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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책읽기

32.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책리뷰/독후감)/한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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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책리뷰/독후감)/한강 작가

작별하지 않는다(한강 작가)
작별하지 않는다(한강 작가)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읽은 후 한동안 감정조절이 힘들어 연이어 [작별하지 않는다]까지 읽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하여 나는 그 사이 여러 권의 다른 종류의 책들을 읽었다. 그리고 지금, 작품 속에서 끊임없이 내리는 성근 눈이 내리는 겨울의 절정에 이 책을 꺼내 들었다. 이제는 읽을 수 있겠다는 판단하에. 

 

[작별하지 않는다]는 장편소설로는 드물게 등장인물이 많지 않다. 경하와 인선이라는 두 여자를 중심으로 제주 4.3 사건으로 가족을 잃고 고초를 겪었던 인선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이야기가 성근 눈처럼 적요하지만, 한편 거센 바람을 만나 눈보라가휘몰아쳐 얼굴과 몸과 손, 발을 때리고 녹아 흘러내리고 시리게 하는 것과 같은 폭력적인 이야기가 교차하며 감정이 이완과 수축을 이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24살 동갑내기인 인선과 경하는 편집기자와 사진작가로 만나, 인선이 어머니 병간호를 위해 고향인 제주도로 떠나기 전까지 20여 년간 둘도 없이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다. 어느 날, 경하는 인선에게 신분증을 가지고 급하게 와달라는 문자를 받고 외출 후 집으로 가던 길에 주머니에 신분증과 신용카드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 곧장 발길을 돌려 경하가 입원해 있는 접합전문 병원으로 발길을 돌린다. 인선은 목공작업을 하던 중 전기톱으로 오른쪽 검지와 중지 한 마디씩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하게 되었고, 제주에서 잘린 손을 가지고 서울의 접합전문병원에서 손가락을 접합하는 수술을 하게 된 것이다. 병원에서 인선은 3분에 한 번씩 잘렸다 접합한 두 손가락 끝을 바늘로 찔러 피를 흘리게 해야 하는 치료술을 진행 중이다. 약 3주가량 3분에 한 번씩 끊임없이 주삿바늘로 찔러 신경이 연결되도록 하지 않으면 신경을 되돌이킬 수 없고, 지금 접합한 손가락을 다시 잘라낸다고 해도 평생 환지통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의사는 권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경하는 알게 된다. 인선은 경하에게 제주도 집에 지금 당장 가달라고 부탁한다. 그녀가 키우고 있는 앵무새 아마가 3일 동안 방치되어 있으며 오늘 중으로 물을 먹이지 않으면 죽어버리게 될 것이라며. 꼭 오늘이어야 한다고. 내일이면 죽는다고. 경하는 거절하고 싶지만 결국 인선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가장 빠른 비행기 편을 구해 제주로 향한다. 경하가 제주로 온 직후부터 제주에는 눈이 끊임없이 내리기 시작한다. 제주 외곽에 위치한 인선의 집까지 가는 버스에 겨우 올라탔지만 거센 바람까지 더해져 눈보라가 휘몰아친다. 일주 버스에서 내린 후 인선의 집에서 가장 가까운 버스정류장에 가기 위해 지선버스를 기다리던 중 몇 해 전 잠시 보았던 인선의 어머니를 닮은 노인을 만난다. 노인은 아무 말이 없이 눈을 맞으며 버스를 기다린다. 끊겨버렸을 거라고 생각했던 지선 버스가 기적처럼 도착하고 노인과 경하는 버스에 오른다. 경하는 인선의 집 근처 정류장으로 추정되는 정류소에 내렸지만 이미 해가 져 어두웠고 휴대폰의 배터리도 10% 정도밖에 남지 않아 플래시도 맘껏 켤 수 없는 지경에 처한다. 경하는 천천히 무릎까지 쌓인 눈밭을 뚫고 인선의 집을 찾던 중 갈림길에서 발을 헛디뎌 굴러 떨어진다. 이때 휴대폰도 잃어버리고 쓰러진 채 죽음을 생각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새를 살려야만 했다. 다시 몸을 일으킨 경하는 마침내 인선이 작업실을 겸하고 있는 집에 도착한다. 인선의 집은 사고가 난 날 그녀가 실려 갔던 때 그대로이다. 경하는 앵무새 아마를 찾는데 이미 차갑게 식어 죽어있는 사체를 발견한다. 새를 손수건으로 싸고 함에 넣어 다시 실로 묶어 사람처럼 보이는 나무 아래를 손갈퀴질 하여 파내고 묻은 후 다시 흙을 덮어 봉분을 만들어 준다. 다시 인선의 집으로 돌아온 경하는 잠에 빠져든다. 다음날 오후 눈을 뜬 경하의 눈앞에 분명 죽어서 묻어주었던 앵무새 아마가 매끈하고 검은 아몬드 눈을 깜빡이며 살아있다. 경하는 인선이 준비해 놓은 아마의 사료와 간식 그리고 물을 준다. 죽은 새도 먹이를 먹을 수 있는가? 생각한다. 그리고 서울 병실에 누워 있어야 하는 인선이 경하의 눈앞에 나타난다. 그녀의 손가락은 절단되지 않았다. 혼일까? 생각하지만 이내 인선과 깊은 대화를 이어간다. 몇 해전 인선은 아마도 5.18 민주화항쟁 관련 소설을 쓴 후 꿈을 꾸기 시작한다. 검은 우듬지만 남은 통나무 수백 그루가 마치 무덤처럼 펼쳐져 있고 이윽고 물이 차올라 나무가 잠기고 경하의 발목까지 잠긴다. 도망가지만 계속해서 물이 차오른다. 경하는 이 꿈 이야기를 인선에게 하며 제주에서 꿈 관련 퍼포먼스를 해보는 것을 제안한다. 차일피일 사정이 생겨 미뤄지던 중 경하는 자신이 꿈의 의미를 잘못 이해한 것 같다고 인선에게 그 작업은 없던 일로 하자고 말하지만,  인선은 천천히 이 퍼포먼스를 위해 통나무를 등신대처럼 잘라내고 다듬어 말리는 작업을 했다. 인선은 약하고 보잘것없고 하찮게만 여겼던 작고 볼품없는 어머니가 사실은 4.3 사건 때 헤어진 오빠를 만나기 위해 백방으로 알아보고 그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 어머니가 처절하게 아끼고 사랑했던 오빠의 시신이라도 찾기 위해, 그와 작별하지 않기 위해 생을 바쳤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더해 인선은 아버지가 같은 사건 때 어린 여동생 셋을 한꺼번에 잃고 자신은 감옥으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고, 그런 모진 고초를 겪던 중에도  죽은 여동생들과 작별하지 않았던 사실 또한 알게 된다. 그러면서 인선은 경하와 함께 하기로 했던 그 작업을 시작한다. 작별하지 않기 위해. 

