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역대 미국 대통령 중 최고의 부자이자 '막말'과 기행의 대명사
2016년 트럼프가 미국 대선에 출마할 당시 신고된 재산을 보면 부동산, 현금, 채권, 채무를 포함해 총 92억 4천만 달러,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약 12조에 상당하는 엄청난 금액입니다.
트럼프는 45대 미국 대통령에 등극하면서 역대 미국 대통령 중 가장 부자 대통령으로 기록됩니다.
그렇다면 역대 미국 대통령 중 가장 부자이자 부동산 재벌인 트럼프가 어떻게 이렇게 어마어마한 돈을 모을 수 있었을까요?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트럼프의 가문이 어떻게 성장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 트럼프 제국의 시작
트럼프의 아버지 '프레드 트럼프'는 12살에 가장이 되지만, 가업을 이어받지 않고 고등학생 때 목수 일을 배워 뉴욕에서 독립주택 건설 사업을 하며 집안을 일으키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1930년대 후반에 프레드는 뉴욕에 무려 2,500여 채의 주택을 소유할 정도로 부자가 되었고, 부동산 재개발로 '백만장자'에 등극합니다.
주택건설사업을 통해 백만장자가 된 아버지 덕분에 트럼프는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를 뛰어넘어 다이아몬드 수저로 자랄 수 있었습니다.
2. 트럼프의 악동 시절
트럼프는 1946년 뉴욕 퀸스에서 아버지 프레드 트럼프, 어머니 메리 트럼프의 3남 2녀 중 넷째로 태어납니다.
트럼프 아버지는 트럼프에게 경제 교육에는 성공했지만 인성교육에는 실패하고 맙니다.
트럼프는 어린 시절부터 악명 높았던 트러블 메이커였고, 유발난 성질머리로 동네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여학생에게 음료수를 뿌리고 괴롭히기 일쑤였고 급기야 초등학교 2학년에 음악 선생님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는 선을 넘는 행동까지 하기에 이릅니다.
트럼프는 이 일에 대해 자신의 회고록을 통해 그 이유를 직접 밝힌 바 있습니다.
2학년 때 나는 선생님의 얼굴에 멍이 들게 한 일이 있다. 어리석게도 음악 선생님이 음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주먹을 휘두른 것이다. 그 사건을 자랑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릴 때부터 자립하려는 생각이 있었으니 폭력적 방법을 통해서라도 내 생각을 알리고자 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이 일로 학교 전체가 발칵 뒤집어졌지만, 당시 트럼프의 아버지가 학교 이사회 활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간신히 수습을 하고 트럼프가 퇴학을 당하는 것을 막아 줍니다.
3. 트럼프의 부모, 트럼프의 악동 기질을 잠재우기 위해 뉴욕 군사학교에 입학시키다
하지만 점점 심해져 가는 트럼프의 막나니 짓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었던 아버지는 특단의 조치를 내립니다.
1959년, 트럼프가 13살이 돼서 중학교에 진학할 시기에 일반학교가 아닌 군사학교에 보내기도 결정하고 뉴욕 군사학교에 입학합니다.
아버지는 엄격한 군사 학교에 보내 트럼프를 길들이려 했던 것입니다.
국가에서 세운 사관학교와는 다르게 뉴욕 군사학교는 군대식 교육을 도입한 기숙형 학교였으며, 1년에 3~4만 달러,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약 5천만 원이라는 고가의 학비를 내야 했습니다.
트럼프는 군사학교를 다니며 자신을 스스로 컨트롤하는 훈련을 받았고 리더십, 경쟁심을 고취하는 방법 등을 배웠으며, 그는 훗날 군사학교에서의 생활이 성공의 소중한 토재가 되었다고 회고하고 있습니다.
같이 군사학교에 다녔던 친구들도 트럼프가 경쟁심이 넘치는 리더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4. 트럼프, 부동산 왕을 꿈꾸다
군사학교 졸업 후 트럼프는 아버지를 따라 부동산업자를 꿈꿉니다.
10대 시절부터 트럼프는 아버지에게 부동산업 전반에 대한 과정을 보고 부동산업에 꽤 흥미를 느꼈다고 합니다.
그래서 트럼프는 부동산업자가 되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 18살에 뉴욕 포덤대학교 경영학과에 진학합니다.
이렇게 본격적인 경영 공부에 나선 트럼프는 2년 뒤,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펜실베이니아 대학 경영대인 와튼 스쿨에 편입하게 됩니다.
와튼 스쿨은 경영학 분야에서는 명문 중의 명문 학교로 일론 머스크, 워런 버핏이 다닌 학교로 명성이 자자한 학교입니다.
https://donbuller.tistory.com/entry/테슬라
https://donbuller.tistory.com/entry/에디슨
트럼프는 와튼 스쿨에서 부동산 개발학과 첫 수업 시간에 당시 담당 교수에게 '이 수업을 왜 수강하게 되었느냐'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저는 뉴욕 부동산업계의 왕이 되고 싶습니다
5. 트럼프, 첫 부동산 사업에 성공하다
트럼프는 실제로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합니다.
