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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책읽기

61.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읽고(책리뷰/독후감)/김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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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읽고(책리뷰/독후감)/김영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김영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김영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는 다소 파격적인 제목과 같이 책의 내용 또한 199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에서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솔직히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이는-한마디로 '충격적'이라고 표현한다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장편소설로는 짧은 130여 페이지의 분량에 20세기 후반 무료하고 건조한 남녀의 얽히고설킨 관계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마치  삶의 여기저기 불규칙적으로 뻗쳐 있는 듯 보이지만 철저히 규칙적으로 조성된 거미줄과 같아 보입니다. 

 

화자인 나의 1인칭 시점과 이외 인물들의 3인칭 시점을 교차하여 서술함으로써 인물들 간의 관계에 따른 긴장과 이완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는 작가이자 고민 상담가이며, 의뢰인들의 자살을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이라는 길을 걷다 교착상태에 빠진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그들의 삶을 글로 남기지만 그의 글은 발간을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어렵사리 순탄치 않은 길을 걷는 한 발자국 또 한 발자국의 의미를 각인시키듯,  의뢰인들의 인생을 누구도 보지 않을 글로 기록합니다. 

 

C와 K는 형제로 C가 형, K는 동생입니다. K는 어릴 적부터 C에게 뺏기는 것에 익숙합니다. C는 자신이 K의 것을 뺏는다고 인식하지 못합니다. 어쩌면 하지 않으려 하는지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K는 어릴 적 C가 아끼던 핀을 꽂아 모아 놓은 나비를 한 마리씩 태우다 집에 불을 냅니다. C는 불타고 있던 집에 K가 있었던 것을 알았지만 동생 걱정을 일절 하지 않고 오로지 소중히 모은 나비가 불탄 것에 대해서만 속상하여 울부짖습니다. K는 카레이서를 꿈꾸었지만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스텔라 TX 총알택시 운전사로 돈벌이를 하며, 종종 기사들과 술잔을 기울이고 포커를 하고 술집에 들러 술을 마시고 노래를 하고 접대부들과 하룻밤을 보내곤 합니다. 술집 접대부였던 세연을 만난 것도 기사들과의 술자리에서였습니다. 술자리에서 세연은 어떠한 말과 행동에도 웃음을 보이지 않았고, 이에 화가 난 남자들이 성을 내자 술집 주인은 그녀를 끌고 나가 마구잡이로 때립니다. 다시 돌아온 세연은 또 아무 행동이나 말에도 모두 자지러지게 웃습니다. 이에 기분이 언짢아진 남자들이 항의를 하였고, 또다시 그녀는 술집 주인에게 끌려나가 뺨을 호되게 얻어맞습니다. 그런 그녀가 왠지 마음에 걸렸던 K는 그녀와의 2차를 위해 돈을 지불합니다. C는 K와 세연이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섹스를 하고 있던 상황을 우연히 목격하게 되면서 세연과 충격적인 첫 만남을 갖게 됩니다. 화가이자 비디오아트 작가인 C는 세연을 보자 클림트의 작품 속 유디트를 떠올리고 그녀를 유디트라 부릅니다. 어느새 K의 여자였던 유디트는 C와 잦은 만남을 갖게 됩니다. 세연에게서 형의 향수냄새를 맡는 일이 많아졌지만 K는 어쩐지 세연과 C의 만남에 대해서 둘 중 어느 누구에게도 물을 수 없습니다. 늘 그랬듯이 빼앗기고 한번 빼앗긴 것들은 영원히 내 곁으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K는 그의 총알택시를 타고 밤거리를 미친 듯이 가로질러 오갈 뿐입니다. 브레이크를 잘못 밟았다가는 전복되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엄청난 속도로 인해 맞이하는 충돌의 위기를 엑셀레레이터와 핸들링으로 강약을 조절하여 벗어나곤 합니다. 유디트는 C에게 어떤 일을 하자고 요구할 때마다 자신의 생일이라는 핑계를 대곤 했고, 그해의 1월 추운 겨울 한복판에 함께 자신의 생일날 고향에 가보고 싶다며 다짜고짜 C에게 함께 가달라고 부탁합니다. 큰 망설임 없이 유디트와 길을 나선 그날은 전국적으로-특히 강원도 지역을 중심으로- 폭설, 강풍주의보가 떨어졌고, 폭설에 두 사람은 고립되고 맙니다. 연료를 아끼며 버텼지만 결국 소진되고 두 사람은 눈을 뚫고 길을 나섰지만, 유디트는 어느샌가 자취를 감추고 맙니다. C는 그녀의 가방에서 그간 확인할 수 없었던 그녀의 신분증을 발견했고 그녀가 사라진 그날이 진짜 그녀의 생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제설차기사에게서 그녀의 고향과는 반대 방향으로 가는 차를 얻어 타고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것이 C와 유디트의 마지막 만남이었고, 6개월 후 유디트가 그녀의 아파트에서 가스중독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K에게서 전달받아 알게 됩니다. 나는 세연이 누군가에게 유디트라고 불리고 있다는 사실, 그녀가 어떻게 해서 술집에서 일하게 되었는지, K와 C 형제를 만나게 되었는지, 왜 자살을 생각하게 되었는지, 어떤 방식으로 자살을 하게 될지에 대해서 상담을 한 후 그녀가 원하는- 손이 많이 가고 위험성이 높은- 가스중독사 쪽으로 최종결정을 하게 되고 그녀의 자살을 돕습니다. C는 그의 비디오아트를 돕던 큐레이터를 통해 유미미라는 행위예술가를 만나게 됩니다. C는 미미를 자신의 비디오작품에 영원히 박제시키길 원하지만 미미는 실재가 아닌 비디오 속 자신은 자신의 본질이 아니라며 한사코 거절합니다. 하지만 어떠한 연유인지는 알 수 없지만 결국 C의 비디오아트 작업에 참여하게 되고 그녀는 한 자루의 붓이 되어 거대한 작품을 만들어 가는 모습을 C는 비디오카메라 안에 담습니다. 작품전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미미는 그녀가 박제된 비디오를 삭제해 줄 것을 요청하였지만 C는 단호히 거절하였고 그녀는 뜻을 이루지 못한 채 C에게서 떠나게 됩니다.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았던 미미는 작품전 당일 참석하여 붓머리가 되었던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칼로 싹둑싹둑 베어내는 다소 섬뜩한 퍼포먼스를 진행합니다. 미미는 '천구보다 낯선'이라는 영화를 나와 같은 영화관에서 관람하였고, 이어서 클림트의 그림을 함께 관람하였고, 나를 통해 C를 담당한 큐레이터를 소개받고 C의 작품에 참여하였던 것입니다. 유디트를 닮은 세연과 세연을 닮아 유디트로 보이는 미미. 미미는 욕조에 몸을 담그고 손목을 그어 죽는 자살을 선택하였고 나는 그녀의 자살을 돕습니다. 나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을 출간하기로 결정하면서 생각합니다. '왜 멀리 떠나가도 변하는 게 없을까. 인생이란.'