 

[소년이 온다]는 5.18 민주화항쟁을 겪었던 여러 명의 화자(당시 죽은 혼을 포함해)들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전달하는데 비해, [작별하지 않는다]는 경하의 1인칭 시점으로 끔찍하고 부조리한 학살이 자행되었던 제주 4.3 사건을 지극히 개인적인 스토리로 풀어낸다. 기존 4.3 사건을 다루었던 방식과는 너무나 상이한 방식이나, 실제 그 사건의 당사자가 아닌 제삼자가 화자가 되어 그들의 슬픔과 괴로움, 좌절, 절망, 고통을 바라봄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비슷한 위치에서 감정이입을 할 수 있도록 해 생각지도 못한 깊은 울림을 준다. 그동안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광주 5.18 민주화 항쟁은 이 사건을 지칭하는 고유의 이름을 얻은 데 반해, 제주 4.3은 여전히 '사건'에 머물러 있다. 실제 광주에서보다 제주에서 몇 배는 더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해할 수 없는 점이다. 이것의 원인은 책 속에 간접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수용되고 총살 돼 암매장되었고, 누구도 유해를 수습하는 게 허락되지 않았어. 전쟁을 끝낸 게 아니라 휴전된 것뿐이었으니까. 휴전선 너머에 여전히 적이 있었으니까. 낙인찍힌 유족들도, 입을 떼는 순간 적의 편으로 낙인찍힐 다른 모든 사람들은 침묵했으니까. 골짜기와 광산과 활주로 아래에서 구슬 무더기와 구멍 뚫린 조그만 두개골들이 발굴될 때까지 그렇게 수십 년이 흘렀고, 아직도 뼈와 뼈들이 뒤섞인 채 묻혀있어. 

