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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내 여자의 열매]를 읽고(책리뷰/독후감)/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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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내 여자의 열매]를 읽고(책리뷰/독후감)/한강

내 여자의 열매(한강)
내 여자의 열매(한강)

한강의 소설집 [내 여자의 열매]에는 총 8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중 <내 여자의 열매 속> 아내와 남편은 [채식주의자]의 영혜와 그의 남편을 떠올리게 합니다. 또한 일곱 번째 소설 흰 꽃에는 제주 4.3 사건의 기억 속에서 괴로워하는 노파가 등장하는데 이것은 [작별하지 않는다] 속에서 악몽을 물리치기 위해서 이불 아래 실톱을 넣고 자는 경하의 어머니 모습이 겹쳐집니다. 단편 소설에 살을 붙여 주옥같은 장편소설이 탄생하는 것을 찾아내는 재미가 꽤나 흥미롭습니다. 

 

첫 번째 단편소설 <내 여자의 열매>는 아내가 점점 식물로 바뀌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남편(나)의 이야기입니다. 나는 몹시 가난하여 먹고사는 것 자체가 빠듯했고 가족의 사랑도 넉넉히 받지 못한 남자입니다. 나는 남부럽지 않게 풍족한 것은 아니나 끼니 걱정 없이 서울외곽의 작은 아파트지만 집 장만을 하여 자신만을 사랑해 주는 아내와의 4년간의 결혼생활이 꽤 만족스럽지만, 아내는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이 생긴 새장에 갇혀 시끄러운 차소리에 진저리 치며 답답한 이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나는 그런 아내의 그런 모습들을 보며 부족함 없이 자란 아이의 투정정도로만 치부합니다. 아내는 연한 녹색으로 점점이 시작해 이제는 진한 녹색이 되어 자신의 온몸에 생긴 멍을 보여주더니, 광합성을 하듯 햇빛아래 알몸을 드러내기 일쑤이고, 물 이외에 음식을 먹지 못하고 말라갑니다. 어느 날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나는 이제는 두 발까지 붙어 움직이지 못하고, 두 손은 줄기가 되어 뻗고 있는 나무가 된 아내를 발견합니다. 나는 매일 아내가 햇빛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고, 물을 뿌려주고 마침내 그녀의 몸에서 열매를 뱉어내는 것을 지켜봅니다. 나에게 지난 3년의 결혼생활은 인생에서 가장 따뜻하고 평화로운 시간이었고 가장으로서의 역할도 충실했고 나름 부족함 없는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해 준 것에 대한 자부심까지도 있기에,  아내가 무슨 권리로 나를 외롭게 하고 괴롭히는 것인지 불만스럽고 그녀에 대한 염오감 마저 일고야 맙니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순리에 따라 자라고 뻗고 열매를 맺고 시들어 죽고 다시 싹 틔우는, 어떤 소리도 허락되지 않을 것만 같은 깊고 아득한 침묵과 맑고 깨끗한 공기와 차갑고 순결한 물과 함께 한껏 자유롭게 식물이 되어 있는 아내의 모습을 보고 나는 불현듯 생각합니다.

내 아내가 저만큼 아름다웠던 적은 없었다.

 

사람마다 행복을 느끼는 감정이 저마다 다르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남편은 물질적으로 찢어지게 가난했기에 의식주로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삶에 만족해했고, 사랑받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급부로 나만 바라보는 아내가 있는 것이 행복합니다. 다른 부수적인 결핍과 불편함은 자연스럽게 감수해야 할 것들로 크게 염두에 두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소음에 예민하고, 우울질 성격을 가지고 조그마한 자극에도 괴로워하고, 꽉 막힌 아파트생활을 답답해하고, 공해와 사람이 넘쳐나는 대도시의 삶에서 벗어나고픈 아내의 마음을 이해하지도, 들여다보려 하지도 않습니다. 남편은 봄이 오면, 아내가 다시 돋아날까, 아내의 꽃이 붉게 다시 필까 알 수 없지만, 비로소 그녀가 바라는 모습이 되어 아름다움을 뿜어내고 있는 그녀를 살뜰히 돌봅니다.

