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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터디 위드 돈벌러

조선 왕조 최악의 폭군, 패륜의 대명사 연산군 그리고 장녹수 2(갑자사화부터 죽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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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조 최악의 폭군, 패륜의 대명사 연산군 그리고 장녹수 2(갑자사화부터 이병정 사건까지)

5. 갑자사화의 계기, 연산군 어머니 폐비 윤 씨의 죽음

장녹수가 입궁한 지 3년째 되던 해인 1504년 3월 20일, 장녹수조차 예상하지 못한 피바람이 궁궐에 몰아닥치게 됩니다.

갑자사화는  '무오사화' 6년 후에 벌어진 두 번째 사화입니다. 

무오사화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하게 많은 피가 궁궐을 적시게 됩니다.

갑자사화는 조선시대 희대의 간신인 '임사홍과 임숭재' 부자가 주도하여 시작됩니다. 

연산군은 평소와 같이 임숭재의 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때 임사홍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지기 시작합니다.

연산군이 왜 그러는지 묻자 임사홍은 조심스레 입을 엽니다.

"전하, 폐비한 일이 원통하옵니다."

로 시작하여 연산군의 생모 폐비 윤 씨의 죽음의 전모를 밝히기 시작합니다. 

임사홍이 아뢰길 성종의 후궁 엄 씨와 정 씨가 폐비 윤 씨를 중상모략하여 그 계략으로 폐비윤 씨가 죽임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연산군은 이야기를 듣고는 궁궐로 바로 들어갑니다.

'왕이, 모비 윤 씨가 폐위되고 죽은 것이 엄 씨와 정 씨의 참소 때문이라 하여, 밤에 엄 씨와 정 씨를 대궐 뜰에 결박하여 놓고, 손수 마구 치고 짓밟다가, 항과 봉을 불러 엄 씨와 정 씨를 가리키며 '이 죄인을 치라.' 하니 항은 어두워서 누군지 모르고 치고 봉은 마음속에 어머니임을 알고 차마 장을 대지 못하니, 왕이 불쾌하게 여겨 사람을 시켜 마구 치되 갖은 참혹한 짓을 하여 마침내 죽였다. '

연산군의 잔혹한 복수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연산군은 엄 씨와 정 씨의 아들인 항과 봉을 머리채를 잡고 질질 끌고 나가서 자신의 할머니인 인수대비의 처소로 난입합니다. 

그리고는 연산군은 인수대비를 향해 묻습니다. 

"할머니는 어찌하여 우리 어머니를 죽이셨습니까?"

실록에는 기록이 없지만 야사에는 이 사건으로 '인수대비가 죽었다'라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연산군은 폐비윤 씨를 모함해서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죄를 물어 연산군에게 처형당한 엄 씨와 정 씨의 시체를 지금의 젓갈 형태와는 다르지만 소금에 절여 젓을 담그는 만행까지 서슴지 않고 행합니다.

그것도 모자라 산과 들에 시산을 유기해 버립니다.

6. 연산군은 폐비윤 씨의 죽음을 언제 알았을까요?

연산군이 이런 미치광이의 모습을 보이게 된 계기는 임사홍의 집에서 임숭재와 술을 마시다가 어머니의 죽음을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만 연산군은 이전부터 어머니의 죽음을 알고 있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우리가 드라마에서 보았던 바로는 연산군은 폐비윤 씨의 피 묻은 적삼을 통해서 어머니의 죽음을 안 것으로 묘사가 되고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실록에는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연산군이 임사홍과 술자리에서 피 묻은 적삼을 본 것이 아니라면 연산군은 언제 폐비 윤 씨의 죽음을 알게 되었을까요?

바로 연산군 즉위 1년이었던 스무 살 때였습니다.

연산군은 아버지 성종이 돌아가신 후 성종의 묘지문을 보게 되었습니다.

'왕이 성종의 묘지문을 보고 '윤기견이란 이는 누구냐 이름을 잘못 쓴 것이 아니냐'하며 묻자 '윤기견은 폐비 윤 씨의 아버지인데 윤 씨가 왕비로 책봉되기 전에 죽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연산군일기>

연산군이 신하에게 처음 본 이름인  '윤기견'이라는 이 자는 누구인지 묻습니다.

연산군은 이때 뜻밖의 대답을 듣게 됩니다.

생전 처음 본 외할아버지의 이름이었던 것입니다.

그제야 연산군은 생모 윤 씨가 죄를 받아 죽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왕이 비로소 윤 씨가 죄로 폐위되어 죽은 것을 알고 수라를 들지 않았다'

<연산군일기>

연산군은 즉위 1년에 어머니 죽음의 진실을 알고 식사까지 거부했던 것입니다.

연산군은 갑자사화 당시 임사홍에게 듣고 알게 된 것이 아니라 훨씬 전부터 어머니의 죽음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연산군은 그때부터 이미 엄청난 충격과 슬픔에 사로 잡혀 있었습니다.

7. 연산군의 공포정치

연산군 폭정의 절정에 이른 것이 바로 '갑자사화'입니다.