대학 시절에 친구들이 신문의 만화나 스포츠 기사를 읽고 있을 때 나는 연방주택관리국(FHA)의 저당권 상실 명단을 살펴보곤 했다. 정부에서 융자를 받았다가 저당권을 잃은 건물의 목록을 살피는 취미는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내가 노린 점은 바로 그것이었다.
저당권 상실 명단이란 건물을 담보로 정부에 돈을 빌렸다가 갚지 못해 경매에 넘어간 건물들의 명단을 말합니다.
이렇게 경매에 넘어간 건물들은 정부도 빨리 처리하고자 했고 트럼프는 이 명단을 들여다보면서 이 건물들을 싼 가격에 사들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때 명단을 살펴보던 트럼프의 눈에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 있는 1,200 가구의 아파트단지가 눈에 띄었고, 아파트 단지 내 800 가구가 임대가 되지 않아 비어 있었고 건축업자가 망해 정부가 저당권을 압류하고 있었습니다.
트럼프는 아파트 단지를 싸게 살 기회로 삼고 아버지와 함께 단지 전체 1,200여 가구를 약 600만 달러(약 620억)에 인수했고, 이후 1년 안에 아파트 전체를 임대하는 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이 아파트 단지를 두 배로 수익을 남기고 약 1,200만 달러에 매각하며, 트럼프 인생 첫 부동산 사업을 대성공으로 이끕니다.
6. 25살 트럼프, 트럼프 오가니제이션의 CEO가 되다
일찌감치 부동산 사업에서 두각을 드러내자 아버지 프레드 트럼프는 그의 사업을 둘째 아들인 트럼프에게 물려주기로 결심했고, 트럼프의 나이 25살에 아버지 기업을 물려받게 됩니다.
그러면서 기업명을 트럼프 오가니제이션(THE TRUMP ORGANIZATION)으로 짓고 트럼프는 자신의 성을 딴 트럼프 기업에 CEO가 됩니다.
이후 트럼프는 아버지의 기업을 순조롭게 경영해 나갔고, 1973년 27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로부터 뉴욕 아파트 14,000여 채를 물려받게 됩니다.
당시 트럼프가 소유한 아파트의 평균 월세가 약 250달러였고 현재 가치로 한 달 임대 수입만 약 47억 원이었습니다.
이 돈은 이후 트럼프 사업에 중요한 시드머니 역할을 합니다.
7. 29살 트럼프, 망해가던 코모도호텔을 사들여 탈바꿈시키는 대형 사업을 성공시키다
그러던 1975년 29살이 된 트럼프는 CEO로서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되는 대형 사업을 계획하게 되었고, 그 사업은 뉴욕의 중심 맨해튼에서 벌어집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도 맨해튼은 월스트리트와 유엔본부가 위치한 명실상부 뉴욕의 중심지입니다.
한때는 유서 깊은 건물이었지만 이제는 낡을 대로 낡아버린 코모도 호텔(Commodore Hotel)을 호화스러운 새 호텔로 개조하는 사업이었습니다.
당시 코모도 호텔의 재정상태는 심각했고 심각한 적자로 재산세를 내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고, 심지어 세금 미납액이 약 600만 달러(당시 약 432억 원)에 육박했습니다.
트럼프가 이렇게 망해가는 호텔을 사들여 투자하려는 것을 보고 그의 아버지는 '코모도 호텔을 사겠다는 발상은 침몰하는 타이타닉 갑판에서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싸우는 것하고 뭐가 다르냐!' 면서 반대합니다.
하지만 아버지와는 달리 트럼프는 코모도 호텔의 위치에 주목하며 가능성을 본 것입니다.
뉴욕 중심가인 42번가(42nd street)와 파크 애비뉴(Park Avenue)에 위치하고, 유동인구가 많은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이 인접해, 유동 인구가 접근성 면에서 탁월했던 코모도 호텔의 위치에서 투자 가치를 확신합니다.
그래서 트럼프는 자신의 계획을 곧장 실행에 옮깁니다.
코모도 호텔을 약 1,000만 달러에 구입하고 약 7,000만 달러 이상을 들여 대대적인 보수공사에 들어갔고, 호텔은 벽이 아닌 반사되기 좋은 사방이 유리로 덮인 세련된 모습으로 탈바꿈시킵니다.
당시에는 찾아볼 수 없는 파격적인 방식이었고 특히 42번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호텔 내 레스토랑까지 만들며 이목을 끌게 됩니다.
트럼프가 하얏트 호텔(HYATT HOTEL)을 성공시키고 많은 이익을 얻는 데는 한 가지 큰 혜택이 큰 역할을 했는데, 그것은 뉴욕시에서 받은 세금 감면 혜택이었고 그것은 무려 40여 년간 지속됩니다.