 

두 번째 단편소설 <해 질 녘의 개들은 어떤 기분일까>는 이제 갓 초등학생이 된 아이(태련)와 그의 아빠가 집 나간 엄마(아내)를 찾아 헤매는 이야기입니다. 아이는 어느 바닷가 마을 여관방에 창을 통해 먼바다로 나가는 길을 바라보다 그곳이 궁금해 길을 나섭니다. 바다로 가는 길목에서 사나운 개들을 발견하고 뒷걸음질 치며 아이는 해 질 녘의 개들은 어떤 기분일까 궁금해집니다. 아빠는 소싯적에 건달생활을 하던 남자였으나 아내를 만나 손을 씻고 분식트럭에 아내와 딸아이를 싣고 전국을 떠돌며 장사를 하며 생계를 유지합니다. 출신에 대한 피해의식과 불안으로 아빠는 엄마의 행동을 제한하고, 때로 술을 먹고 물건을 집어던지고, 폭언하고, 급기야 의처증에 이릅니다. 아버지의 의처증에 진저리가 난 아내는 어느 날 집을 나가버리고 장사를 하던 트럭에 아이를 싣고 아내를 찾아 떠돕니다. 돈이 떨어져 트럭마저 처분하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 절망에 휩싸인 아버지는 아이가 즐겨 먹던 샌드위치 빵의 잼에 약을 발라 아이에게 그것을 먹여 죽이려고 하지만, 아이의 입에 들어간 빵을 손을 넣어 게워내게 합니다. 

알아? 인제는 나도 옛날 같지 않아... 세상천지에 겁날 게 없었던 내가 씨발, 겁쟁이가 됐다고. 공사 현장 밑을 지나면 벽돌이 떨어져서 머릴 찍을까 봐 찝찝해. 화물차라도 거칠게 끼어들면 등가죽에 식은땀이나. 그게 왜지 알아? 너 때문이야, 알기나 해? 네가 날 겁쟁이로 만들었다고. 모든 게 변해 버렸다고.

 

세상 무서운 것 없이 살던, 거칠고 방만한 삶을 살던 아버지는 한 여자를 사랑하면서 겁쟁이가 되어 갑니다. 미래라곤 없이 하루하루 닥치는 대로 살았을 때는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었는데, 평생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 생기고, 지켜야 할 가족이 생기고, 그들과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고 싶은 욕망이 생기고, 잃고 싶지 않은 가진 것이 생기니, 그것을  잃을까 겁나고 떠날까 염려되고 배신할까 집착하고 또 그런 옛 습관이 기어 나오는 것에 대해 자괴감에 전정 긍긍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지켜주고 사랑해주고 싶었던 아내에 대한 미련한 집착은 그녀를 그에게서 떠나게 했고, 사랑하는 이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아이는 어두운 여관방안에 갇혀 수시로 굶주리고, 아빠와 단 둘이 틀어박혀 있는 여관방의 문을 바깥에서 누군가 문을 잠가버리고 아무도 그들이 거기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두려워하고, 먹고 살아갈 돈이 떨어져 가는 것을 염려하고, 술에 취해 잠든 아빠가 죽어버린 것은 아닐까 무섭기만 합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없는 미래에 진저리 치다 결국 아이와의 동반자살을 기도하지만, 엄마와의 좋은 추억이 있는 샌드위치를 아빠가 만들어 주는 것에 한 점의 의심도 없는 자신에게 온전히 의지하는 딸아이에 대한 죄책감과 삶에 대한 미련으로 아빠는 아이의 입에서 기어이 빵을 게워냅니다. 이런 일을 겪으며 아이는 생각합니다. 

해 질 녘의 개들이 어떤 기분일지 아이는 궁금하지 않다. 너무 아팠기 때문에, 오래 외로웠기 때문에, 아이에게는 이 순간 두려운 것이 없다.