약 7개월에 이르는 기간 동안 폐비윤 씨의 죽음에 찬성했거나 동조했던 이들은 모두 끌려 나와 그 죗값을 치르게 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재산을 빼앗기고 유배를 갔고 사형을 당하게 됩니다.

그 피해자만 무려 200여 명에 달합니다.

궁궐에 있던 수많은 신하가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연산군은 점점 제어할 수 없는 미치광이가 되어 갑니다.

연산군은 이때 신하들에게 무시무시한 선전포고를 하게 됩니다.

'위를 능멸하는 풍속을 이루었으니 고치지 않을 수 없다. 위를 능멸하는 죄를 범하는 일이 있으면 경중을 논할 것 없이 죄주어 경계할 줄을 알게 해야겠다'

<연산군일기>

이는 왕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는 어떤 일이라도 누구든 처벌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최악의 공포정치의 서막이 열린 것입니다. 

연산군은 조선 역사상 유례없는 잔악한 형벌을 가합니다.

부관참시(剖棺斬屍, 죽은 뒤 큰 죄가 드러난 사람에게 극형을 추시 하던 일로 무덤을 파고 관을 꺼내어 시체를 베거나 목을 잘라 거리에 내걸었다)뿐 아니라 죽은 자를 또 죽이는 형벌까지 만듭니다.

이를 '쇄골표풍(碎骨飄風)'이라고 합니다.

'죽은 자의 묘비를 부수고 시신을 관에서 꺼내서 해골을 부수어 가루로 만든 다음 해골 가루를 바람에 날려 보낸다'는 뜻입니다. 

조선은 조상을 잘 섬기는 것을 도덕과 인륜, 핵심 가치로 여겼던 나라였습니다.

이 형벌은 조선의 당시 가치관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형벌이었던 것입니다.

군주로서의 권위를 드러내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은 엄격하고 무서운 형벌을 내리는 것입니다.

연산군은 이때 공포정치의 효율성을 맛보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갑자사화 이후 연산군은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처럼 폭주를 거듭합니다.

연산군은 주변 신하들의 입은 틀어막고 국정은 내팽개쳐두고 술과 여자에 빠지게 됩니다.

왕의 권위를 중요하게 생각한 연산군 스스로 왕실의 권위를 바닥으로 떨어뜨린 것입니다.

8. 장녹수의 사가에 연산군을 비방하는 벽사가 걸리다

갑자사화 3개월 후 한양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사건이 벌어집니다.

사건은 한 장의 종이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한양의 으리으리한 부잣집 대문 앞에 글귀가 적힌 백서 한 장이 적혀있습니다.

벽서에 정확히 어떤 내용이 쓰여 있었는지는 전해지지 않습니다.

당시 벽서에 쓰여 있는 내용을 추정해 보자면 연산군의 정치가 문란하다는 비판의 내용과 또 하나는 왕실의 은밀한 이야기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왕조국가인 조선에서 왕을 비판하고 궁궐의 은밀한 이야기를 폭로했다는 것만으로도 대역죄에 걸리는 것이었습니다.

갑자사화로 피바람이 몰아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연산군과 왕실을 험담하는 벽서가 걸린 것이고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그 벽서가 붙어 있었던 그 집의 정체가 바로 궁 밖의 장녹수의 사가였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장녹수이지만 자신의 집 앞에 왕실을 비방하는 벽서가 붙어 있다는 것은 장녹수 또한 벽서 사건에 연루되어 자칫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얼마 후 그 벽서 사건의 범인이 밝혀집니다.

벽서 사건을 일으킨 간 큰 범인은 바로 연산군을 모시던  '수근비'와 '전향'이라는 궁녀라는 것입니다.

두 궁녀들이 질투심 때문에 장녹수를 해치려고 장녹수의 집 앞에 벽서를 붙였다는 것입니다.

1504년 6월 9일, 연산군은 두 궁녀를 능지 하라는 명을 내립니다.

즉 두 궁녀의 사지를 찢어서 죽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궁녀의 부모와 형제들의 목숨까지 빼앗아갑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이 두 궁녀는 벽서 사건이 일어나기 두 달 전에 이미 유배를 갔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연산군은 장녹수를 음해할 수 없었던 두 궁녀를 왜 범인 아라 확신하여 능지까지 했던 것일까요?

'두 사람은 모습이 고와서 녹수가 마음으로 시기하여 밤낮으로 왕에게 참소하였다'

<연산군일기>

장녹수가 미모가 고운 두 궁녀를 질투해서 연산군 앞에서 두 궁녀를 밤낮으로 헐뜯었다는 내용입니다.

"수근비와 전향이 저를 시기해 벽서를 붙인 것이 분명하옵니다!"

그리고  장녹수는 두 궁녀를 범인으로 지목하여 죽게 한 것입니다.

장녹수는 혹시라도 두 궁녀에게 연산군이 마음을 빼앗겨 연산군의 본인에 대한 총애가 식어 자신이 쌓아온 권력을 잃게 되는 상황이 될까 염려되어 이를 사전 차단해 버린 것입니다.

두 궁녀를 제거하기 위해서 이 벽서 사건을 이용한 것입니다.

