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을 읽고(책리뷰/독후감)/목수정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의 부제는 '프랑스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기'입니다. 목수정은 결혼하지 않고 프랑스인 희완 트호뫼흐와 결혼하여 슬하에 딸 칼리를 두고 있습니다. 책 중간에 남자친구 희완과 지신이 찍은 사진이 배치되어 눈을 즐겁게 합니다. 이 사진 속 배경은 대부분 사람이거나 혹은 자연, 이들을 표현한 예술작품들입니다.
이른바 '비혼주의자'인 목수정은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 혐오에 가까운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남자친구인 희완과의 사이에 딸까지 두고 있지만 결혼하지 않고 '동거인'으로 '계약'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같은 뜻을 가진 친구'인 동지입니다. 사회 구성원들이 아무 생각 없이 따르는 형식, 제도, 규칙에 대해서조차 폭력적이라는 단어까지 서슴없이 사용하는 그녀의 도발적인 '삐딱선'은 간혹 당혹스럽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때론 이 도발의 강도가 차고 넘치기까지 해 거부감을 일으키는 내용도 없지 않아 쉽사리 책장을 길 수 없는 지점도 있었음을 밝힙니다. 나름 진보적 사고관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나조차 '이건 좀 심한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퍼뜩 들게 할 만큼 목수정의 자유에 대한 지독한 탐닉과 갈망, 도전은 저돌적이고 때론 공격적입니다. 이 책이 15년여 전에 집필되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녀의 도발은 사뭇 발칙하기까지 합니다. 여전히 틀을 깨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만연한 한국사회에서 모난 돌 취급을 받으며 얼마나 '정'으로 두들겨 맞았을지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습니다. 하지만 목수정은 내면의 가치, 생각, 이념이 확고하고 남의 시선과 말 따위에 휘둘리거나 상처받는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녀가 지금도 그리한 지 궁금하고, 지금은 어떤 모습인지 기대가 됩니다.
마음이 아픈 사람이었을지언정, 그가 사용한 폭력은 2천 년 넘게 인류가 용인해 왔고, 여전히 창궐하고 있는 가부장제가 그의 손에 들려준 무기라는 사실을.
나의 경험과 심증을 객관화하여 스스로에게 이해시키고 세상과 화해해야 하는 또 하나의 과제가 주어졌다.
그(희완)은 경쟁하는 게 아니라 공존하는 기쁨을 만끽하는 사람이었다. 불필요한 경쟁심리로 에너지 낭비를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은 확실히 삶의 기준을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나 자신의 가치에 두게 만들었다.
지금 누군가 내게 조언을 구한다면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난 경쟁을 딛고 더 높은 곳에 올라서려는 마음을 버리고 스스로에게 긴 소풍을 베푼다는 마음으로, 여정자체를 즐기는 먼 길을 떠나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불만을 터트리고 욕망은 충족시키면서 사는 것이 건강한 삶이다. 그렇게 해서 잠시 다른 질서 속에서 방황하는 것, 자유 속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비로소 내가 원하는 것들을 고르는 경험을 하는 것, 다른 가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가치전복의 신선함을 누려보는 것, 적어도 오늘 한국 사회의 가부장적 요구가 내가 살아내야 하고 견뎌야 할 유일한 조건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것, 살면서 꼭 해보아야 할 경험들이 아닐까.