 

소설의 제목을 읽고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자살을 하는 것인가? 하는 것도 그 무엇들 중 하나였는데, 그 자살을 돕는 조력자가 주인공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수많은 의뢰인들을 만나며 그들을 힘들게 하고 괴롭히는 것들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을 수 있도록 해줍니다. 나는 그들의 인생에 대해서 '감 놔라 배 놔라'하는 허튼 조언이나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선을 넘는 낙관론이나 '무슨 이런 일을 가지고 자살을 생각하느냐'하는 성마른 간섭은 일절 하지 않은 채 스스로 인생을 돌이켜보고 더 이상 살 수 없는 이유에 대해서 찾아볼 시간을 갖게 하였고 , 마침내 스스로 자살을 결정한 이후에는 단지 자살을 실패하지 않도록 조력해 주는 역할만을 합니다. '자살방조죄'에 해당하는 범죄행위이기에 나는 일처리를 수행하는 중에는 장갑을 끼여 지문을 남기지 않았고, 자살을 한 것이라는 한 치의 의심도 사지 않을 제법 꼼꼼한 자살 사유와 남은 이들을 위한 배려가 담긴 자필 유서를 의뢰인들에게 작성케 합니다. 제법 치밀한 의뢰인과의 관계, 대화, 자살과정을 담은 기록은 결코 세상에 발표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유디트를 닮은 세연과 미미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작품 속에서는 무료함, 건조함, 생기 없음, 죽음을 연상시키는 '조화'가 등장합니다. 베란다에 흐트러지게 널려 있는 조화는 멀리서 보아서는 진짜 꽃인 것으로 착각할 만큼 만개하고 화려하고 아름답기에  가까이 보면 생화일 것으로 착각해 느꼈던 감동의 그 강도만큼 가짜인 것에 대한 충격의 파장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내 인생이 가짜인 것을 알았을 때, 그간의 삶이 헛된 것이라고 느꼈을 때, 앞으로 남은 그 길 또한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공포가 엄습하고 언제까지 이 길 같지도 않은 길을 헤매어야 하는지 알 수 없을 때 스스로 삶을 중단할 것을 선택하게 되는 듯합니다. 속은 것에 대한 충격일까요? 착각에 대한 자책일까요? 믿고 싶었던 것에 대한 배신일까요? 죽은 것과 산 것에 대한 혼란일까요? 혹은 이 모든 것 때문이었을까요? 