 

해 질 녘의 개와 꼭 같은 처지에 아이는 극한의 괴로움과 아픔, 외로움보다 더 두려운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세 번째 단편 소설 [아기 부처]는 얼굴과 목덜미 위쪽과 두 손을 제외한 전신에 끔찍한 화상을 입은 남자 이상엽과 그의 아내 최선희의 이야기입니다. 상엽은 유수의 방송국 메인뉴스 앵커로 준수한 외모, 큰 키, 스마트한 머리를 가지고 있는 남자이고, 선희는 있는 듯 없는 듯 평범한 얼굴과 키, 무난한 학벌을 가진 무명의 삽화가입니다. 둘은 소개팅으로 만나게 되는 데 선희는 자신이 감당하기에 너무 유명한 그가 부담스러워 그와의 결혼은 꿈에도 꾸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상엽은 자신의 오피스텔에서 탈의를 해, 자신의 온몸에 화상 흉터를 선희에게 보여주며 그녀에게 구혼합니다. 선희는 내부에서 끌어 오르는 그 무엇인지 모를 감정에 휩쓸려, 치부를 드러내는 용기에 감동하여 결혼을 결심합니다. 하지만 선희는 마음과는 달리 화상에 일그러진 피부가 그녀의 피부에 닿는 게 소스라치게 소름 끼치고 거부감을 느껴 잠자리를 피하게 되고, 스킨십마저도 부담스럽기만 합니다. 험한 것 따위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 자부했지만, 자신도 똑같은 사람이었고 징그럽고 흉하게 꿈틀거리는 그의 살갗을 혐오합니다. 그에 더해 상엽의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결벽증에 가까운 완벽주의의 성향마저 그녀의 숨통을 옥죕니다. 선희는 남편의 흉터 때문에 그를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 흉터 때문에 그를 혐오하게 되었고 타인의 그것처럼 그의 흉터를 보았고 타인에게 호의를 베풀듯이 그에게 호의를 베풀게 됩니다. 그렇게 점점 멀어지고 있음을 느끼는 찰나에 상엽의 내연녀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고 선희는 충격에 휩싸입니다. 

그의 알몸이 얼마나 붉었는지, 배 아랫부분부터 샅까지 돋은 음모들이 그 붉게 뒤틀린 피부에 대조되어 얼마나 검은지 아는 사람은 나 외에 없었다.

 

상엽의 치부에 대해 아는 사람은 자신뿐이라고 생각하던 선희는 상엽에게 묻습니다. 그녀에게 너의 알몸을 보여주었는지. 상엽은 그녀는 당신과는 달리 자신의 흉터에 개의치 않는다고 큰소리치지만, 어느 날 술 취해 들어온 상엽은 인간은 모두 똑같다며 욕하고 흐느끼며 제 머리를 세면대 모서리에 박아댑니다. 더는 견디기 어려운 선희와 상엽은 암묵적으로 이혼을 합의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던 중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이에게 엄격했던 선희의 어머니는 바람을 맞고 쓰러져 불편한 몸으로 불화를 그리며, '후회가 된다'라고 말하며 

그 스님이 그러더라. 관세음보살은 내 속에 있다고. 내 몸이 용서하는 마음으로 그득해지면 그게 바로 관세음보살이라더라.

라고 전합니다. 

그리고 선희는 상엽이 지난밤에 술에 취해 숙취에 시달렸을 그를 위해, 화상 흉터를 내보인 후 그의 연인의 눈에 스친 혐오를 보았을 그를 위해, 몸에 새겨진 아픔이 슬픔이 되어 결벽과 완벽주의로 그것을 가리며 살아왔을 그를 위해,  아내인 나에게마저 마음 놓고 상처를 내보이며 살지 못했을 그를 위해, 아침에 눈을 떠 늘 그랬던 마실 수 있도록 유자차를 만들어놓고, 그녀는 늘 그렇듯 산책길에 오릅니다. 

겨울에는 견뎠고 봄에는 기쁘다.

 

두 사람이 이혼을 했는지 여부는 나오지 않지만, 독자인 나는 그 둘이 함께 남은 여생을 하는 것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차고 긴 겨울의 시련을 견디고, 기쁘고 따뜻한 봄날을 맞듯, 관음이 보일 듯 말듯한 미소를 머금고, 늘 세상 사람들의 소리를 관찰하고 있다 괴로이 부르는 음성을 듣는 즉시 곧 구제해 주듯, 서로를 구원하는 관음이기를 바라봅니다. 