이러한 파격적인 세금 감면 혜택을 가능케 한 당시 뉴욕의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970년대 뉴욕은 높은 범죄율로 악명이 자자하던 도시였고 1975년 뉴욕에서 일어난 폭력 사건은 한 해에만 15만 건이 훌쩍 넘을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치안이 문제가 되자 뉴욕에 거주하던 수많은 중산층 주민들이 교외로 빠져나갔고 이때 트럼프의 호텔이 뉴욕시를 상대로 세금 감면 혜택을 받는다면 그 대가로 건설, 서비스 분야에서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이러한 파격적인 혜택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2016년 뉴욕시 재무국이 발표한 뉴욕 그랜드 하얏트 호텔 감세액은 1983년에는 630만 달러, 2016년에는 1780만 달러로 급증했고 이를 모두 합하면 현재 가치로 약 4,76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한 지역 언론이 이를 두고 '세기의 세금 거래'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을 만큼 엄청난 혜택을 받은 것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8. 30살 트럼프, 첫 번째 결혼을 하고 사업과 가정 모두 성공으로 이끈 선망의 대상이 되다
1977년 4월, 30살이 된 트럼프는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첫 번째 아내는 트럼프보다 3살 어린 체코출신의 모델 이바나 젤니치코바였습니다.
체코에서 태어나 스키 선수로 활동하다가 1970년대 캐나다에서 모델로 활동했던 이바나는 1976년 트럼프와 첫 만남 뒤 1년 후 결혼을 올리게 됩니다.
둘 사이에서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 이방카, 에릭 3남매를 낳았고, 이 시기 트럼프는 성공한 사업가이자 행복한 가정을 이룬 완벽한 가장의 이미지로 미국에서 선망의 대상으로 떠오르게 됩니다.
9. 36살 트럼프, 트럼프 타워를 건설하고 맨해튼의 최고급 아파트 전략을 성공시키다
화제의 결혼과 함께 첫 번째대형 재개발 사업을 성공으로 이끈 트럼프는 1983년 11월, 뉴욕 맨해튼에 또 하나의 대형 건물을 선보이게 됩니다.
뉴욕을 상징하는 명소 중 하나이자 트럼프의 시그니처와도 같은 건물인 '트럼프 타워'입니다.
트럼프 타워는 높이 202 m, 58층짜리 주상복합 건물로 당시에도 가장 비싼 땅 중에 하나였던 뉴욕 한복판에 위치해 세계에서 가장 호화스러운 건물이라는 평을 받았습니다.
타워를 세울 부지를 구입하는데 약 1억 1,500만 달러(현재 가치 약 4,050억 원), 공사비로 약 2억 달러(현재 가치 약 8,100억 원)를 투자합니다.
특히 트럼프는 트럼프 타워의 높이를 뉴욕 그 어떤 건물보다도 높이 올리는 것에 집착했고 그 결과 1983년 당시만 해도 트럼프 타워는 뉴욕에서 가장 높은 콘크리트 건물이었습니다.
이 명성을 위해 토지와 건물의 상부 공간을 개발할 수 있는 권리인 공중권까지 주변 건물들에게 함께 매입해, 트럼프 타워보다 더 높은 건물이 들어서지 못하게 차단합니다.
당시 트럼프 타워 분양가격은 펜트하우스를 제외하고 한 채에 최대 1,200만 달러였고 우리 돈으로 따지면 당시 약 158억 원이었습니다.
집값이 비싸다 보니 스티블 스필버그, 브루스 윌리스, 마이클 잭슨 등 당시 거물급 유명인사들이 살면서 트럼프타워의 명성은 더 높아지게 됩니다.
최근에는 축구 선수 호날두도 2차례나 아파트를 구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트럼프타워에 살면 성공했다는 의미가 부여될 정도입니다.
뉴욕 맨해튼의 랜드마크이자 부와 권력의 상징인 트럼프 타워의 최고급 이미지에는 트럼프의 판매 전략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트럼프 타워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대기 명단이 있다고 설명하며 아파트가 사기 힘들게 보일수록 더 인기가 많아지게 하는, 공급이 적을수록 수요가 많아지는 것을 이용한 역판매 기술을 활용한 판매전략이 주요하게 작용한 것입니다.
결국 트럼프 타워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몰리며 수요급증으로 가격이 폭등하게 됩니다.
10. 트럼프, 카지노 사업에 뛰어들다
이렇게 뉴욕에서 거침없는 성공가도를 달린 트럼프는 1980년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면서 트럼프제국을 확장해 나갑니다.
트럼프의 이목을 사로잡은 새로운 사업은 바로 '카지노 사업'이었습니다.
트럼프는 카지노 사업의 성공적인 론칭을 위해 뉴욕을 떠나 애틀랜틱시티로 향합니다.
1977년 동부 지역에서 유일하게 애틀랜틱시티가 도박을 합법화했기 때문입니다.
1982년 트럼프는 카지노 허가권을 따낸 후 1984년에는 트럼프 플라자 호텔 카지노를 1985년에는 카지노 트럼프 캐슬 개장하면서 애틀랜틱시티 카지노 시장의 30%를 점유하게 됩니다.
트럼프의 회고록에 따르면 트럼프 플라자가 1985년 한 해동안 벌어들인 수익이 5,800만 달러(현재 가치 약 776억 원), 트럼프 캐슬이 1986년 한 해 동안 벌어들인 수익은 2억 6,000만 달러(현재 가치 약 3,470억 원)로 트럼프는 카지로로만 한해 수억 달러를 손에 쥐게 됩니다.
