자를 좋아했던 것입니다.

아들 목종에게 총애를 받았던 인물은 '유행간'이라고 하는 사내였습니다.

목종은 동성애만 했었던 것은 아니었고, 궁인 김 씨라고 하는 후궁도 총애했었습니다.

당시 어머니 천추태후가 전권을 좌지우지하고 왕의 입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위축된 목종의 상황 때문에 후사가 없었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13. 마흔의 천추태후 아들을 낳다

그렇게 불안한 나날을 보내던 중 마흔의 천추태후는 김치양의 아들을 낳습니다.

24살이 된 목종에게 아버지가 다른 형제가 생긴 황당한 상황이 생긴 것입니다.

천추태후는 김치양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은 후 당시 고려에서는 상상도 못 할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바로 목종의 후계자로 김치양과의 아이를 세우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고려 왕실은 모두 태조 왕건의 후손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추태후는 고려의 후계자 전통에 어마어마한 도전을 하게 된 것입니다.

14. 조카 왕순을 승려로 만들고 수없이 목숨을 노리다.

그러기 위해 천추태후는 부모가 모두 왕건의 후손인 조카 왕순을 해결해야 했습니다. 

조카에게 왕위 후계자 자리를 빼앗길 수 없다고 생각한 천추태후는 12살이 된 왕순을 궁 밖으로 쫓아내기로 결심합니다.

천추태후는 왕순을 승려로 만들고는 궁밖에 있는 절로 쫓아냅니다.

왕순을 절로 보내서 후계자가 될 가능성을 원천 봉쇄해 버린 것입니다.

막상 하나밖에 없는 조카를 승려로 만들어 안쓰러운 마음이 있었는지 어느 날 나인을 시켜 왕순이 있는 절로 술과 떡을 선물로 보냅니다. 

천추태후의 명을 받은 나인은 술과 떡을 잔뜩 들고 왕순이 있는 절로 발걸음을 옮겼지만 왕순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절의 한 스님이 하는 말이 "대량원군이 지금 산에 가서 없으니 돌아오면 전달하겠다"라고 하여 나인은 어쩔 수 없이 떡과 술만 스님에게 전달하고 절을 나섭니다.

그런데 나인이 돌아가자 스님은 천추태후가 보낸 술과 떡을 모조리 뜰에 버립니다.

뜰에 버린 음식에 새들이 몰려들어 먹고는 갑자기 모두 죽어나갑니다.

한마디로 자신의 조카 왕순을 절로 쫓아낸 것도 모자라 음식에 독을 타서 죽이려 했던 것입니다.

왕순이 왕이 될 생각이 없다고 해도 언제든 왕순을 후계자로 만들고자 하는 추종 세력이 생길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왕순을 죽여 모든 변수를 제거하려 한 것입니다.

이후에도 천추태후는 왕순을 죽이기 위해 몇 차례 자객까지 보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맙니다.

이렇게 천추태후는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라면 피도 눈물도 없이 정적을 제거하려고 했습니다. 

15. 천추태후의 끝없는 욕망에 위기가 찾아오다 

천추전은 단순한 거처가 아닌 당시 고려 정치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곳입니다.

이런 천추태후의 상징과도 같은 천추천에 불이 납니다. 

여기에 더해 천추태후의 아들 목종이 갑자기 쓰러진 것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천추전에 불이 난 것을 보고 병이 점점 악화되던 목종은 두문분출하며 정사를 돌보지 못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목종이 쓰러지면서 왕실의 후계자 논의가 본격적으로 대두됩니다.

천추태후와 김치양은 목종이 쓰러진 틈을 타서 순수한 왕 씨였던 왕순을 왕위 후계자로 올리자는 세력이 나타나지는 않을까 경계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한편 이틈을 타서  천추태후와 김치양은 둘 사이의 아들을 왕위에 올릴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얼마 후 병석에 누워있던 목종이 누군가를 후계자로 지목을 해 버립니다.

 

'나의 병이 점점 위독하여 아침이나 저녁에 세상을 뜰 거 같은데  태조의 후손은 오직 대량원군만 남아 있소'

<고려사>

 

이렇게 목종이 선택한 왕위 후계자는 천추태후와 김치양의 아들이 아닌 왕건의 후손인 대량원군 왕순이었던 것입니다. 

16. 김치양 역모를 꿈꾸다

목종은 왜 갑자기 왕순을 후계자로 지목했을까요?

이런 결정을 내린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습니다. 