 

네 번째 단편소설 <어느 날 그는>은 출판사에서 책배달을 하는, '복서'라는 별명을 가진 태식과 잡지사에서 잡일을 하는 인화의 사랑과 파국을 이야기합니다. 영원한 사랑을 믿지 않는 인화는 순간순간의 감정을 믿는 여자로 태식을 만나기 전 이 남자 저 남자 닥치는 대로 만나 사랑을 나누는 여자였고, 태식은 거친 인생 끝 인화를 만나 영원한 사랑을 꿈꾸는 남자입니다. 태식은 책을 배달하지만 그 책을 읽지 않는 남자이고, 인화는 책을 편집하느라 내용에 상관없이 닥치는 대로 읽어야만 하고 읽어왔던 여자입니다. 태식은 몸으로 경험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인화는 머리와 눈과 감각과 영혼으로 세상을 바랍니다. 

어느 날 그는 빗방울이 전선에 맺혀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때까지 살아왔던 방식을 한꺼번에 바꾸었다. 그러니 정말 흥미 있는 이야기는 그 뒤에 비로소 시작되지만, 일단 이 이야기는 그가 전선의 빗방울을 보기 전까지이다. 

 

소설은 이렇게 매우 감각적인 추리소설식으로 시작합니다. 사랑하냐고 끊임없이 묻는 태식에게 인화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이 뭔데? 사랑이라는 게 만약 존재하는 거라면, 그 순간순간의 진실일 거야. 순간의 진실에 대해서 묻는 거라면 당신을 사랑해. 하지만 영원을 믿어? 있지도 않은 영원이라는 걸 당신 힘으로 버텨내려고? 버텨내 볼 생각이야?
사람도 그렇잖아.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좋아지지만, 그 순간에는 그것만이 가장 크고 중요한 진실이지만 상황이 바뀌거나, 시간이 지나거나 하면 모든 것이 함께 바뀌어 버리잖아. 결국 영원한 건 없는 거야. 그렇지? 영원한 건 없다는 걸 인정하고 나면 살기가 훨씬 쉬워질지도 몰라.

 

영원한 사랑은 없고 시간이 지나고 상황이 변하면 모든 것이 바뀌듯 사람의 마음은 변하고, 사랑 또한 그리하다고 말하는 인화에 대한 의심과 집착은 결국 상엽의 폭력성을 깨우고 맙니다. 태식은 품 속에 날카로운 과도를 품고 다니기 시작했고, 어느 날 회사 동료와 잠자리를 하던 인화를 발견하고 그녀의 음부를 향해 칼을 휘두릅니다. 다행히 목숨을 건진 인화는 상엽이 처벌받기를 원치 않아 자해를 한 것이라고 경찰에 진술합니다.

 

물속으로 손을 뻗어 그걸 주우려고 하는데, 그때 갑자기 깨달은 거야. 내가 줄었다는 걸. 갑자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살아나서 저 파란 돌을 건지고 싶었어. 다시 살아야겠다고 결심하니까 눈물이 났어. 다시... 돌아와야만 한다는 게.

 

 

인화는 간밤에 꾼 꿈을 이야기하며 다시 살아서 '파란 돌'을 건지고 싶지만, 다시 살아야겠다고 결심하니 눈물이 난다고 고백합니다. '파란 돌'은 한강 작가의 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에서도 등장하는데 희망이나 미래, 밝은 것, 영롱하고 아름다운 것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칼에 수십 번 찔려 죽음과 사투 끝에 되살아나 파란 돌을 건져내고 밝은 미래를 꿈꾸고 싶지만, 다시 돌아갔을 자취방에서 다시 그와의 삶을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고 고백한 그녀와 이제는 이별할 시간이 왔다는 것을 태식은 직감합니다. 그렇게 그녀의 자취방에서 나온 태식은 전깃줄이 창 앞을 가로지르고, 소음과 채광문제로 누구도 들어가고 싶어 하지 않는 고시원 십 호실에 둥지를 틉니다. 바퀴벌레 한 마리도 쉽게 죽이지 못하고 도망갈 수 시간을 주는 그녀인 것을 알고 있기에, 그녀는 바퀴벌레를 바라보듯 그를 보며 망설이고만 있었던 것은 아닐까, 완전히 돌아서버리는 것이 거의 그를 죽이는 것과 같이 잔인한 일임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으므로, 다만 바라만 보고 있었던 것일까 하고 상엽은 생각합니다. 