 

 

이 사건이 우리나라에서는 철저히 배척되고 공포의 대상이자 혐오의 이념인 공산주의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이 사건이 표면화되고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목소리를 낸다는 것 자체가 터부시되고 심지어는 돌팔매의 대상이 된다.

제주 4.3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사건이 일어난 배경에 대해서 알아볼 필요가 있다. 추후에 이 사건에 대해서만 따로 떼어 다루어볼 것이고, 지금은 이 소설을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것만 대략적으로 짚어보겠다. 4.3 사건은 1945년 광복 이후 2년이 채 안된 시점에 발발하였기에 당시 국제적, 정치적, 사회적 정세 등 다양한 원인들이 중첩되어 발생한 사건이기에 쉽지 않은 이야기이다. 광복 이후 이승만 정권은 친일파 척결에 실패하였고 따라서 당시 경찰에는 친일세력들이 여전히 득세하고 있었다. 분명 일제에 해방을 선언했는데도 아직 뿌리 깊게 남아있는 친일잔재들 때문에 곳곳에서 폭력적이고 비상식적인 폭력과 고문이 자행되어 시민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47년 3월 1일에 3.1절을 맞아 제주에서는 당시 가장 큰 좌익 세력이었던 남로당을 중심으로 3.1절 경축식을 한다는 명목하에 세력을 결집해 반정부데모를 추진한다. 이렇게 모인 군중들을 향해 경찰이 발포하여 6명이 사망하고 8명이 중경상을 입는 일명 '3.1절 발포사건'이 발생한 것이 4.3 사건의 시작이 되었다. 이때 실제로 사건에 휘말린 사람들은 구경꾼에 불과한 시민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며, 이렇게 남로당을 중심으로 촉발된 제주도내에서의 반경운동에 대해 미군정은 '경찰의 발포'보다는 '남로당 선동'에 초점을 맞춰 공산세력 척결로 사건을 강공정책을 펼치며 제주도 군경수뇌부를 모두 외지인으로 갈아치우고 3건의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하며 제주도민의 분노는 극으로 치닫는다. 이에 제주남로당은 4월 3일 무장봉기를 일으키게 된다. 이러한 폭력적인 저항에 대해 미군정과 친일경찰을 중심으로 대규모 학살이 자행된다. 문제는 이때 남로당뿐 아니라 무고한 제주 시민들이 무차별 사살, 감금, 고문을 당했다는 데에 있다. 심지어는 아직 젖먹이 어린아이와 노인등 무엇 때문에 죽는지, 무슨 일에 휘말렸는지도 모르는 이들까지 20만 명 내외(30만 명 내외라는 추정도 있을 정도)의 사람들이 무차별 희생당했으며, 당시 공산주의 척결이라는 미명하에 이들은 모두 공산당 소위 '빨갱이'로 낙인찍혀 현재까지도 희생자 모두가 밝혀지지도 그들의 명예가 회복되지도 않고, 여전히 하나의 '사건'으로만 남아있게 된 것이다. 바닷가에 10명씩 일렬로 줄을 지어 총을 쏴 사살하여 그들의 시신이 썰물에 실려 바다로 수장되어 시산조차 찾지 못한 사례가 소설 속에서도 묘사된다. 광산의 갱도에서도 죽은 시신들이 쌓여 있을 것으로 추정되나 발굴과정도 못다 끝마친 채 종료된 바도 있다. 이 과정에서 가족을 잃은 인선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서로의 아픔을 간직한 채 결혼을 하지만, 그 상처는 끝내 꿰매지 지도 사라지지도 않고 그들 생을 관통한다. [소년이 온다]에서와 같이 충분한 애도가 되지 않은 죽음은 그 죽음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평생 트라우마일 수밖에 없다. 떼려야 뗄 수 없는, 지우려 할수록 더 명징해지는 불도장으로 지져진 끔찍한 낙인인 것이다. 그때 죽어간 이들을 애도하는 방법은 명확하다. 죽어간 이들을 모두 찾아내어 이름을 불러주고, 그들의 죽음이 그들 잘못이 아님을 확인해 주고, 충분히 눈물 흘리고 울부짖으며 슬퍼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작별인사를 제대로 할 수 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결코 작별하지 않아야 한다. 