한 신하가 목종에게 은밀하게 건넨 편지의 내용 때문이었습니다. 

 

'김치양이 바라서는 안 될 것을 넘보아서 사람을 시켜 뇌물을 보내 널리 심복들을 포열시킴으로써 내부의 원조를 구하였습니다'

<고려사절요>

 

이 내용인즉슨 천추태후의 연인 김치양이 목종의 병중에 반란을 위해서 세력을 모은다는 소식이었던 것입니다.

만약 김치양의 역모로 목종이 쫓겨난다면 왕위 후계자는 천추태후와 김치양의 아들이 될 터였던 것입니다.

목종의 입장에서는 김치양의 아들은 순수한 왕 씨 성이 아닌 김 씨 성이 왕위를 차지하게 되는 상황이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 끔찍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목종은 최악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왕순을 후계자로 지목한 것입니다.

목종은 자신의 후계자를 정했지만 불안감은 극에 달합니다.

바로 궁궐 내에 있는 김치양이 언제든 자신을 죽일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17. '강조의 정변'

그래서 목종은 자신을 지켜줄 측근을 비밀리에 부릅니다. 

혹시라도 벌어질 위급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목종이 믿고 있던 한 사람, 바로 '강조'였습니다. 

강조는 고려시대에 군사적 요충지였던 서북면지역에서 군병력을 장악하고 있던 무관이었습니다. 

그리고 목종의 충직한 신하였습니다. 

그렇게 목종의 명을 들은 강조는 곧장 개경으로 향합니다. 

이대로 강조가 개경에 입성하면 김치양이 반란을 일으킨다고 해도 목종을 지켜줄 든든한 방패가 생긴 셈이었습니다. 

그렇게 개경으로 향한 강조는 놀랄만한 일을 벌이게 됩니다. 

바로 목종을 폐위시키고는 천추태후의 조카 대량원군 왕순을 고려의 제8대 왕 현종으로 왕위에 올려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사건을 '강조의 정변'이라고 부릅니다.

김치양을 없애겠다며 달려온 강조가 엉뚱하게도 왕순을 고려의 왕으로 세우는 진짜 반역을 저지른 것입니다. '강조의 정변'은 고려 역사상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사건입니다.

 

충신 강조가 왜 갑자기 목종을 배신하게 된 걸까요?

이는 강조가 개경에 가는 도중 여러 소문을 듣게 되는데 조정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개경 안에서도 '목종이 이미 죽었다느니, 김치양이 개경을 이미 장악했다느니' 하는 등의 여러 가지 소문들이 돌았던 것입니다.

이런 소문들이 뒤섞여 전해지면서 갈팡질팡하던 강조가 선택한 결과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결국 왕명도 없이 5000여 명에 이르는 대군을 이끌고 왕궁을 향하는 상황은 누가 봐도 역모로 보일상황이었기 때문에 처벌을 받을까 두려워 그대로 정변을 일으킨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렇듯 강조의 정변은 우연과 의문이 가득했던 당시 상황에 대한 결과였던 것입니다. 

 

강조가 새로운 왕을 세우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15일 정도였습니다.

너무 빠른 시간 안에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에 천추태후와 김치양도 강조의 기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강조는 현종을 왕위에 세우고 곧바로 사태의 원흉이었던 김치양을 찾아갑니다.

강조는 김치양을 가차 없이 죽여버릴 뿐 아니라 천추태후와 김치양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도 무참히 죽이고 맙니다.

천추태후는 사랑하는 연인 김치양과 그 사이에서 낳은 아들 모두를 잃게 됩니다.

게다가 천추태후는 폐위당한 아들 목종과 함께 유배지로 떠나야 했습니다.

18. 천추태후의 죽음

개경을 떠난 천추태후와 목종의 행렬이 지금의 파주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강조가 보낸 군사들이 천추태후와 목종의 일행을 둘러쌉니다.

그리고는 강조의 군사들에게 독약을 받게 된 목종은 독약 먹기를 거부하자 강조의 군사들은 목종을 살해하고 자결로 위장합니다.

마흔여섯이 된 천추태후는 서른 살의 장성한 아들 목종까지 모두 잃고 맙니다.

태조왕건의 손녀이자 제5대 왕 경종의 아내, 제6대 왕 성종의 여동생, 제7대 왕 목종의 어머니, 제8대 왕 현종의 이모였던 천추태후는 소중한 사람들을 모두 잃은 채 권력의 정점에서 쫓겨나 20여 년을 더 살고 66세의 나이에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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