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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터디 위드 돈벌러

조선판 '범죄와의 전쟁'의 주인공 임꺽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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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적 임꺽정은 누구인가?

조선판 범죄와의 전쟁, 그 중심에 인물 '임꺽정'이 있었습니다.

임꺽정이 언제 태어났는지 가족관계는 어땠는지 등에 관한 기록은 실록과 야사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임꺽정의 '고향'에 대한 기록만은 남아있습니다.

바로 경기도 양주입니다.

양주에서 태어난 임꺽정의 어린 시절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임꺽정은 태생부터 평범하게 살 수 없는 신분이었기 때문입니다.

' 임꺽정은 양주의 백정이다'

<국조보감>

'백정'이라 하면 보통 소나 돼지를 도축하는 모습을 떠올립니다.

따라서 조선시대에는 밭일에 도움이 되는 소를 잡는다는 부정적인 시선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도축할 때 남는 그 피비린내와 역한 냄새가 백정을 천대하는 더 큰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조선시대 신분 계층
조선시대 신분 계층

조선시대는 일반 백성을 '양민'이라고 불렀습니다.

양민보다 더 신분이 낮은 최하위계층으로 노비가 속한 '천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천민보다 사회적으로 더 천대받는 신분이 있었으니 바로 임꺽정의 신분이었던 백정입니다.

백정 역시 천민에 속하지만 같은 천민들에게조차 백정은 멸시를 받았습니다.

당시 상대방에게 백정이라고 부르는 것이 최악의 욕일 정도로 조선에서 백정은 아주 하찮은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백정들은 먹고살기 위해서라면 사람들이 피하는 어떤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임꺽정 또한 백정이었기에 닥치는 대로 일을 했습니다.

그중에는 적은 돈이었지만 꾸준한 돈벌이가 되는 일도 있었는데 바로 길에 널린 갈대를 베어 와 삿갓, 짚신 같은 생필품을 만들어 팔며 임꺽정은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2. 임꺽정, 기회의 땅 '황해도'로 가다 

그러던 어느 날, 임꺽정에게 귀가 번쩍 뜨이는 놀라운 소식이 들려옵니다.

북서쪽에 있는 황해도가 '기회의 땅'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황해도 갈대밭(노전)
황해도 갈대밭(노전)

당시 황해도 해안은 '노전(蘆田)'이 넓게 퍼져 있어 그것으로 유명했습니다.

노전은 바로 '갈대밭'입니다.

황해도 연안에는 황무지가 길게 이어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갈대가 어찌나 빼곡하게 잘 자랐는지 '밭 전( 田)'자를 붙여서 '노전'이라는 말을 만들어서 부를 정도였습니다.

그 갈대가 임꺽정이 살던 양주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많았던 것입니다.

명나라와 한양을 이어주는 무역의 주요교통로 황해도
명나라와 한양을 이어주는 무역의 주요교통로 황해도

게다가 당시 황해도는 위로는 명나라, 아래로는 한양이 있었기 때문에 명나라와 한양을 이어주는 무역의 주요 교통로였던 것입니다.

귀한 보물을 싣고 한양과 명나라를 오고 가는 사신들은 물론이고 일반적인 상인들도 많은 물건들을 가지고 황해도를 지나다녔습니다.

이때 임꺽정의 머릿속에 번뜩이는 생각 하나가 떠오릅니다.

'황해도의 풍부한 갈대로 물건을 만들어 오고 가는 사신이나 상인들에게 팔면 어떨까?

이런 생각으로 임꺽정은 갈대로 물건을 만들어 팔았고 황해도를 지나는 수많은 행인과 상인이 너도나도 임꺽정이 만든 짚신과 삿갓을 사갔던 것입니다.

게다가 원재료인 갈대를 쉽게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황해도는 그야말로 '기회의 땅'이었던 것입니다.

임꺽정은 부자가 될 꿈에 부풀게 됩니다.

게다가 황해도는 다른 지역보다 육식 문화가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어서 가축을 잡는 도축일도 많았습니다.

경기도 양주에 살던 임꺽정은 그렇게 황금의 땅 황해도로 삶의 터전을 옮기게 됩니다.

3. 임꺽정, 권세가들 무료였던 갈대를 백성들에게 돈을 받고 팔다

임꺽정은 황해도로 부푼 꿈을 안고 터를 옮겼는데 이 희망을 꺾어버리는 일이 벌어집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갈대를 가지고 도리어 그곳 백성들에게 팔아서 많은 이익을 얻습니다'

<명종실록>

당시 조정을 장악한 권세가들이 황해도에서 생산되는 갈대를 돈을 받고 그동안 무료로 썼던 그곳 백성들에게 팔았던 것입니다.

임꺽정이 살던 시기는 조선의 제13대 왕  '명종'이 재위했던 시기였습니다.

