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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건의 손녀 천추태후 1. 출생부터 천추태후로 불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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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건의 손녀 천추태후 1. 출생부터 천추태후로 불리기까지 

1. 천추태후 출생의 비밀

천추태후는 후삼국을 통일하고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의 아들 '왕욱'과 '선의왕후'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천추태후는 왕건의 손녀딸이었고 왕가의 후손으로 남부럽지 않은 예쁨을 받고 자라나게 됩니다.

평범해 보이는 가계도에는 너무나도 충격적인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천추태후 가계도1
천추태후 가계도1
천추태후 가계도2
천추태후 가계도2

천추태후의 아버지 왕욱과 천추태후의 어머니 선의왕후는 모두 태조 왕건의 자식이었던 것입니다.

즉 왕건의 자녀가 근친혼을 통해 천추태후를 낳은 것입니다.

 

신라 왕실의 풍습에서 영향을 받은 고려의 근친혼은 신라에서처럼 왕실 구성원들끼리 결혼을 해서 그 혈통의 신성함을 유지하고 순수한 혈통을 관리해 왕실의 권위를 높이고자 한 하나의 방법인 것입니다.

왕건은 자신의 혈통을 신라의 왕족인 진골처럼 특별하게 만들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왕건이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바로 '근친혼'입니다.

 

2.  천추태후, 사촌오빠 고려 5대 왕 경종과 혼인을 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천추태후가 13살이 되던 976년 어느 날 고려 왕실이 경사스러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바로 천추태후와 고려의 제5대 왕 경종의 결혼식이 열리는 날이었습니다.

 

천추태후 가계도3
천추태후 가계도3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천추태후와 고려의 제5대 왕 경종은 사촌관계였습니다.

13살이 된 천추태후가 고려 왕실의 관례대로 사촌오빠 경종과 근친혼을 한 것입니다.

여기에는 주목해야 할 점이 또 한 가지 더 있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충격적인 일이 벌어집니다.

경종과 혼인을 하는 신부가 천추태후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경종의 또 한 명의 아내는 바로 천추태후의 여동생이었던 것입니다. 

한날한시, 동시에 결혼했는지는 기록상 알 수 없지만 친자매가 사촌 오빠와 결혼한 것은 사실입니다.

이 결혼으로 천추태후는 '헌애왕후'라는 이름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천추태후의 여동생은 '헌정왕후'라는 이름을 받게 됩니다. 

왕실에서 후계자를 낳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에 자매 간 후계자를 먼저 낳아야 하는 상황에서 묘한 경쟁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3. 천추태후의 아들, '왕송' 태어나다

그렇게 약 4년의 시간이 지난 어느 날 경종의 후계자  '왕송'이 태어납니다.

바로 천추태후가 여동생을 제치고 후계자를 먼저 낳은 것입니다.

아들을 출산할 당시 천추태후의 나이는 17살이었습니다.

아마도 이때 천추태후는 '내가 낳은 아들이 왕위에 오른다면 앞으로 평탄한 삶을 살겠구나' 하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들 출산 1년 뒤 남편 경종이 26살의 나이로 갑자기 요절하고 말았습니다.

한순간에 왕비에서 남편을 잃은 과부신세가 되고 만 것입니다.

4. 천추태후 친오빠 '왕치', 고려 제6대 왕 '성종'으로 즉위하다

경종에 이어 고려 제6대 왕은 성종은 아들 '왕송'이 아닌 천추태후의 친오빠 '왕치'였습니다.

2살이었던 왕송의 나이가 어려도 너무 어렸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왕치는 당시 학식도 높고 현명하기로 소문이 자자 했습니다.

고려 초기의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해서 경종이 왕치에게 양위를 선언하고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궁에 자신과 어린 아들만 두고 떠난 경종이 야속했을 천추태후는 오빠인 성종에게 궁밖으로 나가라는 명까지 받게 됩니다.

게다가 아들 왕송을 두고 홀로 궁을 나가라고 명한 것입니다.

이렇게 후계자를 낳은 왕비로서의 장밋빛 미래가 한순간 물거품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5. 천추태후, '김치양'과 사랑에 빠지다.

왕이 된 오빠 성종과 달리 모든 것을 잃고 참담하게 궁 밖에서 외롭세 살던 천추태후에게 다가선 한 사람 이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김치양'이었습니다.

천추태후에게 새로운 사랑이 찾아온 것입니다.

고려시대에는 연애와 결혼이 비교적 자유로워 여성이 이혼 후 재혼하는 경우도 빈번했습니다.

그럼에도 왕실 여인의 경우 왕 씨가 아닌 남자와의 만남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게다가 왕족이었던 천추태후와는 달리 김치양은 직업도 변변치 않은 평범한 집안 출신이었던 것입니다.

천추태후와 김치양의 관계는 고려시대 때에는 절대 용납될 수 없는 위험한 사랑이었던 것입니다.

남편과 아들을 한 순간에 잃고 궁밖에서 홀로 살수 밖에 없었던 천추태후에게는 마음을 털어놓고 편이 되어줄 수 있는 따뜻한 손길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김치양과 어떻게 만났는지에 대해서의 기록은 남아있는 것이 없습니다.