심지어 이 벽서사건을 장녹수가 꾸몄을 가능성도 매우 높아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연산군은 장녹수의 말만 듣고 범인을 두 궁녀라고 확신합니다.

이런 정황을 보면 처음부터 장녹수가 일을 꾸민 것으로 의심해 볼 수 있습니다.

즉 장녹수는 연산군을  본인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고 과감하게 벽서를 붙였을 가능성 또한 높은 것입니다.

연산군은 후궁들에게 모함당한 어머니 폐비윤 씨와 장녹수의 모습이 겹쳐 보였을 것입니다.

때문에 연산군은 장녹수의 편에 서서 두 궁녀와 그 가족들을 잡아들여 고문하고 처형해 버렸던 것입니다.

조정신료들은 이 일을 계기로 연산군뿐 아니라 장녹수의 눈치까지 보게 되는 지경에 처하게 됩니다.

9. '이병정 사건'으로 본 연산군의 장녹수에 대한 무한지지

1504년 7월, 조선의 양반들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은 대사건이 일어납니다.

사건의 중심이 된 인물은 종 2품 고위 관료였던 이병정입니다.

이병정이 하인들을 거느리고 지금의 종로 일대를 지나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때 길 한복판에서 남녀 노비가 소란스럽게 싸우고 있었습니다.

고위 관료인 이병정은 말합니다.

"조정의 재상인 내 앞에서 어찌 이리 다투느냐"

이병정은 노비들을 타일러서 집으로 돌려보내려고 합니다.

갑자기 정승나리가 싸움에 끼여 들어 혼나게 된 상황에서 보통의 노비들은 일이 더 커지기 전에 부리나케 도망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싸움 중이던 여자노비하나가 고개를 숙이기는커녕 돌연 이병정에게 무슨 상관이냐며 대드는 것입니다.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에서 고관대작인 관료에게 대드는 노비의 모습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병정은 수치심에 

" 귀하고 천함에 차이가 있거늘 내 너를 관아에 신고해 엄히 다스리겠다!"

며 오만방자한 노비를 관아에 신고해 혼쭐을 내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관아에 신고한 이병정이 오히려 병사들에게 체포돼서 의금부로 끌려갑니다.

이병정이 혼냈던 여자노비가 바로 장녹수의 노비 '강아지' 였던 것입니다.

강아지는 이병정과 있었던 일을 장녹수에게 모두 일러바칩니다.

장녹수는 이에 부들부들 떨며 분노합니다.

자신을 부리는 사람을 모욕하는 건 장녹수 본인을 모욕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장녹수는 연산군의 힘을 빌려 이병정을 혼쭐 내주기로 생각합니다.

이번에도 연산군은 장녹수의 말만 듣고 죄 없는 이병정을 체포합니다.

그렇다면 이병정이 의금부로 끌려간 죄목을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윗사람을 능멸했다는 죄'였습니다.

연산군이 장녹수의 노비가 저지른 하극상은 눈감아주고 무조건 장녹수의 편을 들어준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종 2품의 고관대작인 이병정이 일개 노비 때문에 감옥에 갇히는 황당한 상황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이에 조정신료들은 연산군을 말리기는커녕 오히려 이렇게 말합니다.

"이병정에게 곤장 100대를 치고 3년의 유배형을 내리십시오"

신료들은 노비들의 싸움을 말리던 양반이 벌을 받는 상황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겠지만 연산군과 장녹수의 심기를 건드려서 화를 입지 않으려고 눈감아 버린 것입니다.

행여 연산군에게 바른 소리를 하면 능상죄로 처벌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료들의 제안을 들은 연산군은 이에 더해 이렇게 말합니다.

"이병정의 죄가 중한데 형벌이 너무 가볍지 않은가? 나는 교형에 처하고 싶은데 어떠한가?"

과연 이병정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병정이 가산을 다하여 숙용에게 뇌물 바치고 죽음을 면한 뒤에 석방되어 돌아갔다'

<연산군일기>

연산군이 날뛰며 자신을 죽이려 하니 이병정은 온 집안의 재산을 끌어모아 장녹수에게 뇌물을 바치고 나서야 목숨을 건지고 석방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가까스로 풀려난 이병정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간 이병정에게 장녹수가 사람을 보내어 말을 전합니다.

"네가 지금은 비록 방면되었지만 내가 다시 한마디만 하면 죽게 하기가 어찌 어렵겠는가?"

장녹수는 이병정을 풀어주고 나서도 경고를 보낸 것입니다.

따라서 이후에도 이병정은 장녹수에게 여러 번 뇌물을 바쳤다고 합니다.

장녹수는 이번 사건을 통해서 자신의 위세를 제대로 과시한 것은 물론이고 큰 재물까지 한몫 단단히 챙기게 된 것입니다. 

과거에는 노비에 불과했던 장녹수가 이제는 조선 양반 전체를 위협하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여러 사건에서 드러난 것처럼 연산군은 장녹수를 사사건건 감싸고돕니다.

조선에는 날마다 새로운 흥청들이 들어왔지만 장녹수가 받는 연산군의 총애는 누구와도 견줄 수가 없었습니다.

연산군은 장녹수만이 자신의 마음을 알아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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