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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터디 위드 돈벌러

영화 <서울의 봄> 영화 보기 전 미리 예습하기(12. 12 신군부 쿠데타) 영화 영화 보기 전 미리 예습하기(12. 12 신군부 쿠데타) 1. 10. 26 사태로 독재자 박정희 대통령 시해 1979년 이 땅 대한민국에서 신군부가 주도한 '12.12 사태'가 있었습니다. '신군부'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박정희의 군부와 비교하기 편하게 '새로운 군'부라고 표현을 붙인 것입니다. 1979년 8월에 YH 무역회사 사건으로 인해서 '김경숙'이라는 여공이 신민당 당사 농성 중에 죽게 되고 당시 신민당의 총재였던 김영이 외신 기자들을 불러 모아서 박정희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박정희의 입장에서는 일개 국회의원이 감히 국가 원수를 모독한다고 하면서 1979년 9월, 김영삼을 국회의원에서 제명합니다. 그렇다 보니 김영삼의 정치적 고향인 부산과 마산에서 항쟁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바로 1.. 더보기
정조와 성덕임의 사랑(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 모티브) 정조와 성덕임의 사랑(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 모티브) 1. 정조와 성덕임의 첫 만남 때는 영조가 나라를 다스리던 1762년 윤 5월 13일 새벽, 당시 좌의정이었던 '홍봉한의 집에서 갑자기 통곡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궁에서 출발한 가마들이 홍봉한의 집으로 연달아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가마에 탄 사람이 누구길래 이렇게 통곡했던 것일까요? 바로 궁으로 시집갔던 딸 '혜경궁 홍 씨'와 당시 11살이었던 홍봉한의 손자이자 세손이었던 '정조'였습니다. 뒤이어 정조의 아내 세손빈 김 씨와 공주 2명도 홍봉한의 집에 도착합니다. 캄캄한 새벽 대체 이들은 왜 홍봉한의 집으로 온 것일까요? 영조가 아들 사도세자를 폐위시키고 뒤주에 가둬서 죽인 사건을 일컬어 '임오화변'이라고 합니다. 정조의 아버지는 바로 '.. 더보기
정도전, 조선을 설계했으나 조선에서 금기어였던 그의 이름 정도전, 조선을 설계했으나 조선에서 금기어였던 그의 이름 1. 정도전, 공민왕 죽음에 누구보다 슬퍼했던 '신진사대부'였다 1374년 9월 22일 고려말, 모두가 잠든 캄캄한 밤 개경의 궁궐은 쥐 죽은 듯 조용했습니다. 그때 한 남자가 정적을 꺠고 이렇게 외칩니다. '역적이 들어왔다!' 역적이 뛰쳐나온 곳은 바로 왕의 침전이었습니다. 대체 왕의 침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침전 바닥은 새빨간 피로 흥건했고 방 가운데 처참한 모습으로 시신이 널부러져 있었습니다. 이 침전에서 끔찍하게 살해당한 사람은 바로 고려의 제31대왕 '공민왕'(재위 1351~1374년)입니다. https://donbuller.tistory.com/entry/공민왕과노국공주2 고려 공민왕과 원나라 노국공주의 사랑 2(공민왕과 노국.. 더보기
나혜석, 한 여자이기 전에 한 사람으로 인정받고자 했던 조선여성셀럽 나혜석, 한 여자이기 전에 한 사람으로 인정받고자 했던 조선여성셀럽 1. 나혜석, 유복한 집안에서 자란 조선 명문가댁 규수로 태어나다 때는 조선 후기였던 1896년 4월 18일, 나혜석은 수원에서 유명한 집안의 다섯째 딸로 태어납니다. 나혜석 집안이 수원에서 유명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나혜석 집안은 '나 참판 댁'이라고 불리는 관직이 높은 명문가 집안이었습니다. 나혜석의 할아버지가 순조대에 나라의 재물을 담당하는 '호조 참판'을 지냈고 아버지는 시흥, 용인 군수를 역임했습니다. 대대로 국가요직을 지내면서 심지어 부유하기까지 했던 집안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나혜석은 유복한 집안에서 자란 조선 명문가댁 규수였습니다. 2. 나혜석, 미술에 특별한 재능을 보이다 나혜석이 11살이 되던 1906년, 수원의 자.. 더보기