당시 수렴청정으로 권세를 쥐고 있던 명종의 어머니 '문정왕후'의 권세를 등에 업고 몇몇 권세가들이 국정을 농단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상황이 어찌나 심각했는지 명종실록을 편찬한 관리가 이렇게 전하기까지 합니다.

'백성의 이익을 빼앗는 데 못하는 짓이 없었으니 대도(大盜)가 조정에 도사리고 있는 셈이라'

<명종실록>

권세가들의 탐욕이 어찌나 대단했던지 큰 도둑이 조정에 도사리고 있다고 빗댈 정도로 백성을 향한 수탈이 극에 달해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떵떵거리고 살던 권세가들이 왜 갈대에 눈독을 들인 것일까요?

당시 조선 팔도에는 버려진 황무지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조정에서는 땅을 개간하는 자에게 그 땅의 소유권을 주는 법을 만들었던 것인데 심지어 개간할 수 있는 땅 면적에 제한도 없었습니다.

개간하기만 하면 면적의 제한 없이 넓은 땅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열렸던 것이며 어마어마한 대 토지를 거머쥘 절호의 기회였던 셈입니다.

그리고 이때 재산 늘리기에 혈안이 된 권세가들의 눈에 띈 지역이 무주공산인  황해도에 넓게 깔린 갈대밭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권세가들이 황해도 땅을 개간하려던 그때, 갑자기 갈대밭을 개간하려던 권세가들의 마음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갈대를 베어 먹고사는 백성들이 있다고?'

개간을 하려다 그곳의 갈대를 베어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백성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권세가들은 굳이 갈대밭을 개간하느라 돈과 시간을 투자할 필요 없이 황무지의 갈대를 팔기로 한 것입니다.

권세가들은 돈을 벌기 위해 잔머리를 굴려 편법을 쓰기 시작합니다.

조선 조정에는 개간하겠다는 신고만 하고 얻은 땅의 갈대를 황해도 백성들에게 팔아치운 것입니다.

이러한 권세가들의 탐욕에 분노한 인물은 누구였을까요?

임꺽정 입장에서는 이전에는 아무렇게나 베어 쓰던 갈대를 이제는 돈을 주고 사서 쓰라고 하니 화가 나는 것은 당연했을 것입니다.

고향까지 떠나며 황금의 땅인 줄 알고 왔던 황해도에서 임꺽정은 생계를 걱정하는 절체절명의 생존위기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4. 조선 조정, 권세가들에게서 뺏은 갈대판매권으로 백성들에게 세금으로 징수케 하다

그렇다면 조선 조정에서는 이 사실을 몰랐을까요?

갈대를 베어 먹고사는 백성들에게 최소한의 생계는 보장해줘야 한다면서 갈대밭을 백성들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상소가 올라오긴 합니다.

이런 상소가 올라왔을 때 명종은 과연 어떻게 했을까요?

'갈대밭은 내수사에 귀속시키는 것이 옳기에 이미 귀속시키도록 하였다'

<명종실록>

갈대밭을 왕실에서 직접 관리하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그렇다면 임꺽정은 더 이상 갈대를 사서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요?

아니었습니다.

어처구니없게도 조선 왕실은 백성의 부담을 줄여주기는커녕 권세가들에게 주던 갈대값을 이제는 나라의 세금으로 내라고 명령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임꺽정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부당한 권력의 횡포에 대해 끌어 오르는 분노와 그 분노를 삭이는 일뿐이었습니다.

5. 임꺽정, 도적단의 우두머리가 되다

https://www.youtube.com/watch?v=fnBHe4g8ymk

임꺽정

1559년 3월, 황해도에서 약탈과 살인사건 등 흉흉한 일이 연달아 발생합니다.

심지어는 대낮에 관아의 감옥을 부수고 포졸을 살해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무시무시한 도적이 등장해서 황해도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백정을 향해 오랫동안 이어진 차별과 멸시, 그리고 권세가들의 끝없는 탐욕 때문에 극한으로 내몰린 임꺽정이 결국 참지 못하고 황해도를 주름잡는 도적이 된 것입니다.

'그들의 무리는 8~9명에 지나지 않으며 모이면 도적이고 흩어지면 백성이다'

<명종실록>

임꺽정은 도적 무리들을 거느린 도적단의 우두머리가 됩니다.

'황해도에서 한 명의 도적이 일어서자 이에 호응해서 100명이 일어났다'

이러한 기록으로 볼 때, 많은 백성이 임꺽정의 도적단에 합류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비참한 삶 속에서 극한에 몰린 백성들이 끝내 이렇게 죽을 바에는 도적이 되기를 선택한 것입니다.

6. 임꺽정, 조직적 체계를 갖춘 도적단을 만들다

임꺽정은 도적이 되기를 희망하는 모든 사람들을 도적단으로 받아줬을까요?

임꺽정의 도적단원이 되려면 특별한 시험을 치러야 했습니다.