11. 트럼프, 본격적으로 사업 영역을 다양하게 확장시켜 나가다
그러면서 트럼프의 사업 영역도 다양한 방면으로 확장되어 갔습니다.
1985년 플로리다주의 마라라고 리조트를 매입했는데, 약 5,810㎡의 대부지에 현재 126개의 방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988년에는 뉴욕 플라자 호텔을 약 4억 700만 달러에 매입하였는데, 이 호텔은 1907년에 개장해서 뉴욕시의 대표 럭셔리 호텔로 102개의 고급 스위트룸과 282개의 객실을 가지고 있습니다.
1989년에는 이스턴 에어라인 셔틀을 약 3억 6,500만 달러에 매입했고, 기존의 항공사가 트럼프 셔틀로 변신하며 트럼프는 연이어 성공신화를 이어갑니다.
12. 트럼프, <거래의 기술>이라는 책을 통해 '트럼프'라는 자신의 브랜드를 대중에게 각인시키다
1987년에는 그의 성공의 기술을 집약한 책 <거래의 기술>을 출판하기도 합니다.
트럼프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사업 노하우와 성공 전략들을 공개했는데, 출간되고 32주간 논픽션 부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으며 미국에서만 최소 500만 부 이상이 판매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됩니다.
그로 인해 트럼프는 '트럼프'라는 자신의 브랜드를 대중에게 각인시키게 됩니다.
트럼프는 이후에도 <재기의 기술>, <트럼프의 부자 되는 법> 등을 포함해 총 19권의 책을 집필하며 베스트셀러 작가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13. 트럼프, 불륜이 들통나며 이혼하다
승승장구하던 트럼프에게 위기가 닥치기 시작합니다.
바로 그의 첫 번째 결혼생활이 파경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트럼프는 아내 몰래 17살 연하의 배우 말라 메이플스와 바람을 피우고 있었는데, 1987년 <거래의 기술> 출판기념회장에서 말라를 만나 첫눈에 반한 이후 두 집 살림을 시작합니다.
그러던 중 1989년 크리스마스 기간 동안 가족과 온 스키장에 내연녀 말라를 데려왔고 결국 그들의 불륜은 들통이 나고 맙니다.
불륜이 발각되면서 트럼프는 1991년 첫 번째 아내 이바나와 이혼을 했고, 트럼프는 이바나에게 엄청난 위자료를 물어주게 됩니다.
이후 1993년 말라와의 사이에서 딸을 낳고 그 해 12월 21일 결혼식을 올립니다.
14. 트럼프, 쇼비즈니스 사업에 뛰어들다
트럼프는 뉴욕의 부동산 왕에서 카지노의 제왕을 거쳐 다사다난한 일을 겪은 후 1990년대 중반 새로운 사업을 추진합니다.
이를 위해 먼저 1996년 '미스 USA' 조직위원회를 인수했고 '미스유니버스' 조직위원회를 인수하며 본격적으로 미녀 사업에 뛰어듭니다.
그는 이에 그치지 않고 1999년에는 '트럼프 모델 매니지먼트'라는 모델 회사까지 설립했는데, 미녀 사업이 돈이 될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모델 매니지먼트로만 매년 100만~500만 달러의 사업 수익을 얻었다고 하니 사업 수완이 대단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5. 트럼프, 멜라니아와 세 번째 결혼을 하다
그리고 이때 또 한 번의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바로 24살 연하의 슬로베니아 출신 모델 멜라니아 크나우스와 바람을 피웠고, 그녀는 훗날 미국의 퍼스트레이디가 됩니다.
1998년 11월, 당시 트럼프의 비즈니스파트너이자 모델 매니지먼트 사업을 하던 지인이 주최한 패션위크 파티에 멜라니아가 초청을 받아 참석했고 트럼프는 이곳에서 멜라니아에게 반해 바람을 피우게 되었고 1999년 두 번째 부인 말라와 이혼을 하게 됩니다.
이후 2005년 뜨거운 화제 속에 멜라니아와 세 번째 결혼을 합니다.
16. 트럼프, <어프렌티스> 쇼의 진행자로 대중매체를 통해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하다
이렇게 트럼프는 비즈니스적으로도 사생활적으로도 화제를 몰고 다녔고 사업가의 영역을 넘어서 대중매체에서도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하며 자신의 인생을 바꿀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됩니다.
2004년 <어프렌티스>의 진행자이자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합니다.
이 프로그램은 참가자들이 트럼프의 회사 중 하나를 연봉 25만 달러의 1년 경영 계약을 두고 경쟁하는 프로그램이었으며, 이때 화제가 된 트럼프의 유행어가 있습니다.
You're Fired
(넌 해고야)
트럼프가 악랄하게 출연자를 비판할수록 쇼의 인기는 더해갔습니다.
<어프렌티스> 시청자 수는 평균 2,000만여 명이었고 최대 4,000만여 명이 볼 정도로 화제의 프로그램이 됩니다.
