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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책읽기

29. [내 이름은 태양꽃]을 읽고(책 리뷰/독후감)/한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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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내 이름은 태양꽃]을 읽고(책 리뷰/독후감)/한강 작가

내 이름은 태양꽃(한강 작가)
내 이름은 태양꽃(한강 작가)

상실과 공허의 시대입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원인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는 미궁의 죽음들을 보며 두려움과 공포를 넘어선 울분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내 이름은 태양꽃]은 한국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작가의 어른들을 위한 동화입니다. 한강 작가의 글에 김세현 작가의 그림이 더해져 있는 이 책은 100여 쪽의 짧은 동화입니다. 짧지만 마음의 울림과 감동은 여간 길지 않습니다. 특히 이 책은 지금 이 시기에 꺼내어 읽어보니 또 다른 감상을 불러오며, 나도 몰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습니다. 

 

작년 12월 29일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179명이 우리의 곁을 떠났습니다. 여러모로 혼란스러운 틈에 일어난 이 충격적인 사고의 트라우마로 많은 이들이 지금까지도 정신적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일에 합동분양행사를 오전에 보면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엉엉 울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이 책이 불현듯 생각나 책장에서 꺼내 읽어보았습니다. 멍한 정신이 어느덧 맑아지면서 나도 모르게 되뇌었습니다. 

'그래 잊지 않겠어. 잊지 않을 거야. 잊지 않게 해 주세요' 하고 말입니다. 

 

새싹 하나가 담장 바로 아래 햇빛이 들지 않고 습한 땅을 뚫고 나옵니다. 어둡고 침침하기만 해 기대와 다른 모습에 이내 실망하고 맙니다. 게다가 담쟁이덩굴은 발이 달린 듯 키를 키워나가며 담을 타고 순식간에 올라가 버리며 더딘 성장을 하는 자신의 모습에 의기소침해합니다. 이에 더해 잠자리 날개처럼 투명하고 해파리처럼 흐물흐물한 꽃잎을 가져 잘 보이지 않아 나비와 벌, 새, 바람에 의해 상처를 입어 쓰라리고 아파 고통에 몸부림칩니다. 절망과 분노로 달콤한 꿀맛마저 시어지고 독성까지 가지게 되어 꽃 주변에는 아무도 얼씬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름도 모르는 풀 하나가 아직 색채를 가지지 않은 꽃 옆에서 흙의 표면을 뚫고 힘겹게 얼굴을 내밉니다. 하지만 이 이름 모를 풀은 물기에 의해 언제든 입구가 막혀 다시 땅 속 깊은 곳으로 쳐 박힐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습니다. 그럼에도 이름 모를 풀은 이렇게 말합니다.

 

상상할 수 있겠니? 땅 속에서 눈을 뜨면, 잠깐동안 보았던 세상의 기억이 얼마나 눈부신지 몰라. 세상에는 바람이 있고, 바람이 실어오는 숱한 냄새들이 있고, 온갖 벌레들이 내는 소리들이 있고, 별과 달이 있고, 검고 깊은 밤하늘이 있잖아. 그것들이 견딜 수 없이 보고 싶어 지곤 해. 영원히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면, 보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해져. 

 

언제 다시 볼 수 없을지 모르고, 영원히 볼 수 없을지 모르기에 땅 밖으로 얼굴을 내밀게 되면 그 소중한 생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눈코귀에 담는다고 말입니다. 세상에 있는 듯 없는 듯 미미한 존재이고 어둡고 낮은 곳에 이름도 가지지 못한 풀은 또한 이렇게 말합니다. 

 

넌 더 강해져야 해. 더 씩씩하게 견뎌야 해. 그리고 무엇보다... 너 자신을 사랑해야 해

 

 

이름 모를 풀은 마음에 드는 것 하나 없고 초라하고 보잘것없고 색도 질감도 가지지 못한, 자신을 스쳐 지나는 가는 모든 것에 상처를 입는 꽃에게 더 강해지고 씩씩해져야 한다고 그리고 무앗보다 너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을 남긴 채 어느 날 또다시 자취를 감춥니다. 

 

내가 포기하지 않는 한, 그 풀 역시 포기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잊지 않게 해 주세요

 

꽃은 사라진 풀에게 포기하지 않겠다고, 너를 잊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상처를 주고 자신의 꿀만 앗아간다고 생각했던 친구들에게 마음을 엽니다. 꽃은 시고 독성을 띄었던 꿀은 어느새 다시 달콤한 꿀을 품기 시작합니다. 다시금 꿀을 찾아 친구들이 찾아오고, 그들이 스쳐 지나가면서 남긴 상처에도 꿋꿋이 고개를 견뎌내고 그들의 방문이 즐겁고 반갑기만 합니다. 이때 기적과도 같이 푸르른 새싹을 틔운 이름 모를 풀이 나타나자, 꽃은 풀의 아름다운 모습에 감탄해하며 자신은 여전히 추하고 볼품없다고 한탄합니다. 이때 풀은 꽃에게 말합니다.

 

너도 이렇게  똑같이 아름다운 싹이었는걸. 이 세상에 돋아난 모든 풀들이 다 그랬어. 네가? 추하고 볼품없다고? 만일 내가 너한테 이름을 붙인다면, 태양꽃이라고 부르겠어. 이 바보 친구야. 태양처럼 샛노랗고, 태양보다 눈부신 꽃아.

 

이름 모를 풀은 꽃에게 '태양꽃'이라고 이름을 불러주고 싶다고 하면서 태양보다 샛노랗고 태양보다 눈부신 너의 모습을 보라고 속삭입니다. 풀이 땅속으로 사라져 있는 동안 꽃은 참고 인내하며 더 강인하고 씩씩하게 세상의 풍파와 맞서 싸웠고 마침내 샛노랗고 눈부신 꽃을 피우게 됩니다. 그리고 풀을 보며 태양꽃은 아무 말 없이 미소를 지어줍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내가 지을 수 있는 가장 환한 미소를 지어주었습니다. 언젠가 그를 만나게 될 순간을 위해 오랫동안 연습해 왔던 따뜻한 웃음이었습니다. 

 

당신에게도 이름 모를 풀과 같은 친구가 있으신가요? 언제든 입구가 막혀서 땅속으로 사라져 육신의 눈으로는 쉽사리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 친구는 아직 틔우지 못한 당신의 내면에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무지와 아집, 교만, 욕망의 안대에 가려 찬란하고 순수한 샛노랗게 빛나는 눈부신 태양꽃을 옆에 두고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요? 약하고 힘없고 색도 형체도 없고 더디고 보잘것없고 추한 당신이 비, 바람, 벌레, 어둠에 맞서 당당히 견디며 오랜 시간 기다리고 또 기다려 눈부시게 빛나는 태양꽃이 되기를, 그런 당신의 모습을 발견하기를 기원합니다. 당신의 이름도 태양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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