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 썸네일형 리스트형 허준의 <동의보감> 의미와 편찬 과정 허준의 의미와 편찬 과정1. 허준, 임진왜란 중 선조를 따르며 처음부터 끝까지 보살피다의주에 이르기까지 문관, 무관이 겨우 17인이었으며(...)어의(御醫) 허준(...) 처음부터 끝까지 곁을 떠나지 않았다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했고 왕인 선조는 한양을 버리고 의주를 향해 피란길에 오릅니다.전쟁 중 왕을 따라가면 적의 표적이 되기 때문에 신하들조차도 왕을 버리고 뿔뿔이 피란길에 올라 문관, 무관이 겨우 17명밖에 되지 않은 초라한 왕의 피란 행렬에 허준은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했던 것입니다.허준은 이런 상황에서도 모든 것을 제쳐두고 왕의 피란길에 동행하며 선조의 건강을 보살피며 돌봅니다.https://donbuller.tistory.com/entry/광해군1 임진왜란에 맞서 백성을 보살핀 광해군은 성.. 더보기 노량해전,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통해 바라본 고독하고 치열했던 마지막 전투 노량해전, 이순신의 를 통해 바라본 고독하고 치열했던 마지막 전투 1. 이순신, 몸은 죽고 나라는 살다 난중일기는 1591년, 임진(壬辰) 일기를 시작으로 1598년 무술(戊戌) 일기로 끝을 맺습니다. 그중 이순신 최후의 모습이 그려진 무술년의 기록, 그해 42일간의 일기는 1598년 11월 17일에 멈춰있습니다. 이순신은 11월 17일 그 일기를 쓴 후 18일 최후의 전장인 노량 해역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1598년 11월 19일 아침, 이순신은 사망합니다. 이순신의 죽음으로 일본과의 7년 전쟁이 막을 내렸으나 곧 그의 죽음에 대한 석연치 않은 의혹이 제기됩니다. '싸움에 임하여 스스로 갑옷을 벗고 탄환에 맞아 죽었다' 이순신이 스스로 죽음을 불러들였다는 것이었습니다. 4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 더보기 상궁 김개시, 광해군을 쥐락펴락하며 권력을 탐하다 상궁 김개시, 광해군을 쥐락펴락하며 권력을 탐하다 1. 궁녀 김개시, 선조 독살 범인이라는 소문의 주인공이었다 때는 선조가 조선을 다스린 지 41년째 되던 1608년 2월 오후 1시가 지났을 무렵이었습니다, 당시 왕이 머물던 궁에는 묘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궁 안 사람들이 어디론가 분주하게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향했던 곳은 조선 제14대 왕 '선조'의 침전이었습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조정 대신들과 국사를 논하던 선조가 점심 식사 후에 갑자기 쓰러진 것이었습니다. 선조가 먹었던 음식은 바로 '약밥'이었습니다. 모두가 불안하고 초조하게 선조의 상태를 예의 주시하던 그때, 침전에서 궁을 울리는 통곡소리가 터져 나옵니다. 57살의 선조가 갑자기 숨을 거두고 만 것이었습니다.. 더보기 이순신과 권율을 추천해 일본으로부터 조선을 지킨 해결사 유성룡 이순신과 권율을 추천해 일본으로부터 조선을 지킨 해결사 유성룡 1. 유성룡, 21살에 스승 '퇴계 이황'으로부터 극찬을 받다 유성룡은 21살이 되던 해에 당시 저명한 학자였던 퇴계 이황을 직접 찾아가서 제자가 되기를 청합니다. 첫 만남에서 유성룡과 몇 마디 주고받은 이후에 퇴계 이황은 유성룡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 사람은 하늘이 낸 사람이다' 단 몇 마디 나눴을 뿐이지만 퇴계 이황은 유성룡의 명민함과 범상치 않은 재능을 알아본 것입니다. '자네는 반드시 훗날 큰 일을 해낼 걸세!' 심지어 퇴계 이황은 유성룡이 훗날 반드시 큰일을 해낼 거라면서 호언장담까지 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퇴계 이황에게는 수많은 제자가 있었지만 퇴계 이황으로부터 이런 극찬을 받은 것은 유성룡이 유일했다는.. 더보기 조선 바다를 지킨 이순신(한산대첩, 명량대첩) 조선 바다를 지킨 이순신(한산대첩, 명량대첩) 1. 임진왜란의 시작과 이순신의 조선 수군의 맹활약 1592년 4월 13일, 부산 앞바다로 쳐들어 온 일분군에 의해 임진왜란(任辰倭亂)이 시작됩니다. 임진왜란은 1592년~1598년까지 조선에 침입한 일본과 2차에 걸쳐 싸운 전쟁입니다. 철저하게 준비하고 온 일본 군 앞에서 조선의 지방성들은 차례로 무너지게 됩니다. 그리고 임진왜란 시작 불과 20일 만에 조선의 수도 한성까지 함락됩니다. 임진왜란 내내 조선땅은 일본군의 발아래 짓밟히고 조선의 백성들은 잔혹하게 약탈당했습니다. 그런데 조선의 바다만큼은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조선의 바다를 든든하게 지키는 전라좌도의 수군 지휘관 바로 이순신 때문이었습니다. 육지에서는 연전연패인 조선군이 이순신의 뛰어난 전략과 지.. 더보기 임진왜란에 맞서 백성을 보살핀 광해군은 성군인가 폭군인가! 2(광해구 왕 즉위후 형과 동생을 죽이는 것부터 유배되어 죽기까지) 임진왜란에 맞서 백성을 보살핀 광해군은 성군인가 폭군인가! 2(광해구 왕 즉위후 형과 동생을 죽이는 것부터 유배되어 죽기까지) 10. 광해군, 명나라의 승인을 받으려 친형 임해군을 제거하다 명나라는 끝까지 광해군을 세자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명나라가 광해군을 세자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그가 장자가 아니라 둘째 아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광해군의 친형인 임해군은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존재하는 것 만으로도 광해군에게 위협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광해군은 즉위하자마자 그 위협을 제거하기로 결심합니다. 친형인 임해군을 역모사건과 엮어서 유배를 보내버립니다. 형 임해군이 유배 간지 1년이 지난 어느날, 광해군에게 충격적인 보고가 올라옵니다. 임해군이 유배지에서 숨을 거뒀다는 소식이었.. 더보기 임진왜란에 맞서 백성을 보살핀 광해군은 성군인가 폭군인가! 1(광해군의 세자책봉 과정부터 왕으로 즉위하기까지) 임진왜란에 맞서 백성을 보살핀 광해군은 성군인가 폭군인가! 1(광해군의 세자책봉 과정부터 왕으로 즉위하기까지) 1. 광해군, 성군인가! 폭군인가! 임진왜란의 영웅 광해군은 왜 쫓겨났는지 살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광해군은 전란의 상황 속에서 누구보다 백성을 먼저 살핀 성군이었지만 권력을 지키기 위해 친인척마저 가차 없이 죽여 나간 폭군이기도 했습니다. 광해군은 성군일까요? 폭군일까요? 2. 선조, 북쪽(명나라)으로 파천을 결정하다 1592년 4월 13일, 부산에 기습적으로 상륙한 일본군은 무시무시한 기세로 수도 한양을 향해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임진왜란'이 시작된 것입니다. 임진왜란은 1592년~1598년 약 7년 간 두 차례에 걸쳐 벌어진 일본과의 전쟁을 말합니다. 철저하게 준비하고 온 일본.. 더보기 이전 1 다음