미국인들은 무려 14 시즌 동안 <어프렌티스>를 통해 판단력이 탁월하고 단호한 트럼프를 보며 프로그램 속에서 '트럼프'라는 캐릭터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됩니다.
<어프렌티스>의 총수익은 약 2억 1,300만 달러(현재 가치 약 2,800억 원)였고, 당시 그의 인기에 힘입어 트럼프를 닮은 인형과 같은 '굿즈'까지 등장했으며 2007년에는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트럼프의 이름이 새겨지기도 합니다.
많은 전문가들도 <어프렌티스>가 아니었다면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을 보면 이 프로그램은 그가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7. 트럼프, 대통령이 되기를 꿈꾸다
트럼프는 부동산 재벌에서 뜨거운 인기를 누리는 TV쇼의 호스트이자 미국의 셀럽으로 등극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대중적인 인기를 바탕으로 '정치인'이라는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합니다.
트럼프가 미국 정치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것 같지만 사실 그가 정치활동을 시작한 것은 1987년부터였습니다.
사실 트럼프의 정치 시작은 1987년 공화당 당원으로 시작했고 1999~2001년까지는 개혁당, 2001~2009년까지는 민주당을 거쳐 2009~2011년에 공화당으로 돌아왔지만, 이후 탈당해 무소속이 됩니다.
이처럼 무려 4번이나 당적을 바꿀 만큼 꾸준히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때는 2011년 오바마 전 대통령이 재선 도전을 앞둔 바로 그 시기, 미국 대통령 출마를 고려 중임을 밝히며 그 이유를 이렇게 밝혔습니다.
미국이 전 세계 국가들에 동네북 신세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현직 대통령은 근본을 몰라요. 뿌리를 모르죠. 좀 더 더 얘기하자면 같이 학교를 다닌 사람들도 오바마를 몰라요. 본 적이 없대요. 기가 막힐 노릇이죠. 멋지고 훌륭한 분은 맞지만 아무 기록이 없고 어떤 사람인지 아무도 몰라요. 그런 사람이 우리 대통령입니다.
당시 트럼프는 오바마 대통령의 출생지가 미국이 아닌 아프리카 케냐라며 오바마의 출생 이슈를 거론하면서 애초에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음을 주장하며 지지층 확보를 시도했습니다.
트럼프는 오바마에게 본격적으로 출생 증명을 요구하기 시작했고 결국 오바마는 2011년 4월 25일, 하와이에서 태어났다는 내용이 담긴 출생증명서를 공개하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사건이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2011년 4월 30일, 백악관 출입기자단 연례 만찬에서 트럼프와 오바마 두 사람이 마주하게 됩니다.
이 자리에서 오바마는 트럼프를 향해 거침없는 조롱이 담긴 연설을 했고, 트럼프는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지만 자신이 그 자리의 주인공이었기 때문에 만찬을 즐겼다고 주장했습니다.
18. 트럼프, 프랑스 테러를 일으킨 이슬람국가의 입국제한을 주장하며 지지율을 급상승시키다
2015년 11월 13일 프랑스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하며 트럼프의 지지율에 또 한 번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프랑스와 독일 축구 대표팀 친선 경기 중인 스타드 드 프랑스 경기장에서 3번의 자살 폭탄 테러가 발생한 것입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동시다발적인 식당가 테러가 발발했으며 심지어 공연장에서 테러가 발생하며 사람들은 살기 위한 필사의 탈출을 시도합니다.
프랑스 전역 6곳에서 벌어진 동시자발적인 테러로 약 400여 명이 부상을 입었고, 최소 130여 명이 사망하게 됩니다.
이 사건의 주범은 이슬람국가 IS였습니다.
https://donbuller.tistory.com/entry/인도네시아
이 사건이 있은 후 트럼프는 미국에 무슬림의 입국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지지율을 무려 36%까지 상승시키게 됩니다.
19. 트럼프, 거침없이 공화당 대선후보가 되다
이후 트럼프는 2016년 2월부터 시작된 공화당 경선 레이스에 본격적으로 도전했고 거침없는 태도와 언행으로 다른 후보자들을 공격하며 이전에 정치인에게서 볼 수 없는 직설적이고 무례하기까지 한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이 오히려 신선함을 느낀 사람들에게 신도롬을 일으키며 대부분의 경선에서 승승장구합니다.
결국 2016년 7월 19일, 공화당 대의원투표에서 과반수를 차지하면서 공화당 대선 후보로 선출됩니다.
이로서 45대 미국 대통령의 자리는 공화당의 트럼프와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이 격돌하게 됩니다.
힐러리 클린턴은 오바마 정부 때 국무장관을 맡는 등 미국 정치권에서 배테랑 정치인으로 평가받는 인물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빌 클린턴 42대 미국 대통령의 퍼스트레이디로도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19.1 트럼프의 선거 전략 <1> 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슬로건
이런 상황에서 정치계 이단아 트럼프가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한 선거 전략은 무엇이었을까요?
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트럼프가 내건 이 슬로건은 이전 공화당 대선 구호로 여러 번 쓰이기도 했기 때문에 이 자체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습니다.
