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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터디 위드 돈벌러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원인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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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최근 가자지구의 무장단체이자 집권정당인 '하마스'가 몇천발의 미사일을 이스라엘에 쏘게 되면서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에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전쟁은 역사적인 갈등의 뿌리와 국제정세를 살펴보면 사실상 예견된 전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소 복잡해 보이는 이 지역의 전쟁이 왜 일어났고 어떤 양상으로 전개되는지 역사적 배경을 통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2. 1차세계대전의 두 축

이 전쟁은 아주 오래된 역사적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그 시작은 1차세계대전부터 시작합니다.

1차세계대전은 세계 여러 국가들이 식민지를 두고 큰 전쟁으로 확전된것입니다.

시기적으로는 1914년부터 1918년 사이의 일입니다.

이때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 상황이었습니다.

 

세계대전에 참여한 나라는 너무나 많지만 주요 진영만 보도록 하겠습니다.

한 축에는 독일과 그 동맹국인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 오스만 제국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대항하는 축에는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러시아 였습니다.

당시 정세를 살펴보자면 일단 독일의 힘이 매우 강해습니다.

유럽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제국을 막아내는 데에 굉장히 큰 힘을 쏟고 있었습니다.

3. 영국, 독일의 동맹국 오스만 제국의 식민지였던 아랍인에게 오스만 제국에 맞서 싸우면 팔레스타인지역에 아랍인의 독립국가 수립을 약속하다(맥마흔 선언)

이런 와중에 영국이 전쟁에서 빠르게 이기기 위한 하나의 묘안을 찾아냅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유럽 진영내에서 영국과 프랑스가 맞서 싸우고 있었습니다.

영국은 유럽내 남은 동맹국인 '오스만 제국'을 내부 분열을 통해서 붕괴시켜야 겠다는 생각을 한것입니다.

오스만제국 영토
오스만제국 영토

오스만제국의 영토는 발칸반도부터 서아시아일대 그리고 북아프리카 일대까지 넓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오스만제국은 1차세계대전중에는 종이호랑이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당시 서아시아의 맹주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고 굉장히 많은 나라들을 식민지를 지배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오스만제국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하고 지배를 받고 있었던 민족이 '아랍인'이 있었습니다.

때문에 아랍인들은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벗어나 독립된 국가를 수립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영국은 바로 이 부분을 건드린것입니다.

(왼쪽부터) 맥마흔, 후사인
(왼쪽부터) 맥마흔, 후사인

영국의 '맥마흔'이라는 사람이 아랍의 지도자인 '후사인'에게 서한을 보내게 됩니다.

이를 '맥마흔 선언' 혹은 '후사인-맥마흔 선언'이라고 부릅니다.

1915년~1916년사이 무려 열차례나 서한이 오갑니다. 

이 서한의 핵심내용은 1차세계대전 중 오스만제국에 맞서서 영국과 함꼐 싸워주면 영국이 중동지역에 독립된 국가를 수립하도록 지원해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랍인들은 당시 영국의 약속을 굳게 믿었고 1차세계대전 중 아랍인들은 오스만제국에 대항해서 참전하게 됩니다.

실제로 오스만 제국은 이로 인해 큰 타격을 입게 됩니다.

영국은 1차세계대전에 참천해준 아랍인들에게  팔레스타인 일대를 포함한 중동지역에 아랍인들의 독립된 국가수립을 약속한 것입니다.

4. 영국, 유대인에게 전쟁자금을 빌리며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의 독립국가 건국을 약속하다(밸푸어 선언)

그런데 전쟁이 계속되면서 영국이 생각하지 못한 변수들이 많이 생기게 됩니다.

가장큰 변수는 독일이 생각보다 너무 강력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영국은 전쟁 상황중 제일 중요한 전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전쟁공채를 많이 발행해놓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전쟁이 길어지며 전쟁자금이 부족해 지자 영국은 한가지 생각을 또 떠올립니다.