시험은 산중턱에서 시작됩니다.

시험대에 오른 사람들은 눈앞에 놓인 것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눈앞에 팥을 가득 채운 20말의 포대자루가 있었던 것입니다.

시험 내용은 이 20말의 팥 자루를 지고 산꼭대기로 재빠르게 오르는 것이었습니다.

한 말은 대략 1.6kg이라고 하니 20말은 무려 32kg 정도였습니다.

임꺽정은 강한 힘, 민첩함 등을 갖춘 자를 도적단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풍채 좋고 힘 좋은 사람이 아님에도 도적단 지휘부의 핵심에 오른 사람도 있었습니다.

바로 '전략가'들이었습니다.

똑똑한 자들을 뽑아서 전략을 세우고 뒤쫓아 오는 관군을 속이는 지능형 범죄를 도모하기도 합니다.

임꺽정은 조직적으로 체계를 갖춘 도적단을 만든 것입니다.

7. 임꺽정, 관군을 죽여 '명종'까지 그 이름을 알게 되다

임꺽정이 황해도 지역에서도 집중적으로 노린 곳이 있었습니다.

바로 한양으로 가는 길목을 노립니다.

한양으로 가는 상인들의 보따리에는 권세가들이 좋아할 만한 진귀한 물건이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임꺽정은 으슥한 산길에 숨어 있다가 귀한 물건을 싣고 가는 상인들을 노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임꺽정이 도적질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조선의 임금 명종까지 임꺽정의 이름을 알게 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 임꺽정을 추적할 즈음에 패두(관군을 이끄는 우두머리)의 말을 듣지 않고 군사 20여 명 만을 주어 초라하고 서툴게 움직이다가 마침내 패두가 살해당하게 되었다'

<명종실록>

당시 도적을 잘 잡기로 유명한 평안도 개성의 포도관이 임꺽정을 잡기 위해 나섰습니다.

새벽을 틈타 20여 명의 포졸을 대동했지만 임꺽정  도적단에게 포도관이 그 자리에서 화살 7대를 맞고   죽어버린 것입니다.

이 일로 임꺽정은 한양 조정에까지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도적단의 우두머리였던 임꺽정이 관군을 죽인 희대의 범죄자가 된 순간입니다.

8. 임꺽정, 꾀와 전략으로 관군을 따돌리다

포도관을 살해하면서 무시무시한 도적으로 이름을 알린 임꺽정을 이대로 뒀다가 그가 언제 황해도를 넘어 전국구 도적이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조선 조정에서는 대대적인 임꺽정 토벌작전에 나섭니다.

임꺽정 토벌 작전 시작한 곳은 다름 아닌 임꺽정의 생활 근거지였던 '황해도'였습니다.

조선조정에서는 황해도를 지키는 관군들에게 임꺽정을 무조건 잡아들이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그런데 신출귀몰한 임꺽정을 잡았다는 소식이 도통 들리지 않습니다.

도리어 임꺽정에게 관군들이 쩔쩔 메고 있다는 소식만이 들려올 뿐이었습니다.

왜 황해도 관군은 임꺽정을 잡지 못하고 있었을까요?

임꺽정과 그 도적단이 기가 막힌 꾀와 전략을 썼기 때문입니다.

신출귀몰한 임꺽정의 놀라운 일화를 전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황해도 관군이 임꺽정이 나타났다는 제보를 받고 서둘러 포졸을 대동해서 뒤쫓기 시작합니다.

바짝 뒤쫓던 관군은 임꺽정이 숨어든 곳까지 따라잡습니다.

추격 끝에 은신처까지 따라간 관군의 눈앞에 임꺽정이 없습니다.

임꺽정은 관군의 맹추격을 보기 좋게 따돌리고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임꺽정은 관군을 속이기 위해 어떤 꾀를 썼을까요?

바로 신발을 거꾸로 신은 것입니다.

만약 발자국을 발견한다고 해도 실제방향과 반대방향으로 찍혀있어 따라갈수록 임꺽정과 점점 더 멀어졌던 것입니다.

임꺽정은 일반적인 도적이 아니고 관군을 상대로 대범한 꾀를 쓰는 간 큰 도적이었습니다.

9. 임꺽정, 고발한 사람에게 죽음으로 응징하다

날뛰는 임꺽정을 관아에 고발한 사람은 없었을까요?

당연히 누군가의 고발이 있었기 때문에 지방관군과 임꺽정이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인 것입니다.

임꺽정은 자신을 고발한 자에게 앙심을 품고 분노에 치를 떱니다.

그리고 결국 임꺽정은 한 마을에서 자신을 고발한 자를 찾아냅니다.

'내가 고발했으니 나를 대신 죽여주시오'

임꺽정 앞에서 벌벌 떨고 있는 고발자 앞에 고발자의 아들이 아버지 대신 자신이 죽겠다며 나섭니다.