심지어 미국 레이건 대통령은 1980년 대선에서 이 슬로건을 똑같이 쓰기도 했습니다.
이 슬로건이 다시 트럼프에 의해 쓰이게 되고 이것이 먹혀들였던 데에는 당시 미국의 전반적인 상황 때문이었습니다.
미국의 경제수지 적자는 2000년 이후 꾸준히 불어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중하위계층 미국인들의 임금도 10년이 넘게 7.25달러(약 8,750원) 상승 없이 정체되어 있었습니다.
2010년대 미국 사회는 불안한 경제에 전반적으로 암울했던 상황이었고 패배주의도 늘어나며 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6%가 9.11 테러 이후 세계를 이끄는 강대국으로서의 미국의 힘과 지위가 실추되었다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미국인들 중 정부에 가장 큰 불만을 품게 된 것은 저소득, 저학력층의 백인 노동자 계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분노는 진보, 보수를 포함한 기존 엘리트 정치에 대한 환멸과 분노로 이어졌으며, 트럼프는 블루칼라 백인 유권자들을 결집시키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19.2 트럼프의 선거 전략 <2> 적극적 미디어 사용을 통한 이슈 생산
2016년 7월 18일 뉴욕타임스에 실린 만평인데 트럼프의 집무실에 트위터 버튼과 핵폭발 버튼이 나란히 놓여 있고, 이를 지켜보는 참모진이 겁에 질린 모습으로 서있는 모습을 그린 것인데, 이는 트럼프가 트윗을 통해 내뱉는 말들이 핵무기만큼 위험하다는 것을 의미한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트럼프는 대선 기간 동안 SNS 중독 수준으로 트위터에 많은 말들을 쏟아냈습니다.
그는 2015년 6월 16일부터 대선 기간 동안 무려 7,697건의 트윗을 작성해 올려댑니다.
미국에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바보들이 너무 많다.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모두 돌아가서 일이나 해라!
힐러리 클린턴은 자기 남편도 만족시키지 못하는데 어떻게 미국을 만족시킬 수 있겠나?
이처럼 트럼프는 거침없는 발언을 SNS을 통해 쏟아냈으며 과거 이력을 통해 알 수 있듯 언론을 능숙하게 다룰 줄 알았습니다.
그는 무동산 재벌시절부터 일관되게 '무플보다 악플이 낫고 무명보다 악명이 낫다'라고 생각했으며 '논란은 장사가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트럼프 미디어 전략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는 비싼 유료 광고를 사용하지 않고도 이런 이슈 거리로 충분히 자신을 홍보할 수 있다고 말을 하고 다니기까지 합니다.
실제로 트윗의 폭주와 함께 트럼프의 지지율도 함께 상승했으며 사실상 트럼프의 막말은 의도된 논란거리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힐러리 클린턴은 대선 기간 동안 미디어 홍보 비용으로 2억 2,700만 달러(한화 약 2,940억 원)를 써 총 선거비용의 80%를 쓴 반면, 트럼프는 고작 8,300만 달러(한화 약 1,074억 원)만 썼다고 합니다.
트럼프의 트윗은 점차 힘을 발휘하고 사람들은 거친 발언과 알고리즘에 점차 중독되며, 확실한 현혹과 선동의 효과를 가져옵니다.
20. 트럼프 VS 힐러리 클린턴의 미국 역사 상 가장 추잡한 미국 대선 TV 토론회
트럼프와 힐러리 두 사람이 처음으로 직접 얼굴을 대면하고 설전을 벌이며 사람들의 관심이 쓸린 TV 토론회는 미국 역사상 가장 추잡했던 토론회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힐러리는 대통령다운 모습도, 체력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려면 엄청난 체력이 필요합니다. <트럼프>
112개국을 순방하며 평화 협정, 휴전, 반체제 인사 석방, 새로운 기회의 개방 등을 협상하고 전 세계 국가 원수들을 만나고 의회 위원회에서 11시간 동안 증언을 해 본 후에 체력에 대해 논하세요 <힐러리>
힐러리는 경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나쁜 경험입니다. 우리는 지난번에 너무 많은 나쁜 거래를 했기에 그녀가 경험이 았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나쁜 경험입니다. <트럼프>
그는 주제를 외모에서 체력으로 바꾸려고 했지만 과거 여성을 돼지, 지저분한 사람, 개라고 불렸던 사람입니다. <힐러리>
2016년 9월 26일, 1차 대선 토론회 中
2차 토론회 이틀 전 과거 트럼프 음담패설 유출 사건이 발생했고, 사회자가 트럼프에게 그 사건에 대해 묻자 '부끄럽게 생각하며 가족들과 국민들에게 사과하겠습니다.'라며 2차 대선 토론회의 시작과 동시에 대국민 사과를 합니다.
하지만 그 뒤에 이런 말을 덧붙입니다.