독립국을 수립하지 못했지만 유럽이나 미국 등 전세계에 퍼져서 전세계 금융을 꽉 잡고 있는 민족으로 유명한 유대인들을 떠올린 것입니다.

쉽게 말해 유대인들에게 돈을 빌려야 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영국이 유대인들에게 다시 한번 영국에 도움을 달라는 신호를 보냅니다.

영국의 입장에서는 1차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유대인 자금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전쟁공채도 유대인 사본이 사들여줘야하는 상황이었고 당시 주요한 무기였던 포탄의 주요재료로 아세톤이 들어가는데 이 아세톤을 대량생산 기술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 유대인 과학자 '하임 바이츠만'의 기술도 필요했습니다. 

참고로, 하임 바이츠만은 추후 이스라엘의 초대 대통령이 됩니다.

영국은 유대인으로부터 기술 뿐 아니라 돈도 빌려야 하는 상황속에서  맥마흔 선언때처럼 유대인에게 서한을 보내어 약속을 하게 됩니다.

이를 '밸푸어 선언'이라고 합니다.

다음은 당시 영국의 밸푸어라는 사람이 유대계 자본중 굉장히 큰 자본을 가지고 있었던 로스차일드 가문에 보냈던 편지입니다.

이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영국 국왕 폐하의 정부는 유대 민족을 위한 국가를 팔레스타인에 수립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찬성합니다'

1915년 맥마흔 선언에서 분명 아랍인에게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중동국가에서의 독립된 국가 수립을 약속했는데 2년후인 1917년 밸푸어 선언을 통해서 유대인들에게 팔레스타인 지역에 독립국가 수립을 또 약속했던 것입니다.

영국은 1차세계대전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일종의 이중 약속, 아립인과 유대인 모두에게 팔레스타인에 독립국가 수립을 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사기성 외교를 한 것입니다.

5. 그렇다면 유대인과 아립인은 둘 다 왜 그토록 팔레스타인을 원할까요?

유대인의 경우에는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아시아지역의 문명을 형성했었던 '헤브라이인'에 그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헤브라이인세력이 나중에 이스라엘 왕국과 유대왕국으로 쪼개지게 됩니다.

영토를 보면 유대왕국안에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일대가 들어가 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은 우리나라처럼 한곳에 정착해 계속해서 왕조를 이뤄가지는 못합니다. 

이후 유대왕국은 바빌로니아에 멸망당하고 로마로 편입이 되면서 로마에게 탄압을 당하면서 자신들이 원래 고대문명을 탄생시켰던 지역에서  살지 못하고 유대인들은 전세계에 뿔뿔이 흩어져서 살게 됩니다.

이런 현상을 교양상식 용어로도 알려져있는 '디아스포라'라고 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는 항상 꿈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된 땅, 팔레스타인'에 독립국가를 다시 수립하는 것이 일생일대의 꿈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시오니즘'입니다.

영국인들은 유대인들의 이런 감정을 자극해서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의 독립국가 수립을 영국이 지원하고 지지해준다는 약속을 한 것입니다.

아랍인의 경우에는 고대부터 중동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살았었기 때문에 마땅히 자신의 땅을 되찾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6. 비밀로 했던 사이크스피코협정, 러시아의 폭로로 영국의 이중 외교가 만천하에 드러나다

영국은 이렇게 유대인과 아랍인에게 팔레스타인을 약속한 일종의 사기나 다름없는 외교를 합니다.

영국은 사실 1차세계대전에서 승리한 후 아랍인이나 유대인 중 어느쪽의 손을 들어주기 보다는 일단은 영국과 프랑스가 중동일대를 분할하여 점령하려고 생각했습니다.

영국은 1615년 맥마흔선언과 1917년 밸푸어선언사이인 1916년에 '사이크스피코협정'을 체결합니다.

사이크스피코협정은 1차세계대전에서 승리를 하게 되면 동맹을 맺고 이었던 영국과 프랑스가 중동지역을 분할점령하고 이것에 대해서 러시아가 합의를 해준다는 비밀 조약이었습니다.

