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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정도전, 조선을 설계했으나 조선에서 금기어였던 그의 이름 정도전, 조선을 설계했으나 조선에서 금기어였던 그의 이름 1. 정도전, 공민왕 죽음에 누구보다 슬퍼했던 '신진사대부'였다 1374년 9월 22일 고려말, 모두가 잠든 캄캄한 밤 개경의 궁궐은 쥐 죽은 듯 조용했습니다. 그때 한 남자가 정적을 꺠고 이렇게 외칩니다. '역적이 들어왔다!' 역적이 뛰쳐나온 곳은 바로 왕의 침전이었습니다. 대체 왕의 침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침전 바닥은 새빨간 피로 흥건했고 방 가운데 처참한 모습으로 시신이 널부러져 있었습니다. 이 침전에서 끔찍하게 살해당한 사람은 바로 고려의 제31대왕 '공민왕'(재위 1351~1374년)입니다. https://donbuller.tistory.com/entry/공민왕과노국공주2 고려 공민왕과 원나라 노국공주의 사랑 2(공민왕과 노국.. 더보기
신돈, 공민왕과 함께 고려의 개혁을 꿈꿨지만 권력을 탐하여 처형당하다 신돈, 공민왕과 함께 고려의 개혁을 꿈꿨지만 권력을 탐하여 처형당하다 1. 노비로 살게 된 신돈의 탄생 1300년대 초, 현재 경상남도 창녕인 고려의 계성현 '옥천사'라는 절에서 갓 태어난 아이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이때 옥천사라는 절에서 태어난 아이가 바로 '신돈'이었습니다. 옥천사 노비였던 신돈의 어머니가 불공을 드리러 온 신 씨 성을 가진 한 유지와 사랑에 빠져서 임신하게 된 것입니다. 신돈은 어머니가 절에서 아이를 낳게 된 아이였던 것입니다. 부모 중 한 명의 신분을 계승한다는 당시 신분 계승의 원칙에 따라서 신돈의 삶은 어머니의 신분을 계승하여 노비로 시작합니다. 2. 신돈, 절의 노비에서 승려가 되다 그러던 어느 날 옥천사의 노비였던 신돈은 머리를 깎고 승려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이에.. 더보기
동북면 변방의 무사에서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위화도회군) 동북면 변방의 무사에서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위화도회군) 1. 이성계가 태어난 곳은? 이성계는 고려인이었지만 놀랍게도 고려땅에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이성계는 1335년, 원나라에서 태어났습니다. 이성계의 고향은 왜 원나라였을까요?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당시 고려의 상황과 이성계 가문에 대해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성계가 태어나기 100여 년 전인 1231년, 고려는 칭기즈칸의 몽골 제국과 오랜 전쟁을 치르고 있었습니다. 당시 고려는 몽골에 결사항전했지만 몽골 제국에 차례로 영토를 빼앗기게 됩니다. 붉은색과 초록색이 당시 고려가 몽골 제국에 빼앗긴 땅입니다. 그리고 이성계의 가족이 살 던 곳은 몽골에 빼앗겼던 붉은색 지역 오늘날의 함경남도 영흥인 '동북면'이었던 것이고 이곳은 훗날 이성계의 출생지 이.. 더보기
고려를 세우고 삼국을 통일한 태조 왕건 고려를 세우고 삼국을 통일한 태조 왕건 1. 후고구려 왕 궁예, 왕건에게 나주를 점령하라고 명하다 때는 900년 경으로 한반도는 신라, 후백제, 후고구려로 쪼개진 후삼국 시대였습니다. 당시 세 나라가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이때 왕건은 궁예아래에서 후고구려의 대표장수로 활약하고 있었습니다. 903년, 삼국 간의 견제가 극에 달하던 어느 날 궁예가 부하장수 왕건을 급하게 불러들여 말합니다. '나주로 가라' 고려(후고구려)를 건국한 궁예(2) 왕권 강화책부터 폭군이 되어 가는 과정과 죽음까지 (tistory.com) 고려(후고구려)를 건국한 궁예(2) 왕권 강화책부터 폭군이 되어 가는 과정과 죽음까지 고려(후고구려)를 건국한 궁예(2) 왕권 강화책부터 폭군이 되어 가는 과정과 죽음까지 8. 궁예의.. 더보기
고려(후고구려)를 건국한 궁예(1) 출생부터 고려를 건국하기까지 고려(후고구려)를 건국한 궁예(1) 출생부터 고려를 건국하기까지 1. 한쪽 눈을 잃은 궁예 출생의 비밀 우리가 알고 있는 궁예의 외모 중 단연 눈에 띄는 것이 한쪽 눈을 가리는 안대를 쓴 모습일 것입니다. 궁예가 안대를 쓰게 된대에는 출생의 비밀과 관련이 깊습니다. 궁예는 태어나자마자 한 남자에게 쫓기는 신세였습니다. 남자는 포대기에 싸인 갓난아이 궁예를 데리고 지붕 위로 올라가서 아래로 던져버립니다. 지붕아래에 있던 궁예의 유모가 받아내서 목숨은 건지지만 받는 과정에서 유모의 손가락에 눈을 찔려 한쪽 눈을 잃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궁예는 왜 남자에게 쫓기고 있었던 것일까요? 궁예는 신라의 왕자였습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궁예의 아버지가 47대 헌안왕 혹은 48대 경문왕이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후궁의.. 더보기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2) 후삼국시대 도래와 고려의 건국 후 공산전투 승리, 고창전투 패배까지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2) 후삼국시대 도래와 고려의 건국 후 공산전투 승리, 고창전투 패배까지 1. 궁예의 후고구려의 등장으로 후삼국시대 도래 1901년 (후) 백제와 신라 두 나라로 쪼개진 한반도가 다시 세 나라로 쪼개지는 일이 발생합니다. 궁예가 고구려 부흥을 내세워 후고구려를 건국합니다. 225년 만에 다시 한번 한반도에 새로운 삼국시대가 도래하게 됩니다. 이를 후삼국 시대라고 일컫습니다. 2. 금성(나주)이 후고구려에 투항한 사실에 분개하는 견훤 삼국이 서로를 경계하면서 나라의 명맥을 이어가던 910년에 견훤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하게 됩니다. 당시 후고구려의 수군이 후백제의 땅에 쳐들어 온 것입니다. 이때 쳐들어온 후고구려의 장군이 그 유명한 '왕건'입니다. 왕건(877년~943년)은 당시 후..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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