하지만 빌 클린턴을 생각해 보시면 난 말만 했지만 그는 행동으로 옮겼어요. 미국 정계 역사상 그 정도로 여성을 학대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나는 사과했으니까 내가 더 잘못했다고 하지 마세요. <트럼프>
그가(빌 클린턴에 비해) 잘못이 없다고 한 게 음담패설 영상 한 가지에 관한 문제였다면 이해합니다. 하지만 여기 계신 여러분은 모두 답을 알고 계시잖아요. 영상 속 과거의 그, 또 지금 현재의 그가 진짜 여성을 존중하는지 말입니다. <힐러리>
2016년 10월 9일, 2차 대선 토론회 中
21. 트럼프, 제45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다
두 후보는 막판까지 치열하게 경쟁했고 마침내 트럼프는 승리를 거두며 미국의 부동산 왕이 제45대 미국 대통령으로 등극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트럼프가 제시한 위대한 미국의 모습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오늘부터 트럼프 정부의 단 한 가지 원칙은 '미국 우선주의'입니다. 우리 회사와 일자리를 파괴하는 이민자로부터 국경을 보호할 것입니다.
21. 1 트럼프의 위대한 미국을 위한 정책(1) 반이민 정책
트럼프가 대통령 취임식에서 강조한 것은 바로 '미국 우선주의'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임기동안 미국 우선주의를 실행하기 위해 가장 강력하게 내세운 것은 '반이민 정책'입니다.
이민자들이 계속 미국으로 오고 있습니다. 그들은 테러리스트일지도 모르죠.
오늘부터 우리는 다시 미국의 국경을 완ㅂ겨하게 통제할 것입니다.
트럼프는 임기 동안 끊임없이 반이민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이와 관련된 행정 명을 내리기도 합니다.
멕시코 장벽 건설은 2017년 9월 25일 공사를 시작으로 임기동안 계속되었습니다.
특히 2017년 1월 27일에는 테러의 위협이 높다고 판단한 중동, 아프리카의 시리아, 이라크, 이란, 리비나, 수단, 예멘, 소말리아 7개 국가의 국적자의 미국 비자 발급과 입국을 90일 동안 일시 금지하는 행정 명령에 서명합니다.
인종 차별적인 이러한 발상에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항의와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습니다.
행정명령은 우리가 지지하는 정책이 아니다. 애플은 회사나 나라의 미래를 위해 이민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애플 CEO 팀 쿡>
구글 직원과 가족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책에 대해 화가 난다.
<구글 CEO 순다르 피차이>
이와 같이 특히 구글, 애플과 같은 기업들은 해외 이민자 출신의 인재들이 많이 일하고 있는 상황이라 트럼프의 반이민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엄청나게 컸습니다.
21.2 트럼프의 위대한 미국을 위한 정책(2) 중국 견제
트럼프가 미국 우선주의 실행을 위해 가장 경계한 나라는 '중국'입니다.
2017년 전체 미국 무역 적자 5660억 달러 중 대중 무역적자는 3360억 원에 달했습니다.
트럼프는 중국이 불공정한 무역관계로 일방적인 무역 흑자를 내면서 미국의 일자리와 이익을 빼앗아간다고 공격하면서, 그는 대중 무역적자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며 이렇게 말합니다.
경제 관련 정책은 잘 될 것입니다. 미국은 우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모두가 이득만 취해 가는 돼지저금통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2019년 5월, 2,000억 달러 상당의 중국 수입품에 적용하는 관세를 10%에서 25%로 올려서 중국을 압박합니다.
이에 중국은 미국에 600달러의 보복관세를 예고했고, 미국은 곧바로 25% 의 관세를 부과할 3,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 목록을 발표하면서 미중 무역갈등은 심화되어 갑니다.
21. 3 트럼프의 위대한 미국을 위한 정책(3) 미군의 아프간 철수
미 국방부에 따르면 아프간에 미군이 2001년 10월부터 2019년 9월까지 약 18년간 국방비로 지출한 돈은 약 7780억 달러(한화 933조 원 가치)입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미국은 탈레반과 도하협정에서 2020년 7월까지 1,3000명에서 8,600명으로 아프간 주둔 미군 병력 감축에 동의했으며 탈레반이 극단주의 무장 조직 활동을 막겠다는 약속을 지킨다면 단계별로 미군이 철수하여 2021년 5월 1일까지는 미군이 완전히 아프간에서 철수하겠다는 협상을 합니다.
그리고 2021년 8월 30일 미군은 아프간에서 완전히 철수를 완료합니다.
이렇게 트럼프는 미국 현지인들을 위해서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위대한 미국을 만들어나가려 했습니다.
22. 트럼프,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탄핵위기에 몰리다
한편으로 트럼프를 둘러싼 의혹과 그로 인한 위기도 임기동안 계속됩니다.
특히 2019년 트럼프의 재선 도전을 앞두고 충격적인 사건이 이어지며 탄핵문제로까지 이어졌는데 가장 먼저 불을 지핀 것은 우크라이나 스캔들이었습니다.
2019년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정부를 압박해 민주당 유력 대선 주자였던 조 바이든 전 부통령 차남에 대한 표적 수사를 시도했다는 스캔들입니다.