사이크스피코협정에 따른 영국과 프랑스의 점령 예정구역
사이크스피코협정에 따른 영국과 프랑스의 점령 예정구역

사이크스피코협정에 따르면 중동지역에 A지역은 프랑스가 B지역은 영국이 분할점령하되 예민한 이슈가 많은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을 초함하는 지역은 공동 통치 구역으로 하자고 약속합니다.

비밀 협정이었던 사이크스피코협정은 러시아가 폭로하면서 비로소 영국의 일종의 사기행각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됩니다.

7. 1차세계대전에서 승리한 영국, 팔레스타인을 유대인이 점령하는 것에 손을 들어주다

그러던 와중 1차세계대전에서는 영국, 프랑스, 러시아가 승리하며 팔레스타인일대는 영국의 보호령이 됩니다.

팔레스타인지역을 아랍인과 유대인 모두에게 약속 했기때문에 영국도 난감한 입장이 됩니다.

유대인의 경우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전세계 언론, 금융, 정치, 산업 전반에 걸쳐서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밸푸어 선언 때, 영국은 유대인 가문 중 로스차일드 가문에 문을 두드리는데 로스차일드 가문은 1850년대에 이미 가문 전체의 재산이 6조원에 육박했을 정도로 부호였습니다.

'화폐전쟁'을 쓴 저자가 이를 현재가치로 계산한바에 따르면  1년에 6%의 수익률로 단순계산 했을 때 1850년대에 6조의 재산을 가지고 있었다면 오늘날에는 5경정도가 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어마어마한 재산입니다.

영국은 이러한 국제적으로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던 유대인의 손을 들어주게 됩니다.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은 아랍사람들이 대부분 장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영국이 유대인의 손을 들어준다고 하더라도 유대인들의 팔레스타인으로의 이주 자체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2차 세계대전 때 비로소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가 본격적으로 이루어 집니다.

2차 세계대전당시 독일의 나치당을 이끈 히틀러는 독일인을 하나로 뭉치게 하기 위해 유대인들을 학대하고 학살합니다.

그 과정속에서 히틀러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만들고 가스실을 만들어 유대인들을 고문하고 학살합니다.

이 학살에서 벗어나기 위해 많은 유대인들이 2차 세계대전 시기에 팔레스타인 일대 지역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그런 상황속에서 이미 팔레스타인을 대부분 장악하고 있었던 아랍인과 신규로 편입한 유대인들 사이에 팔레스타인 지역에서의 분쟁과 갈등과 싸움이 끊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8. UN, 팔레스타인지역을 유대인과 아랍인이 분할로 점령하는 '분할안'을 제안하다

2차 세계대전이후에 전후 상황 속 국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구가 바로 'UN(국제연합)'입니다.

국제연합에서 유대인과 아랍인이 팔레스타인 지역을 분할해서 점령하는 '분할안'을 제안합니다.

팔레스타인 분할안
팔레스타인 분할안

팔레스타인 분할 점령안은 팔레스타인 일대에 대해서 노란색으로 표시된 곳을 아랍인, 주황색으로 표시된 곳을 유대인들이 분할하여 점령하는 내용입니다. 

정확히 반반으로 나뉜 것은 아니라도 비슷한 크기로 절반으로 나뉜 모습입니다.

이에 대해 유대인인 이스라엘은 찬성을 했고 아랍인들은 반대합니다.

아랍인이 반대한 이유는 분할안이 마련됐던 그 당시 상황에서 살펴 보면 그 답이 나옵니다.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에 살고 있었던 인구 비율을 따져보면 유대인은 아랍인의 1/3수준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사실 분할안이 나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팔레스타인지역에서 유대인들이 차지하고 있는 땅은 전체의 약 6~7%남짓이었고 아랍인들이 93~94%정도를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50%정도씩으로 유대인과 아랍인이 땅을 나누어 분할 점령하라는 것은 아랍인의 입장에서는 절반 정도의 땅을 잃는 느낌이었기 때문에 억울할 수 있었던 부분이었습니다.

따라서 분할안에대해 아랍인들은 크게 반발했고 이스라엘은 찬성합니다.

