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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백제를 건국한 견훤(1) 출생부터 후백제 건국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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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백제를 건국한 견훤(1)  출생부터 후백제 건국하기까지 

1. 태생부터 비범했던 견훤 

우리가 견훤에 대해서 알기 위해서는 견훤이 태어났던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습니다.

견훤은  통일신라시대에 태어났습니다.

'676년'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키고 삼국통일을 이뤄내면서 통일신라시대가 도래하던 때입니다.

그리고 견훤은 867년 '경상북도 상주 가은현' 지금의 문경시 가은읍에서 태어났습니다.

예상과는 달리 평범한 농부의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견훤의 아버지 '아자개'는 농사를 짓는 농부로 신라귀족 집안이 아닌 평범한 집안이었습니다.

 '견훤이 태어나 아기 포대기에 싸여 있을 때 아이를 수풀 아래에 놓아두면 호랑이가 와서 젖을 먹였다.'

견훤의 어린 시절에 관한 <삼국사기>의 유명한 글귀가 있습니다.

 

들에서 일하던 견훤의 어머니가 잠깐 포대기에 싸인 갓난아이 견훤을 잠깐 수풀에 놓아뒀는데 그 사이 호랑이가 견훤에게 젖을 먹이고 있었다는 내용입니다.

이 이야기는 물론 정사는 아니고 설화로 각색된 내용으로 보입니다.

정사가 아닌 각색된 설화이지만 견훤이 호랑이의 젖을 먹고 자랄 만큼 비범한 인물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이 놀라운 이야기는 삽시간에 마을사람들에게까지 소문이 났습니다.

견훤은 그렇게 주변사람들의 큰 기대 속에서 자라납니다.

그리고 신라의 어엿한 청년이 되었습니다.

 

'장성하자 체구가 크고 용모가 뛰어났으며, 뜻이 크고 기개가 있어 평범하지 않았다'

고 삼국사기는 견훤의 용모에 대해 기록합니다.

2. 신라군에 자원입대하다

견훤은 10대 후반이 됐을 무렵 자신의 진로를 결정합니다.

경주에 있는 신라군에 자원입대를 한 것입니다.

신라는 엄격한 신분제가 적용되는 골품제사회로 당시 골품의 신분에 속하는 사람들만 관리로 등용했습니다. 지방사람들은 골품 신분에 속하지 못하였고 지방출신인 견훤 또한 관직 진출이 어려웠던 상황이었습니다.

견훤은 군대에 들어가서 도적, 해적등을 소탕하는 데에 공을 세워 출세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것입니다.

귀족중심의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던 통일신라에서 견훤은 가만히 있는다면 그의 아버지 아자개처럼 농부로 살다 죽을 것이 뻔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견훤은 농부인 아버지와는 다른 길을 걷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신라의 군인이 된 견훤은 군인이 되고 얼마 후에 수도 경주를 떠나 꽤 먼 곳으로 이동을 해야만 했습니다.

바로 전라도 해안지역입니다.

견훤이 이곳으로 이동한 것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당시 전라도 해안지역에는 해적들이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해서 백성들의 재물을 빼앗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백이 남다른 견훤을 전라도 해안을 지킬 병사로 차출을 한 것입니다.

당시 해적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견훤이 있었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육 척 거구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날쌘 힘과 무술실력으로 해적들을 소탕합니다.

심지어 견훤은 잠을 잘 때 항상 머리에 창을 베고 잤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언제라도 해적소탕을 위해 출동할 만반의 준비를 갖췄던 것입니다.

이렇게 남다른 결정과 용맹함으로 신라군사들 사이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얼마 후 군대 내에서 견훤의 위치가 달라집니다.

 

'그의 용기는 항상 군사들 중에서 첫째였다. 그런 노고로 비장이 되었다'<삼국사기>

 

일개 병사였던 견훤이 한 부대를 직접 통솔할 수 있는 지휘관이 된 것입니다. 

신라 조정도 견훤의 용맹함과 출중한 능력을 인정해 신분을 벽을 넘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견훤은 나라를 지키는 군인으로서 회의감에 빠지게 됩니다. 

당시 신라귀족들은 1년 내내 풍요를 넘어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귀족들은 세금을 내지 않고 농민들에게만 과도한 세금을 걷었습니다. 

급기야 가난한 농민들이 집을 버리고 산으로 도망가는 상황까지 발생합니다. 

산으로 간 많은 농민들은 재물이나 식량을 약탈하는 도적떼로 변하게 됩니다. 

3. 호족의 등장

그리고 그때 혼란스러운 신라에 새롭게 등장한 세력이 있었습니다. 

바로 '호족'입니다. 

호족은 중앙 정부의 통제를 벗어난 지방의 독립 세력을 말합니다. 

신라조정이 도적떼들을 제대로 진압하지 못하니 각 지방의 유력자들이 도적들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주민들을 동원해 무장 조직을 갖추게 된 것입니다. 

호족들은 독자적인 통지 조직을 두고 관리를 임용할 수 있었습니다. 

자체적으로 지방을 다스렸고 당시 신라는 호족의 세상이 되었다고 할 만큼 호족들의 힘이 강해졌습니다. 

