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견훤

고려를 세우고 삼국을 통일한 태조 왕건 고려를 세우고 삼국을 통일한 태조 왕건 1. 후고구려 왕 궁예, 왕건에게 나주를 점령하라고 명하다 때는 900년 경으로 한반도는 신라, 후백제, 후고구려로 쪼개진 후삼국 시대였습니다. 당시 세 나라가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이때 왕건은 궁예아래에서 후고구려의 대표장수로 활약하고 있었습니다. 903년, 삼국 간의 견제가 극에 달하던 어느 날 궁예가 부하장수 왕건을 급하게 불러들여 말합니다. '나주로 가라' 고려(후고구려)를 건국한 궁예(2) 왕권 강화책부터 폭군이 되어 가는 과정과 죽음까지 (tistory.com) 고려(후고구려)를 건국한 궁예(2) 왕권 강화책부터 폭군이 되어 가는 과정과 죽음까지 고려(후고구려)를 건국한 궁예(2) 왕권 강화책부터 폭군이 되어 가는 과정과 죽음까지 8. 궁예의.. 더보기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3) 신검의 난부터 일리천전투까지 후삼국 시대의 최후와 견훤의 죽음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3) 신검의 난부터 일리천전투까지 후삼국 시대의 최후와 견훤의 죽음 1. 아들 금강에게 왕위 계승하려 하다. 견훤은 고창전투 패배 후 전세를 뒤집기 위해 줄곧 미뤄두었던 중요한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금강은 몸이 크고 지략이 많았다. 견훤이 특별히 그를 총애하여 그에게 왕위를 전해주려고 하였다.' 자신의 아들 금강을 왕위 후계자로 공표한 것입니다. 금강은 풍채도 좋았던 데다 타고난 머리까 지 좋았습니다. 견훤의 기백을 쏙 빼닮은 아들이었던 것입니다. 견훤은 왜 이리 다급히 후계자를 정한 것일까요? 견훤은 젊고 뛰어난 아들을 후계자로 세워서 왕건을 꺾으려 한 것입니다. 아들을 통해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함을 물론이고 기울어가고 있는 후백제를 다시 일으킬 계획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9.. 더보기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2) 후삼국시대 도래와 고려의 건국 후 공산전투 승리, 고창전투 패배까지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2) 후삼국시대 도래와 고려의 건국 후 공산전투 승리, 고창전투 패배까지 1. 궁예의 후고구려의 등장으로 후삼국시대 도래 1901년 (후) 백제와 신라 두 나라로 쪼개진 한반도가 다시 세 나라로 쪼개지는 일이 발생합니다. 궁예가 고구려 부흥을 내세워 후고구려를 건국합니다. 225년 만에 다시 한번 한반도에 새로운 삼국시대가 도래하게 됩니다. 이를 후삼국 시대라고 일컫습니다. 2. 금성(나주)이 후고구려에 투항한 사실에 분개하는 견훤 삼국이 서로를 경계하면서 나라의 명맥을 이어가던 910년에 견훤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하게 됩니다. 당시 후고구려의 수군이 후백제의 땅에 쳐들어 온 것입니다. 이때 쳐들어온 후고구려의 장군이 그 유명한 '왕건'입니다. 왕건(877년~943년)은 당시 후.. 더보기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