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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 초엘리트> 책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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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 초엘리트> 책 리뷰

사이먼 쿠퍼
사이먼 쿠퍼

'사이먼 쿠퍼'라는 칼럼니스트가 지은 <옥스퍼드 초엘리트>라는 책을 발표했는데, 사이먼 쿠퍼 또한 옥스퍼드 출신으로 영국 유수의 일간지인 '파이낸셜 타임스'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영국 최고의 엘리트 대학인 옥스퍼드 대학을 다닌 정치인들과 유명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면서 이들과 옥스퍼드 대학이 '영국 사회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나'라는 것을 다룬 책입니다.

이 책은 2016년 브렉시트 이야기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으며 옥스퍼드 출신 정치인과 옥스퍼드 대학에 대해서 비판적인 태도로 다루고 있습니다.

1. 옥스퍼드 대학(University of Oxford)의 설립년도는?

옥스퍼드 대학이 언제 설립되었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록은 없습니다.

그런데 1096년쯤에 옥스퍼드에서 수업이 있었고, 어떤 가르침이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있어 아마도 그즈음에 설립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볼로냐 대학
볼로냐 대학

대부분 당시에 세워진 유럽 대학들이 신학과 종교를 공부하는 곳이었고, 사실 종교와 연결이 돼서 옥스퍼드도 생겨났으며 이곳에서 신학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2. 옥스퍼드 대학의 급성장 계기 Paris Ban

이렇듯 변방에서 소규모로 시작했던 옥스퍼드 대학교가 급성장하는 계기가 있었습니다.

1167년 파리 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던 영국 유학생들을 전부 다 영국으로 다시 불러들인 'Paris Ban'이라는 조치 때문입니다.

헨리 2세, 토머스 베켓
헨리 2세, 토머스 베켓

1164년, 잉글랜드의 왕 헨리 2세는 성직자의 권한을 제한하고 세속법정에서 재판할 수 있게 하는 '클래런던 조례'로 캔터베리 대주교인 토마스 베켓이 이를 거부하다 프랑스로 망명을 떠나게 됩니다.

하지만 정적인 베켓이 프랑스 왕실의 비호를 받고 있으니 화가 난 헨리 2세는 토머스 베켓과의 논쟁 이후 당시 파리에서 유학하고 있던 잉글랜드 학생들을  전부 다 영국으로 불러들인 것입니다.

당시 파리대학교는 정식 신학부를 독점 개설하고 있는 권위 있는 대학이었고 그곳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영국 유학생들도 아주 뛰어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일종의 왕권과 교권의 갈등이라고 볼 수 있으며  파리 유학 중인 영국유학생을 대거 불러들이고 이 파리 대학에 입학하는 것을 금지하였고 이로 인해 옥스퍼드 대학의 학생 수가 급격히 증가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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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옥스퍼드 대학의 라이벌 대학, 케임브리지 대학(University of Cambridge) 

케임브리지 대학이 생기게 된 데는 'Town & Gown'이라고 부르는 일련의 사건이 있습니다.

13세기가 들어서면서 옥스퍼드에는 주민보다 학생 혹은 학교와 관련된 사람들이 더 많아지게 됩니다.

그러면서 시와 학교 그리고 주민과 학생들 간에도 갈등과 다툼이 생겼고, 심지어 나중에 1355년 2월 10일에는 '성 스콜라스티커 기념일 폭동'이 일어나기까지 합니다.

옥스퍼드에서 두 대학생이 선술집 주인에게 와인의 품질을 불평하며 시작된 논쟁이 번져 3일간 지속된 폭동으로 마을 사람과 대학 구성원 약 93명이 사망한 사건입니다.

어쨌든 13세기 초에  'Town & Gown'이라는 주민과 학생들 간의 갈등이 심해지는 일련의 사건이 겪으면서 생긴 아주 중요한 결과물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는 기숙사입니다.