4. 견훤의 아버지 아자개 상주의 호족이 되다

이때 상주지역에도 호족이 등장합니다.

바로 견훤의 아버지 아자개였습니다. 

농부도 호족이 되는 세상이 온 것입니다. 

아자개는 농사로 엄청난 부를 축적했던 상황이었습니다. 

호족이 된 아자개는 상주지역을 공격해 차지하고 스스로 '사불성장군' 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렇게 스스로를 각 지방의 성주나 장군이라고 불리는 호족들이 전국에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게 됩니다. 

5. 새나라를 건국하겠다는 견훤의 꿈이 생기다.

신라의 왕과 귀족들은 백성을 지켜줄 힘도 의지도 없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가장 고통받는 것은 바로 힘없는 백성들이었습니다. 

이때 이 상황을 누구보다 안타깝게 지켜보던 견훤은 중대한 결정을 하게 됩니다. 

맡고 있던 직책인 비장 자리를 내놓고 신라 군복을 벗기로 결심합니다. 

부정부패한 신라왕실을 지키는 군인이길 거부했던 것입니다. 

견훤은 무너져 가는 신라의 대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포부가 남달랐던 견훤은 썩어빠질 신라를 대신할 새로운 나라의 왕이 되겠다고 결심합니다. 

6. 전라도 지역을 대표하는 대표적인 호족이 되다. [무진주(광주) 점령]

그리고 전라도 지역으로 가서 백성들을 모으기로 결심합니다. 

왜 전라도 지역으로 간 것일까요? 

견훤은 전라도 지역에서 비장으로 근무를 했었고 이 지역의 백성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제부터 백성들의 피로 배를 채우는 관리들을 없애고 백성들이 편하게 사는 나라를 이룩합시다!"라고 외칩니다. 

그리고 관리들에게 빼앗겼던 창고의 곡식을 풀어서 굶주린 농민들에게 나눠줍니다. 

또한 전라도 지역 백성들의 심리도 제대로 공략합니다. 

백제를 멸망시킨 신라에 대한 '반신라감'정을 전략적으로 이용한 것입니다.

이렇게 전라도 지역에서 3년간 견훤이 모은 군사의 수가 무려 5,000명에 달했습니다.

 

 '이르는 곳마다 메아리처럼 호응하여... 무리가 5,000명에 달했다 <삼국사기>

 

견훤을 따르는 군사의 수가 순식간에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입니다.

견훤은 전라도를 대표하는 명실상부한 지방의 호족으로 급부상하게 됩니다.

새나라를 세우기 위해 견훤은 탄탄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해서 더 넓은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나설 결심을 하게 됩니다.

견훤의 첫 번째 목표는 전라도의 요충지 '무진주'였습니다.  

당시 무진주는 현재 '광주광역시'입니다. 

과거에도 전라남도를 대표하던 요충지였던 무진주는 과거 백제 지역이기도 했습니다.

무진주를 장악하게 되면 백재 유민들을 포섭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이런 원대한 뜻을 가지고 전남의 대표지역인 무진주를 습격한 견훤은 5천 명의 막강한 병사로 무진주를 점령하는 데 성공합니다. 

7.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완산주(전주) 점령

그로부터 8년이 지나 900년이 되던 해, 새나라의 초석을 다지던 견훤은 아주 중요한 땅을 얻게 됩니다.

바로 '완산주'입니다.

당시 완산주는 현재 전라북도 전주입니다.

전남의 중심 무진주를 점령했던 견훤은 북상해서 전북의 중심 완산주까지 장악한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견훤이 완산주를 장악할 때까지 피를 단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견훤이 백성들을 위하고 인재들을 아낀다는 소식이 널리 퍼지면서 완산주의 호족들이 스스로 백기를 들고 항복을 한 것입니다.

이렇게 세력이 커지다 보니 완산주에 무혈입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8. 견훤의 꿈 마침내 이루어지다. 후백제 건국

그리고 얼마 후 34살의 견훤은 역사적인 순간을 맞이합니다.

 

'마침내 후백제 왕을 자칭했다' <삼국사기>

 

마침내 견훤이 완산주를 도읍으로 새나라 '후백제'를 건국하게 됩니다.

신라 군대를 떠난 지 11년 만에 새나라를 건국하겠다는 견훤의 원대한 꿈이 이뤄진 것입니다.

 

견훤이 후백제 왕이 된 후 이런 말을 던집니다.

"우리 선조들은 무한한 영광과 기상을 가지고 삼한을 주름잡아왔소이다. 그러나 신라가 당나라와 손을 잡고 선조들의 나라(백제)를 쳐서 멸망시켰으니 어찌 원통한 일이 아니겠소이까! 짐이 완산에 도읍을 세우는 것은 그러한 분함을 씻으려 함이오!"

 

신라가 당나라와 연합하여 600여 년 역사를 가진 백제를 멸망시켰으니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의 원한을 갚겠다고 선포를 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반신라정치'를 펼치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견훤이 세운 나라의 이름은? 

바로 '백제'입니다. 

삼국시대 백제와 구별하기 위해 오늘날 편의상 '후백제'라고 칭하는 것일 뿐입니다. 

 

<출처: 벌거벗은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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