국제연합에서 분할안이 나왔을 때 이사국들간의 합의가 있어야 통과되는데 UN내 막강한 힘을 가진 미국이 이스라엘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주면서 UN의 분할안이 통과됩니다.

9. 중동전쟁의 서막

이 상황에서 1948년에는 영국이 팔레스타인에서 철수하게 됩니다.

이것을 기회로 잡아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건국'을 선포합니다.

이스라엘 건국을 반대하며 아랍계 국가들이 뭉쳐서 제1차 중동전쟁을 벌이게 됩니다.

중동전쟁은 총 4차까지 진행되면서 이스라엘과 아랍인들의 싸움이 계속되었고 4차까지는 모두 이스라엘이 승리합니다.

10. 중동전쟁에서 패배한 아랍인, 팔레스타인 곳곳에 흩어져 살게 되다(하마스가 집권정당이 된 가자지구)

이 과정에서 팔레스타인에서 아랍인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살게 됩니다.

그 중 하나가 '가자지구'였고  요르단, 시리아 등 일대에 아랍인들은 흩어져서 살게됩니다.

지금 다시 문제가 된 '하마스'정권이 장악하고 있는 곳이 바로 '가자지구'입니다.

팔레스타인 내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내 가자지구
가자지구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네모로 표기된 지역이 '가자지구'입니다.

가자지구는 1994년까지는 이스라엘이 장악하고 있었는데 이를 팔레스타인자치기구에 넘기게 되고 1994년부터 현재까지 팔레스타인자치기구가 관리하는 팔레스타 독립영토로 존재하는 곳입니다.

가자지구는 340㎦정도의 크기로 우리나라의 세종시 정도로 그렇게 크지는 않습니다.

가자지구에는 주로 아랍인이 살고 있고 유대인도 일부가 정착촌을 구성해서 살고 있습니다.

따라서 가자지구내에서도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2012년과 2014년에도 가자지구 내 갈등으로 인한 폭격사건이 벌어지기도 했었습니다.

2021년에는 2012년과 2014년과 관련된 이스라엘과 하마스 관련 전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1994년에 빠지고 팔레스타인자치기구가 장악을 하게 되면서 이일대는 이후 아랍인의 영역으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2006년에는 선거를 통해서 극단적인 무장단체인 '하마스'가 집권정당으로 선거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하마스는 아랍인의 입장중에서도 가장 강경하고 극단적인 색채를 가진 정당입니다.

하마스의 입장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차지한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며 아랍인이 억울하게 빼앗긴 땅을 무력을 통해서라도 다시 되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팔레스타인에 살고 있는 아랍인에게는 이러한 하마스의 입장에 대해 지지를 얻었기 때문에 선거에서 승리를 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선택한 방식 자체가 자살폭탄테러나 무고한 민간인 테러였기 때문에 미국을 비롯한 국제단체에서는 하마스를 무장테러단체로 규정해놓고 정상적인 대화의 상대에서 배제하기도 합니다.

11.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종합적인 원인 분석

위에서 살펴본 역사적 배경에 더불어서 가자지구 내 50% 에 육박하는 실업률등 가자지구 내의 불안요소를 전쟁을 통해서 내부적인 아랍인의 힘을 결집시키고자 하는 의도도 분명 있어 보입니다.

또한 이스라엘과 최근 아랍계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가 개선되면서 국교가 정상화 되는 과정속으로 가고 있고 이러한 영향으로 가자지구 내 아랍인들은 더욱더 고립될 수 밖에 없는 입장에 놓여져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막고자 극단적으로 전쟁을 벌인 것이라는 분석또한 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가장 큰 원인이자 아쉬운 점은  1차세계대전이라고 하는 비극적인 전쟁이 있었고 이 과정에서 영국이 자국의 이익만을 생각하고 추후 큰 분쟁을 일으킬 만한 분쟁의 씨앗을 심어놨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과 폭력은 어떠한 경우라도 용인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일 것입니다. 

 

<출처: 이다지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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