소설 속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은 모두 그림 속 작가에 의해 해석되고 변형되고 각색된 인물들을 닮아 있거나, 자신의 약점을 숨기고 있거나, 무관심으로 자신을 보호하고 있거나, 자신을 약하게 하는 것에 대해서 아예 피해버리거나, 자살로 자신의 끝을 결정해 버리는 것을 통해서라도 자신의 삶을 끝내는 통제하려 하는 등 사회 부적응, 무관심, 뒤틀린 인간관계, 불안에 대한 극단적 방어기제가 표출되는 인간들입니다. 태어난 것에 대해서는 어찌할 수 없었지만, 죽는 것에서만큼은 원하는 시간, 원하는 방법을 선택하여 주도적으로 결정하려 하는 세연과 미미, 내 것을 빼앗기는 삶에 익숙한 뼛속깊이 뿌리내린 패배주의자 K와 한때 몸과 마음을 나누었던 사람들의 잠적, 죽음에도 큰 감정적 동요를 보이지 않고 자신의 내적 만족이나 감정에 충실하며 지금 이 순간을 사는 이기주의적 냉소주의자 C, 감정 해우소역할을 하며 의뢰인들의 이야기를 글로 쓰고 그들의 비밀스럽고 농밀한 인생에 대해 관음주의적 태도를 취하며 여행을 통해 자신을 알지 못하는 처음 보는 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생의 에너지를 벌충하곤 하는 나.

섞여서 어떤 맛과 향기, 색이 나올지 알 수 없는 칵테일 재료들처럼 그들의 관계는 닮은 듯 다르고, 가까운 듯 한없이 멀게만 느껴집니다. 

세기말은 늘 종말에 대한 공포에 휩싸이게 마련이었고 특히 1900년대 말, 2천 년대를 코앞에 두고 펼쳐졌던 인류의 종말에 대한 맹신은 천국의 좁은 문을 통과하고자 전재산을 교회에 바치고 눈물로 죄를 씻고 기도로 구원을 갈망하는 인간들의 기현상을 만들어낸 바 있습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지 못하기에 육안으로 볼 수 없고 이성으로 제어할 수 없고 어떤 권위자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티끌보다 더 한 존재의 가벼움은 물기 없고 생기 없고 풀기 없고 희망 없는, 한 곳에 붙박이지 않고 떠다니며 어디에 있는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조차 없는 북극점과 같은 세기말 인간군상들을 통해 여실히 지각할 수 있으며 이 작품은 그러한 감성을 물씬 체감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이는 화자인 나를 통해 작가가 만들어 놓은 세계에서는 작가가 '신'이라는 도발적인 발상에서 시작됩니다.

 

고객의 일이 무사히 끝나면 나는 여행을 떠나고, 여행에서 돌아오면 고객과 있었던 일을 소재로 글을 쓴다. 그럼으로써 나는 완전한 신의 모습을 갖추어 간다. 이 시대에 신이 되고자 하거나 인간에게는 단 두 가지의 길이 있을 뿐이다. 창작을 하거나 아니면 살인을 하는 길. (P15)
매혹의 고통은 종종 새의 가벼운 육체를 꿈꾸게 한다. 하여 나의 질투는 공기보다 가볍다. 나는 사랑하고 있으므로, 사라지고 싶은 것이다. -유하, [휘파람새 둥지를 바라보며]중에서-(P17)

난 북극에 가고 싶어. 한없이 지루해졌으면 좋겠어. 북극점은 돌지도 않을 것 같아. 북극도 없어. 얼음이어서 늘 바다 위에서 조금씩 떠다닌다며? '아무도 그곳을 찾지 못할 거고. 너 역시 거기에 다다르지 못할 거야.(P47)
나는 아무 예고 없이 다가가 물어볼 것이다. 멀리 왔는데도 아무것도 변한 게 없지 않으냐고. 또는 휴식을 원하지 않으냐고.
내 거실 가득히 피어 있는 조화 무더기들처럼 언제나 변함없고 한없이 무료하다. 
왜 멀리 떠나도 변하는 게 없을까. 인생이란.(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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