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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책읽기

43. [햄릿]을 읽고(책리뷰/독후감)/셰익스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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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햄릿]을 읽고(책리뷰/독후감)/셰익스피어

셰익스피어 3대 비극 중 하나인 햄릿은 연극을 위해 쓰인 총 5막으로 구성된 희곡입니다. 

To be or Not to be.
사느냐 죽느냐(민음사 편에서는 이를 '있음이냐 없음이냐'로 번역함)

그것이 문제로다. 

이 한 문장만 들어도 햄릿을 떠올릴 정도로 유명한 이 문장은 유명한 만큼 깊은 성찰을 이끌어냅니다. 바로 인간에게 있어 풀리지 않는 숙제 중 하나인 삶과 죽음에 관한 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햄릿의 아버지는 그의 형제 클로디어스에게 독살당하고 사랑을 맹세했던 아내 거트루드마저 그가 죽은 지 채 한 달 만에 동생의 아내가 되고 맙니다. 원한을 품은 채 유령이 되어 햄릿과 그의 신하들 앞에 나타난 선왕은 햄릿에게 복수를 해달라고 요구합니다. 햄릿은 미치광이 흉내를 내면서 반역을 도모하는 내심을 숨기고, 사랑하는 여인 오필리아에게조차 희롱으로 일관합니다. 오필리아의 아버지 폴로니어스는 햄릿이 미친 원인을 알아내는 과정에서 햄릿과 거트루드가 담소를 나누는 것을 훔쳐보려 커튼뒤에 숨었다, 햄릿에게 들키게 되어 햄릿의 칼에 찔려 죽게 됩니다. 오필리아는 아버지의 죽음과 사랑하는 햄릿의 희롱에 견디다 못해 물에 몸을 던져 자살하고 맙니다. 폴로니어스의 아들이자, 오필리아의 오빠인 레어티즈는 분노해 햄릿에게 복수를 다짐합니다. 한편 햄릿은 유령이 전한 말이 사실인지에 대해 확신을 얻기 위해 죽은 선왕의 스토리를 각색하여 연극을 꾸미고, 클로디어스와 -그의 어머니였고 지금은 삼촌인 콜로디어스의 아내이자 여왕인- 거투루드를 초대해 연극을 관람케 하여 그들의 반응을 보고자 합니다. 클로디어스는 햄릿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레어디스의 분노를 활용해서 레어티즈와 햄릿의 결투대결을 제안합니다. 대결에 앞서 왕과 왕비의 면전에서 레어티즈가 자신의 칼날에 스치기만 해도 죽음으로 이끄는 독약을 바르겠다고 했고, 클로디어스는 만약 그것이 실패했을 때를 대비해서 차선책으로 독을 탄 술을 준비합니다. 햄릿과 레어티즈의 대결날, 거트루드는 둘의 결투에 애가 타 독을 탄 술을 들이켜 즉사하고 맙니다. 그리고 햄릿은 레어티즈의 칼에 스치고 죽어가는 와중에 레어티즈의 칼을 떨어뜨리게 해 둘의 칼을 바꿔치기하고 그 독이 발린 칼로 레어티즈를 찌르고, 클로디어스 또한 칼로 베고 맙니다. 이를 지켜본 햄릿의 친구 호레이쇼는 자신도 햄릿을 따라 죽으려 하지만, 햄릿이 호레이쇼가 살아남아 자신의 이야기를 전해달라고 부탁하고 이를 받아들인 호레이쇼는 노르웨이 왕자 포틴브라스에게 그간의 이야기를 소상히 아뢰며 이야기는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이렇게 희곡 <햄릿> 이야기는 햄릿과 햄릿의 아버지, 어머니, 삼촌, 사랑하는 여인과 그의 부친, 그의 오라버니까지 두 남녀 일가가 모두 죽음으로 마무리되는 비극 중 비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사랑하는 여인을 차지하고 권좌를 탐해 피를 나눈 자신의 형제까지 비정하게 죽인 클로디어스의 죽음을 통해, 사랑과 권력의 무상함과 허망함, 덧없음, 탐욕에의 징벌을 이야기합니다.