마침내 그는 창문으로부터 돌아섰다. 그리고 빗방울이 전선에 맺혀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 벽지에 비친 자신의 단단한 그림자를 보았다. 그 검은 몸을 가로지르는 전선을 보았다. 거기에서 흘러내리는, 꿈같기도 하고 눈물 같기도 한 빗방울들을 보았다. 그는 눈을 감았다. 델 것 같은 눈물이 굴러 떨어졌다. 입술과 턱을 적신 그 눈물은 억센 힘줄이 드러난 목덜미를 타고 타고 내려가 러닝셔츠로 번졌다. 바로 그 순간으로 인하여 그의 삶이 바뀌었으나, 그는 아직까지 그 변화를 실감하지 못한 채 무수한 그림자들의 춤추는 곡선 가운데 우뚝 서 있었다.

 

 

태식은 1.5 평 창문밖으로 무엇인가 자신의 몸을 밀어내는 듯한 착각에 휩싸이며, 자살이 코 앞으로 다가옴을 직감합니다. 이 순간 태식은 소설의 시작할 때 언급한 전선에 맺혀있는 빗방울을 보게 됩니다. 그 창 밖에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 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 머리 위로 무심히 내리기 시작하는 빗방울, 그 빗방울에 비친 비척대며 일렁이는 그림자들, 그리고 벽지에 비친 단단한 자신의 그림자를 봅니다. 이 순간 어느 날 그는, 이 그림자들의 생동감 넘치는 움직임, 고요한 꿈틀거림을 보고 삶이 바뀌었지만 그는 알지 못합니다. 태식은 어느 날, 부지불식간에 밝음, 또렷함, 생기, 영원함 그 이면에 그림자와도 같은 어두움, 흐릿함, 소멸, 순간성을 찰나에 깨닫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섯 번째 소설 <붉은 꽃 속에는>은 여덟 살의 누나 선이가 다섯 살 된 남동생 윤이를 떠나보낸 후, 그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입니다. 녹슨 못을 밟아 시름시름 앓다 떠난 윤이를 생각하며 선이는 종종 학교 대신 연등회를 했던 절로 향하곤 했습니다. 선이는 어느 날 어머니에게 머리를 깎고 싶다고, 산에 들어가고 싶다고 청합니다. 어머니는 반대하지 않고 선의의 손을 잡고 절로 향합니다. 1년에 단 한번 초파일에 치르는 연등회를 자신이 앞으로 몇 번 볼 수 있을지 생각합니다.

 

누구도 그것을 알 수 없었다. 윤이가 단 한 번의 연등회 밖에 보지 못했던 것처럼.

 

선이는 다섯 해 짧은 생을 살다 간 윤이를 통해 죽는다는 것, 죽음과 소멸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리고 윤이가 언젠가 선이가 그린 꽃그림을 햇빛 아래 비춰 붉은 꽃 속에 빛이 어려 있는 것을 보았던 그날을 기억하며 선이는 동자승의 얼굴을 그립니다. 

먹과 물감을 섞어 여러 색을 낸 하나하나의 꽃 속에서, 저마다 다른 표정으로 웃고 있는 동자승의 얼굴들에서, 해를 향해 화선지를 들어 올리지 않은 채로도 빛이 새어 나오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실패했다. 불빛은 제가 불빛인 줄을 알았을까. 붉은 꽃 속에 제가 밝혀져 있었던 것을 알았을까.

 

해를 향해 화선지를 들어 올리지 않아도 빛이 새어 나오도록. 다섯 살의 짧은 생을 마감한 윤이가 제가 빛이었는지, 꽃이었는지 알았을지 궁금합니다. 죽은 자식을 위해 백 팔 번의 고민을 세 번에 걸쳐 털어내려 매일 아침 절을 찾아 삼백 이십 사 번의 절을 하는 어머니, 결혼을 앞둔 큰 오빠, 늑막염으로 군생활을 채 마치지 못하고 나와 고시공부를 준비하는 둘째 오빠 그리고 중이 되려 하는 그의 마음속에 다섯 살 모습 그대로 붉은 꽃 속에 환한 빛과 같이 살아서 기억되는 윤이를 통해 한강 작가는 삶과 죽음 그리고 인생의 무상함을 잔잔히 노래하고 독자로 하여금 생각해 보게끔 합니다.

