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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

효종, 형 소현세자의 죽음 이후 갑작스럽게 왕위에 올라 여생을 위기와 불안의 연속으로 살다 효종, 형 소현세자의 죽음 이후 갑작스럽게 왕위에 올라 여생을 위기와 불안의 연속으로 살다 1. 봉림대군, 청나라에 항복한 후 아버지 인조의 '삼전도의 굴욕'을 두 눈으로 보게 되다 1636년 12월 9일, 청나라 군대가 압록강을 건너 조선을 쳐들어옵니다. 청나라 기병이 침공하던 당시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봉림대군은 강화도에 있었습니다. 강화도는 기마병을 끌고 온 청나라 군대와 맞서기에 탁월한 천애의 요새였습니다. 봉림대군은 왕실 가족과 함께 한양 도성을 떠나 강화도로 먼저 피신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인조와 형 소현세자가 무사히 강화도에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인조와 형 소현세자는 가족들이 있는 강화도로 오지 못합니다. 인조와 소현세자가 아직 도성을 빠져나가.. 더보기
저주로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그 저주로 결국 생을 마감한 조귀인(드라마 꽃들의 전쟁 모티브) 저주로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그 저주로 결국 생을 마감한 조귀인(드라마 꽃들의 전쟁 모티브) 1. 인조의 후궁 조귀인, 그녀는 누구인가? 1637년 겨울, 적막했던 창경궁에 아기 울음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아기는 아주 귀여운 여자아이였습니다. 딸의 탄생 소식에 기뻐한 아버지는 다름 아닌 조선의 16대 왕 '인조'였습니다. 인조에게 이때 태어난 딸이 정말 특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인조의 나이가 44살로 늦둥이 딸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딸은 이후에 '효명옹주'라고 불립니다. 인조는 늦둥이 효명옹주를 금지옥엽으로 애지중지합니다. 그런데 인조가 효명옹주를 아낀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이즈음에 인조에게 안팎으로 일생일대의 고난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효명옹주가 태어나기 1년여 전인 1636년,.. 더보기
임진왜란에 맞서 백성을 보살핀 광해군은 성군인가 폭군인가! 2(광해구 왕 즉위후 형과 동생을 죽이는 것부터 유배되어 죽기까지) 임진왜란에 맞서 백성을 보살핀 광해군은 성군인가 폭군인가! 2(광해구 왕 즉위후 형과 동생을 죽이는 것부터 유배되어 죽기까지) 10. 광해군, 명나라의 승인을 받으려 친형 임해군을 제거하다 명나라는 끝까지 광해군을 세자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명나라가 광해군을 세자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그가 장자가 아니라 둘째 아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광해군의 친형인 임해군은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존재하는 것 만으로도 광해군에게 위협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광해군은 즉위하자마자 그 위협을 제거하기로 결심합니다. 친형인 임해군을 역모사건과 엮어서 유배를 보내버립니다. 형 임해군이 유배 간지 1년이 지난 어느날, 광해군에게 충격적인 보고가 올라옵니다. 임해군이 유배지에서 숨을 거뒀다는 소식이었.. 더보기
드라마 '연인'에 나오는 소현세자 2(소현세자 부부 조선인 포로 구하기부터 죽음까지) 드라마 '연인'에 나오는 소현세자 2(소현세자 부부 조선인 포로 구하기부터 죽음까지) 8. 조선인 포로 구출을 위해 소현세자가 짜낸 방법은? 소현세자는 조선인포로들을 외면할 수 없었고 포로를 구할 비장의 카드를 제시합니다. 바로 소현세자가 직접 조선인 포로들을 한 명씩 속환하기로 한 것입니다. 즉 돈을 내고 조선인 포로를 사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소현세자는 심양관 생활 내내 조선인 포로들을 한 명이라도 더 속환하려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속환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지만 심양관자체도 넉넉한 살림을 할 수 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심지어 초반에 비해 속환비용이 갈수록 비싸집니다. 소현세자는 없는 돈을 긁어모아서 속환비를 마련했지만 아무리 돈을 모아도 구할 수 있는 포로들의 수는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9.. 더보기
드라마 '연인'에 나오는 소현세자와 세자빈 강 씨 1(인조의 삼전도 굴욕부터 소현세자부부의 심양에서의 인질생활 그리고 속환시장) 드라마 '연인'에 나오는 소현세자와 세자빈 강 씨 1(인조의 삼전도 굴욕부터 소현세자부부의 심양에서의 인질생활 그리고 속환시장) 1. 삼배구고두례, 삼전도의 굴욕 조선의 세자인 소현세자가 왜 '자금성'에서 인질로 살았는지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조선이 다시없을 치욕을 겪은 그날의 이야기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1637년 1월 30일 한겨울 칼바람이 매서운 날이었습니다. 모래벌판에 황금색 천막을 두른 높은 단이 세워집니다. 그 단 아래에는 남색 옷을 입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고개를 숙인 당시 조선의 왕 '인조'가 서 있습니다. 인조는 모래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고 이렇게 외칩니다. '천은이 망극합니다' 인조는 연이어 양손을 땅에 대고 큰절을 합니다. 그냥 절을 하는 것이 아니고 할 때마다 이마가 땅에..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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