아들의 이 외침을 들은 임꺽정은 순순히 아버지를 놓아줍니다.

그렇다면 아들은 어떻게 됐을까요?

'아들을 결박하여 촌가에 도착하여 밥을 짓게 하고는 둥그렇게 둘러앉아 배를 갈라 죽이고 갔다'

<명종실록>

임꺽정의 만행은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큰 무리의 도적단을 이끌면서 임꺽정은 약탈대상을 가리지 않습니다.

농가와 민가에 불을 지르고 그들의 소와 말을 빼앗습니다.

만약 이에 불복하거나 항의하면 사지를 찢어 잔인하게 살해했다고 합니다.

마을에 빈번하게 등장해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르는 임꺽정이 잡혔다는 소식은 여전히 들리지 않습니다.

'살해하는 일을 멋대로 하니 사람마다 그들의 보복을 두려워하여 촌민은 도적에게 침략을 당하고서도 보고도 하지 않고 수령은 도적의 횡행함을 듣고서도 체포하지 않습니다.

임꺽정이 고발자를 처참하게 살해한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면서 보복이 두려웠던 사람들은 입을 꾹 닫아버린 것입니다.

지방의 수령들조차 임꺽정을 두려워하니 일반 백성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당시 국가의 기강은 백성을 지킬 힘도  없을 정도로 무너져 버린 상황이었습니다.

지배층 기록인 실록의 임꺽정은 우리가 흔히 알던 의로운 도적의 모습과는 거리가 멉니다.

백정이었던 임꺽정은 살기 위해서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르는 죄악을 저지르는 범죄자였던 것입니다.

10. 임꺽정, 도적단의 활동범위를 넓히고 세력도 키우다

임꺽정의 기세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갑니다.

조선 조정에서도 하루라도 빨리 임꺽정의 기세를 꺾기 위해서 각 지방의 관군에게 임꺽정을 체포하라는 엄명을 내립니다.

가장 먼저 지방관군의 목표가 된 곳은 역시나 황해도였습니다.

관군들은 임꺽정 잡기 위해서 황해도 각지에 퍼진 임꺽정의 소굴로 향합니다.

1560년 10월 22일 조선 조정에 더욱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집니다.

평안도 황해도 강원도
평안도 황해도 강원도

임꺽정이 황해도 관군을 모두 따돌리고 평안도 '맹산'으로 도망쳤다는 것이었습니다.

재빨리 평안도 맹산으로 발길을 돌린 지방 관군들은 이번에는 잡을 수 있었을까요?

관군들은 이 평안도에서도 임꺽정의 그림자조차도 잡을 수 없었습니다.

이미 임꺽정 도적단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평안도를 넘어 강원도 이천까지 출몰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그야말로 신출귀몰한 임꺽정의 도적단은 황해도, 평안도에 이어 강원도 까지 삼도를 오가며 관군들을 보기 좋게 따돌립니다.

명종은 임꺽정을 소탕하기 위해서 실적이 없는 관리들을 파직하고 새로운 관리를 파견하기도 했습니다만 새로 부임한 관리들조차 임꺽정이 두려워서 잡지 못했습니다.

지방관들이 토벌을 머뭇거리는 사이에 임꺽정의 세력은 더욱더 커졌고 활동범위도 더 늘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11. 임꺽정, 마을 곳곳에 정보원들을 숨겨 놓고 정보를 미리 얻다 

임꺽정 도적단은 황해도, 평안도, 강원도 3개 도를 넘나드는데 어떻게 단 한 번도 정체가 발각되지 않고 관군의 추격을 따돌린 것일까요?

바로 상인으로 변장해서 지역과 지역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이리저리 관군의 눈을 피해 도주했던 것입니다.

이런 변장술 외에도 임꺽정 도적단을 잡을 수 없었던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앞서 임꺽정의 도적단은 모이면 도적이고 흩어지면 백성이라고 했습니다.

마을 곳곳 관청 안까지 임꺽정의 도적단이 스파이처럼 정보원으로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니 지방 관아에서 임꺽정을 잡으려고 습격을 해도 임꺽정은 이미 그 정보를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능수능란하게 조선관군을 속이고 따돌리는 임꺽정은 계속되는 작전 성공에 기세 등등 해지며 이후 임꺽정은 더욱더 대담하게 행동하게 됩니다.

12. 명종과 권세가들 임꺽정 도적단이 한양으로 올까 두려워하다

'관을 사칭하고 여러 고을을 출입하여.. 어떤 수령은 모르고 접대한 자도 있었다'

<명종실록>

어처구니없게도 관군의 추격을 당하는 와중에 임꺽정과 도적들이 고위 관리로 변장했는데 심지어 고을 수령을 감쪽같이 속이고 도적단들이 접대까지 받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조선 조정은 마땅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던 상황에 미꾸라지처럼 관군의 포위망을 뚫더니 이제는 고위 관료 행세까지 하면서 조선 관군을 농락하기까지 합니다.