 

여섯 번째 소설 < 아홉 개의 이야기>는 각양각색의 사랑, 인생이야기를 초단편 아홉 개의 이야기로 풀어냅니다. 

사람의 몸에서 가장 정신적인 곳이 어디냐고 누군가 물은 적이 있지. 그때 나는 어깨라고 대답했어.
자신을 둘러 산 거대한 밤의 공간에 여자는 감동했다.

새벽 창이 박명으로 파르스름하게 밝혀졌을 때 여자는 눈을 떴다. 고요히 곁에 누운 남자를 보았을 때 여자를 당혹스럽게 한 것은 그 낯선 꿈의 서늘함이 아니라, 별 환한 그 길 위에서 자신이 느꼈던 자유였다. 
여자의 목소리가 깊은 밤 종이 위에서 사각거리는 연필 소리 같다는 말을 남자는 하지 않았다. 남자의 유일한 염려는, 여자의 목소리가 그 보다 먼저 지상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아주 어두워져서 아무것도 안 보이고 안 만져지고 안 들리면, 꿈속 같이 고요해지면, 그 캄캄한 곳에서 그때... 그때 무서워하거나 쓸쓸해하지 말아. 내가 있다는 걸 잊지 말아

극히 짧은, 마치 시와 같은 한강 작가의 시적 감수성과 놀랍고도 섬세한 묘사력이 돋보입니다. 연필 소리와 같은 목소리라니. 어깨의 움직임으로 사람의 정신을 가늠해 볼 수 있으며, 그와 내가 어깨를 마주쳤던 그 순간 느꼈던 찬란한 사랑의 감정을 노래합니다. 좋지 않은 일을 당한 가족과 친구, 지인에게 아무 말 없이 어깨를 토닥토닥해 주는 것도 그들의 감정에 닿아 느끼고 위로가 되기 때문이겠지요.

 

일곱 번째 소설 < 흰 꽃>은 제주에서 완도로 가는 페리여객선 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소설 속 흰 꽃은 사람이 죽어 살을 치를 때 여자들의 머리에 꽂는 하얀 리본이 달린 핀을 말합니다. 우리나라에는 탈상을 하기 전까지 죽은 이를 기리기 위해 매일 새로운 흰 리본을 갈아 꼽다, 비로소 그를 이승에서 저승으로 떠나보낼 때 모아놓은 리본을 불에 태워 그이들의 영혼과 함께 날려 보내주는 전통이 있습니다. 제주도에는 사삼 사건 때에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기일 안에 마땅한 택일이 오지 않아 육지의 초분과 같은 생빈눌을 만들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데, 사람들은 '사람이 오죽이나 복이 없었으면 땅에 들어갈 날짜 하나 얻지 못했겠나...'하고 안타까워했다고 합니다. 여객 선 위 여자는 누군가의 장례를 치른 듯 머리에 하얀 리본이 달린 핀을 꼽고, 흰 파도를 보며 흰나비를 보았노라고 합니다. 아무도 보지 못했지만, 반드시 있었을 흰 꽃 위를 날아다니는 흰나비. 여객선 위 사람들을 관찰하던 여자는 스무 살 무렵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생각하며 사십구일 만에 흰 리본들을 태웠던 일을 떠올립니다.

순식간에 그 무명천들이 불티가 되어 사라지는 것을 들여다보면서, 후에 나는 누구의 머리에 나비가 내려앉게 될까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느닷없이 아이를 낳고 싶다고, 어머니처럼 얼굴이 달떡 같은 계집아이를 피 흘리며 낳고 싶다고 나는 생각하였던가요.