다만 김치양의 천추태후의 외가 친족 중 한 명이었고 어린 시절에 서로 교류가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천추태후가 마음 둘 곳이 필요해  어린 시절의 인연이었던 김치양을 본인이 있는 곳으로 불러들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전 왕비이자 왕자의 어머니인 천추태후 가 왕족이 아닌 외간남자 김치양과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 오빠 성종의 귀에 들어간다면 성종의 벌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 묘책을 강구했고 바로, 김치양이 가짜 승려행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고려시대에 불교는 국가와 민간 모두에서 매우 중요한 종교였습니다.

당시 승려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정신적 지도자로 추앙을 받았습니다.

김치양의 승려행세는 '많이 외로웠을 천추태후가 승려를 찾아와 많은 위로를 받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만들어 주변 사람들에게도 왕실에 추문이 도는 것도 막을 수 있는 묘책이었던 것입니다.

6. 오빠 성종에게 김치양과의 관계를 들키다.

밀회를 이어가던 두 사람에게 위기가 찾아옵니다. 

성종이 천추태후와 김치양의 관계를 알게 되었고 김치양이 곤장을 맞고 멀리 유배를 떠나게 된 것입니다

성종 입장에서는 왕실 여인이 왕 씨가 아닌 아이를 낳을 수도 있는 최악의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종이 김치양을 멀리 유배 보냄으로써 두 사람이 더 이상 관계를 이어가지 못하도록 관계를 끊어버린 것입니다.

7. 3촌 왕욱과 천추태후의 여동생 헌종왕후와의 스캔들

고려 왕실에 또 한 번의 스캔들이 발생합니다.

천추태후 가계도4
천추태후 가계도4

'왕욱'은 아버지인 '왕욱'과 이름이 같은 아버지의 배다른 형제였고 천추태후 자매에게는 3촌이었습니다. 

삼촌인 왕욱과 천추태후의 여동생 헌종왕후가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왕실은 발칵 뒤집히게 됩니다.

천추태후자매는 사촌과 결혼했을 만큼 왕실내의 근친혼은 성행했었는데 이 일은 고려 왕실을 발칵 뒤집어 놓게 된 걸까요?

바로 삼촌 왕욱이 '유부남'이었기 때문입니다.

고려시대에는 왕을 제외하고는 일부일처제가 기본적인 혼인형태였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명백한 불륜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불붙기 시작한 헌정왕후와 왕욱의 사랑은 꺼질 줄 모르고 타오릅니다.

그렇게 유부남 삼촌과 과부가 된 조카는 왕욱 아내의 눈을 피해 계속됩니다.

헌정왕후가 불륜을 저질렀다는 소식을 들은 성종은 김치양에 이어 삼촌 왕욱 역시 오늘날 경남 사천으로 유배를 보내버립니다.

그러던 중 사랑하는 연인을 유배지로 보낸 충격 속에 있던 헌정왕후의 뱃속에서 태동이 시작됩니다.

바로 헌정왕후가 산촌 왕욱의 아이를 임신했던 것입니다.

헌정왕후는 아이를 출산하고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렇게 태어난 아들은 대량원군 '왕순'이었습니다. 

비록 불륜이기는 했지만 어쨌건 또 한 명의 왕 씨 핏줄이 태어난 것입니다.

8. 아들 왕송, 목종이 되어 결국 왕위에 오르다. 

연이어 터진 두 여동생의 스캔들에 크게 분노가 치밀었을 성종이었을 터이기에 천추태후는 오빠 성종의 화가 풀리기를 눈치 보며 숨죽여 지내게 됩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천추태후가 34살이 되던 997년, 오빠 성종이 38살의 나이로 병을 얻어 요절하고 맙니다.

이어 왕위에 오른 것은 천추태후의 18살 아들 '왕송'이었습니다.

결국 천추태후의 아들 왕송이 고려 제7대 왕 목종이 되어 왕위에 오르게 된 것입니다. 

천추태후는 고려 제5대 왕 경종의 아내, 제6대 왕 성종의 여동생, 제7대 왕 목종의 어머니였습니다. 

이제 왕의 어머니 '태후'가 된 것입니다.

9. '천추태후'의 시대가 열리다.

목종이 즉위 한 날 본격적으로 천추태후의 시대가 열린 날이기도 했습니다.

이날 천추태후는 아주 큰 선물을 받게 됩니다. 

천추태후의 아들 목종이 자신이 기거하고 있는 수창궁 한편에 어머니 천추태후만을 위한 독채를 만들어 준 것입니다.

바로 '천추전(千秋殿)'입니다. 

천추전은 '천년의 가을'이라는 뜻으로 아주 오랜 기간을 의미합니다.

효심이 깊었던 목종은 어머니의 만수무강을 바라며 '천추전'을 선물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때부터 '천추전에 사는 왕의 어머니(태후)'라는 뜻을 담다 '천추태후'라고 불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천추태후는 아들을 대신해서 나라를 다스리겠다고 선언합니다.

즉 '섭정'을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고려 역사상 최초의 일이었습니다.

고려 역사상 전례에 없었던 태후의 시대, 천추태후의 시대가 열리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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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벌거벗은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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