이 일을 넘치거나 모자라게 하면, 식별력이 없는 자들은 웃길지는 모르지만, 안목 있는 사람들은 통탄케 할 수밖에 없을 텐데, 자네(배우)들은 후자의 평가를 극장가 득한 전자의 평가보다 더 무겁게 받아들여야만 해.
오늘 밤 왕 앞에서 연극이 있을 거야. 그중 한 장면이 내가 그대에게 말해 준 부친의 사망 경위와 비슷해. 부탁인데, 그 행위가 연기될 때, 바로 그대의 영혼과 더불어 숙고하고, 내 삼촌을 지켜보게. 왜냐하면 나도 그 얼굴에 내 두 눈을 못 박고, 나중에 그 기색을 평가함에 우리 둘의 견해를 합쳐볼 테니까.

 

햄릿은 무슨 일에 건 넘치거나 모자람이 있는 것에 경계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또한 혼자만의 독단적인 판단이 아닌 다른 이의 시선, 안목, 입장과 비교하여 평가하고자 합니다. 이것이 사사로운 복수극이 아님을 강조하는 장치로 보이는데, 자신의 감정에 치우쳐 연극을 사사로운 주관적 감정을 개입시키지 않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사건을 바로보고자 하는, 한 나라의 왕의 통치 관념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자넨 날 피리보다 더 쉽게 연주할 수 있다고 생각해? 나를 무슨 악기로 불러도 좋아. 하나, 나를 만지작 거릴 순 있어도 연주할 순 없어.

 

이 대목에서도 햄릿의 자신감과 자존감이 돋보입니다. 누구에 의해서도, 그것이 설사 신에 의한 것일지라도 자신의 뜻과 의지를 꺾을 수 없으며 제 행동과 사고를 좌지우지할 수 없음을 천명합니다.

오필리아 : 햄릿, 넌 네 아버질 몹시 화나게 했다.
햄릿: 어머닌 제 아버질 몹시 화나게 했지요.

오필리아: 저런저런, 경박한 혀로 대답하는구나.
햄릿: 이런이런, 사악한 혀로 질문하는군요.

 

운을 맞춰, 돌림노래를 하는듯한 형식을 활용하여 희곡이 가진 매력을 살리고, 풍자를 극대화시킵니다.

로렌크란츠: 저를 스펀지로 보십니까, 저하?
햄릿: 그럼, 왕의 총애와 보답과 권세를 빨아들이는 물건이지. 하나 그런 하수인들이 결국 왕에게 가장 잘 봉사하는 거야. 그는 원숭이처럼 그들을 입 한구석에-처음엔 넣고 있다가 마지막엔 삼키지. 그가 너희들을 긁어모은 게 필요한 땐, 짜기만 하면 너희들 스펀지는 다시 마를 거라구. 
이천의 인명과 이만의 금화로도 이런 하찮은 문제를 해결치 못 하는구나! 이건 큰 부와 평화가 안으로 곪아터져, 겉으로는 사람이 왜 죽는지 그 이유를 모르는 경우로다. 참으로 고맙소이다.

 

나라안에 고질적인 부패-권력자와 그 권력에 절대복종하며 부역하는 신하들을 필두로 한-들로 곪아터져,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고 풍요로워 보이나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당시 세태를 풍자하고 있습니다. 

햄릿은 선왕을 죽이고, 그 선왕의 아내이자 햄릿의 아내를 빼앗고, 아들이 된 햄릿을 죽일 계략을 세우고, 그를 죽이기 위해 한 가족을 풍비박산 만들 계획을 세운 클로디어스를 처단하는 것은 순리이며, 오히려 그를 처단하지 않는 것은 나라과 백성을 저주로 이끄는 일임에 확신하면서, 자신이 죽어가는 중에도 클로디어스의 목숨을 앗아가기 위해 그가 말하는 무모하게 뛰어듭니다. 그러면서도 레어티즈의 아비를 죽인 것은 고의가 아니었으며, 클로디어스의 악랄한 짓에 대한 복수의 과정에서 이루어진 일이나, 햄릿 자신도 제 아비가 죽은 것에 피와 살이 찢기는 고통과 슬픔을 느꼈던 바가 있어 레어티즈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에게 양해를 구하고자 먼저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는 부분에서 햄릿의 공감능력도 엿볼 수 있습니다. 