한편 조선을 해 집고 다니는 임꺽정을 보면서 조정의 권세가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이러다 임꺽정이 한양까지 쳐들어와 자신들의 목숨과 재산을 노리는 것 아니냐며 걱정을 하기에 이릅니다.

13. 명종, 임꺽정 도적단을 상대로 '조선판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다

결국 명종은 임꺽정과 도적단을 상대로 '조선판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합니다.

명종은 한양 도성으로 이어지는 길목마다 관군들을 배치합니다.

그리고 도성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얼굴과 직업을 꼼꼼히 살피면서 경계를 강화합니다.

그렇게 철저한 통제와 감시를 이어가던 중 철통경계를 시작한 딱 일주일 뒤인 1560년 10월 28일, 조선 조정을 발칵 뒤집은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집니다.

'(임꺽정이) 빼앗은 재물을 실어다 한양에 두고 소굴을 만들었습니다'

<명종실록>

명종은 임꺽정 도적단의 한양 진입을 막겠다고 전국을 쥐 잡듯 뒤집고 통제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임꺽정이 철통 같은 방어를 뚫고 한양에 들어와 있었던 것입니다.

한양만은 지키겠다면서 철두철미하게 감시하고 보안을 강화했던 조선조정이 한순간에 우스운 꼴이 되고 만 것입니다.

14. 조선 관군에 붙잡힌 임꺽정의 오른팔 '서림', 임꺽정 도적단의 정보를 실토하다

임꺽정이 한양에 나타났다는 소식에 명종과 권세가들은 어떤 반응을 했을까요?

명종은 한양을 5개의 구역으로 나눈 다음 각 구역에 관군을 배치하고 대대적인 수색을 지시합니다.

'샅샅이 뒤져 먼지 같은 흔적이라도 찾아내라!'

명종은 지엄한 어명을 내립니다.

그렇게 촘촘한 수사를 이어가던 중 임꺽정에 대한 근심으로 속이 타들어가던 명종에게 단비 같은 희소식이 들립니다.

한양에서 관군이 드디어 임꺽정의 오른팔 '서림'을 잡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임꺽정 도적단의 두뇌이자 임꺽정이 가장 믿고 의지하던 인물 중 하나인 '전략가'였습니다.

당시 한양에서 정보원으로 활동하던 서림을 조선 관군이 놀라운 눈썰미로 잡아낸 것입니다.

'임꺽정이 어디 있는지 실토하라!'

임꺽정의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 시작된 서림에 대한 취조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임꺽정의 오른팔 서림의 입은 쉽게 열리지 않습니다.

그러자 조선 조정은 굳게 입을 다문 서림을 회유하기 위해 은밀한 조건을 제시합니다.

'정보를 알려주면 자유의 몸이 되게 해 주고 상으로 벼슬까지 내려주겠다'

결국 수사관의 끈질긴 취조와 회유 끝에 임꺽정의 근거지와 정보들을 실토하기 시작합니다.

'임꺽정은 이미 한양을 빠져나가 황해도에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서림의 입에서 특급 정보를 듣게 됩니다.

'오는 26일... 새 봉산 군수 이흠례를 죽이기로 의논하였습니다'

사실 이흠례는 임꺽정이 오랫동안 이를 갈던 원수였습니다.

이전부터 이흠례가 임꺽정의 도적단원들을 수도 없이 잡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원수 이흠례가 봉산 군수로 황해도로 온다는 소식을 임꺽정이 듣게 되었고 그를 살해하고자 한 것입니다.

임꺽정이 이전에도 지방의 포도관을 죽인 적은 있지만 계획범죄는 아니었는데 이번에는 왕명을 받고 내려온 관리를 애초부터 살해할 음모를 세웠다는 사실에 명종은 더욱더 분노합니다.

15. 임꺽정, 황해도로 온 토벌대를 몰살시키다

점점 대담해지고 흉악해지는 임꺽정의 범죄는 엄연한 국가 공권력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명종은 자신을 호위하던 최정예부대의 지휘관 정수익을 수장으로 앉히고 군대를 꾸려서 임꺽정 토벌을 명령합니다.

조선 조정의 자존심을 걸고 도적단 소탕 작전에 나선 것입니다.

1560년 11월 26일, 황해도 봉산에 임꺽정과 그 도적단을 뿌리 뽑기 위한 토벌대가 드디어 집결합니다.

다섯 부대에서 대대적으로 보낸 지원군까지 총 500여 명의 토벌대는 곧장 임꺽정의 근거지로 향합니다.

뒤늦게 한양에서 온 토벌대가 습격했다는 것을 알아챈 임꺽정과 6명의 도적들은 깊은 산속으로 도망칩니다.

그렇게 독 안에 든 쥐 신세가 된 임꺽정, 관군들은 임꺽정이 움직이기만을 기다리는데 어느새 해가 져 밤이 됩니다.