주민들과의 갈등 때문에 학생들의 안전이 위험하다고 여기면서 학교가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기숙사를 세운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가 바로 '케임브리지 대학'입니다.

당시 이런 갈등을 보면서 옥스퍼드 지역도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비판했었던 학자들이 옥스퍼드를 떠나서 케임브리지로 와서 대학을 세우고 거기서 공부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케임브리지 대학이 1209년에 설립되었고, 이렇게 두 대학을 '옥스브리지'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 두 대학이 라이벌 관계가 되면서 서로 간에 지칭하는 장난스러운 말이 있다고 하는데, 서로를 'The Other Place(다른 곳)'이라고 합니다.

4. 옥스퍼드의 커리큘럼

옥스퍼드의 커리큘럼은 전통적으로 조금은 협소하고 굉장히 고전적이고 전통적입니다.

의사, 법률가,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은 각각 의학, 법학, 경영학 내지는 경제학을 배워야 되는데, 이런 실용적인 학문은 잘 가르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연스럽게 과학, 기술 등의 분야는 떨어지게 되고 나중에 시간이 가고 19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야 실용적인 학문에 대한 커리큘럼을 갖춰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옥스퍼드 대학은 인문학, 정치학, 고전에 강점을 가지고 있는 대학이며 토론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얼마나 유려하고 또 설득력 있게 발표할 수 있는가에 대한 훈련을 많이 시키는 대학입니다.

'옥스퍼드 유니온'은 1823년에 설립된 영국 옥스퍼드의 토론 협회(클럽)로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인물들을 초청하며, 학생들에게 활발한 커뮤니티를 제공하는 독립적인 학생 협회입니다.

19세기 초반부터 정말 유명한 토론 클럽이었던 옥스퍼드 유니온은 옥스퍼드 대학 출신의 영국의 웬만한 정치인들이라면 옥스퍼드 유니온 회원이 아닌 사람이 거의 없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로입니다.

유명한 정치인들도 이곳에 방문해서 학생들과 토론을 하거나 강연을 경우도 있으며 이런 과정들을 통해서 옥스퍼드 학생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좋은 교육을 받고 있고 또 특권을 가지고 있는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

서브퍼스크
서브퍼스크

옥스퍼드가 케임브리지보다 조금 더 보수적이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이때 재밌게 등장하는 것이 '서브퍼스크(SUBFUSC)'라는 예복입니다.

옥스퍼드 유니온에 참석을 해서 토론을 할 때는 서브퍼스크를 입어야 되고 심지어 시험을 볼 때에도 입어야 합니다.

시험 준비로 정신없고 번거로울 텐데 꼭 서브퍼스크를 입어야 하나? 하고 생각하겠지만 학생들 또한 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서브퍼스크 복장 규정 유지 찬반투표 결과(2015년 기준)
서브퍼스크 복장 규정 유지 찬반투표 결과(2015년 기준)

심지어 2015년에는 시험을 볼 때 서브퍼스크를 입는 것을 '선택'하게끔 하는 것이 어떤지에 대해 학생들을 대상으로 투표했더니 3/4의 학생들이 의무화를 유지해야 한다고 찬성표를 던졌다고 합니다.

5. 영국을 이끄는 옥스퍼드 대학의 초엘리트에 대한 비판

<옥스퍼드 초엘리트>의 저자 사이먼 쿠퍼는 책에서 자신은 대단히 일반적인 가정에서 자라서 옥스퍼드 대학에 들어간 조금은 특별한 케이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옥스퍼드 대학에 다니는 많은 학생들이 이미 사립학교를 졸업한 그야말로 최고의 교육을 받은 귀족이라든지 정치인 집안이라든지 아니면 부유한 집안 출신입니다.