효종, 형 소현세자의 죽음 이후 갑작스럽게 왕위에 올라 여생을 위기와 불안의 연속으로 살다 효종, 형 소현세자의 죽음 이후 갑작스럽게 왕위에 올라 여생을 위기와 불안의 연속으로 살다 1. 봉림대군, 청나라에 항복한 후 아버지 인조의 '삼전도의 굴욕'을 두 눈으로 보게 되다 1636년 12월 9일, 청나라 군대가 압록강을 건너 조선을 쳐들어옵니다. 청나라 기병이 침공하던 당시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봉림대군은 강화도에 있었습니다. 강화도는 기마병을 끌고 온 청나라 군대와 맞서기에 탁월한 천애의 요새였습니다. 봉림대군은 왕실 가족과 함께 한양 도성을 떠나 강화도로 먼저 피신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인조와 형 소현세자가 무사히 강화도에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인조와 형 소현세자는 가족들이 있는 강화도로 오지 못합니다. 인조와 소현세자가 아직 도성을 빠져나가.. 더보기
신돈, 공민왕과 함께 고려의 개혁을 꿈꿨지만 권력을 탐하여 처형당하다 신돈, 공민왕과 함께 고려의 개혁을 꿈꿨지만 권력을 탐하여 처형당하다 1. 노비로 살게 된 신돈의 탄생 1300년대 초, 현재 경상남도 창녕인 고려의 계성현 '옥천사'라는 절에서 갓 태어난 아이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이때 옥천사라는 절에서 태어난 아이가 바로 '신돈'이었습니다. 옥천사 노비였던 신돈의 어머니가 불공을 드리러 온 신 씨 성을 가진 한 유지와 사랑에 빠져서 임신하게 된 것입니다. 신돈은 어머니가 절에서 아이를 낳게 된 아이였던 것입니다. 부모 중 한 명의 신분을 계승한다는 당시 신분 계승의 원칙에 따라서 신돈의 삶은 어머니의 신분을 계승하여 노비로 시작합니다. 2. 신돈, 절의 노비에서 승려가 되다 그러던 어느 날 옥천사의 노비였던 신돈은 머리를 깎고 승려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이에.. 더보기
가야혈통이지만 평생 신라를 지킨 명장 김유신 가야혈통이지만 평생 신라를 지킨 명장 김유신 1. 김유신 가문이 살았던 '금관가야' 금관가야는 1세기 경, 낙동강 하류에서 형성된 나라입니다. 우리가 '가야'라고 부르는 나라는 여러 개의 소국들이 뭉쳐져서 만들었던 연맹국가입니다. 그렇다면 김유신 가문은 여러 가야 중에서 어느 가야에서 살았을까요? 바로 김해지역을 중심으로 한 '금관가야'입니다. 금관가야는 42년에 김수로왕에 의해서 세워진 나라이며 가야 연맹의 초기 주도권을 장악하면서 성장했던 나라입니다. 2. 김유신의 증조할아버지 금관가야의 제10대 왕 '구해왕', 신라 법흥왕에 항복선언을 하다 그런 금관가야의 제10대 왕 '구해왕(김구해/재위 521~532)'은 김유신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인물입니다. 구해왕과 김유신은 어떤 관계였을까요? 구해왕은 김.. 더보기
이탈리아 르세상스 예술을 꽃피우게 한 메디치 가문의 명암 2 이탈리아 르네상스 예술을 꽃피우게 한 메디치 가문의 명암 2 28. 로렌초, 엄청난 돈을 문화와 예술에 투자해서 르네상스의 발전에 크게 일조하다다 로렌초가 나폴리로 가서 피렌체를 구했다는 사실은 곧 이탈리아와 유럽은 물론 이집트에까지 알려집니다. 이후 각국의 사절단들이 메디치를 찾아옵니다. 위 그림의 '기린'은 이집트의 술탄이 보낸 값비싼 선물이었습니다. 기린은 당시 부와 권력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동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그림을 주의해서 봐야 할 점이 있습니다. 바로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이 메디치 가문의 화가였던 '조르조 바사리'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 특히 미술에 대해서 알고 있는 대부분의 정보는 16세기 조르조 바사리가 쓴 '미술가 열전'이라는 책에서 나온 것입니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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