그런데 무언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연속으로 들리더니 토벌군이 하나둘 속수무책으로 쓰러지기 시작합니다.

'적이 밤에 60여 기를 거느리고 높은 데 올라 내려다보며 비 오듯이 활을 쏘았다'

<연려실기술>

임꺽정은 소수의 인원으로 관군을 유인할 유인조를 따로 만들었던 것이며 밤이 되자 숨어있던 도적단들이 합세해서 유인한 관군들에게 총공세를 퍼붓는 기습공격을 한 것입니다.

결국 임꺽정은 토벌군을 이끌던 관리를 살해하고 500명이 넘는 관군들을 거의 몰살시킵니다.

그리고 토벌대가 타고 온 말까지 빼앗아 타고 유유히 그곳을 도망칩니다.

16. 명종, 임꺽정 전단 체포단 '순경사'를 만들다 

결국 명종은 임꺽정을 잡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내립니다.

오로지 임꺽정 체포를 전담하는 새로운 관직인 '순경사(巡警使)'를 만든 것입니다.

순경사는 각 도의 군대를 지휘하고 책임지던 무려 지금의 사단장급의 종 2품 병마절도사 출신들이 임명되었습니다.

오직 임꺽정 체포만을 특별 전담하는 순경사를 황해도와 강원도에 파견합니다.

지금으로 치면 도둑을 잡기 위해서 조선판 특전사, UDT 등 대한민국 최고의 특수부대원 100여 명이 파견되었다고 보면 됩니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고 생각한 명종은 임꺽정을 잡기 위한 승부수를 던집니다.

17. 임꺽정의 형 '가도치', 임꺽정으로 오인되어 체포되다

과연 이번에는 임꺽정을 체포할 수 있을까요?

순경사가 파견되고 24일 뒤, 조선 조정에 한 통의 보고서가 도착합니다.

'도적의 괴수 임꺽정을 잡았습니다'

임꺽정이 도적질을 하며 활개를 친 지 무려 2년 만에 전해진 희소식이었습니다.

1561년 1월 3일, 임꺽정은 체포된 지 6일 만에 한양으로 압송되었고 의금부에서는 임꺽정을 옥에 가둔 뒤 누군가를 급히 부릅니다.

바로 임꺽정의 신분을 확인하기 위해 임꺽정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오른팔 '서림'이었습니다.

그런데 임꺽정을 마주한 서림이 깜짝 놀라며 한마디 합니다.

'이 사람은 임꺽정의 형입니다!'

황해도 순경사가 잡아 온 인물의 정체는 임꺽정과 함께 도적단으로 활동하던 임꺽정의 형 '가도치'였습니다.

순경사는 처음부터 왕을 속일 생각은 없었을 것입니다.

임꺽정 체포라는 막중한 임무를 받은 순경사였지만 그동안 한 번도 잡히지 않은 임꺽정의 얼굴을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입니다.

순경사들은 마치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심정으로 얼굴을 모르는 임꺽정을 잡기 위해 수상한 사람을 모두 잡아들입니다.

이 과정에서 도적으로 활동하던 임꺽정의 형 가도치를 잡게 된 것입니다.

결국 순경사의 혹독한 고문을 못 이긴 가도치는 자신이 임꺽정이라며 거짓자백을 하게 된 것입니다.

조선 최적의 요원 순경사들의 헛발질을 보면서 명종은 어땠을까요?

명종은 호되게 신하들을 꾸짖었습니다.

'큰 도적을 오래도록 잡지 못해 분하다. 특별히 조치하여 기필코 붙잡도록 하라! '

18. 임꺽정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된 '의주목사의 거짓 임꺽정 체포' 전말이 드러나다 

명종은 조선 최고의 무신들이 가져온 성과가 기껏 이 정도라는 사실에 크나큰 분노와 치욕을 느낍니다.

그런데 가짜 임꺽정 소동이 일어난 8개월 뒤인 1561년 9월 7일, 또 한 번 조선 조정에 놀라운 소식이 전해집니다.

'의주 목사 이수철이 대적 임꺽정을 붙잡았다'

<명종실록>

평안도 의주에서 붙잡힌 임꺽정, 이번에는 진짜 임꺽정일까요?

이번에는 진짜 임꺽정을 잡았다는 확신을 준 물증이 있었던 것입니다.

' 임꺽정의 공초를 보니, 놀랍기 그지없다'

<명종실록>

 지금도 범죄자를 잡으면 심문을 하고 왜 범죄를 저질렀는지 이유를 쓰는 진술서를 받듯이 조선판 범죄자 심문 진술서를 '공초'라고 합니다.