사실 영국의 지배 계급을 만들어내는 곳이고 입학하는 학생들 역시 자신들이 지배 계급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윈스턴 처칠
윈스턴 처칠
고든 브라운
고든 브라운
제임스 캘러헌, 존 메이저
제임스 캘러헌, 존 메이저

2차 세계 대전 이후에 영국의 총리가 총 17명이었는데 이중 윈스턴 처칠은 영국 왕립 군사 학교를 나왔고, 고든 브라운 총리는 에든버러 대학교를 나왔으며 제임스 캘러헌과 존 메이저는  대학을 나오지 않아 이 4명을 빼고 13명의 총리가 모두 옥스퍼드 대학을 나왔습니다.

키어 스타머
키어 스타머

24년 7월 4일에 영국은 총선을 앞두고 있으며 지금 노동당의 대표인 키어 스타머 대표 같은 경우는 리즈대학을 나왔기 때문에 만약 노동당이 이번 총선에서 승리를 거두고 총리가 된다면 그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다섯 번째로 옥스퍼드 대학을 나오지 않은 총리가 되는 것입니다.

이 책은 옥스퍼드 대학 출신의 특권 의식을 가진 정치인들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보리스 존슨
보리스 존슨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비판을 받는다고 보이는 사람은 '보리스 존슨'총리입니다.

그를 생각하면 생각나는 것이 부스스한 헤어 스타일과 조금은 괴팍하고 악동과 같은 모습이며 재임 기간 중 스캔들도 많았습니다.

예를 들면 코로나 기간에 격리해야 되는데 코로나 기간 중 방역 지침을 어기고 생일 파티를 한다던가 하는  좌충우돌하는 모습들을 보입니다.

저자는 이런 모습들이  옥스퍼드 대학의 전형적인 특권 의식을 가진 '철부지 정치인'의 모습이라고 비판하면서,  '규범'이라는 것은 나에게 적용되지 않는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이런 행동을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보리스 존슨은 사립학교 출신으로 라틴어, 그리스어에 유창하고 유명한 문구들을 가지고 연설이나 토론은 유려하게 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내용이나 콘텐츠에 대해서는 깊은 공부를 하지 않은 정치인의 전형이라는 것입니다.

세계는 급속도로 변해가고 있고 이것이 국가 안보와도 직결되고 있는 시대에 고전 문학의 몇 구절을 외워서 평생 동안 우려먹는 사람이 어떻게 영국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겠느냐고 비판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지배 계층이 되고 정치적 리더가 되기 때문에 '브렉시트'와 같은 판단착오를 하게 되며, 영국의 미래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없이 말만 번지르르하는 옥스퍼드 대학 출신의 초엘리트 정치인들이 낳은 폐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에게 진실성을 가르쳤을까? 아니다.
우리가 그에게 지혜를 가르쳤을까? 아니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가르친 걸까?
재치 있고 기발한 연설을 하는 방법뿐이었을까?

또 하나의 문제점은 이들이 변화하는 시대 그리고 그 시대 안에서 그들은 여전히 세계의 중심은 영국이라고 생각하 영국의 위상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보리슨 존슨 총리 같은 옥스퍼드 출신 초엘리트들은 자신들의 아버지나 할아버지는 전 세계를 다스리고 지배를 했었는데 왜 자신들의 시대에 와서 유럽 연합의 회원국 중 하나의 국가가 되어 독일과 프랑스가 이래라저래라 하는 그 말을 듣고 있어야 되느냐고 분노하며 브렉시트를 밀어붙인 이유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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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세계 대전을 겪은 옥스퍼드 출신 엘리트들과의 차이점 

여기서 주목해 볼 만한 대목은 같은 옥스퍼드 대학 출신의 초엘리트였던 이들의 선배들은 조금은 달랐다는 점입니다.

더군다나 그들은 대영 제국의 영광을 훨씬 더 가깝게 느꼈을 사람들인데 훨씬 더 진지하고 영국과 유럽의 평화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고 고민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전쟁'이었습니다.

영국은 지금까지도 굉장히 뿌리 깊은 계급 사회입니다.

이런 계급 사회일수록 전쟁이 일어나게 되면 상류 계층들이 먼저 뛰어나갑니다.