바이든의 아들 헌터는 2014년 우크라이나 소재 천연가스 회사인 브리스마사의 이사로 재임하게 되는데, 이때 천연가스 회사의 소유주가 부패 혐의로 수사선상에 오르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회사의 이사였던 헌터가 부통령이었던 아버지 바이든의 영향력을 이용하려고 했던 의혹이 제기됩니다.
우크라이나 스캔들은 트럼프와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통화가 발단이 됩니다.
트럼프는 젤렌스키에게 이를 수사하지 않으면 미 외희가 승인한 우크라이나에 대한 2억 5천만 달러의 군사 원조를 철회하겠다고 압박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은 2019년 내부 고발로 세사에 알려지게 됩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이 사건으로 직권 남용 협의가 제기됐고 2019년 12월 18일, 미국 하원에서 탄핵안이 가결됩니다.
하지만 이 탄핵안은 찬성이 2/3이 넘어야 가결되는 상원에서 찬성 48, 반대 52로 부결되면서 트럼프는 탄핵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됩니다.
23. 트럼프, 내란 선동 혐의로 두 번째 탄핵소추 당하다
하지만 트럼프는 또 한 번 탄핵위기에 내몰립니다.
트럼프는 2021년에 재선에 도전해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와 맞붙었지만, 조바이든의 승리로 끝이 납니다.
그런데 트럼프는 2021년 미국 대통령 선거 의회 인증일에 당선 인증절차를 저지하기 위한 연설에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향해서 '우리는 의사당으로 걸어 나갈 것이다. 그릭 저는 여러분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라고 발언을 합니다.
그리고 이때 트럼프 지지자들이 패배에 불복종하며 의사당으로 돌진했고 경찰들과 시위대의 대치가 계속되고 결국 시위대는 의사당 내부로까지 진입하기에 이릅니다.
폭도들은 기물 파손과 폭력 행위를 서슴지 않았고 의사당에 무단 난입 후 점거를 시작합니다.
의사당 내에 있던 의원들도 놀라 서둘러 대피하기 시작했고, 의사당은 시위대와 경찰이 뒤섞여 아수라장이 됩니다.
트럼프 지지자들에 의한 의사당 난동은 FBI와 주 방위군 투입 후 약 5시간 만에 가까스로 진압됩니다.
결국 그의 발언으로 인해 시작된 난동은 5명의 사망자와 약 150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끔찍한 결과를 야기합니다.
미국 의회가 이런 공격을 받은 것은 미국이 영국과 전쟁을 하던 1814년, 영국군이 미국 국회의사당을 불태운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를 1주일 남겨둔 상황에서 두 번째 탄핵소추가 이루어집니다.
미국 하원은 트럼프에게 '내란 선동 혐의'를 적용했는데, 이 사건의 배후에 트럼프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에 하원에서 통과받은 탄핵안은 이번에도 상원에서 찬성 53대 반대 47로 부결됩니다.
그렇데 트럼프는 두 차례의 탄핵 위기는 넘겼지만, 임기 중 두 번이나 하원에서 탄핵 소초를 받은 최초의 미국 대통령으로 기록되는 불명예를 안게 됩니다.
24. 트럼프, 미국 대통령 최초로 기소되다
2023년 3월 30일, 트럼프는 회사돈을 써서 성추문을 막으려 했다는 의혹과 관련해서 미국 대통령 중 처음으로 미 검찰에 의해 기소되는 또 하나의 불명예스러운 최초의 기록을 또 한 번 기록합니다.
미 전직 성인 배우 스토미 대니얼스는 2006년 트럼프와 성관계를 주장하며 이를 폭로하겠다는 그녀의 입을 막기 위해 먼저 트럼프 개인변호사를 통해 13만 달러를 주도록 했고, 그런 다음 자신의 회사가 변호사에게 13만 달러를 갚도록 한 뒤 이를 법률자문비용으로 장부에 기록해 회계장부를 조작했다는 혐의였습니다.
트럼프를 기소한 뉴욕 맨해튼 검찰이 공표한 트럼프의 혐의는 자금 회계장부 조작 의혹, 선거 결과 개입, 문건 유출 등 총 34건의 증거 조작 혐의입니다.
바이든 정권은 정적 제거를 위한 무기로 사법 권력을 사용합니다. 스탈린과 똑같은 호러쇼를 벌이고 있어요.
이 기소에 대해 트럼프는 정치공작을 주장하며 34개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트럼프의 또 다른 성추행의혹과 여러 건의 수사와 재판이 열리는 등 그를 둘러싼 논란은 현재 진행 중입니다.
트럼프는 자택에 미 핵 프로그램 등의 국가 기밀문서 등을 보관한 사실이 발각되며 '기밀문서 유출로 두 번째 형사 기소를 당한 상태입니다.
미 전, 현직 대통령 사상 첫 연방 기소된 사상 초유의 사태로 불명예를 안게 되는데, 이런 와중에도 트럼프는 2024년 대선에 출마를 선언했으며 공화당의 유력한 대권후보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트럼프가 다시 한번 귀환을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트럼프는 다시 미국인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까요?
그 결과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우리도 흥미롭게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출처: 벌거벗은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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