관군에게 붙잡힌 이 남자의 공초에 임꺽정의 도적질에 가담한 사람의 이름까지 상세히 적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체포된 지 2주 뒤인 1561년 9월 21일, 드디어 체포된 임꺽정이 한양으로 끌려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전직 임꺽정의 오른팔이자 임꺽정을 붙잡는데 가장 중요한 인물이 된 서림도 함께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임꺽정의 얼굴을 확인하러 온 서림은 말합니다.

'저 남자는 임꺽정이 맞습니다!'

순경사들은 드디어 진짜 임꺽정을 잡았다면서 환희에 찹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한마디를 합니다.

'나는 임꺽정이 아니라 해주의 관군 윤희정이란 사람이오!'

명종은 남자의 말을 믿지 않고 위기를 모면하려는 임꺽정의 수작이라면서 더욱 호되게 심문하라는 명을 내립니다.

그런데 임꺽정의 심문을 담당하는 수사관이 시간이 갈수록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임꺽정의 공초에 도적단원의 이름이 상세히 적혀있었는데 임꺽정의 아내라고 잡혀온 인물은 백발의 할머니였고 임꺽정의 의붓자식과 사위라는 사람은 온몸이 불로 지져지고 팔다리가 비틀어져 있었습니다.

누가 봐도 모진 고문에 의한 허위 자백의 정황이 의심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상함을 느낀 수사관은 다시 서림을 불러 조사합니다.

이때 서림이 힘들게 꺼낸 말을 듣고 조선 조정은 발칵 뒤집어집니다.

'사실... 저 사람은 임꺽정이 아닙니다'

이번에는 서림이 거짓말을 한 것으로 이번에도 임꺽정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당시 서림은 임꺽정을 잡는 데 혈안이 된 의주 목사에게 협박과 회유를 당한 것이었고 서림은 살기 위해서 거짓말을 합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명종은 의주 목사를 파직시킵니다.

그리고 억울하게 붙잡혀온 가짜 임꺽정 윤희정은 왕을 기만하고 가짜 진술서로 수사에 혼란을 줬다면서 사형을 명합니다.

그렇다면 거짓 진술을 한 서림은 어떻게 됐을까요?

서림에게 내려진 처벌은 없었습니다.

조선 조정에서 임꺽정의 얼굴을 아는 사람은 서림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임꺽정의 얼굴을 안다는 이유로 서림은 목숨을 건지게 됩니다.

19. 조선의 저승사자 '남치근'을 임꺽정 소탕에 투입하다

조선 조정에서 벌써 두 번이나 가짜 임꺽정 소동이 벌어진 것인데 조선 전체는 신출귀몰한 임꺽정 도적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벌벌 떨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명종은 조정 관료들에게 충격적인 발표를 합니다.

'도적의 세력이 성하여 적국(敵國)과 같다'

조선의 백성이었던 임꺽정의 도적단을 외적(外敵), 오랑캐처럼 조선을 침략하는 원수로 여기겠다는 초유의 선언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순경사들조차도 임꺽정을 잡지 못하자 명종은 도적 임꺽정과의 전쟁에 종지부를 찍을 최종 병기를 부릅니다.

바로 조선의 저승사자 이름난 무신 '남치근'이었습니다.

남치근은 지금의 서울 시장과 같은 한성판윤을 역임했던 인물인데 제주와 호남에서 왜구를 여러 차례 소탕한 전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남치근의 성품은 과연 어땠을까요?

'(남치근은) 성품이 음험하고 잔혹하였다... 군민(君民)을 많이 죽였다'

<명종실록>

남치근은 무척이나 포악하고 잔인했습니다.

그에 대한 소문이 어찌나 흉흉했던지 심기에 거슬리면 아군이던 백성이던 누구든지 무참하게 죽일 정도였다고 전해집니다.

남치근의 이름 세 글자만 대면 우는 아이도 울음을 뚝 그칠 정도로 호랑이처럼 무서운 무신이었습니다.

조선의 저승사자 남치근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명종의 명을 받들어 임꺽정의 소굴 황해도로 출격합니다.

사실 명종은 저승사자 남치근보다 먼저 황해도에 또 다른 인물을 보냈습니다.

바로 서림입니다.

서림은 임꺽정의 얼굴을 아는 유일한 인물이었고 게다가 배신자 서림이 임꺽정의 소굴인 황해도에 왔다는 소문을 알게 된다면 임꺽정이 자신을 배신한 서림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제 발로 서림을 찾아올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명종은 이런 이유로 임꺽정과의 전쟁을 마무리 지을 핵심수단이자 미끼로 서림을 황해도로 보냅니다.

그리고 이 막대한 임무를 서림에게만 맡길 수가 없으니 조선의 저승사자 남치근도 황해도로 보내 임꺽정을 추적하게 한 것입니다.