봉합부위에 딱지가 앉으면 안 된대. 계속 피가 흐르고 내가 통증을 느껴야 한대. 안 그러면 잘린 신경 위쪽이 죽어버린다고 했어. 그렇게 안되도록 삼분에 한 번씩 이걸 하는 거야. 이십사 시간 동안 간병인이 곁에서. 앞으로 삼주 정도. 

 

이 소설에서 폭력적인 거대한 트라우마를 직면하는 고통이 잘린 손가락의 봉합된 부위를 끊임없이 찔러 피가 흐르고 통증을 느껴야 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것들을 제대로 들여다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이미 지나가버린 일이라고, 다 덮고 지나가는 게 국가발전을 위해서도 국격을 위해서도 긁어 부스럼이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렇게 제대로 들여다보고 고통스럽고 억겁의 시간이 필요한 치유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잘린 신경이 연결되지 않아 결국 손가락 끝이 썩듯 곪고 진물이 나고 마침내 썩고 부패하여 잘라내고 도려내야만 하는 지경에 이르고 심지어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이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이 두려워 피하고 눈을 감고 덮으려 한다. 한강 작가는 70여 년이 지난 지금이라도 그 사건을 또렷하게 들여다보고 진상을 파악해서 남은 유가족에게 이를 설명하고 고인의 명예를 회복하여 주고 역사에 진실을 기록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과 결코 작별하지 않고. 묵묵히. 무릎까지 쌓인 눈을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찍고 나아가듯이.

 

총에 맞고 몽둥이에 맞고, 칼에 베어 죽은 사람들 말이야. 얼마나 아팠을까? 손가락 두 개가 잘린 게 이만큼 아픈데. 
그날 똑똑히 알았다는 거야. 죽으면 사람의 몸이 차가워진다는 걸. 맨 뺨에 눈이 쌓이고 피 어린 살얼음이 낀다는 걸.
이렇게 눈이 내리면 생각나. 그 학교 운동장을 저녁까지 헤매 다녔다는 여자애가. 
눈처럼 가볍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눈에도 무게가 있다. 이 물방울만큼. 새처럼 가볍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그것들에게도 무게가 있다. 오른쪽 어깨 위, 스웨터 올 사이로 가칠가칠했던 아마의 두 발이 떠오른다. 내 왼손 집게손가락을 횃대 삼아 앉아 있던 아미의 가슴털은 따스하고 부드러웠다. 이상하다. 살아 있는 것과 닿았던 감각은. 불에 데었던 것도, 상처를 입은 것도 아닌데 살갗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그전까지 내가 닿아보았던 어떤 생명체도 그들만큼 가볍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다. 그는 나의 혈육도 지인도 아니다. 잠시 나란히 서있었을 뿐인 모르는 사람이다. 그런데 왜 작별한 것처럼 마음이 흔들리는가?
물은 언제까지나 사라지지 않고 순환하지 않나. 그렇다면 인선이 맞으며 자란 눈송이가 지금 내 얼굴에 떨어지는 눈송이가 아니란 법이 없다. 인선의 어머니가 보았다던 학교운동장이 이어 떠올라 나는 무릎을 안고 있던 팔을 푼다. 무딘 콧날과 눈꺼풀에 쌓인 눈을 닦아낸다. 그들의 얼굴에 쌓였던 눈과 지금 내 손에 뭍은 눈이 같은 것이 아니란 법이 없다. 순환하지 않나. 이 섬뿐 아니라 오래전 먼 곳에서 내렸던 눈송이들도 저 구름 속에서 다시 응결할 수 있지 않나. 
새들이 건강해 보이는 건 믿을 수 없어, 경하야. 끝까지 고개를 들고 횃대에 매달려있다가 떨어지면 죽은 거야.
이해할 수 없다. 아마는 나의 새가 아니다. 이런 고통을 느낄 만큼 사랑한 적도 없다. 
내 기척에 엄마가 돌아보고는 가만히 웃으며 내 뺨을 손바닥으로 쓸었어. 뒷머리도, 어깨도, 등도 이어서 쓰다듬었어. 뻐근한 사랑이 살갗을 타고 스며들었던 걸 기억해. 골수에 사무치고 심장이 오그라드는... 그때 알았어.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
자료가 쌓여가며 윤곽이 선명해지던 어느 시점부터 스스로가 변형되는 걸 느꼈어. 인간이 인간에게 어떤 일을 저지른다 해도 더 이상 놀랄 것 같지 않은 상태... 심장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가 이미 떨어져 나갔으며, 움푹 파인 그 자리를 적시고 나온 피는 더 이상 붉지도, 힘차게 뿜어지지도 않으며, 너덜너덜한 절단면에서는 오직 단념만이 멈춰줄 통증이 깜빡이는... 그게 엄마가 다녀온 곳이라는 걸 나는 알았어.