 

참새 한 마리가 떨어진데도 특별한 섭리가 있잖은가. 죽을 때가 지금이면 아니 올 것이고, 아니 올 것이면 지금일 것이지. 지금이 아니라도 오기는 할 것이고, 마음의 준비가 최고야. 누구도 자기가 무엇을 남기고 떠나는지 모르는데, 일찍 떠나는 게 어떻단 말인가? 순리에 따라야지.

 

'있음이냐, 없음이냐(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문제로 다시 되돌아보자면, 누구든 태어나면 죽는 것은 당연한 섭리이고 순리이며, 그때가 언제인지 또한 알 수 없으며 알지 못하며-순리를 따르지 않는 자살은 그래서 비난을 받았던 것으로 보임-태어날 때와 같이 떠날 때에도 가진 것 하나 없이 맨 떠나기 마련인 것이 삶이고 인생입니다. 그러하건대, 클로디어스와 같은 권력자들은 왕좌를 탐하여 형제간의 천륜을 저버리고, 그 형수를 탐하여 아내로 맞이하여 그의 형으로 하여금 유령으로라도 나타나 그의 죄를 벌하라고, 그의 탐욕에 철퇴를 가하라고 명합니다. 유령의 모습을 빌렸지만, 이는 섭리를 거스른 것에 대해서는 끝끝내 하늘이 그 죄에 벌을 가할 것임을 보여줍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 들리지 않는 곳에도 눈이 있고 귀가 있으며, 어떤 이의 입을 통해서라도 잘못은 드러나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진실을 향한 발걸음 앞에 수많은 고비와 난관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며, 모함과 계락으로 먼 곳으로 돌아가야 할 수도 있겠지만, 끝내 살아남아 모사꾼의 목표에 대해 진실을 전달하는 호레이쇼의 입을 통해 대대손손 전해지는 것과 같이.

 

무덤 속 관에 들어가는 시체는 -살아 있을 적에 고관대작이었건, 지주의 땅을 빌어 농사를 지은 농노건, 권력자건 그의 하수인이건, 물질적으로 풍요로웠던 자이건, 마음이 풍요로웠던 자이건-살은 썩고 흙이 되고 뼈만 남아, 그 흙과 뼈는 눈으로는 분간하는 것이 곤란할 지경에 이르는 것은 매 한 가지가 됩니다. 그리고 그 시체가 묻힐 땅의 크기와 모양과 그 처우에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겠으나, 죽은 후에는 그것을 가늠한 것 자체가 무의미합니다. 단 몇 제곱미터의 땅 혹은 관 혹은 단지 안에 놓일 언젠가 시체가 될 살아있는 자들에게 경종을 울리기에 비극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소재입니다. 무엇을 위하여 탐하고, 가지려 하는지! 그렇게 해서 누린 부귀영화가 과연 진실한 행복인지! 햄릿이 쓰인 시대적 배경과 상황이 현재의 그것들과 맞지 않아 꺼려지는 대사가 있을지언정, 이 희곡이 말하고자 하는 본질은 영원히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기에 영원히 읽힐 것입니다. 

 

다만, 오필리아와의 서사가 좀 빈약하다는 개인적인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고, 따라서 사랑과 여인에 대해서 햄릿이 보이는 예민한 반응- 사랑이 가득했다고 믿었던 어머니가 아버지 사망 후 한 달 만에 남편의 동생과 결혼을 한 것에 대한 충격으로-과 조롱으로 까지 보이는 오필리아에 대한 악담과 자살로 보이는 오필리아의 죽음에 대한 앞뒤 맥락이 과하게 생략되어 감정의 흐름상  조금 거슬렸던 것은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1601년에 제작된 희곡으로 그 당시 사회상이 반영된 것이라 어쩔 수 없는 것임을 어느 정도 감안하여 이해해 보려 노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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