20. 마침내, 관군들 임꺽정을 발견하고 뒤쫓지만 눈앞에서  놓치다

그렇게 남치근과 서림이 황해도를 수색한 지 4개월째, 어느덧 황해도에는 추운 겨울이 찾아오고 조선관군은 여전히 임꺽정을 소탕하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임꺽정 소굴의 중심지였던 구월산을 샅샅이 수색하던 토벌대 앞에 한 무리의 백성이 성큼성큼 다가옵니다.

그리고 충격적인 말을 꺼냅니다.

'우린 임꺽정 도적단의 단원이오!'

과연 그들의 말은 사실이었을까요?

놀랍게도 사실이었습니다.

숨 막히게 조여 오는 추적을 피해 도망 다니던 임꺽정 도적단 중 일부가 제 발로 나타난 이유는 더 이상 견디기 어려워 관군에게 항복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투항해 온 도적들에게 고급 정보를 알아냅니다.

마침내 관군은  임꺽정이 숨어 있는 산채의 정확한 위치를 알아냅니다.

드디어 임꺽정을 잡을 수 있는 희망이 생긴 것입니다.

이제 임꺽정을 잡아들일 일만 남은 상황에서 관군들은 재빨리 도적단이 알려준 산채를 급습합니다.

과연 임꺽정은 그곳에 있었을까요?

거짓말처럼 임꺽정은 그곳에 있었습니다.

3년 동안 조선을 뒤집으며 활개를 친 도적단의 두목 임꺽정을 눈앞에 둔 순간이었습니다.

궁지에 몰린 임꺽정은 어떻게 했을까요?

임꺽정은 재빨리 관군의 포위를 뚫고 산 아래로 도망쳐 민가로 숨어듭니다.

관군은 날쌔게 도망가는 임꺽정을 쫓아 마을로 향하고 잠시 후, 자신의 집에 임꺽정이 들어왔다는 노인의 외침을 듣고 관군들은 부리나케 노인의 집으로 달려갑니다.

그때 노인의 집안에서 한 관군이 허겁지겁 나오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 임꺽정이 벌써 달아났습니다!'

미리 도착했던 관군이 집을 수색했는데 이미 임꺽정이 도망갔다는 것입니다.

눈앞에서 또다시 임꺽정을 놓친 것입니다.

21. 관군으로 변장한 임꺽정을 서림이 찾아내어 마침내 임꺽정은 관군에 붙잡히고 결국 최후를 맞이하게 되다

그런데 발길을 돌려 관군들이 마을을 빠져나가려던 순간, 누군가 이렇게 외칩니다.

'임꺽정이다!'

그리고 관군들은 곧장 임꺽정으로 지목된 이를 에워쌉니다.

그런데 임꺽정이라고 지목된 이는 관군 복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방금 전 임꺽정이 이미 도망가고 없다고 말했던 그 관군이 바로 진짜 임꺽정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임꺽정은 어떻게 관군 복장을 하고 있었을까요?

임꺽정은 변장의 달인으로 어딘가에서 관군의 옷을 훔친 뒤 노인의 집에 숨어들어 관군의 옷으로 갈아입고는 는 관군행세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허술한 틈을 타서 도망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변장한 임꺽정을 한눈에 알아보고 임꺽정을 지목해 낸 인물은 누구였을까요?

바로 서림이었습니다.

'서림'때문에 정체가 들통난 임꺽정은 도망칠 틈도 없이 쏟아지는 화살을 맞고 결국 관군에게 체포당합니다.

피투성이가 된 채 포승줄에 묶여 체포된 임꺽정은 서림과 마주합니다.

임꺽정은 서림에게 한 마디를 남깁니다.

'내가 이렇게 된 것은 모두 서림 너 때문이다'

임꺽정은 자신을 배신한 서림을 향해 피를 토하듯 원망을 쏟아냅니다.

임꺽정은 체포되고 15일 뒤, 사망했다고 전해집니다.

지난 3년간 도적 임꺽정과 조선 조정이 벌인 범죄와의 전쟁은 이렇게 임꺽정의 죽음으로 막을 내립니다.

22. 임꺽정의 출연에 대한 고찰

임꺽정은 백정으로 태어나 신분의 한계로 인해 힘겹게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갈대로 짚신등을 만들어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던 힌 명의 백성이었습니다.

그런 그를 도적단으로 내몬 것은 당시 무능했던 조선 조정과 본인과 가문에 대한 권력과 부의 축적에만 혈안 되어 있던 권세가들 때문이었습니다.

비록 그가 세간에 알려진 대로 의적이 아니었고 그 또한 힘없는 백성에게 재물과 목숨을 빼앗았기에 변명의 여지없는 범죄자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의 기록은 당시 지배층들에 의한 것이었기에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알 수 없기도 합니다.

지배층의 부패와 수탈로 삶의 터전까지 빼앗기고 결국 도적밖에 될 수 없었던 백성들의 삶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길 바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MrWEVqclX8

갈대밭 때문에 도적이 된 임꺽정

 

<출처: 벌거벗은 한국사/ SBS/ KBS 역사스페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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