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실]을 읽고(독후감, 책 리뷰)/김별아 작가
미실이라는 이름은 [선덕여왕]이라는 드라마 속 악녀로 기억하는 이가 많을 것입니다. 저 또한 그러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고려시대 이전에는 기록과 자료의 한계로 인해 단편적인 역사적 지식밖에는 알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삼국시대 또한 그러합니다. 미실이 살았던 6세기 후반은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국경을 마주하고 끊임없는 전쟁을 치러야 했던 시대입니다. 죽이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시대였음에도 온전히 사랑으로 살리고자 했던 여인이 있었으니 그녀가 바로 '미실'입니다. 그녀는 색공으로 신라 황제를 즐겁게 하고 자식을 잉태하여 왕실의 명백을 잇는 것을 사명으로 하는, '오도, 옥진, 묘도'를 잇는 신라 대원신통의 운명을 이고 지고 태어납니다.
소설은 미실이 탐스러운 앵두를 따는 장면에서 시작해 앵두와 함께 세상에서 사라지는 장면으로 막을 내립니다. 붉게 차오른 탐스런 앵두는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상기시키고 얽기 설기 때를 지어 풍성하게 열리는 열매들은 풍요로움의 결실인 듯 보입니다. 그녀는 세상에 존재를 나타나면서부터 미륵에 귀의하여 육체가 소멸하는 그 순간까지도 색공의 소명과 본분을 잊지 않습니다. 그저 아름답고 고고한 외모만이었다면 그녀가 법흥, 전흥, 진지, 진평에 이르기까지 신라 부흥기의 4명의 왕을 받들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미실은 외적인 아름다움을 넘어선 내면의 강인함과 진취성, 사명감, 온전함, 충만함, 셈하지 않는 무한한 애정과 사랑을 수여자였습니다.
성적으로 자유로워졌다고 고는 하나 금욕을 미덕으로 여기는 유교적 역사관이 뿌리 깊게 드리워진 오늘날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소설의 곳곳에서 적나라하고 집요한 성적묘사와 근친혼과 같은 시대살의 서술이 온전히 감당해 내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이 소설을 심사했던 심사위원 중 소설을 읽는 내내 불편했다고 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와닿았습니다. 사사로울 수 있는 침실을 고스란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때론 식은땀 비슷한 것이 나오며 모골이 송연해 지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남녀의 성적 교합은 자연의 이치이며 섭리임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연인 간의 뜨거운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 잉태되는 아들과 딸들이 그 증거입니다. 동물이건 인간이건 자손을 낳아 번성시켜 혈통을 유지하고 먹고 살아가는 것은 당연한 삶의 일부분입니다. 성적으로 교합하는 이 중 하나라도 사랑하지 않고 온전히 마음을 열지 않는다면 양과 음 모두에게 생채기와 흉터를 남기고 심각하게는 생을 갉아먹습니다. 미실은 죽는 순간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다 낭비하고 탕진하였다고 소회를 전합니다. 미실은 더 주고 더 나눌 수 없을 만큼 온 누리에 사랑을 나누고, 성적 희열을 통한 극락에 대한 경험과 열반, 깨달음, 환희를 느끼게 해 주었으며 그 충만함으로 온전히 비워내 한없이 가벼워지게 하는 어쩌면 석가가 여인의 모습으로 성불케 하는 것만 같습니다.
그리고 그 미실을 사랑한 수많은 남자들이 그녀를 지켜 색공의 본분을 다하도록 돕습니다. 첫사랑 세종에서부터 끝사랑 설원 그리고 절정의 순간 피지 못한 꽃처럼 사무치게 하는 사다함까지. 지독하게 미실을 연모하고 집착하며 갈구하는 한편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흔쾌히 내어줍니다. 바라는 바 없이, 셈 없이. 이것이 곧 사랑의 힘이라 말하며 사랑과 아름다움의 힘은 곧 권력이고 자유라 말합니다.
미실은 색공의 운명으로 가둬져 생을 시작했지만, 궁극에서는 색으로 권력과 힘을 얻어 운명의 궤를 넘어 자유를 얻습니다. 그 자유로 방종하지 않고 다투고 싸우는 이들을 서로 사랑하게 하고 시기 질투하는 이를 보듬으며 날을 세워 살아있는 것을 죽게 하는 이들에게 관용과 베풂의 기쁨을 설파합니다. 이로서 그녀는 경국지색의 미인으로서의 모습이 아닌, 통치가 수레바퀴로 세상을 통일하고자 해던 신라 황제 진흥제가 꿈꾸었던 전륜왕으로서의 소임까지 하며 역사에 이름을 새깁니다.
혹자는 미실을 요부, 악녀라고 할지도 모릅니다. 지금의 도덕적 가치에서는 충분히 그리 보일 소지가 있음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미실은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움을 뽐내 세상을 기쁘게 하고, 서로 한없이 내어주며 보듬고 아껴주는 사랑이 충만한 세상을 만드는 데 색의 무한하고도 때로는 유한한 고결한 힘을 빌린 것일 뿐. 그 색의 힘은 결국 바람이 불면 나뭇가지가 꺾이고 잎이 떨어지는 고 그 잎이 땅에 스미어 거름이 되고 다시 또 나무의 테를 한 겹 늘리는 일과 다르지 않음을.
숨이 턱턱 막히고 끈적이는 여름의 절정이 거짓말처럼 새로운 절기와 함께 소슬 소슬 닭살이 돋게 하는 차가운 바람으로 바뀌는 지금. 미실은 내가 살아 있고 언젠가는 죽고야 마는 존재임을 각성시키고, 바로 오늘 지금 이 순간 사랑으로 충만하여 나누고 전하라 당부하는 것만 같습니다. 지금 사랑하는 이를 더욱 으르러 지게 사랑해야겠습니다. 후회와 회한 따위가 남지 않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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