목수정은 스물아홉 살 생일이 되는 날, 프랑스에 도착합니다. '로맹가리'가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발표했던 '벨빌'이라는 도시에서 첫 프랑스 생활을 시작합니다. 벨빌은 '아름다운 동네'라는 의미와는 달리 험악한 동네로 자자한 곳이었는데, 그 이유는 유태인, 아랍인, 아프리카인 등 소설 '자기 앞의 생'에서 표현했듯 다양한 인종들이 총집합해 있었기 때문에 그리 평가되었다고 합니다. 자유의 상징인 프랑스의 도시도 다양성이라는 것은 혼란, 혼동, 폭력, 아수라장을 뜻하는 것이었던 겁니다. 당시로서는 적지 않은 나이의 여성이 혼자 프랑스로 정해진 목표나 직업이 없이 떠난다는 것은 그야말로 인생을 건 승부일 수밖에 없을 텐데 그녀는 누구보다 당당하고 생기 넘칩니다. 프랑스를 떠나기 전 마지막 연애가 처절한 결말을 맞이하였고, 문화에 대한 인식이 터부시되던 때에 하던 일에서도 장벽에 부딪쳐 그녀는 무엇인가 삶의 방향을 바꿀 전환점, 반환점, 돌파구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무작정 파리행 비행기에 올라 선 그녀는 걱정과 불안보다는 자유로움을 느꼈다고 말합니다. 같은 상황에 놓여 앞날에 대한 불안과 걱정으로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때에 그동안 몇 푼 모아놓은 돈을 털어가면서 파리 8 대학에 들어가 다시금 공부를 시작하는 그녀의 용기는 박수받을 만합니다. 나라면?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으니 말입니다. 기본적으로 나는 여행을 즐기지 않고 사람에게서 받을 상처에 미리 겁을 먹는 성격이기는 하나,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크게 셈하거나 망설이기보다는 일단은 해보는 성격인지라 그녀의 삶이 반은 이해되고, 또 반은 갸우뚱하곤 했습니다.
모계사회에 대한 갈망, 거꾸로 교육에 대한 실천, 결혼제도 비판 혹은 부정, 진보정당 활동, 문화, 자유, 사랑을 억압하는 제도, 형식에 대한 거부감 등 아나키스트적인 그녀의 사고방식과 태도를 이해하는 데 거리낌 없었다고 말하기 힘들었지만, 그녀가 지향하는 사회가 좀 더 평등하고 살냄새나는 사랑을 하고 억압하고 편을 나누는 제도와 형식을 타파하고 누구나 문화생활과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을 꿈꾸는 것이기에 그 목표점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물론 가는 길, 방법에 대해서는 토론,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말입니다.
20세기의 저주받은 천재 정신분석학자 빌헬름 라이히는 그의 저작 <파시즘의 대중심리>를 통해 '대중들은 어째서 자신에 대한 억압을 욕망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기보다는 손쉽게 믿고 맹목적으로 나아는 대중의 비합리적이고 도착적인 욕망이 파시즘적인 정치지도자를 불러왔다고 빌헬름 라이히는 지적한다. 정신적으로 아픈 민중들이 정신착란적인 지도자를 불러왔다는 논리인데, 이를 해결하기 위한 그의 해답은 아주 단순한다. 즐거움에 근거한 노동을 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삶과 노동의 적대관계를 해소할 수 있으며, 그런 사람들의 노동은 생물학적 호라동욕구를 최대한 발전시켜 자연스럽게 성욕구를 해방시킴으로써 성격구조가 경직되는 것을 막는다고 말한다.
실로 미처 돌아가는 이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세 가지가 바로 사랑과 노동과 지식인 것을!
소름 끼치게도 20세기에 종말을 맞이했다고 안심하고 있었던 파시즘이 스멀스멀 창궐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현실에서 파시즘적인 정치지도자가 왜 탄생하는지에 대한 탐구는 필요불가결합니다. 강력한-대부분 폭압적이고 공격적이며 잔인한- 지도자의 통치아래 문제의 본질에 대한 직시와 탐구, 논쟁, 생각 없이 그들이 내리는 명령과 요구에 따르는 것을 편안해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우리 사회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여전히 '박정희' 군부독재 시절을 그리워하고 찬양하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존재하고 있으니 터부시 할 수만은 없는 것입니다. 도대체 왜?라는 말이 절로 나오지만 말입니다. 파시즘적인 강력한 미치광이에 가까운 지도자의 말에 자동반사적으로 따르게 되는 심리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뭔가 문제가 복잡하고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 여러 가지 변수를 생각해내야만 하고 다른 사람들과 논쟁하고 토론하고 결론을 도출해 나가야 하고 나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의 의견에 대해서도 경청해야만 하는 등 머리 아픈 절차가 뒤따라야 하는 것에 대한 강력한 거부와 부정이 있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 자유는 나라와 사회와 학교와 부모가 하라는 대로 그대로 따라가고, 사회에 기여하는 일을 하며-그것이 자신의 취향과 성향에 맞지 않는다 하더라도- 때로는 국가와 사회를 위해서 목숨을 던질 수 있는-자발적이지 않고 대부분 강요되는, 마음에서 우러남 없는- 하나의 부품이 될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입니다. '사람이 