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페인]을 읽고(조현경 작가)
샴페인의 저자인 조현경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서 성공한 삶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성공한 여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싶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소설 속에는 3명의 여자가 등장합니다 재벌가의 딸이자 명문대를 나와 승승가도를 달리고 있는 판사 서진과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어쩔 수 없이 친구 서진의 경제적 원조를 받아 학업과 생계를 이어가다 첫사랑의 실패 후 선을 보고 결혼해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의 트렌디한 모자디자이너로 거듭난 희경, 그리고 한때는 공주와 같은 삶을 살다 집안의 몰락과 부모의 죽음 이후 3류 뮤지컬 배우로 근근이 살아가는 혜리. 이 세 명의 여자들에게 성공은 모두 다른 모습입니다.
먼저 서진의 이야기부터 들여다보겠습니다.
서진은 남들 보기에 부족함 없이 풍족한 삶을 살아가고 공부로는 늘 1등을 놓치지 않았으며 사법고시를 통과해 판사의 자리까지 꿰찬 누가 봐도 성공한 여자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가업을 이어가고자 하는 능력과 소양을 갖췄음에도 딸이라는 이유로 오빠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했습니다. 정략결혼이 아닌 연애결혼을 통해 결혼했다고 자부하며 사랑으로 맺어졌다고 생각했던 남편 한규가 알고 보니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서진에게 접근해 결혼을 쟁취한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 사실을 안 이후 결혼생활은 낡은 줄 위에서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계속됩니다. 서진의 집안에서 이혼은 용납될 수 없었고, 판사라는 직업 또한 이혼은 과업을 이어갈 수 없게 만드는 치명적인 장애물입니다. 무엇보다도 남편 한규 또한 이혼을 원치 않습니다. 한규는 의도가 어땠든 현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남자이고, 권력과 재력을 놓고 싶지 않은 남자입니다. 그 수단이 무엇이 되었건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말입니다. 이 서진 부부는 서로에게 비밀이 생기게 됩니다. 서로 다른 상대와 바람을 피웁니다. 시작은 혜리를 몰래 만난 한규였고 어느새 서진도 크리스라는 남자에게 빠져듭니다. 크리스는 미국에서 살다 온 자유 분명한 남자이고, 서진보다 한참 연하이지만 사랑 앞에서는 서진을 감싸 안을 수 있는 불도저 같은 남자입니다. 서진은 늘 짜인 굴레 속에서 온실의 화초와 같은 삶에 익숙해져 있었고 그 바운더리를 벗어날 생각조차 하지 않았지만, 크리스는 앞뒤 가리지 않고 사랑하는 서진에 매달립니다. 서진은 그런 크리스가 부담스럽지만 서진의 배경보다는 서진이라는 한 여자를 온전히 사랑해 주는 그가 좋습니다. 크리스는 서진과의 관계 때문에 얽히고설켜 비록 죽음을 맞이 하지만 그는 끝까지 서진만을 바라봅니다. 서진에게 성공은 진정한 사랑을 깨닫고 사랑하는 이 때문에 눈물 흘리고 가슴 아파하는 마음을 확인하는 것일 겁니다. 그것이 여러 제약 때문에 용기 내지 못했던 이혼을 하고 판사를 그만두고 기업합병전문 변호사로 스스로 거듭나게 한 계기가 됩니다.
희경은 뉴욕의 모자디자이너로 성공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구질구질한 친정 가족과 무능력한 데다 허세 그득한 남편 도훈, 그리고 아직 어린 두 자녀까지 짊어지고 책임져야만 하는 사람들 때문에 늘 어깨가 무겁습니다. 그리고 어려울 때마다 손을 내밀어주고 대가를 바라지 않고 도와주는 서진에 대한 부채의식 또한 그녀 마음 한구석을 차지 않고 있습니다. 도훈이 뉴욕에서 횡령을 하고 이를 수습하기 위해 도망치듯 한국행을 선택하면서 희경은 인생의 새로운 막을 올립니다. 완벽하진 않지만 금의환향하며 한국에서도 꽤 큰 쇼를 개최할 수 있었고 그야말로 미친 듯이 작업합니다. 그 와중에 남편 도훈도 미친 듯이 영화제작비를 모금하기 위해 작업하며 희경의 앞길을 족족 막아섭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남편 도훈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남편이기 이전에 두 아이의 친부이기 때문입니다. 명성을 얻었지만 아직도 호락호락하지 않은 삶으로 어깨가 무거운 희경 앞에 첫사랑 승민이 나타난다. 그는 잘 나가는 변호사가 되었고 아직 미혼이다.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결혼을 약속한 후 홀연히 사라진 승민이 원망스럽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여러 상념이 마음을 지배하지만 그럼에도 희경은 남편 도훈의 손을 놓지 않습니다. 마치 도훈의 손을 놓으면 지금까지 그녀 인생이 송두리째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되어버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혜리는 공주처럼 살던 부유한 집안의 사랑받는 딸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집안은 한순간 몰락의 길로 내동댕이쳐지고 혜리 또한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는 암흑과도 같은 빌어먹을 삶을 살게 됩니다. 혜리는 화려한 이목구비를 가진 미녀였지만 더욱더 또렷한 서양의 미인들 앞에서는 한낱 뒷방 동양여인에 불과한 존재입니다. 그렇게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단역으로 연명하던 그때 수년 전 우연히 만난 한규와 재회하게 됩니다. 한규는 누가 봐도 재력을 가진 능력남이었고 혜리를 그를 이용하기로 합니다. 늘 그랬듯 그녀는 능력 있는 남자를 동아줄 삼아 지옥과도 같은 일상을 탈출하고자 합니다. 번번이 동아줄은 끊기지만 혜리 인생에 포기란 없습니다. 한규의 명망을 이용했지만 그녀 또한 뮤지컬 제작자로서 자신의 능력을 한껏 발휘하며 하버드 출신 미모의 제작자로 발돋움합니다. 하지만 거짓으로 시작된 시작은 모래 위에 지은 성과도 같습니다. 언제 부서질지 모르는. 혜리의 과거 뉴욕에서의 치부를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는 크리스를 만나게 되면서 승승가도를 달릴 것만 같은 인생이 슬슬 꼬이기 시작합니다. 급기야 거짓은 불안을 만들고 이성을 마비시켜 극단적인 선택을 유도합니다.
성공한 인생을 샴페인 터트린다고들 흔히 말합니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지은 제목일 테지만 그중 이러한 의미도 내포되어 있지 않나 추측해 봅니다. 샴페인은 화려하고 요란하게 터지며 흥을 돋우지만 이내 사그라집니다. 톡 쏘는 달콤함은 성공에 한껏 도취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달콤하지만 술이기 때문에 정신을 흐리고 주량을 초과하면 숙취를 유발하기도 합니다. 화려하지만 터지고 나면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오는 인간 군상들과도 같습니다. 극 중에는 남부러울 것 없이 많은 부와 재력, 권력까지 가진 이도 존재하고, 가난하고 고달은 인생 밑바닥을 훑고 살아가는 이도 존재합니다. 이들은 멀리 보아서는 알 수 없는 자신만의 치부 한두 가지씩은 모두 가지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그것을 사연이라고 합니다. 소설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크리스 죽음의 비밀을 푸는 형식으로 잠깐의 추리물의 형식을 가져오며 작가는 잠시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습니다. 세 여자의 삶을 통해서 성공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하고자 합니다. 성공이란 결국 이를 받아들이는 각자의 마음에 달려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디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은 원하는 방식의 성공을 할 수 있기를, 그로 인해 행복하기를 바라봅니다. 적어도 불행하지는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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