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프랑스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백년전쟁에 이용당한 잔 다르크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백년전쟁에 이용당한 잔 다르크 1. 프랑스를 구하기 위해 나타난 17세의 영웅, 잔 다르크 1420년 트루아 조약을 통해 잉글랜드의 왕 헨리 5세가 프랑스 샤를 6세의 딸과 결혼해서 그 사이에 왕자가 태어나면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공동 왕이 된다는 엄청난 내용의 조약이 체결됩니다. 이렇게 되면 프랑스 왕위 계승권 1순위였던 샤를 6세의 아들 샤를 7세는 왕위 계승권에서 밀리게 될 뿐 아니라 트루아 조약대로 잉글랜드의 헨리 6세가 프랑스의 왕이 되면 프랑스는 잉글랜드의 속국으로 전락해 버리는 프랑스로서는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프랑스에서 한 영웅이 등장합니다. 바로 17세 소녀 '잔 다르크'입니다. 사실 잔 다르크에 대해서는 아직 많은 것이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더보기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왕위 계승과 영토 문제로 발발한 백년전쟁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왕위 계승과 영토 문제로 발발한 백년전쟁 1. 잉글랜드와 프랑스 백년전쟁의 서막, 필리프 6세 프랑스 왕위에 오르다 1328년, 프랑스의 샤를 4세는 왕위를 이을 후계자 없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프랑스는 새로운 왕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이때 프랑스 왕위 후보로 두 사람이 거론됩니다. 다름 아닌 잉글랜드의 왕 에드워드 3세와 프랑스 발루아 백작의 아들 필리프 6세였습니다. 프랑스 왕위를 두고 두 사람 사이에 중세 버전의 왕좌의 게임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프랑스 왕위를 두고 왜 잉글랜드 왕이 후보로 거론된 것일까요?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당시 잉글랜드와 프랑스 왕조의 가계도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1328년 사망한 샤를 4세에게는 형제 3명과 여동생이 한 명 있었는데 형인 루이 1.. 더보기
프랑스 혁명의 역사를 통해 보는 마리 앙투아네트 마리 앙투아네트, 프랑스혁명의 역사를 통해 바라보다 1.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오해? 오스트리아에서는 마리 앙투아네트보다 그녀의 어머니인 오스트리아 최초의 여왕인 '마리아 테레지아'가 더 유명합니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유일한 여자 황제로 탁월한 정치력과 뛰어난 외교력을 발휘했던 것으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마리 앙투아네트가 약녀 이미지이고 명품과 사치를 즐겼던 여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마리 앙투아네트를 프랑스혁명의 과정 속에서 좀 더 넓은 관점에서 살펴보고 그녀의 실제 모습은 어땠는지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2. 마리 앙투아네트, 적대국으로 시집온 오스트리아 공주 1750년 5월 어느 날, 유럽을 주름잡던 두 강대국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사이.. 더보기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