 

소설 속에 나오는 '눈'과 '새'의 의미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새는 무게감 없이 가볍고 작다. 하지만 촛불에 비친 새는 몇 배는 더 크게 부풀어 오른 거인과 같은 그림자를 벽에 그린다. 새는 날기 위해 뼈에 구멍이 뚫려있고 풍선과 같은 기포를 부풀리기 위해 장기가 작아져 많이 먹지 못하고 미미한 공기질 변화에도 생사의 갈림길에 놓일 수 있는 연약한 존재이다. 또한 새는 야생에서 천적들의 공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본능적으로 아파도 아픈 티를 내지 않는다. 끝까지 병세를 숨기고 견디다 쓰러져 떨어지면 죽는다. 그리고 성글게 결정을 이루고 수천 미터 상공에서 흩뿌려진 가볍디 가벼운 눈은 내려오는 사이 주변의 수증기와 물질들을 만나며 그 무게를 늘리고, 성근 결정들이 결합하고 또 쌓여서 거대한 나뭇가지도 부러뜨리게 할 수 있는 가공할만한 힘을 가지게 된다.  이런 눈과 새의 모습은 전체주의적인 국가적 폭력 앞에 한없이 견디고 존재감을 감춰야만 하는 민초들을 생각하게 한다. 무게감 없는 그것들이 살갗에 닿았을 때 느끼는 따뜻하고 까슬한 생명력은 지워지지 않는다. 그들이 나와 가까운 이이건 그렇지 않건 상관없이 생명력이 있는 여린 그것들이 죽거나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너무나 괴로운 일이다. 나와 피로 맺어진 혈육이건 아니건 상관없다. 순환하는 눈송이들처럼, 지금 찔리고 뚫리고 잘려 죽은 저이들이 바로 나일 수도 있다는 공감대는 사랑에 기인한 것이다. 그 사랑은 너무나 고통스럽다. 하지만 그 사랑을 외면할 수 없다. 작가는 이것을 통해 당시 경험이 없는 수천수만의 독자들이 왜 이도록 고통스러운 것인지 답을 말해주는 듯하다. 순환하고 있기 때문에. 네가 나고, 내가 너일 수 있고. 네가 겪었던 일을 나도 겪을 수 있었을 수도 있었다는 것을. 네 가족이 겪었던 일이 내 가족의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래서 슬프고 고통스럽고 괴로운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이유도 영문도 모른 채 죽은 가족을 찾아 학교 운동장에 쌓인 시체 더미들과 마주한 인선의 어머니는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시체의 얼굴 위에 쌓인 눈을 걷어내고 똑똑히 죽은 얼굴들을 살핀다. 죽기 전 마지막으로 만난 오빠의 머리모양이 이상하다고 타박한 것이 못내 마음에 짐이 되어 자책한다. 그 말이 마지막이어서는 안 되었다고. 그러했던 인선의 어머니가 내가 아니었다고 말할 수 없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 사건을 다루지만 그 사건 속에 있지는 않다. 오히려 이 사건을 겪지 않은 두 여자 경하와 인선의 시선에서 상당히 주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이 이 사건에 대해서 이념적인 거부감이 있는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서사가 아니었을까 평가해 본다. 지금도 손가락이 잘린 것처럼 몸서리쳐지고 정신을 놓을 것 같은 고통을 당하고도 이를 봉합하고 잇기 위해 손가락을 찔러 피를 내는 것과 같은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어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포옹, 관심, 미소를 지어주는 용기를 내어보는 것은 어떨까? 진실이 닿은 이후에 진정한 작별인사를 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보는 것은 어떨까? 그러기 전까지는 그들과 작별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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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소년이 온다]를 읽고( 책 리뷰, 독후감)/한강 작가

17. [소년이 온다]를 읽고( 책 리뷰, 독후감)/한강 작가[소년이 온다]는 꼭 읽어야만 하는, 읽어줬으면 하는, 읽어내야 하는 책입니다. 한강 작가의 문체가 역사적 문제를 다룰 때 어떠한 시너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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