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켜낸 힘: 망각
여러분은 몇 살 때부터의 기억이 있으신가요? 저는 유치원때 2장면 정도? 초등때도 두어 장면 정도? 중학교때는 10장면 정도? 고등학교때는 20장면 정도? 의 기억밖에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유치원이나 초등학생 정도까지야 먼 기억이라 그렇다 치더라도 중, 고등학교때는 정신적으로도 어느정도 기틀이 잡혀 있던 떄라 꽤 많은 장면이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기억저장소에 저장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이죠. 하지만 저는 어떨때는 이런 것 까지도 기억을 못하나? 치매가 아닌가? 느낄 정도로 많은 부분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마도 어릴때 지우고 싶은 기억들 투성이라 의도적으로 기억을 지우다보니 어느순간부터는 자동으로 좋지 않은 기억들은 지워지는 듯 합니다. 자동화되어 있어서 지워지는 것도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로 말입니다. 그야말로 기억삭제의 자동화가 구현되고 있는 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망각이 나를 지켜낸 힘이라고 단연코 말할 수 있는 것은 불후하고 척박한 가정에서 자라온 제가 누구보다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사람이라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 가능합니다.
선천적인 성격탓도 있겠지만 학습에 의한 후천적인 요인이 더 크다라고 확신합니다.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그렇지 않은 일들은 자동으로 비워내면서 좋은 기억과 추억, 성공이 내 성격과 행동에 8할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선택과 집중이 일상이 되었고,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일은 최대한 대충하면서 에너지를 비축해 하고 싶은 일, 해내야만 하는 일에 에너지를 쏟습니다.
덕분인지 나이에 비해서는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건강하다고 자부합니다.
그리고 글쓰기를 시작한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자동적으로 기억이 선별돼 삭제가 되기 떄문에 삭제 되기 전에 메모를 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이렇게 메모를 해두어도 기억은 어김없이 삭제되곤 했고 일정한 기간이 흐른 후 나의 메모를 보고 꺄르르 웃기도 하고 내가 이랬다고? 나 참 글을 잘 쓰는 구나! 이런 상황을 이렇게 느꼈구나, 이런 생각을 했구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곤 합니다.
어떤때는 친구나 지인, 가족들이 옛 추억을 꺼내어 말할 때 소름끼치게 그 상황을 기억하지 못하는 저를 보면서 애잔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얼마만큼 힘들었으면 이렇게 자동으로 기억을 지워내는 지경에 이르렀을까? 하고 말입니다.
연민이 세상을 따뜻하게 하고 유지할 수 있는 힘이라고 믿는 나로서는 나 자신을 한없이 연민하면서 하루를 소중히, 꼼꼼히 돌아보면서 글을 써봅니다.
이것이 언젠가는 잊혀질 기억으로 가득 찬,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내 글이 이토록 소중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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