 

<붉은 꽃 속에는> 속 윤이처럼, 여자의 어머니 또한 여자의 머리 위에 꼽힌 머리 하얀 리본이 달린 핀에 의해 죽은 이의 영혼을 달래주고, 저승으로 가는 길을 밝혀주고, 기억하여 기려주는 듯합니다. 특별히 삶에 미련이 없이 무의미한 삶을 살던 여자가 어머니를 떠나보낼 때를 회상하며 자신도 누군가의 머리에 나비로 내려앉게 될 것을 기대하며, 삶의 동력을 얻고 새로운 생명의 잉태를 꿈꾸게 되는 일은 참으로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지막 소설 <철길을 흐르는 강>은 폭력적인 아버지와 철길에 몸을 던져 죽은 어머니 그리고 죽은 어미가 떠난 지 수개월 후에 의붓자식들을 데리고 가족이 된 의붓어머니를 둔, 처절하게 불후한 어린 시절, 죽은 새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아이였던 여자의 사랑이야기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1년간 동거를 합니다. 남자는 서울에서 사는 것 그리고 지상에 올라와 사는 것을 목표로 달려왔지만, 수백만의 불행을 만들어내는 도시, 수백만의 피로한 인간을 뱉어내는 도시인 서울에 대한 증오와 혐오, 염증, 허무함을 느끼고, 이곳을 떠나는 것 말고는 어떠한 구원의 길도 없다면 여자와 함께 떠날 것을 제안하지만, 여자는 거부합니다. 그가 떠나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기에 더욱이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여자는 그가 떠난 후 매일 그가 쓰던 칫솔모가 다 망가진 칫솔로 잇몸과 입천장을 닦으며 그의 체취를 기억하지만, 이제 그것마저 희미해져만 갑니다. 남자의 고향은 강기슭 쪽이었고, 여자의 고향은 철길이 가로질러 뻗어 있습니다. 

도시 어린 시절 살았던 동네를 찾게 된 여자는 철길이 강인줄 알았는지, 철길 옆에 아버지가 지어준 새 구두를 벗어놓고 철길에 몸을 던진 어머니를 기억합니다. 

새의 시체가 썩어갈 때까지 나는 그것을 가지고 다녔어. 새의 온기가 사라지고 나자 이번에는 내 손의 온기가 그 싸늘한 새에게 옮겨졌고, 마침내 내 손이 새인지, 새가 내 손인지 알 수 없어졌지. 

 

여자는 어린 시절 부모의 싸움소리를 피해 집을 나올 때에도 무슨 책이든 가지고 뛰쳐나올 만큼 책과 그녀는 떼려야 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녀는 그토록 좋아하던 책을 읽지 못하게 될 만큼 눈이 아프로 시립니다 처음으로 일하게 된 직장의 옥상을 기억에 올라, 열세 살 성당 창문에 부딪쳐 머리가 부러진 박새들을 기억합니다. 아직 숨을 쉬고 있는 새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던 그 시절, 도움을 구한 사무처 직원들이 했던 말을 기억합니다. 새가 저렇게 되는 건 종종 있는 일이고, 새를 구할 수 없을뿐더러 구한다고 하더라도 키울 수없으니 돕는 것은 어렵다는 그 말을. 죽은 새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 썩어서 더 이상 가지고 다닐 수 없으면 묻어주곤 했던 그 시절의 기억을. 어머니가 입던 점퍼 속 주머니에서 새를 발견하고 탈탈 털어 버렸던 아버지의 정강이를 물어뜯고 새된 목소리로 악따구니를 질러댔던 그 용기를.  철길이 흐르는 그 강에. 그곳에 딱 세 시간만 누워 있는 것이 희망인 여자. 머리가 부러져 죽어가는 새는 여자고, 또 남자입니다. 맑고 깨끗한 유리창일수록 더 세게 머리를 처박았을. 

 

이 소설집은 유난히 사랑 이야기가 많이 등장합니다. 특히 연인의 사랑이야기가 다채로운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사랑에 대해서 찬찬히 곱씹으며, 무상하고도 무상한 인생을 질겅질겅 되새김질해 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역시 한강작가의 소설은 읽는 내내 고통스럽지만, 그 고통의 폭과 깊이가 넓고 깊을수록 느끼는 카타르시스는 형언할 수 없을 만큼의 충격과 함께 내 영혼과 마음을 송두리째 휘젓고, 도저히 깰 수 없는 두께의 알을 깨고 나오는 새처럼 다른 세계로 훨훨 비상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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