살면서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수는 없다'는 간단한 논리로 사회가 만든 틀에 맞춰 톱니바퀴 마냥 한치의 오류와 틈도 없이 돌아가는 부품이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신적으로 아픈 민중들이 정신착란적인 지도자를 불러왔다는 것인데, 이를 해결하는 해답으로 제시한 것이 바로 사랑, 노동, 지식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가치와 진리를 지향하는 나는 이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크게 동감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스스로 워커홀릭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렇다고 하기 싫고 하지 않아도 되는 일에 매달리지는 않습니다. 나는 '일'을 '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놀고 있어서 즐거운데 하지 않을 이유가 없고 그 일을 하면서 밤을 새운다 한들 자괴감은커녕 희열을 느끼곤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와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 특히 '즐기는 노동'에 환상에 가까운 치유능력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성 간의 사랑뿐 아니라 인류애에 이르기까지 사랑의 치유력은 말로 다 하기 부족할 것이며, 습득하는 것으로서의 지식뿐 아니라 그로 인해 변화, 혁신에의 활용은 보다 더 나은 사회로 진화하고 진보하는 데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집단의 관점에서 보면 사람들이 한 영역씩 맡아서 한 우물을 죽어라 파주는 것이 효율적이다. 그러나 각 개인의 관점에서 보면, 그건 어쩌면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인생일 수도 있다. 난 이 거대한 사회의 나사가 아니다. 나 혼자서도 하나의 거대한 우주를 구성할 수 있다. 여러 우물을 파면서, 세상의 모든 재미를 두루 즐기면서.
학문 특히 사회과학의 가장 큰 미덕은 개인에게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사회적 문제로 수용함으로써 횡적인 시야를 확장하고, 역사적인 통찰을 통해서 또다시 종적인 시야를 넓힘으로써, 개인의 개별적인 사건에 대한 통시적, 사회적 분석을 가능케 하는 데 있다. 그것은 해답자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한 하나의 해답을 제시한다.
한 우물을 파서,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 그리하여 인류의 발전을 도모하는 동시에 밥벌이를 해야 한다는 전인류가 주입시켜 온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살아있는 동안 나의 욕구와 관심은 나와 함께 진화할 것이며, 열심히 그 새로운 호기심과 열정에 화답하며 살고 싶다. 그것이 나의 진실이다. 그래봤자 세기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 내게 주어져있을 뿐이고 나의 관심사는 '문화'라는 거대한 대지 속에서 이리저리 출렁거릴 뿐이다.
저자는 민주노동당에서의 4년 동안의 소외를 밝히고 있습니다. 20대에 한국 문화계에서의 뼈아픈 실패의 경험과 프랑스에서 갈고닦은 문화 정책에 대한 지식을 정당정치를 통해 실제 정치와 인간의 삶에 투영시키고자 고군분투합니다. 절반의 성공 혹은 절반의 실패였던 그녀의 정당인 활동은 나름 혁신적이고 평등을 지향한다는 진보정당 안에서조차 권력과 제도권 안에 들어가면 잠재되어 있다 깨어나는 권력욕에 의해 편 가르기, 편협한 사상에 의한 고집, 다른 목소리에 대한 집요하고 공격적인 거부감이 조직내부를 휘젓고 결국 파멸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다치고 지쳐가는 일련의 현상이 흡사 현실세계의 축소판과 같습니다. 하지만 옳지 않은 것을 보고도, 바꿀 수 있는 것을 보고도, 넘어가야 하는 허들 앞에서 망설이고 머물고만 있다면 세상은 결코 나아지지 않을 것이며, 나를 잃고 하나의 도구가 되어 활용되다 버려질 수밖에 없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걸음은 늘 더디고 힘겹고 지루하고도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나아가야만 길은 만들어지고, 그 길을 걸어야 또 새로운 무언가를 만날 수 있기에 묵묵히 나아가야만 합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세계 속에 문화강국으로 우뚝 서고 있습니다. 우여곡절과 풍파가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사회이기에 그것이 문화적 상상력을 자극하고 깨우치고 나아가는 원동력이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슬픔과 애환을 승화하는 민족답게 고통스러운 현실을 딛고 한 단계 더 진보하는 사회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고통이 클수록 기쁨은 크고, 절망이 깊을수록 환희는 배가 됨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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