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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 해가 지지 않는 최초의 제국(2) 비극의 시작 근친혼과 가문의 몰락 합스부르크 가문, 해가 지지 않는 최초의 제국(2) 비극의 시작 근친혼과 가문의 몰락 14. 합스부르크 가문 비극의 시작, '근친혼' 합스부르크 가문의 본거지는 원래 '오스트리아'였는데, 새롭게 얻은 스페인과의 거리가 너무 멀어 카를 5세가 오스트리아와 스페인을 동시에 다스리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숙적 프랑스는 신성로마제국의 유력 제후들과 반합스부르크 동맹을 맺고 합스부르크 가문을 위협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오스트리아든 스페인이든 왕이 자리를 비우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카를 5세는 스페인, 네덜란드, 이탈리아내의 자기 영토를 아들인 '필리페 2세'에게 물려주게 됩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와 그 일대는 동생인 '페르디난트 1세'에게 물려주게 됩니다. 이로.. 더보기
합스부르크 가문(1) 시작부터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 되기까지 합스부르크 가문(1) 시작부터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 되기까지 1. 합스부르크 가문, 오스트리아와 스페인의 황금기를 이끈 가문이었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중세와 근대를 거쳐 물 약 600여 년간 거대한 제국을 다스린 가문입니다. 이들은 한때 전 유럽영토의 약 1/3에 해당하는 지역을 지배했었던 왕가였습니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오스트리아 역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때는 오스트리아가 유럽에서 가장 힘이 강했던 나라였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가 바로 합스부르크가문이 다스리던 시기입니다. 오스트리아 수도인 빈을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로 발전시키는데 기여한 것 또한 합스부르크가문의 작품입니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대항해시대 때 강력했던 스페인도 다스렸었는데, 이때가 스페인의 황금기이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오스트리.. 더보기
프랑스 혁명의 역사를 통해 보는 마리 앙투아네트 마리 앙투아네트, 프랑스혁명의 역사를 통해 바라보다 1.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오해? 오스트리아에서는 마리 앙투아네트보다 그녀의 어머니인 오스트리아 최초의 여왕인 '마리아 테레지아'가 더 유명합니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유일한 여자 황제로 탁월한 정치력과 뛰어난 외교력을 발휘했던 것으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마리 앙투아네트가 약녀 이미지이고 명품과 사치를 즐겼던 여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마리 앙투아네트를 프랑스혁명의 과정 속에서 좀 더 넓은 관점에서 살펴보고 그녀의 실제 모습은 어땠는지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2. 마리 앙투아네트, 적대국으로 시집온 오스트리아 공주 1750년 5월 어느 날, 유럽을 주름잡던 두 강대국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사이..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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