우리는 이것을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 부릅니다.

제1차 세계 대전과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면서 많은 영국 귀족의 자제들이 전장으로 향합니다.

당시 영국 젊은이들이 죽어나갔는데 옥스퍼드 대학 출신들도 굉장히 큰 희생을 겪습니다.

옥스퍼드 대학교의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에 가면 'Wall Memorial'
옥스퍼드  대학교의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에 가면 'Wall Memorial'

옥스퍼드 대학교의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에 가면 'Wall Memorial'이 있는데 전쟁 당시에 전사한 옥스퍼드 학생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특히 1차 세계 대전 당시에 옥스포드 대학교의 학생 수가 3,000명이 조금 안 됐는데 이 중 약 2,700명이 전사하며 아주 큰 희생을 치르게 되며 큰 트라우마를 겪게 됩니다.

세계 대전 당시의 영국은 계급 사이의 어떤 분리가 보다 심했던 때였기 때문에 자신들이 단 한 번도 같이 지내볼 수 없는 노동 계급의 병사들과 함께 전장에서 적과 싸워야만 했고, 이 과정에서 그들과 함께 생활하며 사회에서 얼마나 불공평한 대우를 받고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 이야기를 듣고 같이 공감할 수 있습니다.

또한 병사들의 목숨을 책임져야 하는 장교의 역할을 해내면서 자신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며 또 지도자로서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하는지 많이 절감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아이러니하게도 이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은 영국이라는 계급 사회를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했고, 참전했었던 정치인들은 비록 자신들이 바라보는 정책이나 방향은 다를지 언정 전쟁을 같이 겪었다는 공감대가 있는 끈끈한 동료였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무엇보다도 이 전쟁의 경험은 이들을 진지한 정치인으로 만듭니다.

정부의 정책이 얼마나 막중한 책임을 가져야 하는지, 자신들의 위치가 세계의 정세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영국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굉장히 심각하고 진지한 고민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진지한 정치인들이 나이를 먹고 정계를 떠나면서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영국에는 전후에 태어난 철부지 문제아 정치인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이들이 영국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브렉시트는 매우 흥미로운 사건입니다.

얼핏 보면 엘리트주의에 반발해서 나타난 운동 같기는 한데, 사실은 '엘리트들에 의한 반엘리트주의 운동이었다'라는 것입니다.

브렉시트는 웨스트민스터라는 그들의 사유지에서 자신들의 권력을 보존하기 위해 고안된, 현세대 전체를 아우르는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영국이라는 국가의 주권을 회복하겠다는 명분 하에 유럽 연합의 통제에서 벗어나서 웨스터민스터의 권력을 다시 한번 자신들의 손에 쥐게 되는 것으로, 어떻게 보면 브렉시트는 옥스퍼드 초엘리트들의 프로젝트였다고까지 이야기되는 이유입니다.

7. 정리

<옥스퍼드 초엘리트>는 이와 같이 옥스퍼드라는 영국 최고의 대학 그리고 이곳을 졸업한 초엘리트 정치인들을 통해서 영국사회의 문제점을 짚어낸 책입니다.

이제 곧 영국 총선이 있는데 현재 집권중인 보수당 정부가 물러나고 새로운 노동당 정부가 출범하게 될 것인가에 대해 초미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노동당 대표인 키어 스타머가 이끄는 영국은 어느 방향으로 갈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키어 스타머 대표는 유럽 연합과의 긴밀한 관계를 다시 회복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인물로, 노동당이 집권하게 된다면 유럽 대륙에 대해서는 어떤 태도를 가지게 될지 영국의 위상이나 세계정세에 대해서는 어떤 태도를 취하게 될지 이런 상황 속에서 과연 옥스퍼드 출신 철부지 초엘리트들은 자신들을 어떻게 절체를 할지 지켜보아야겠습니다.

 

<출처: 김지윤의 지식Pl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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