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선회화
조선회화하면 김홍도, 신윤복, 겸재 정선과 장승업까지 떠오르는 인물이 있습니다.
이건희 컬렉션에서는 조선 후기 회화 르네상스를 연 천재 화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다룰 인물은 '조선 회화 문화의 황금기'를 이끈 천재들 중 단연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화가는 '단원 김홍도'입니다.
상세 < < 전시 < 국립현대미술관 (mmca.go.kr)
2. 붓으로 전하는 천재 단원 김홍도 이야기
김홍도는 풍속 화가로만 알려져 있는 것과 달리 산수화, 인물화, 신선도, 화초화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약한 멀티플레이어였습니다.
김홍도는 실제 풍경을 정밀하게 그려낸 화가로 이름을 달렸습니다.
대상을 섬세하게 표현한 그의 작품을 보고 스승 강세황이 말하기를 '김홍도의 그림은 모든 것이 뛰어나다. 그중에 가장 뛰어난 것은 '도석인물화'다. '라고 했을 정도로 극찬을 합니다.
3. <운상신선도>
도석인물화란 도교의 신선이나 불교의 신을 그린 인물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운상신선도>라고 불리는 작품으로 말 그대로 구름 위를 거니는 소를 탄 신선을 표현한 그림입니다.
이 그림의 가장 포인트는 배경 없이 먹의 번짐, 농담만으로 표현한 구름길입니다.
신선이 구름길을 걷는 듯한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작품입니다.
작품 속에 등장하고 있는 젊은 신선의 살아있는 인물의 표정이나 소를 끌고 있는 익살스러운 행동 표현을 재미나게 표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김홍도의 서당이나 씨름 등 풍속화에서 보던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얼굴을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림 속 소의 정체는 바로 '외뿔소(무쏘)'라는 뿔이 하나 달려있는 소입니다.
외뿔소는 코뿔소를 그린 것으로 당시 조선에는 코뿔소가 없었고 글로만 전해지던 것을 상상으로 그린 것입니다.
김홍도의 풍부한 상상력으로 그린 코뿔소 덕에 더욱 신비로운 분위기를 뿜어냅니다.
4. <유가 한 면도>
'어부의 낮잠'이라는 뜻을 가진 어가한면도는 물살에 흔들리는 배 위에서 조류를 따라 흘러가고 있는 물아일체 되어 한가롭게 낮잠을 자고 있는 어부를 그리고 있습니다.
물살 인 양 흘려 쓴 그림 윗부분의 글씨는 " 앞 여울까지 흘러가도 모르고 있네. 단옹 (김홍도)이 취하여 그리다"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김홍도는 술기운에 기분 좋게 저 어부처럼 유유자적 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그리지 않았나 추측해 봅니다.
세속에 벗어나 여유를 즐기며 풍류를 즐기고픈 김홍도의 마음이 담긴 작품으로 보입니다.
5. 당대 최고의 화가였던 김홍도는 얼마나 잘 나갔을까요?
한창 때는 그림 주문이 끊이지 않을 만큼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화가였다고 합니다.
김홍도 집 마당에는 그림을 사려고 문전성시를 이루었고 그림값으로 지불하려고 가지고 온 비단이 산처럼 쌓였었다는 후문이 있을 정도입니다.
김홍도는 그림 한 점에 집 한 채 값이 뚝딱 나오는 상황이라 젊은 나이에 금적적인 여유가 생기다 보니 호화스러운 생활을 하게 됩니다.
김홍도는 매화 사랑이 남달라 매화를 그림을 그리기를 좋아했을 뿐 아니라 매화를 사고 싶기도 했다고 합니다.
매화 사랑에 관한 유명한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때마침 김홍도는 그림 하나를 팔아서 3,000냥을 벌어들이게 됩니다.
당시 3,000냥이면 당시 남산 아래가 가장 비싼 동네였는데 이 부자 동네에 기와집을 살 수 있었던 돈이었습니다.
이렇게 번 3,000냥 중 2,000냥으로 매화를 구매하는 데 쓰고 800냥을 친구들과 매화를 보면서 술 먹는데 쓰고 200냥을 식량과 땔감을 사는데 썼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처럼 그림 실력 하나로 조선에서 제일 잘 나가던 화가였던 김홍도는 도화서 화원이 되며 인생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게 됩니다.
도화서 화원이 되면 종 6품을 하사 받으며 벼슬길이 열렸는데 정조의 초상화를 그리는 등 포상을 받으며 연일 관품이 올라가면서 나중에는 연풍(지금의 '괴산') 현감(사또)으로 임명까지 됩니다.
김홍도는 사또가 되며 중인 신분으로 오를 수 있는 최고 직책에 오르게 됩니다.
하지만 사또 생활을 하고 있던 중마을 사람들의 '중매'를 서고 매사냥을 한 것에 상소를 당해 암행에 걸리게 됩니다.
사또가 일 안 하고 놀기만 하고 제대로 일하지 않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일종의 트집 잡을 빌미가 되어 상소를 당해 암해어사의 보고로 결국 연풍 현감으로 부임한 지 3년 만에 파직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그 소식을 듣고 정조가 바로 다시 궁안으로 불러들입니다.
