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대원군 썸네일형 리스트형 흥선대원군의 권력을 향한 욕망, 아들 고종과 원수지간이 되다 흥선대원군의 권력을 향한 욕망, 아들 고종과 원수지간이 되다 1. 후사 없이 죽은 '헌종'의 뒤를 이을 후보 중 한 명이었던 흥선대원군 1849년, 조선 전체가 들썩이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당시 조선 제24대 왕 헌종이 23살의 나이로 후사도 없이 사망을 합니다. 이때 너무도 뜻밖에 왕위 후보에 오른 인물이 있습니다. '철종'과 함께 후보자로 지목된 인물이 바로 '흥선대원군'입니다. 조선 후기 왕들은 마땅한 후계자 없이 일찍 사망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헌종 역시 후계자 없이 사망합니다. 그렇게 헌종이 후계자 없이 승하한 뒤 직계 혈통으로는 후보를 찾을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직계는 아니지만 왕위에 적합한 왕가의 후손 종친들 중에서 인물을 찾아야 했습니다. 찾고 찾고 또 찾다가 마침내 종친부에서 일하던 흥선.. 더보기 삼일(사흘)천하 '갑신정변'을 일으킨 급진개혁파 김옥균 삼일(사흘)천하 '갑신정변'을 일으킨 급진개혁파 김옥균 1. '강화도 조약'이후 조선의 개항이 시작되다 1875년 일본의 운요호가 조선의 강화도에 불법 침투해 전투가 벌어졌고 바로 그다음 해인 1876년 일본은 이 사건을 빌미로 강화도 조약을 체결하며 '개항'을 요구합니다. 일본의 요구로 조선은 처음으로 부산, 원산, 인천의 항구를 순차적으로 열어야 했습니다. 결국 강화도조약 이후에 조선의 개항을 지켜본 미국, 영국, 러시아등 세계열강들 역시 통상을 원한다며 조선에 통상 수교를 요구했고 이에 조선은 차례차례 문을 열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조선 왕인 고종은 빠른 시간 내에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고 군사적 능력까지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당시에 고종에게 필요했던 것은 누구였을까요? 바로 고종과 같.. 더보기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