구세주 정조 덕에 다시 입궁하여 도화서 화원으로 복귀하게 됩니다.
이때 김홍도는 역사에 남을 그림을 맡게 됩니다.
정조가 수원 화성을 만들고 그것에서 즉위 20주년 왕실의 큰 행사를 하게 됩니다.
더불어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 씨의 환갑을 맞이하기도 합니다.
혜경궁 홍 씨는 정조의 아버지인 돌아가신 사도세자와 동갑으로 부모 모두 환갑을 기념하여 대규모로 화성으로 행차하는 모습을 하나하나 의궤 제작을 하게 되는데 이때 총책임자가 김홍도인 것이었습니다.
국가의 대규모 프로젝트에 총책임자로 참여한 김홍도는 8일간의 이 대장정인 화성 행차를 낱낱이 기록했습니다.
김홍도가 관찰하고 그린 그날의 인물과 풍경들이 김홍도의 지휘 아래 당대 최고 화가들에 의해 2년여에 걸쳐 완성한 작품입니다.
인물 표정, 몸짓 등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디테일이 돋보이며 역사에 길이 남을 대단한 업적을 남기며 김홍도는 그림 인생에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6. <추성부도>
현재 김홍도의 마지막 작품으로 추정되는 작품이 대한민국 보물 <추성부도>라는 작품입니다.
날짜가 확인되는 김홍도의 작품들 가운데 김홍도의 유작으로 알려진 작품입니다.
작품 왼편에 '을축년 동짓날 3일 뒤 단구가 그리다'라는 글귀를 통해 그림을 그린 날짜가 양력으로 계산하면 1805년 12월 25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김홍도의 사망 날짜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1806년 2월 18일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추성부도>를 그리고 약 2달 후에 사망했으니 이 작품이 당연히 유작이 아니겠느냐라고 보는 것입니다.
강력한 왕권을 행사했던 왕인 '정조'가 1800년에 갑작스럽게 죽게 되고 그의 사랑을 받았던 김홍도의 삶도 180도 바뀌게 됩니다.
강력한 왕권으로 유지되던 국가에서 그 왕이 죽으면 왕권을 통해 유지해 온 많은 것들이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김홍도는 정조의 무한 신임 속에 살다가 정도가 죽자 하루아침에 후원자를 잃게 된 그는 가시밭길이 열리게 됩니다.
이제는 생계유지를 위한 녹봉을 받기 위해 새파랗게 어린 도화서 화원들과 함께 시험을 봐서 평가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결국 급격한 건강 악화로 애써 얻은 관직마저 포기하고 궁궐에서 나오게 됩니다.
이 즈음 김홍도는 늦은 나이(48세(추정))에 얻었던 아들한테 편지를 한 장 씁니다.
아들의 나이는 당시 열두 살이었습니다.
녹아에게
날씨가 차가운데 집안 모두 평안하고 너의 공부는 한결같으냐
너의 선생님께 보내는 월사금을 보낼 수 없어 탄식한다.
정신이 어지러워 더 쓰지 않는다.
12월 19일에 아버지가 쓴다.
그 내용인즉슨 '아들의 교육비를 낼 돈이 없어 미안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김홍도는 말년에 가난했을 뿐만 아니라 폐병에 걸려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추성부도>는 당시 일거리를 찾기 위해서 가족들과 떨어져 전주 쪽으로 잠깐 내려와 있었던 상황에서 쓴 편지와 그림이었던 것입니다.
1805년 작인 <추성부도>는 '시의도'에 해당하는 작품입니다.
'시의도'란 동양화에서 시의 내용이나 분위기 또는 시정을 표현한 그림을 뜻합니다.
중국 송나라의 문인인 '구양수' 시인의 <추성부>라는 시가 그림 왼쪽에 적혀 있습니다.
시의 내용은 구양수라는 사람이 어느 날 밤 막 책을 읽으려던 참에 문득 서남쪽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옵니다.
"달과 별이 밝게 빛나는데 사람의 소리라곤 없고 소리가 나무 사이에서 나는 듯합니다."라고 동자가 말합니다.
이때 구양수는 큰 깨달음을 얻게 되는데
" 아아 슬프다! 이것은 추성(가을의 소리)이다."
인생사의 허무함, 무한한 계절의 순환에서 느낀 인간의 유한함에 대한 한탄, 탄식을 표현한 시를 바탕으로 그린 그림입니다.
시 구절과 같이 바람 소리뿐인 가을밤의 쓸쓸한 정취를 메마른 붓질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무렵 김홍도 또한 느꼈을 죽음의 그림자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김홍도의 다른 작품들처럼 생기 넘치고 익살스러운 느낌이 아닌 먹먹함, 적막으로 가득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김홍도 생전에는 팔리지 않았고 결국 김홍도는 가족도 만나지 못한 채 허망하고 쓸쓸하게 홀로 삶을 마감하게 됩니다.
<추성부도>를 그리고 두 달 뒤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어 먼 타지에서 아픈 몸을 이끌고 고향에 가기는 힘들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초라하고 허무했던 김홍도의 말년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그 허무한 마지막마저 '화폭'에 담아낸 김홍도였기에 결국 그는 마지막까지도 최고의 화가로 살다 간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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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선을 넘는 녀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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